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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속눈썹이 긴 딸을 낳았다
잉어 재봉틀 / 목숨의 행방 / 조금 우는 일 / 그네의 시 / 눈물이 검어지는 기원 / 물속의 산책자 / 모자 / 나는 문경새재의 저녁으로 눕는다 / 둥지의 길 / 같은 마음 2부 - 나를 사랑했던 혐의가 있다 기도의 완성 / 착한 어른 / 수중극장 / 옥탑의 타인 / 어떤 표정을 지을 때 / 마흔 / 사막을 건너는 표정 / 킬힐의 순정 / 마른장마 / 순천만울트라마라톤 / 천 마리의 빛 3부 - 옛날의 문장이 죽지 않는다 옛날 시인 / 투명한 비늘 / 청둥오리 필경사 / 이팝나무와 너구리 / 옛날 시인 / 한고비의 계절 / 금샘의 가계 / 은동굴 / 죄짓고 들어간 곳 / 사과가 오고 있다 / 사슴과 나무 사이에는 4부 - 돌은 보았습니다 돌은 보았습니다 / 끝없는 버릇 / 안개의 장례식 / 잿빛 / 흡연실의 비눗방울 / 공중의 잠수사 / 어떤 잠 / 미미 / 현장의 방식 /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버릇 / 열아홉 운지법 / 돌의 쓸모 5부 - 진심이 읽어주지 못한 말이 있다 다정한 병 / 그대로의 진심 / 진심의 쓸모 / 진심의 색 / 살㬠 / 상처 많은 곳으로 / 불을 다루는 법 / 잘 죽고 싶어요 / 곁-홍래 형에게 / 행복한 시 해설 ‘진심’의 쓸모 혹은 ‘사랑’의 이해 | 전해수 (문학평론가) |
황종권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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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잉어가 물의 재봉틀이라는 것은 모른다
아무도 잉어가 주둥이로 물의 실을 잣는지도 모른다 윤슬은 잉어의 첫울음, 초록을 쏟아내는 버드나무 곁에서 잉어는 만삭의 별자리가 되거나 마른기침으로 배냇저고리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잉어는 숨이 트이는 빛을 떠올린다 윤슬은 물의 탯줄을 가진 아이, 물길을 걷다 보면 나도 저 잉어 재봉틀에서 태어난 물병자리 아니던가 만조의 별자리를 짜는 강, 잉어 재봉틀이 있어 지느러미 바늘처럼 반짝일 때 나는 속눈썹이 긴 딸을 낳게 되었다 ---「잉어 재봉틀」중에서 내 몸속엔 분홍색 웅덩이가 하나 있어서 내가 걷지 않아도 자꾸만 신발 밖으로 넘쳐요 진심이라는 건 말이죠, 자고 일어나면 내 머리카락 사이로 돋아난 무수한 아기 쥐들의 발바닥 같아요 간지럽고 축축해서 자꾸만 긁게 되는 그런 것 이것 봐요, 내 입술을 비집고 설탕 가루 같은 비명이 눈송이처럼 쏟아져요 누가 녹아버릴 것들을 손바닥에 받아줄까요?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릴 이 가벼운 구름 뭉치들을 쓸모를 묻는 순간, 내 안의 진심은 부풀어 오르는 빵처럼 상해가요 나는 매일 내 속을 뒤집어 당신의 식탁 위에 잘 익은 내장들을 부려 놓는데 당신은 향기가 너무 짙다며 창문을 열고 나는 텅 빈 가죽 주머니가 되어 바람에 펄럭거려요 보이지 않는 핏줄들이 내 몸을 촘촘히 뜨개질하고 있어요 한 코씩 뜰 때마다 투명한 땀방울이 맺히고 진심은 나를 다 받아 적고서야 밖으로 나가는 길고 긴 꼬리를 가진 짐승이에요 보여요? 이 쓸모없는 몽실몽실한 처절함이 바닥에 쏟아진 나의 무늬들이 햇볕 아래서 비눗방울처럼 터지며 웃고 있는 게 아무도 읽지 않는 이 폐기된 다정의 뭉텅이가 오늘 밤 나를 감싸 안고 잠드는 유일한 이불이랍니다 ---「진심의 쓸모」중에서 만삭의 아내가 월세부터 걱정하는 밤이었다 죽지도 못하는 얼굴로 달빛을 키우는 밤이었다 어둡다는 건 불씨가 없는 연기, 자욱한 가난만이 밤의 주인이었으므로 소경의 눈에 세 들어 사는 것 같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미 죽어도 되는 세계에 도래했다는 것 어둠을 각오한, 밤이 계속되고 있었다 빛과 어둠을 구별하지 못할수록 이승과 저승은 한통속, 밤의 바깥에 오래 서성거리고 있었다 ---「눈물이 검어지는 기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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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진심’의 쓸모를 묻은
