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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그냥 보고 싶다 토끼벼리길/ 그냥 보고 싶다/ 쏘가리/ 산길/ 역마살驛馬煞/ 작설차雀舌茶를 마시며/ 산정무한山情無限/ 나는 살아 있다/ 생몰生沒/ 숙취의 아침/ 물회/ TV/ 투우鬪牛, 말라카(Malacca)에서/ 고리버들 제2부 개구리 성불하시다 봄/ 개구리, 성불成佛하시다/ 콩순을 치며/ 애기똥풀꽃/ 비박(biwak)/ 어린 것들이란/ 노송老松의 말씀/ 도리깨질 끝나면 점심은 없다/ 소년들 보면/ 연대連帶/ 미분양/ 나방/ 옹기/ 인간이란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어린 금강송/ 타이타닉 포장마차/ 아내는 시인이다 제3부 개에 관한 명상 반신욕/ 황태/ 화두/ 미시령 옛길/ 컴퓨터/ 풍치風齒/ 실향/ 낙동다방洛東茶房/ 막국수를 먹으며/ 수타면/ 화암사禾巖寺 다실茶室에서/ 마침내 그들이 나를 버렸다/ 노래방에서/ 탁족濯足/ 나는 모른다/ 개에 관한 명상 제4부 동백 지다 검은등뻐꾸기/ 돌탑/ 신경초神經草/ 밥/ 낮술/ 산티아고 가는 길/ 바위/ 폭포/ 나팔꽃/ 불면/ 자귀나무 꽃/ 달맞이꽃에게 묻다/ 이별/ 오죽烏竹/ 반딧불/ 동백 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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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자 그대가 핀다
기별만 하고 오지 않는 봄보다 먼저 잔설殘雪을 이고 그대 피어난다 내가 돌아오자 그대가 진다 가장 아름다운 날 봄볕에 목을 매어 툭 하고 미련 없이 붉은 마음 진다 그대 지고 한해의 봄도 가버린 자리 뜨겁던 그대 넋이 인장印章처럼 남아 흔들리는 걸음마다 붉게 새겨진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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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울음을 터뜨릴 때 또는/ 내가 그대이고 싶을 때/ 나는 살아 있다// 비가 내릴 때 또는
내가 물이 되어 흘러가버릴 때/ 나는 살아 있다 // 나는/ 내가 아닐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부분 1987년 ‘나아가는 문학’으로 등단한 한양명 시인이 두 번째 시집 『허공의 깊이』(도서출판 애지)를 냈다. 첫 시집에서 역사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리얼리즘의 세계와 극한의 결핍을 낳는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한양명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과 삶의 문제, 자신과 자연 및 세계의 관계문제, 자본주의체제하에서 물화되고 문화의 강제 속에서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인간의 문제를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의 바깥쪽에 있던 시적 관심의 무게가 상당 부분 시인의 안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를 두고 고인환 평론가는 “세속적인 삶 너머를 되비추는 ‘시린 반성’의 언어로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라고 해설하고 있고, 권지숙 시인은 “놀라운 생명력과 진정성으로 생의 진의를 획득하는에 성공했다”하고 헌사하고 있다. 시인은 시집출간의 소회를 묻은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50여 년 동안 세상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셈이다. 꿈과 본성을 억압하면서 세상이 가르친 대로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지금 지난 삶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경계쯤에 서 있다.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시인의 말에서 드러나듯,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면서도 이를 거부하려는 현대인의 내면, 스스로의 삶을 ‘날 것’으로 성찰하는 시선으로 인해 그의 시는 부정적 현실을 감싸는 동시에 질타할 수 있는 절실함을 획득하고 있다. 이 시집은 ‘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표정들이 포개지며 묘한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