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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개인의 주체성이라는 문제가 개인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개인의 주체성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3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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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en Aabye Kierkegaard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대학 생활 도중 그의 관심은 신학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다시 철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지적 생활을 동경해 문학 · 음악 · 오페라 등을 가까이하고 산책을 즐기며 사상을 키웠다. 27세 되던 1840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레기네 올센을 만나 청혼한다. 다음 해 1841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결혼에 환멸을 느끼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레기네에게 했던 청혼을 파기한다. 그 후로 키르케고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와의 결별 이후 키르케고르는 여러 가명을 사용해 『이것이냐 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불안의 개념』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거의 모든 작품을 가명(假名)으로 발표하고 발표한 작품이 자기가 원저자라고 밝혀진 후에도 계속 가명을 사용했다. 그가 모든 작품에 ‘단독자(單獨者)’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삼는다. 그는 객관적인 진리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자기’라는 개체로서의 작은 인간, 둘도 없는 오직 하나의 인간, 이것이 그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라는 단독자의 가장 절실한 혼(魂)의 문제를 파헤치고 기독교인들의 허위와 죄악을 비판하고 기독교의 정화를 위해 힘썼다. 그러다 가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것이 탄로나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다. 그 후 자신이 가명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를 신문에 기고하고 덴마크 기독교 사회를 비난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저작 활동을 하고 평생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1855년 10월 2일 42세 때 거리에서 쓰러져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고 11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의 다른 상품

임규정은 1957년 5월 9일 완주군 조셋 마을에서 출생했다. 군산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92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논문 <키에르케고어의 자기의 변증법>은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의 핵심인 실존의 3단계의 변증법적 구조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며, 그의 저서로는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지성의 샘, 1994), ≪공간 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북스힐, 2007)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니체≫(지성의 샘, 1993), ≪반철학으로서의 철학≫(
임규정은 1957년 5월 9일 완주군 조셋 마을에서 출생했다. 군산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92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논문 <키에르케고어의 자기의 변증법>은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의 핵심인 실존의 3단계의 변증법적 구조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며, 그의 저서로는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지성의 샘, 1994), ≪공간 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북스힐, 2007)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니체≫(지성의 샘, 1993), ≪반철학으로서의 철학≫(공역, 지성의 샘, 1994), ≪직업윤리≫(공역, 군산대학교 출판부, 1995), ≪하이데거≫(지성의 샘, 1996), ≪스칸디나비아 철학≫(공역, 지성의 샘, 1996), ≪라틴아메리카 철학≫(공역, 지성의 샘, 1996), ≪불안의 개념≫(한길사, 1999), ≪키에르케고르≫(시공사, 2001), ≪철학의 거장들 3≫(공역, 한길사, 2001), ≪유혹자의 일기≫(공역, 한길사, 2001), ≪키에르케고르,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한길사, 2003), ≪카사노바의 귀향≫(신아출판사, 2006), ≪죽음에 이르는 병≫(한길사, 2007), ≪결혼에 관한 약간의 성찰≫(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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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26일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논문 <키에르케고어의 역설에 관한 한 연구>는 키르케고르의 종교성 B의 역설을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형태라는 분석철학의 개념을 통해서 구명해 보고자 한 연구다. 그 외의 논문으로는 <신앙의 정당화 문제에 대한 고찰?키에르케고어와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역서로는 ≪라틴아메리카 철학≫(공역, 지성의 샘, 199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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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1675

책 속으로

Objektivt taler man bestandigt kun om Sagen, subjektivt taler man om Subjektet og Subjektiviteten, og see, netop Subjektiviteten er Sagen.