당신을 응원하는 진심의 미학 황종권의 시에는 생활의 진심과 사랑의 표식들이 있다. 이 표식을 따라가 보면, 울음의 끝에 매달린 ‘당신’의 등이 보이고, 그 등에서 ‘발목’으로 시선을 옮기는 ‘생활’이 웅숭깊다. 좀 역설적인 말이지만, 황종권의 시에는 생활의 진심이라는 쓸모 혹은 쓸모없음을 끊임없이 확인해야만 하는 절실함이 사랑의 이해를 요구한다. 예컨대 “사막과 사막을 걷는 발의 걸음걸음으로 시작되는 횡보가 사랑의 시작”(「자서」에서)이라 여기는 사랑의 빛은 황종권 시인이 바라보는 시의 세계이자 시인이 끝내 붙잡으려 하는 사랑의 모습일 터이다. 다만, 황종권의 시는 일상의 ‘생활’에서 기인하는 진심을 찾기 위한 여정이 줄곧 동행하고 있어서, (숨 가쁜) 사랑의 이해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생활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이 여전히 사랑이기도 하므로, 시인의 언어에서 이러한 사랑의 진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떤 일의 “쓸모”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에 반하는 쓸모없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의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진심”이라는 삶의 가치 앞에서 “쓸모”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황종권 시인은 “쓸모를 묻는 순간, 내 안의 진심(이) 부풀어 오르는 빵처럼 상해 간”다고 인식한다. 그것은 마치 “식탁 위의 내장들”과 “당신의 향기가 너무 짙다”고 여기는 충돌하는 감정들과 뒤섞인다. 이 불온한 감정으로 인해 “나”는 끝내 “창문을 열고 나(를) 텅 빈 가죽 주머니”로 비운 채 “바람” 앞에 선다. 그리하여 “바람에 펄럭거린”다는 것은 진심을 잃은 자의 텅 빈 내면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다가온다. 시에서 “쓸모없는”, “처절함”, “바닥에 쏟아진”, “폐기된 다정의 뭉텅이” 등의 시어는 “진심의 쓸모”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자 혹은 찾기 어렵다고 여기는 감정들이 ‘오해’가 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그렇다. 생활은 자주, 우리의 진심을, 마침내는 돌보지 않고 왜곡하게 만들곤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경험이 자주 있다. · 시인의 말 깨진 거울 속, 죽고 싶은 것들이 밤마다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수없이 진심을 잃어봤으므로 진심만큼 아름다운 지옥이 없다는 걸 읽는다. 한 아이가 하나의 문장을 오롯하게 쓰는 시간, 한 사람의 진심이 한 사람에게 건너가는 시간, 하나의 별빛이 누군가의 눈동자에 맺히는 시간, 죽지 않는 지옥을 살아내는 일 같았는데 진심에 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젠 깨진 거울 조각들을 삼켜도 진심이 대답하지 않아도 나는 세상의 모든 지옥을 사랑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