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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형 논술대비를 위한 논술 내비게이션

책소개

목차

1부. 배경지식
1. 금오신화는 어떤 책인가
2. 김시습은 누구인가
3. 주요 등장인물

2부. 금오신화

3부. 논술 내비게이션
1. 작품분석
2. 주요 단락 해설
3. 통합형 논술문제

저자 소개 1

金時習, 열경, 매월당/동봉/벽산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했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1세 때 삼각산 속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단종이 손위(遜位)하였다는 말을 듣자 문을 닫고서 나오지 아니한 지 3일 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 버리고 미친 듯 더러운 뒷간에 빠졌다가 그곳에서 도망하여 행적을 불문(佛門)에 붙이고 여러 번 그 호를 바꾸었다. 미친 듯 시를 읊으며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며 한 세상을 희롱하였다. 비록 세상을 선문(禪門)에 도피하였다 하여도 불법을 받들지 아니하니 세상에서 미친 중으로 그를 지목하게 되었다.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 1458년, 24세에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와 서울에 안착한 시기도 있지만 방랑자로 긴 세월을 보냈다. “매월이라 당(堂)에다 이름한 것은 금오 매월이란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한다. 쉰아홉 되던 해 봄날,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비 내리는 가운데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2,200여 편의 시와 함께 정치 견해를 밝힌 산문들이 『매월당집』에 실려 있고, 소설 『만복사의 윷놀이』, 『이생과 최랑』, 『부벽정의 달맞이』, 『꿈에 본 남염부주』, 『용궁의 상량 잔치』가 『금오신화』에 전한다.

김시습의 다른 상품

저자 : 김시습
조선 초기의 문인이자 승려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열경悅卿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등이며 법호가 설잠雪岑이다. 20세에 훈련원도정 남효례南孝禮의 딸과 혼인한 후 삼각산 중흥사에 들어가 공부했지만,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 밤낮을 두문불출하며 통곡한 뒤, 그때까지 공부했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중이 되어 전국을 유랑했다.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불리는 『금오신화』를 비롯해 수많은 시편을 창작해 『유금오록遊金鰲錄』에 남겼으며, 『매월당집梅月堂集』, 『관동일록關東日錄』 등이 후세에 전한다. 1493년 충청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서 병으로 입적했다.
엮은이 : 유상목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성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솔리드 비문학 언어영역(독해편)』(공저)과 『수능 언어영역 기본편』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3쪽 | 19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5835777

출판사 리뷰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금오산에 칩거하던 시절에 창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쓴 뒤 세상에 발표하지 않고 석실에 감추어두었는데, 이 책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간행되었으며, 국내에는 1927년 『계명啓明』 제19호에 최남선이 처음 수록하였다.

김시습이 집필한 작품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금오신화』에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다섯 편만 전한다.
김시습은 「제전등신화후」에 "『전등신화』에는 온갖 글이 들어 있고, 처음에는 허황된 것 같아도 뒷맛이 예사롭지 않으며, 기이한 행적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한 솜씨를 발휘하여 평생 뭉쳐진 원망을 쓸어 없애는 것 같다"며 자기도 "그런 작품을 내놓으려고 『금오신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렇게 볼 때 『금오신화』는 명나라의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이나 주제에 있어는 『전등신화』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김시습의 생애와 사상이 이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전등신화』의 모방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오신화』가 창작된 시기는 김시습이 금오산에 칩거한 31~36세 사이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찬탈과 함께 시작된 방랑의 시기를 마치고 잠시 은둔하던 때였다. 이 기간 동안 김시습은 다시 입신양명에 뜻을 둘 것인지, 아니면 절개를 계속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던 듯하다. 『금오신화』의 전 작품에 흐르는 일관적 사상이 이를 잘 말해준다. 김시습은 『금오신화』 집필을 통해 자신의 갈등을 해소하고 그 후의 삶 역시 절의를 지킴으로써 생육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금오신화』에 나타난 공통된 특징은 일상의 세계를 넘어서 초현실적 상황에서 사건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록된 작품 모두가 현실적 세계와 초현실적 세계, 인간과 비인간의 이원적 체계를 가지면서도 둘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당시의 역사와 비춰볼 때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주인공들이 모두 초현실의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성취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대립적인 구조 속에서 주인공이 비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성취하게 되는 모습은 김시습의 이상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즉 김시습은 현실에서의 자신의 갈등을 작품 내에서라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지명, 시대적 배경을 모두 우리나라이다. 이렇게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을 우리나라로 설정한 것은 작품의 현실성을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금오신화』는 우리 소설사에 있어서 본격적인 전기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또한 인간과 세계의 갈등을 작가의 현실주의적 사상의 바탕 위에서 창조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금오신화』의 문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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