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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홍동백서 무익조 암살자 환각의 다리 초기 작품 3편 소돔의 성 속에서 / 여름 풍경 2점 / 어느 소년을 위한 서사시 작품해설 작품목록 |
李御寧, 호:凌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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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백서! 어머니에게 절을 하면서 속으로 새삼스럽게 동쪽과 서쪽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 사람이 당신의 며느리, 제니예요." "얘야, 말이 통해야 잘 왔다는 말이라도 하지."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 섞어놓는 게 아녀. 붉은 과일은 동쪽에다 놓고 흰 과일은 이렇게 서쪽에다 놓아야지……. 아버지는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 제상조차 차릴 줄 모르는 제니 일을 생각하여 하신 말씀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뜻으로 들렸다. 동쪽과 서쪽, 하얀 과일과 빨간 사과, 밤과 대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제니와 나. 아버지는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시어머니 산소에 절을 하고 있는 이 이방의 며느리를 묵묵히 쳐다보고 계셨다. 아버지의 그 눈에는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이상한 빛이 숨어 있었고, 이따금 골짜기에서 몰아닥치는 꽃샘바람이 아버지의 해표 털모자를 따뜻하게 했다. 갑자기 "쏴-"하는 산사태 같은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 pp. 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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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의 다리>는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서 말하는 '자기반영성self-reflexivity'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작가 이어령은 존 바스John Bath나 보르헤스Borgas처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외부 자연을 모방하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소설 양식이 고갈되었기 떄문에 소설의 '인공성'과 '텍스트성' 같은 것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많은 부분에서 《바니나 바니니》의 장면들을 인용한 것이 실제 이 작품의 작중인물들이 자연적인 현실을 모방한 것 못지않게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르헤스의 '도서관 이론' 때문이 아닌가 한다.
--- p 253 <대덜러스의 욕망>, 이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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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백서>
유학중에 만난 미국인 제니와 결혼을 한 주인공은 아버지의 반대로 계속 해외생활을 하다가 오랜만에 귀국한다. 주인공이 얘기해 준 한국의 초가지붕과 여러 가지 풍습에 반한 제니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고향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무익조> 왕따를 당하던 주인공을 도와주던 어른스런 아이 박준은 언제까지나 당당하고 긍지 있게 살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공군 조종사로 6·25 전쟁을 겪고 몸을 다친 채 사지에서 돌아온 박준은 뭔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암살자> 종전 직후, 두 사내가 정치적 테러를 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다. 배신 또 배신당하면서 스러져가는 사람들의 미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환각의 다리> 불문학과 학생인 사미는 <바니나 바니니>를 공부하면서 작품의 주인공 바니나의 운명처럼 , 4·19 혁명이 시작되는 날 시위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현수라는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현수는 사미와 결혼해 안주하는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치열한 현장으로 다시 뛰어든다…… <소돔의 성 속에서> 도시를 헤매며 시선에 걸리는 인간 군상 - 새 옷을 산 여인, 상이군인, 좀도둑질을 하다 잡힌 소년 등의 모습, 그것을 보고 있는 화자의 예민한 감성과 저절로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독백체로 펼쳐진다. <여름 풍경 2점> 도시에 살다 휴가를 맞아 시골로 내려온 N씨 부부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서로가 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순서: 운명하신 아버님을 매장하기 위해 걷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아들도 같은 길을 걷고 또 손자도 같은 일을 하겠지. 그렇게 끝없이 이어져갈 것이다. <어느 소년을 위한 서사시> 점쟁이 아버지를 둔 소년이 몸이 아픈 소녀에게 흉괘를 말하기 싫어서 점괘를 반대로 가르쳐주고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소년의 내면을 주위 자연물에 대입하여 시적으로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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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로서의 명성에 가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어령은 50년대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소설을 써오고 있다. 중편소설집 <장군의 수염>에 이어 이번에 출간된 <환각의 다리>에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홍동백서>를 비롯하여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엮이는 초기작품들까지 모두 7편의 중단편소설들을 실었다.
표제작 <환각의 다리>는 1969년 <세대>지에 발표된 것으로 4·19 혁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정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대담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탕달의 단편소설 <바니나 바니니>를 공부하는 여대생 사미가 그 소설의 주인공처럼 정치적인 시위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공부하는 <바니나 바니니>의 내용과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현실이 미묘하게 섞여들고 대부분 주인공 사미의 내적 독백 형식으로 기술되어,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교묘하게 잘 짜여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모던 소설기법, 인터텍스추얼리, 인용, 페스티시 등 최신식 소설기법이 이미 이때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이런 기법들의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때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함께 실려 있는 작품 중 <암살자>는 1966년 <사상계>에 발표되었던 것인데 해방 직후의 정치 테러를 그린 것으로 이만희 감독이 영화화했으며, 6·25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무익조>는 실험극장에서 각색되어 명동극장 무대에서 공연된 바 있다. 초기 작품 세 편 중 <여름 풍경 2점>과 <어느 소년을 위한 서사시>(원제 <우리들 소년의 우수>)는 50년대 저자가 대학시절 서울대 문리대 교내지에 발표한 작품인데 이번 이어령 라이브러리로 묶이면서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공개되었다. 일찍부터 실험소설의 길을 택한 저자의 파릇파릇한 모습을 이 초기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소돔의 성>은 원래 산문으로서 <지성의 오솔길>에 묶였던 것인데 그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이번에 소설집으로 엮게 되었다. 수록된 작품들 중에 읽기에도 이해하기에도 가장 쉬운 소설은 제일 앞에 수록되어 있는 <홍동백서>다. 이 작품은 저자가 "나도 소설의 모범답안을 쓸 수 있다는 오기 -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안 쓰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은 객기에서" 일부러 기존양식에 맞춰 썼다고 한다. 가장 평범하다고 할 만한 작품이지만 저자의 모든 저작을 아우르는, 전쟁과 산업화로 잃어버린 옛 모습에 대한 향수가 한층 짙게 깔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