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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빛과일
脫 / 음- / 우리 어른 정상영업 합니다 / Fla(e)sh / 편집점 / Fle(a)sh / 이름은 비워둘 수 없습니다 / Berry / 삼중 추돌 / 선물 2부 눈치 못 채겠지 내 강아지나 좀 이상하게 볼 뿐 환영사 / 당신의 입장이 나의 입장 / 양 / 환승역을 점거한 파이 광신도와 오늘의 메뉴 / ESG(Eco-friendly, Socialized Geeks) / 흔 / 잔문통 / 슬픔의 유전적 클리셰 / EX / 꿰맴: 시침질 / 눈사람 소조 / 꿰맴: 홈질 / 풍경風磬 / 핑거 스냅 / 꿰맴: 박음질 3부 평발이거나 다지증인 천사도 있습니까? Outro / 종의 묵음 / from: since: until: / 부고 / 부고장 / 인스턴트 / 아우로라 / 유레카를 외치지 않고서야 물이 넘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 칼레이도스코프 / 아우로라 / 나의 영혼은 노스탤지어를 표류하고 / 원더풀 마이 라이프 / (0) / 아직 이 개 같은 해설 하이브리드 상상력으로 충만한 독자적인 미학적 시도詩圖 | 염선옥(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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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는 것 같다
잘못 쓰는 것 같아서 잘못 쓰는 것 같다고 쓴다 이마저도 잘못 쓰는 것 같다 ‘잘못 쓰는 것 같다’를 ‘잘못 썼다’라고 고쳐 본다 잘못 썼다는 확신조차 없는데 잘못 썼다고 한다 잘못 고친 것 같다 턱없이 적은 물건 사이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다 잘못 쓰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신 씨를 뱉어버렸다고 말해 본다 생각해 보니 씨는 없다 잘못 익은 것 같다 과육이 달지도 않다 잘못 기른 것 같다 그건 언젠가부터 자랐다 씨앗이 있기도 전에 자라기 시작했다 잘못된 것 같았지만 그냥 키웠다 전날 이름 모를 과실을 베어먹는 꿈을 꾸어서 아무도 길몽이라고 해석해 주지 않아 내가 아는 흉몽이 늘었다 ---「환영사」중에서 어디로 갈 거야? 어디론가 갈 거야 20세기 명화를 액자째 열어젖힐 거야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갈 거야 거꾸로 뒤집힌 삼각형이 되어서 점선면으로 조각난 물병을 의자를 소년을 목격하러 갈 거야 따라올 거야? 따라갈 거야 네가 안으로 들어가면 여기도 조각나기 시작할 테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 들어가 있을 테니까 머리를 들이밀 테니까 나는 납작해진 가슴 아래 삐딱한 사다리꼴이 될 것 같아 왜 하필 사다리꼴인지 잊을 것 같아 가기 싫다고 하면 안 갈 거야? 싫다고 할 거야? 아니 어디로든 갈 거야 네가 들어간다면 ---「당신의 입장이 나의 입장」중에서 설계된 빛이 나를 상하지 않을 만큼만 주무른다 이대로 썩지 않는 작품이 될까 이종 간의 콜라주는 전시될 수 없습니다 눈 언젠가 새의 어깨에 찢어서 붙인다면 묻으러 가 여기서 죽었어 ---「Fla(e)sh」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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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새로운 서정의 실험
이적온 시인의 첫 시집 『이제부터 위험하면 뻐끔거려』는 39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그 적은 시편이 다소 아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읽을수록 그러한 우려는 무의미해진다. 이 시집은 분량의 한계를 사유의 밀도와 산문적 시쓰기로 전복하면서, 응축된 언어와 자유로운 형식 속에서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산문적 호흡 속에서도 시어는 긴장을 잃지 않고, 절제된 어조는 끝내 깊은 사변의 울림으로 번져간다. 이적온의 첫 시집은 바로 이 반전과 여운 속에서 시가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두께를 한껏 증명해 보인다. 이적온의 시를 끝까지 읽고 나면 그의 시세계가 무엇보다도 21세기 ‘Flash’의 세계를 살아가는 실존(Flesh)들의 고독과 고통, 무의미와 상실, 그리고 애도의 정동을 숨김없이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끝내 삶 쪽으로 몸을 기울이려는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처음 맞닥뜨린 실존의 어색한 몸짓과 말을 비추어보면서,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애쓰는 개별적 목소리가 다시 획득되는 지점을 더듬어간다. 애도와 공감, 연대의 순간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시대 속에서도 일종의 ‘반딧불의 잔존’(위베르만)처럼 끝내 소멸하지 않는 어떤 빛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조용히 암시한다. 삶의 곤궁함 속에서 영혼은 한곳에 정박하지 못한 채 표류하지만, 그럼에도 몇 퍼센트의 긍정이라도 기어이 받아들이려는, 삶을 향한 미세한 기울기를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결심이 이 시편들의 바닥에서 은근하면서도 단단한 빛으로 번지고 있다. 진지한 고민이 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불통의 글쓰기다, 시가 쓸데없이 길다, 잔뜩 멋부린다, 초현실적 글쓰기, 몽타주를 빌어 막 쓴다, 음악을 잃었다는 등의 혹평은 어쩌면 이러한 시를 끝까지 따라가려는 진지한 비평의 시간이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속도의 사회에서 “미친 듯이 발광하는 새벽빛을 외면하고 잠들 수 있을까/단잠일까”(0)라고 자문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문학의 오래된 기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떠맡으려는 ‘아이(i)’의 고뇌에 가깝다. 이적온의 시는 그 고뇌를 통해, 이미 견고하게 소비된 세계 속에서도 다시 안부를 묻고, 말의 자리를 내어주며, 하이브리드 상상력으로 충만한 독자적인 미학적 ‘시도(詩圖)’를 그리며 오늘의 감수성이 도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턱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다. 시인의 말 묻는 말에 대답하려니 혀가 끝없이 길어졌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혀로 목을 맸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유창하게 흔들리는 몸으로 도시와 눈과 불과 새의 공용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