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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의 좋은 소설을 읽는 즐거움
새로이 개편된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계절마다 앤솔러지로 엮어 1년에 4권씩 출간하는, 참신한 변화의 첫 책이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은 작가들의 수작을 좀더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 3,150원에 좋은 소설 네 편을 읽을 수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2018.09.07.
소설/시 PD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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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시절과 기분_김봉곤 인터뷰_김봉곤x황예인 가출_조남주 인터뷰_조남주x금정연 여름 다른 기억_김혜진 인터뷰_김혜진x조연정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_정지돈 인터뷰_정지돈x김신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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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고맙게도 시간과 거리가 나를 대신해 끊어주기도 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시절과 기분」중에서
지리산을 오르고 제주 바다를 구경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가출」중에서 이런 인간인 줄은 진짜 몰랐네. 한번은 사람들이 무시로 오가는 길거리에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직장 후배였고 어느 시기가 지나고부터는 가까운 친구처럼 오래 일상을 나누던 사이였다. 그 말이 지나치게 가혹하게 느껴져서 그 당시에 나는 입을 닫아버렸다.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다. ---「다른 기억」중에서 김원은 미래학 세미나에서 서기 2000년 한국은 주 4일만 일하는 곳이 될 것이다, 4일은 사회를 위해, 3일은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며 집은 자동차나 냉장고처럼 캡슐로 만들어진 내구성 소재 정도로 변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한국은 어떤가요, 주 4일 근무인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한국의 노동 시간은 OECD국가 최고 수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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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소설: 봄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은 게이이자 소설가인 주인공이 ‘정체화 과정’ 이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 혜인을 7년 만에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여정에서의 기분을 촘촘하게 묘사한다.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진동하는 세련된 사랑의 서사로,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퀴어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김봉곤이 기분의 상상력을 통해 자기 서사의 겹을 두텁게 한 결과”이며, 한국 소설의 새로운 방향이라는 기대를 표했다. 조남주의 「가출」은 72세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선택한 가출이 야기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변화 혹은 성장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가부장으로 온화하게 군림했던 남성이 사라진 원인과 그 이유에 집중하기보다 남은 가족의 결단과 전망의 서사를 통해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세대 갈등, 젠더 정치 등의 현안들을 골고루 환기하고 있다. “탈존의 층위를 넘어 폐존”을 연상시키는 소설이며 “당신의 입을 간질이기에 충분한 작금(昨今)의 작품”(산문가·시각문화연구자 김신식)이다. 이 계절의 소설: 여름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한 대학 신문사의 주간 교수를 둘러싼 학내 분쟁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갈등이 또 다른 갈등으로, 그렇게 불화의 골이 조금씩 선명하게 깊어져가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어떤 윤리는 맹목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맹목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거시적인 적대 관계로 규정되기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다루기 어려운 불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문학평론가 이수형)이 앞으로도 기대되는 작품이다.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60년대 후반에 상상되던 ‘미래’에 동아시아적 현실과 역사적 성찰을 시도한다. 오사카 만국박람회 전후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근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을지 면면이 살펴보면서 그 질서와 혼란을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예민하게 포착한다. 문학평론가 강동호는 “‘미래’라는 유령에 감염되지 않을 수 없는 근대 이후의 시간, 즉 근대성의 원리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비판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정지돈이 “우리 세대의 가장 논쟁적인 소설”을 쓰는 역사철학자라고 일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