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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으면 따지, 뭐.”
아아, 그 아무도 말릴 새가 없었다. 마치 오랜 세월 수박 농사를 지어 온 농부라도 되는 양, 아주 능숙한 솜씨로 지원이는 수박을 뚝 따서 가슴에 안고 환하게 웃었다. --- p.11 “난 빠지겠어.” “응?” 다들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그중에 아마도 내 눈이 가장 커졌을 것이다. 은비의 빠진다는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뭔가 헛헛한 바람 같은 것도 지나갔다. --- p.14 우리 넷은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다른 사람들 몰래 우리만의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꽤 짜릿한 맛이 있었다. 더구나 조금은 찜찜한 일, 결코 선하지 않으며 들통난다면 비난받을 것이 분명한 일. 공범자로서 서로를 지켜 줘야 한다는 희한한 사명감까지 생기는 비밀. --- pp.22-24 나는 잠깐 대답을 머뭇거렸다. 불현듯 뭔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누군가 가꾼 수박을 딴 일차적인 잘못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려면 수박을 처리하는 문제는 공명정대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끼리 숨어서 먹는 것은 이미 저지른 잘못에 또 하나의 잘못을 더 얹는 게 아닐까? --- pp.28-29 “너 왜 그래? 괜히 욕먹을 일을 왜 사서 하냐고. 걍 우리끼리 먹어도 될 걸, 왜 일을 크게 만들어? 응? 화장실 가서 먹자, 응? 다정아.” 지원이가 내 이름 다정이를 정말 다정하게 부르면서 말했다. 난 마음이 흔들렸다. 우유부단한 내 본색이 여지없이 발휘되고 말았다. --- p.37 “그래, 알았어. 내가 처리할게.” 나는 말을 하는 내 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낄 수 없었다. 내 입에서 나와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도 내 것이되 결코 내 것이 아니었다. 처음 듣는 듯한 낯선 목소리였다. 그러나 분명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 pp.5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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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으면 따지, 뭐.” “그건 옳지 않아.”
수박 한 덩이를 두고 뒤엉키는 관계의 미묘한 온도, 그 속에서 단호함보다 단단한 ‘머뭇거림’을 그려 내다 체육 수업이 일찍 끝난 어느 여름날, 다정이와 친구들은 조회대 옆 화단에 자라고 있던 잘 익은 수박 한 덩이를 발견한다. "먹고 싶다, 수박!" 다정이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지원이가 냉큼 손을 뻗었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수박을 따 버리고 만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이 수박,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친구들 몰래 화장실에 가서 먹자는 지원이, 허락 없이 딴 것이니 옳지 않다며 가 버린 은비, 그 사이에서 하나둘 슬쩍 자리를 피해 버리는 친구들. 수박 한 덩이를 두고 여섯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으며 우정에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한가운데 다정이가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 잘못된 일이니 선생님께 이실직고해야 한다는 양심 사이에서 다정이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러한 머뭇거림은 다정이가 끌어안은 수박의 무게만큼이나 점점 더 무거워진다. 결국 그 수박이 교장 선생님이 키우던 수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다정이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정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먹고 싶다, 수박』은 오래 머뭇거리고 끝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한 아이의 마음을 다정하게 따라간다. 머뭇거림을 결단력의 부재가 아니라, 선택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지닌 마음의 속도로 바라본다. 그리고 머뭇거림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마침내 다정이가 내리는 선택으로 단단하게 보여 준다. 교과서 속 작품을 그림과 함께 보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넘길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 『먹고 싶다, 수박』은 교과서에서는 미처 다 담지 못했던 다정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담아냈다. 수박을 발견한 순간의 흥분, 각기 다른 조각으로 갈라지는 친구들의 마음, 그리고 다정이가 끝내 마주하게 되는 결말까지. 짧게 스쳐 갔던 장면들이 온전한 서사로 이어지며 다정이와 친구들의 마음이 더 깊이 있게 그려진다. 여기에 더해진 김연제 작가의 삽화는 소설 속 장면 하나하나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수박을 사이에 두고 서늘함과 뜨거움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감정의 부침과 여름 특유의 온도와 공기를 담은 그림은, 지금껏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여 준다. 교과서 속 그 장면을 다시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번에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에게도, 『먹고 싶다, 수박』은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반갑게 손을 내민다. 알고 있던 이야기의 결말에 이어진, 한층 풍부해진 서사를 통해 독자들은 여름에 맛보는 수박보다 더 달콤하고 아삭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