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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웃, 너의 미래
석미화
시인의일요일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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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그 먼 언덕에 한번 다녀올까

벌목 / 벌목 / 절정이라는 말 / 빙하 장례식 / 장편 / 뷔히너 / 연희동 / 호스피스 애인 / 둘레

2부 귤꽃 향기와 첼란


하란 / 귤꽃 향기 엄습하는데 첼란을 읽다니 / 일요일의 만찬 / 검은 국 / 그곳에 비술나무 한 그루 있었다 / 벌목 / 반애조 / 네가 손바닥을 불쑥 보일 때 / 새의 군무를 보고 온 날 / 함형수 / 아틸라 요제프 / 돌발성난청

3부 물과 물을 건너다니는 고독


빛 속에 앉아 있었다 / 앞세워 걷는 나무 / 물결은 집으로 돌아가고 / 저녁이 생겨났다 / 귀룽나무 / 지독한 여름이니까 / 수목원의 빛 / 나무의 온도 / 나와 남자는 웃었지요 / 돌배나무 / 유리산에 가다 / 나의 식물성

4부 신의 거짓말


소리설치가 / 폴란드 정원 / 빛의 산 / 검은 별 / 분짜 / 마요르카에서 온 편지 / 베르너 사세라고 들었다 / 수많은 얘기 중에 페소아

5부 슬플수록 사람은 같은 얼굴을 하고


초충도를 치다 / 하여, / 헌화가 / 흩어지는 날씨 / 빗발치는 처마 / 책비 / 몽환에 부치다 / 검은빛의 쓸모 / 폭설

해설 희고 고요한 | 송현지(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1969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14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았다. 2019년 ‘아르코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첫 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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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58g | 140*200*20mm
ISBN13
9791192732336

책 속으로

힘들겠지만 가장 아팠던 상처를 편안하게 흥얼거려 보시겠어요

그녀는 수십 개 선을 내 몸에 설치해 놓고 늑골에 묻힌 소리를 꺼내려는 것 같았다

가느다란 여음
여치나 찌르레기처럼 나에게도 숲이 생긴 것을 알았다

반대로 말해 볼게요
행복한 시간에도 남아있는 아픔을 한번 끌어내 보세요

신은 우리가 힘들면 노래하도록 만들어 놓았을 거예요
숲에서 이슬이 만들어지는 시간 같은 거예요

신이 신나게 거짓말을 만들 듯

바닥과 천장이 단단하게 허공을 짓는 듯

수고했다고 처진 등을 다독이면서
들숨 한 번 크게 쉬고
그녀와 내가 앉은 자리에 사이프러스 잎 소리가 들렸다

추운 곳에서 견뎌낸 나무들은 악기의 음색이 어둡고 깊지요

내 몸에 부착된 선들이 가지를 뻗으며 마른 잎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 숲을 걷어낼 거예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세요

먼 곳에서 그녀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소리 매듭은 프라이부르크로 돌아가서 천천히 풀 거예요 화음들이 고요히 내려와 물들다가 다시 사라지겠지요 테이블 위 기계에서 나의 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검은 그래프는 빛 웅덩이 속인 듯 잦아들고
--- 「소리설치가」 중에서

꽃에 이르는 길은 멀고
씨앗들은 풀의 위협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녁 구름은 먼 곳에서 흘러와
창 앞의 나무에게 다가갑니다

저녁이면 없던 집이 생겨납니까
우체통이 골목을 완성하는 멀리까지 다녀왔습니다
곧 저물면
물속에 전조등 비추고 가는 대형차들이 늘어나겠지요

더 멀리 가야 했습니다
힘겨울 때 아름다운 물속을 보여주는 교회도 있더라고요

준비가 다 되진 않았습니다
고요가 마련되고 있는 중입니다

누에가 거물거물 잠에 드는 뽕잎 속, 잠두혈蠶頭血이라는 지명을 가진 여기
검고 향기 나는 푸른 잎 덮고 두 잠 석 잠
가랑비 소리를 내며 까무룩 잠드는 거지요

