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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강은 금이 가지 않는 거울이다
봄의 절반 문신 옥수동 노루페인트 파꽃 평상 이포나루 新고려장 우체국 옆집 골무 산수유마을 간월암 우엉 교집합 II 푸른 속도 봄 마지막 여름 마네킹 제1공단 목격자 저장된 햇살 벚꽃이 날리기 시작하는 저녁 일곱 시 겨울 버스와 나비 아네모네 들고양이 5번 출구 품바는 멈추지 않는다 버찌 나팔꽃 하얀 밀교 산란을 꿈꾼다 III 흔들리는 유월 망초꽃 1 망초꽃 2 망초꽃 3 영산홍 꽃상여 뿌리로의 이동 감자밭 쑥부쟁이 산역(山役) 인삼밭 시월, 화요일 꽃팬티 秋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 수화 IV 잎새의 안쪽 춘분 꽃의 왼편 새벽 트럭 앵두나무 낮꿈 선창포구 환절기 꽃다방 생리하는 남자 가을, 전어 채송화 피고 숭어 서정리역 독백 낙타등을 품은 남자 해설:“물컹함”의 시학 | 장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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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작』으로 등단하여 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수혜한 박정수 시인의 첫 시집 - “물컹함”의 시학
박정수의 시에서 신변성(身邊性) 불안과 일상 경험의 밑바닥에 눌러 붙은 우울의 기미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굴종과 좌절로 얼룩진 식민지 경험 이후 우리 시인들 누구에게나 찾아볼 수 있는 암울한 현실의 도체(導體)로서 시가 존재해 온 것을 환기한다면 그것이 그만의 독자적인 상상세계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의 상상력을 물들이는 기본 색조는 붉음이고 그 질료성은 물을 머금은 물컹함이라는 특이성을 띤다. 물컹함은 점액성을 띤 신체고, 이것은 깨지지 않고도 그 내재성의 변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권력에 길들여진 신체에 대한 은유다. 이를테면 “기나긴 오후의 물컹한 무게를 지탱하고 있어야 했지”(「평상」)라는 구절에서 그것은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돌의 고집스런 응고성과 경도(輕度)의 굳건성에 견줄 때 “물컹함”의 질료성은 수분을 품고 진행되는 해체와 무르게 된 성질이 또렷해진다. 물컹함은 그 내면에 품은 욕망의 액체성이 더 강조되는 것이다. 박정수의 그것은 만만치 않는 무게를 가진 몸-욕망의 “물컹함”이다. 이것이 지시하는 것은 실존의 버거움이다. 아울러 “필경 비워내고 싶은 꽃의 사연이 있어 눈시울 붉은 흔적이 물큰 파고든다”(「버찌」)나, “여전히 붉은 화단엔 굵은 빗줄기의 고해성사가 고이고 있어요”(「영산홍」)라는 구절에서 붉음은 눈시울의 붉음이고, 무의식에서 보자면 월경 피의 붉음이다. 이것이 고해성사의 눈물-물로 이어지는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붉음-물컹함을 수렴하는 정서는 “설움”이다. 시인의 설움은 그것을 낳는 정황에 대해 어찌 할 수 없는 국외자의 무력한 체험에서 빚어진다. 이렇듯 박정수의 상상력은 자주 비릿하고 물컹하고 질퍽이는 것에 이끌리는데, 이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찍이 김수영은 “비가 그친 후 어느날―/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이라고 노래했다. 김수영은 후진국 지식인의 지리멸렬한 삶을 꽉 채운 “설움”의 발견자이자 그 의미를 캐는 선구자였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은 설움”(「병풍」)이라고 했고,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거미」)라고 노래했다. 설움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진다. 설움이 삶의 저변에 미만(彌滿)해 있는 것이라면 그 물기로 인해 삶은 비릿한 것, 물컹한 것, 질퍽이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