객관적으로 우리는 단지 쟁점만을 고찰하고, 주체적으로는 주체와 주체성을 고찰한다. 보라, 바로 이 주체성이 문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 이 책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적 조각들에 대한 비학문적 후서(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 중에서 개인의 주체성이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주체적으로 되는 것」 부분 전체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키르케고르 전집(Søren Aabye Kierkegaard’s Samlede Vœrker)』 Ⅰ∼XV[드라크만, 헤이베르, 랑에 편집(udg. af A. B. Drachmann, J. L. Heiberg og H. O. Lange), 제2판, 귈덴달스케 출판사(Gyldendalske Boghandel), 코펜하겐(Kjøbenhavn), 1920∼1936](이하 SV.로 약기함), VII, 『철학적 조각들에 대한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제책업자 힐라리우스(Hilarius Bogbinder)가 편찬하고 출판함, 이하 『후서』로 약기함]는 여러 가지 점에서 철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후서』는 키르케고르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철학적인 작품 중의 하나다. 둘째, 『후서』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후서』는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소통할 수 있을 만큼 『후서』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는 유사점이 적지 않다.
이런 여러 가지 특징에 비추어 볼 때 『후서』는 키르케고르의 사상뿐만 아니라 그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현대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주체적으로 되는 것」은 이처럼 사상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후서』의 2부 2절 1장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후서』의 이 부분은 ‘주체적으로 되는 것’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주체적으로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키르케고르가 주체가 주체적으로 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 헤겔의 객관주의, 즉 역사적 합리주의가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고 주체가 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비판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체적으로 되는 것」은 『후서』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후서』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한 꼭지를 이룬다.
따라서 『후서』를 처음부터 읽는 것이 『후서』를 독해하는 정도(正道)이겠지만, 「주체적으로 되는 것」을 먼저 읽는 것도 『후서』를 독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주체적으로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키르케고르의 인간 이해를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체적으로 되는 것의 의미와 헤겔의 객관주의에 대한 비판이 키르케고르의 인간 이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의 인간 이해는 그의 또 다른 주저인 『죽음에 이르는 병』에 나오는 자기의 정의(定義)에 집약되어 있다.

