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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녜
안 포레 카를리에 등저 / 장진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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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 ABC북

책소개

목차

1. 위대한 세기의 여인
마리 드 라뷔탱의 가문
살롱 시대
이별

2. 태양왕 루이 14세 치하
프롱드의 난에서 절대주의까지
궁정 출입
지식과 예술의 부흥

3. 편지 교환 취미
글쓰기의 고전주의 시대
말을 잘 하는 법에서
글을 잘 쓰는 법까지

저자 소개

역자 : 장진영
서울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덕성여대에 출강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문화적인 것에서 신성한 것으로』『2032년』등이 있다.
집필자들
장 마리 브뤼종 : 카르나발레 박물관 학예연구원
안 포레 카르리에 : 카르나발레 박물관 학예연구원
장 프랑수아 그룰리에 : 작가 겸 예술사가
자클린 리슈댕슈타인 : 파리 10대학 철학과 조교수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27쪽 | 242g | 120*220*20mm
ISBN13
9788979195316

책 속으로

Salon/ 18세기에 절정에 달한 살롱은 루이 14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그 단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대표적인 살롱은 1620년에서1650년까지 당대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드나들었던 랑부예 저택에서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13세 말기와 섭정 시대에 문학 생활을 이끌었던 랑베르 후작부인의 살롱은 계몽주의 시대의 첫 살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랑베르 후작부인의 살롱과 랑부예 저택에서의 많은 모임들은 언어 탐구에 매혹된 프레시외즈들('문학적 프레시외즈들' 항목 참조)의 단순한 모임에서 점차 이성과 지식 숭배에 열중하는 살롱으로 발전해가는 단계를 밟고 있었다.

앙투안 보도 소메즈는 <프레시외즈 사전>(1661)에서 파리에 있는 200개 이상의 살롱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는 마담 드 사블레, 마담 뒤 플레시 게네고, 마드무아젤 드 몽팡시에, 마듬 드 브레쥐 등 많은 귀족부인들의 살롱 뿐만 아니라 마담 코르뉘엘 혹은 신랄함 못지않게 못생긴 것으로도 유명한 마담 필루 같은 부르주아 여성들의 살롱도 있고 또 메니주와 그의 수요일 모임(수요회) 같은 작가들의 살롱도 들어 있다. 각각의 살롱은 정치적이라든지 문학적이라든지, 보다 철학 쪽으로 기운다든지 아니면 학술적 특징 없이 순수하게 사교적이라든지 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랑부예 저택의 모임을 이은 가장 중요한 살롱은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의 살롱이었다. 거의 15년 동안 그녀는 매주 토요일이면 파리에서 손꼽히는 문학인들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pp.67~68

마리 드 라뷔탱,즉 세비녜 후작부인이 쓴 편지들은 자연스러움과 재치 그리고 가볍게 우수가 깃든 문장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그녀가 받고 있는 평가와는 달리 17세기에는 문학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된 그녀에게 매 순간의 삶은 글쓰기를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반대로 글을 쓰기 위해 살롱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궁정을 드나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 p.11

출판사 리뷰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에 이르러 절대군주제의 기틀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귀족의 특권이나 우선권은 왕에 의해 좌우되었으며, 베르사유 궁전은 귀족 계급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즉 궁전은 절대군주제에 걸맞는 의식과 예법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장소가 되었고, 이곳에서 귀족들은 신분에 걸맞는 교양과 재치를 갖추고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바로 여기에 마담 드 세비녜가 있었다.

1626년에 태어난 마리 드 라뷔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다. 그뒤 그녀는 교양 있고 자유주의적이며 유복한 환경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 여자아이들이 받는 교육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교육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1644년 마리 드 라뷔탱은 앙리 드 세비녜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으로 그녀는 브르타뉴 귀족 가문의 일원이 되었고 파리의 최상류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녀는 1646년에는 딸 프랑수아즈 마르그리트, 1648년에는 아들 샤를을 낳았다. 남편인 세비녜 후작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수많은 연애 사건을 일으켰고, 결국 연적과의 결투로 목숨을 잃었다.

1651년 25세에 미망인이 된 젊은 세비녜는 곧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재치와 쾌활함으로 이름을 얻고 인기가 절정에 달한 마담 드 세비녜는 파리에서 가장 세련된 살롱에서 환대를 받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 프랑수아즈 마르그리트 역시 궁정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녀의 풋풋한 아름다움은 뭇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여러 해 동안 궁정에서 루이 14세와 함께 발레를 추는 영광을 누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왕의 접근을 거절했기 떄문에 총애를 잃었고 더 이상 춤을 추지 않게 되었다.

세비녜는 루이 14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다. 그 시대는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살았으며, 예술과 문학이 꽃피어난 시대이기도 하다. 세비녜는 사교계의 인사들, 친지, 딸 마르그리트 등의 사람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완벽한 리듬을 갖춘 그녀의 산문에는 부드러운 감정, 다양한 기질, 솔직함 그리고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잔잔한 슬픔이 배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세비녜의 문체는 17세기 여성들이 창안해내고 완전하게 구사할 줄 알았던 자연스러움이라는 기법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창해 ABC북 31권『세비녜』는 절대왕정 시대의 화려한 궁정 생활과 세련된 재치와 고상한 태도를 이상으로 하는 살롱 풍조로서 나중에 문학으로까지 파급된 프레시외즈 문화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문어체의 문학만이 있던 시대에 구어체의 문장을 획기적으로 구사한, 우리로 말하면 '내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담 드 세비녜의 글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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