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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흥얼 / 이사 2 / 액자의 기울기 / 양말 / 잠만 자는 방 / 이사 / 811호 / 바늘의 자리 / 통화 / 스마트폰 두고 사람에게 길을 묻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센서등 / 화석 / 폐지 / 줄다리기 / 시간의 약도 / 우리의 혼잣말은 언제 만날까 / 서울가정의학과의원 / 복용법 / 돋보기 /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 당신은 벽을 하나 키웠습니다 / 접는 선 / 미다스의 손 / 숨은그림찾기 / 시력검사 / 무릎의 무렵 / 왜 전동차 문은 늘 내가 달려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닫힐까 / 허수아비 / 접촉사고 / 저울 / 남탕 / 고양이 무게를 재는 법 / 보물찾기 / 공 / 밖을 부르는 안 / 당신이 비누를 고르는 법 / 거기도 정전이야? / 도큐하우스 / 선화동 콩나물밥집 / 후지필름 / 제주석물원 / 차귀도 / 어떤 위로 / 우리가 울린 게 아닐까 / 공포탄 / 푸른치과 / 리누갤러리 / 덤덤 / 우리는 누군가의 울음을 훔쳐 울고 / 공터 / 마라도 / 매듭법 / 장난감 기차, 기차 떠나간다 / 이름
해설 슬픔의 강을 따라 흥얼대는 노래 | 이경수(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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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집으로 이사하고 너는 가장 먼저 묻는다
이 집에도 못을 마음대로 박을 수 없겠지? 너는 벽을 똑똑 두드리며 사나운 벽과 순한 벽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우리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못이 튈까, 망치로 못을 때릴 때마다 눈을 감으면서도 오래 때릴 수 있는 우리의 벽을 가진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벽에 못을 박을 수 없는 셋집에서는 우리의 액자를 높은 곳에 걸지 못하고 바닥에 기대어 놓아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액자 속에서도 어깨를 기대는 버릇이 있는 거라고, 왜 우리는 이미 박혀 있는 못에만 시계를 걸어야 하냐고, 이 집에 세 들어 살다 간 사람들은 왜 같은 높이에 걸린 시간만 살다 가야 하냐고, 우리가 새로 못을 박는다면 집을 떠날 때, 새로 박은 못을 모두 빼고 떠나야겠지? 못을 뺀 자리에 껌이라도 붙이고 떠나야겠지? 마음대로 상처 낼 수 없는 집은 우리의 집이 아니라고, ---「이사 2」중에서 거 봐라 네가 가진 자루가 작더라도 왼쪽 오른쪽 나누어 담으면 너를 다 담을 수 있잖니, 너를 붙잡을 곳 마땅치 않아 들고 걸어가기 어려울 때는 너를 자루에 담아 들고 걸어가면 한결 편할 거야 방으로 드는 식당에서 너를 구멍 난 자루에 담아 왔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너는 그 구멍으로 줄줄 새는 너를 들키고 싶지 않아 발을 숨겨야 할 거야 자루를 아무리 당겨 올려도 자루는 내 무릎도 담지 못할 뿐인데요 네 발만 담아도 너를 자루에 담는 거란다 황금색 계급장을 찬 어깨 앞에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만으로도 떨고 있는 너를 감출 수 있거든, 쓰레기봉투에 너를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발을 넣고 밟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야 유리 거울처럼 깨진 너의 얼굴 조각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니, 너를 나누어 담아라 눈물도 왼쪽 눈 오른쪽 눈 나누어 담으면 넘치지 않잖니, ---「양말」중에서 밥풀을 얼른 주워 입에 넣는 건, 누구한테도 당신의 가난한 시간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밥풀을 얼른 주워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입에 넣는 건, 바닥에 떨어진 밥풀이 제가 대접 밖으로 밀려난 걸 눈치챌 새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밥풀은 제가 대접 밖으로 밀려나 식탁에 흘린 밥풀이라는 걸 알게 되면, 밥풀이 밥풀떼기가 되는 기분일 테니까요 당신은 밥풀의 기분을 아는 사람 대접 속에서 식은 밥이 콩나물과 얽히고설키며 간장의 맛으로 물들어 갈 때, 밖으로 밖으로 밀려난 밥풀 그 밥풀의 허연 기분을 아는 사람 얼마나 푸짐하게 밥을 담는지 흘린 밥풀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당신 밥을 달래듯 비비래도, 배곯은 사람이 누굴 달랠 시간이 어디 있겠니, 침이 고인 웃음을 웃는, 그런 당신을 얼른 주워 입에 넣고 싶은, ---「선화동 콩나물국밥집」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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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돌볼 줄 아는,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숨결의 시 서진배의 시는 결핍에서 온다. 아픈 가족사와 그 중심에 있는 어머니, 그리고 벗어날 길 없는 가난. 흔하다면 흔한 사연일 수도 있지만 결핍의 시간을 지나며 거기서 꽃핀 것이 서진배의 시다. 그런데 서진배 시에 돌올한 개성을 입힌 것은 마음을 돌볼 줄 아는 예민한 시선에 있다. 결핍에 아파하고 괴로워했던 시간을 견딘 이에게만 허락된 시심이 서진배의 시에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서진배의 시에 짙게 드리운 슬픔과 페이소스는 삶의 고단한 체험에서 빚어진다. 가난에 익숙해진 서민들이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순간들에서 서진배 시인은 시적인 순간을 발견한다. 서정시가 오랫동안 내내 지켜 온 자리를 서글프지만 담담하게 그의 시가 지키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는 담담한 전언은 지독한 슬픔과 지난한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생성된 것이다. 서진배의 서정적인 시들이 종종 세상에 대한 알레고리로 기능하거나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까닭은 체험의 단단함에서 비롯된다. 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에 지배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슬픔이다. 슬픔은 누군가를 상실한 체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결핍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감각이나 버림받은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서진배의 시는 그런 이유로 흘러나오는 슬픔을 예민하게 감각하면서도 슬픔에 젖어 들어 매몰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슬픔을 느끼는 결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사실에 오히려 주목한다. 서진배의 시에서 슬픔이 마음을 돌보는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진배 시인에게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혼잣말도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는 시적 주체의 전언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서진배 시인의 인식과 바람이 담겨 있다. “세상에 혼잣말은 없”고 “지금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고,/ 여기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며 “둘이 멀리서 하는 말일 뿐”이라고 시의 주체는 말한다. 벌써 묻고 이제 대답하는 시차가 있을 뿐 애초에 대상을 향하지 않은 혼잣말은 없다는 이 시의 전언은 서진배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서진배의 시 또한 “미처 못 한 말이고,/ 차마 못 한 말이고,/ 이제야 하는 말이고,/ 아직인 말일”지언정 독자를 향하지 않는 혼잣말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독자를 향해, 세상을 향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우리’ 공동체를 향해 말을 건네고 마음을 건네며 슬픈 노래를 흥얼댄다. 그의 시는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를 향해 “아직 가는” 중이다. 이제 미지의 독자가 그의 말에 응답할 차례이다. ■ 시인의 말 아무래도 여기 담은 시편은 당신이 더듬더듬 불러준 슬픔을 내가 받아쓴 듯싶어요 먼 당신에게 갚을 길 없어 내가 사는 세계에 그 슬픔을 갚아 줍니다 당신은 나의 세계였으니까요 정 당신 손에 받고 싶으면, 내가 사는 세계에 한번 다녀가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