“인간은 정신이다. 그러면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이란 자아다.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란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의 관계다. 이를테면 관계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그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아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관계가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무한성과 유한성, 시간적인 것과 영원적인 것, 자유와 필연의 종합이다. 요컨대 인간은 한 종합이다. 종합이란 양자 사이의 관계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자기란 자신을 자기 자신과 관계시키는, 즉 영과 육을, 무한과 유한을, 가능성과 필연성을 서로 관계시키는 역동적 활동체다. 이 세 가지 자기의 활동 중에서 가능성과 필연성을 관계시키는 활동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가능성과 필연성을 관계시키는 활동은 영과 육, 그리고 무한과 유한을 관계시키는 활동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가능성과 필연성을 관계시키는 활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필연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필연성이란 인간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구체적인 자연·사회·정치·문화적인 환경, 성, 종족, 개인적인 경험, 정서적인 안정감, 재능, 관심, 능력, 단점들을 포함하는 환경, 조건, 처지 또는 상황을 말한다. 인간은 여러 생리적 본능을 타고난 생물의 일종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런 여러 조건이나 환경 또는 상황에 의해서 제약받고 구속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구속하는 이런 조건이나 환경 또는 상황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는 인간이 여러 조건이나 환경 또는 상황과 같은 필연성에 의해서 제약받고 구속당하는 존재인 동시에 그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필연성을 넘어서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자기가 필연성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상상의 덕분이다. 상상은 자기가 자신의 필연성을 반성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그리는 역량이다. 자기는 반성적 상상을 통해서 필연성을 필연성 너머의 가능성과 관계시킨다.
그렇다면 자기는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자기란 반성적 상상을 매개로 자신의 현실적 자기를 이상적 자기와 관계시키는 관계자, 즉 역동적 활동체다.
자기의 이런 역동성은 자기가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함의한다. 자신의 현실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를 관계시키는 역동적 활동체가 자유롭지 않다면, 자기는 현실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를 관계시킬 수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자기는 자유로운 존재다.
자기가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은 자기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결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단은 영과 육, 무한과 유한, 가능성과 필연성을 관계시키는 자기의식적 행동이다. 이런 자기의식적 결단의 순간에 자기는 시간의 흐름에 종속된 현실과 미래에 나타나는 영원한 이상을 종합한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이 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실존은 왜 이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누어지는 것인가? 실존이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누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기의 결단이다. 실존의 양상은 결단의 순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필연성이 가능성을 제한하는 강약에 비례하는 결단의 강약에 따라서 구분된다. 결단의 유무에 따라서 실존은 심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으로 구분되며, 결단의 강약에 따라서 윤리적 실존과 종교적 실존으로 구분된다.
결단의 강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실존이 바로 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종교적 실존이 얼마나 강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신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누가 보더라도 그와 같은 명령은 반윤리적이다. 따라서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끌고 가서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죽이려고 한 살인미수자일 뿐이다. 이런 범죄자가 왜 그리스도교계에서 신앙의 영웅으로 칭송받아 왔는가?
이 희한한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키르케고르와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는 헤겔이 결정적으로 갈라선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윤리적 의무를 무한히 체념하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관계 속으로 들어갔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제약하는 윤리적 의무와 그 윤리적 의무를 지지하는 보편적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섰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영웅적인 비약은 너무나 드높은 경지여서 이 기막힌 비약 앞에서 뭇사람들은 한없는 두려움으로 덜덜 떨게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교적 실존에서 아브라함의 발목을 잡는 것은 다름 아닌 윤리적인 것이다. 윤리적인 것은 뭇사람에게는 높은 이상으로 다가오지만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발목을 잡아당기는 달콤한 유혹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이 달콤하기 그지없는 유혹을 상상할 수도 없는 단호한 결단으로 뿌리쳤기 때문에 윤리적 의무를 지지하는 보편적 세계의 밖으로 나가버린 외톨이가 될 수 있었다.
키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윤리적인 것을 뿌리치고 신 앞에 홀로 서는 외톨이가 된 일대 사건을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停止)라고 부른다.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는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보편적인 세계 밖으로 나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조각들』의 익명의 저자인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가 다다르는 지점이 바로 이 역설이다. 그런데 역설은 다음과 같은 인식론적 문제를 일으킨다. 만일 윤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절대 선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클리마쿠스는 이 문제와 관련된 두 가지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첫째는 소크라테스의 상기론이다. 클리마쿠스는 소크라테스의 상기론에서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를 본다. 상기론은 인간의 이성이 영원한 진리를 인식하는 데 감각 지각이나 신체적 욕구와 같은 자연적 성향 또는 역사의 매개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은 영원한 진리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는 영원한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있으며, 따라서 개개인이 영원한 진리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비역사적인 합리주의라고 불릴 수 있다.
둘째는 헤겔의 역사철학이다. 그것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역사적, 사회적 운동에 매여 있다. 개인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세계 이성의 도구일 뿐이다. 개인은 마치 자기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세계 이성의 간계에 의해서 역사를 구성하는 소재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역사는 세계 이성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역사의 흐름은 필연적이다. 역사의 필연성에 따라서 모든 개인이나 민족이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나면 덧없이 사라져버린다.
이처럼 헤겔의 역사철학, 즉 역사적 합리주의에서 역사란 세계 이성의 자기 전개를 뜻한다.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성이며 따라서 현실은 세계사적 이성과 일치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소크라테스의 상기론과 헤겔의 역사적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에 관한 한 양자는 판이하게 다르다.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는 상기론에서는 가능하지만 헤겔의 역사적 합리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상기론은 영원한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성향이나 역사를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헤겔의 역사적 합리주의에 따르면 역사는 이성의 구현이며 비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역사적 합리주의에서는 아브라함의 종교적 실존과 같은 진정한 주체성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헤겔에게는 반주체적인 사변만이 있을 뿐이다. 키르케고르가 소크라테스에게는 상당히 우호적이지만, 헤겔에게는 매우 비판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키르케고르가 소크라테스의 비역사적 합리주의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비역사적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영원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낙관적 합리주의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인본주의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 역시 역설이라는 인식론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낙관적 합리주의나 인본주의는 역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하네스 클리마쿠스가 『철학적 조각들』에서 소크라테스의 상기론을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서』는 이런 비판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후서』가 『철학적 조각들』의 후서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클리마쿠스가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마저 배제해 버리는 헤겔의 역사적 합리주의를 『후서』에서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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