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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 와
박설희
시인의일요일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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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다 되어 가 / 컵, 지워지는 / 진창의 노래 / 눈 / 척도 / 종 / 완전한 어둠 / 교착膠着 / 오늘의 불협화음 / 명령 / 법과 편 / 향기점占 / 11월 / 떡! 하니

2부


지구를 굴린다 / 겨울 들판에서 / 눈의 부족 / 첫물 / 바보숲 명상란 / 물속의 사생활 / 문어 / 아로니아밭 / 수척해진 이유 / 모래의 시간들 / 수박 / 만월 / 체위에 관한 단상 / 카니발

3부


환희 / 묵, 묵 / 관管 / 바퀴 / 식욕유 / 터 / 길 위에서 / 지바현 능소화 / 반쪽짜리 자화상 / 곰배령 / 아버지의 손가락 / 경주 남산 / 천년의 아침을 내다보다 / 입

4부


초대 / 비탈에 기대다 / 방 / 지나가는 비 / 목 / 끝내 괄호를 닫지 못하고 / 그림자 혹은/ 거품 / 한 개 촛불 앞이었다 / 무서운 사람 / 늦게 도착한 / 노을 진 자리 / 꽃의 심장에 도달하려면 / 돌멩이 하나 / 들판에서

해설 - 진창길을 헤쳐 가는 ‘눈의 부족’의 노래 | 임동확(시인)

저자 소개 1

강원도 속초에서 유년을 보내고 서울에서 청춘을 보냈다. 방화수류정과 화성에 반해 수원에 정착한 후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가장 행복하다. 시집으로 『가슴을 재다』 『꽃은 바퀴다』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이 있고, 공동산문집으로 『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먼 곳에서부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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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60g | 140*200*10mm
ISBN13
9791192732268

책 속으로

“올해 첫물이에요”
비닐봉지에 꽁꽁 싸맨
감자 몇 알과 상추를 내민다
까맣게 그을린 손등과 얼굴로

비닐봉지를 푸는데
씨를 뿌리며 흥얼거린 노랫소리 들린다
잎과 줄기가 피어나리라는 부푼 가슴,
긴 열기 견디고 스며드는 어스름이 고여 있다

울컥,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첫물의 시간들

풋내나는 걸음걸이
두근거리는 심장
시디시어 입에 침이 고이는
떫고 까끌거리는
첫 입학, 첫사랑, 첫 키스, 첫 월급, 첫 출산
첫 죽음까지
--­「첫물」 중에서

우리 집에 놀러 와

감자밭 가장자리를 지나
시냇물 돌징검다리 건너
조팝꽃 쪼르르 피어 있는 오솔길

혼자 오지 말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심심한 구름을 데려와
정처 없이 나풀거리는 나비
맑고 서늘한 새소리와 함께 와

사심私心은 두고 와
가볍게 가볍게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나
소나무 우거진 숲으로
백 걸음쯤 걸으면
네 키의 열 배나 되는 바위가 졸고 있지
--­「우리 집에 놀러 와」 중에서

성남 씨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안 보이는 눈을 껌벅거리며 순녀 씨가 귀를 세운다
소란 씨는 휠체어에서 뒤틀린 몸을 버티며 간신히 눈을 맞춘다
이동 차량이 안 잡힌 대준 씨는 줌 화면으로 얼굴을 보인다

시 창작 첫 수업
내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한다
가지가 앙상한 은행나무가 교실 안을 기웃거린다

은행나무는 사람보다 먼저 직립했다
나무의 체위를 보며 사람들도 직립을 꿈꾸었을까

물속에 서서 자는 고래의 체위를
날면서 자는 새들의 체위를 그려보다가
내 앞에 놓인 시를 더듬더듬 읽는다

--­「체위에 관한 단상」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진창길을 헤쳐 너른 들판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합창


박설희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농업적이고 생태학적 상상력도 이와 맞물려 있다. 일차적으로 박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하나인 “한강” “강물” 속에 “당뇨약”에 “중독된” “등 굽고/ 비늘이 흐물”한 “물고기가 늘어나고 있”(「물속의 사생활」)는 사실에 주목한다. 동시에 해발 “오백 미터, 천 미터, 천오백 미터”에서 자생하던 “구상나무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전 지구적인 기후 이상으로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수척해진 이유」)어진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한다. 그러면서 여기에 “너무 늦게 도착한” 깨달음의 “시간”일망정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새로운 협력과 동반의 관계로 전환할 “준비”(「늦게 도착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주장을 담아낸다.

박설희 시인의 시적 태반은 단연 ‘진창’이다. 과도한 물기로 질퍽질퍽해져 걷거나 활동하기에 불편한 땅과 같은 오늘의 현실이 그 시적 기반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우리는 평소 서로 우애하며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마치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泥田鬪狗)처럼 먹다 남은 뼈다귀 같은 사소한 이해관계 또는 생각의 차이 때문에 금세 돌변해 상대방을 증오하거나 죽기 살기로 서로 물어뜯기에 바쁘다. 격랑이 일어나기라도 할라치면 평소 잔잔하고 평화스럽게 보이던 맑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진흙탕물이 수면으로 용솟음치듯이 언제든 진흙 벌 같은 시커먼 혼란과 갈등이 재현될 수 있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다.

구체적으로 박설희 시인에게 그런 ‘진창’은 스스로가 적당히 견디고 극복할 만큼의 시련과 고난을 주는 땅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떨어져 “헛돌고 있는 바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도랑”(「바퀴」)과 같은 속수무책의 망연자실한 현실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한번” 문 “닭꼬치” 먹이를 “끝까지 놓지 않는” “자라”처럼, 이른바 “수저를 입에 문 이후” 시작된 인간의 “뜨거”운 욕망과 탐욕이 “가장 나중까지 식지 않는”(「목」) 삶의 아수라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설희 시인은 이처럼 모든 시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렇다고 해도 쉽게 얻어질 리 만무한, 명실상부한 말과 실재 또는 이름과 자신의 본성과의 일치를 꿈꾸는 시의 길을 염탐하고 있다. 시인은 결코 만만치 않을 앞으로의 시적 장도를 예고해 “너른 들판에서 혼자 비와 우박을 온몸으로 맞”(「들판에서」)고 있는 채. 아니면 아마도 영원히 해결할 방도 없는 진창의 진실에 닿기 위해 “괄호를 열”었지만, “끝내” 그 “괄호를 닫지”(「끝내 괄호를 닫지 못하고」) 못한 채. “돌”과 “칼”을 “삼키”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들을 넉넉히 “다 견뎌”내고 말, “정말 무서운 사람”(「무서운 사람)」 박설희 시인에게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시인의 말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왔다

침묵 속에서
사뿐사뿐 다가오는
심장을 두근대며 다가오는
기척들

마음이 간절해지는 곳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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