나를 재우러 왔습니다
여태 한 번도 잔 적 없는 나의 마음을 잘 재워야 합니다

검은빛의 쓸모

깊은 잠을 위해 검은빛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 「검은빛의 쓸모」 중에서

뭐, 뷔히너를 읽으려고 뷔히너를 좀 더 일찍 안 스무 살의 너에게 주황색 노을빛 책을 빌렸다 사실 너에 대한 관심이 었겠지 뷔히너- 라고 읊조리면 왠지 궁금했던 너에 대해 일부와 다른 전부가 읽혀질 것도 같았다 입안에 가득 이름을 넣어 입술을 내밀었다가 네게로 당기는 안쪽, 힘을 힘껏 줘도 뱉어지지 않는 너의 시위대 속 연기, 나의 아웃, 너의 미래, 나는 너의 뷔히너를 반 정도 읽다가 이십 대를 모두 보냈다 너는 너의 뷔히너를 받지 못하고 삼십 대를 흘려보냈다 너의 늦은 결혼과 나의 잦은 이사, 사이 우리는 잃어버렸다 이삿짐에 넣지 않은 뷔히너 아무리 되물어도 생각나지 않는, 너는 그때 내 곁에 없어 돌려줄 우연을 놓쳤다 그 봄밤 네 옆얼굴 그림자를 내 쪽으로 펼쳐보았다 몇 번이나 흔들리는 꿈, 붉게 물든 뷔히너 전집 속 너는 아직 거기에 있다, 없다

--- 「뷔히너」 중에서

출판사 리뷰

너의 우연한 말이
나의 새벽을 빗발치게 했다

“가장 아팠던 상처”를, “늑골에 묻힌 소리를 꺼내”어 보자 벌목된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숲이 생긴 경험을 그는 했던 것일까. “추운 곳에서 견뎌낸 나무들”로 만든 “악기”가 “어둡고 깊”은 “음색”을 내는 것처럼,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던 그 소리들을 길어 올리자 깊고 고요해진 말들. 이것이 이번 시집에서 석미화가 다다른 고요라면, 「굴꽃 향기 엄습하는데 첼란을 읽다니」, 「지독한 여름이니까」 등을 비롯하여 유독 자주 눈에 띄는 ‘검은색’은 이 시집이 지난 기억들 모두를 토해낸 현장, 곧 “구토”(「돌발성 난청」)의 자리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어두어야 할 점은 이 시집의 고요가 단순히 이 소리들을 다 뱉고 난 텅 빈 상태를 가리킨다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시집에서 두드러지게 제시된 흰색이, 「흰 강」의 “강은 매일 허옇게 변해갔다”라는 구절로 대표되듯, 순수하거나 투명한 흼이 아니라 검은 죽음과 친연할 뿐 아니라 그것의 변주된 색상인 것과 유사하게, 이번 시집에서도 흰색과 그것이 표상하는 고요는 단지 검은색이 제거된 상태, 그러니까 슬픔과 고통의 기억이 전부 사라진 상태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처럼 이 시집이 과정 속에 있다는 점은 독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 글은 누에고치와 같은 그의 시집에 대해 말했을 뿐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누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시집을 읽는 동안 잠에서 깬 그것은 마치 ‘소리설치가’처럼 조금씩 우리 몸에 숲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시의 “자음과 모음이 영혼처럼 흘러 다니”(「마요르카에서 온 편지」)며 “끈적거리고 미끄러운”(「저녁에 생겨났다」) 소리들을 우리 몸에 끌고 온다. 그것이 남긴 젖은 물길은 우리의 몸을 하나씩 “잎맥”(「귀룽나무」)이 되게 하여 숲을 이룬다. 세월에 베어진 나무들을 떠올리며 만들어진 거대한 숲, 쉽사리 “통과하지 못하고 갇히”(「폴란드 정원」)게 되는 숲. 그간 잊어버린 소리들과 삼켜왔던 소리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 검은 소란을 우리의 몸에 옮겨놓으며, 그의 시는 더욱 희고 고요해진다. 나는 이제 “홀로이면서 홀로가 아닌”(「폭설」) 마음으로, 흰빛을 품은 이 시집을 펼쳐 다시 읽어본다. 이제는 우리의 고요한 미래가 도래할 차례다.

시인의 말

너와는 신발이 많이 닳은 날에 만났다.

하염없이 걸음을 옮길 때
새가 날 듯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온통 그것뿐이어서,
도착하지 못한 슬픔이 멀고도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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