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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언
하리 할러의 수기 주 해설: 현대 사회에서 국외자가 겪은 자아 분열상과 현대 문명의 신경증에 관한 보고서 판본 소개 헤르만 헤세 연보 |
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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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때 황야의 이리로 불렸고 하리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두 다리로 걷고 옷도 걸친 인간이었지만, 본래는 한 마리 황야의 이리였다. 그는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었고 상당히 총명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가 배우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법이었다. 이것만은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는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이 본래 인간이 아니고 황야에서 온 이리라는 것을 늘 의식하고 있었기 (또는 그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 p.59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초상화 속의 괴테와 교수에게 작별을 고하고 현관 옷걸이에서 내 물건들을 챙겨 들고 얼른 집에서 나왔다. 내 영혼 속에서는 심술궂은 이리가 기뻐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고, 두 하리 사이에 격렬한 연극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저 즐겁지 않은 저녁 시간이 모욕을 당한 교수보다는 내게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수에게는 그것이 실망, 작은 불쾌감 정도를 의미하겠지만, 내게는 최종적인 실패와 도주, 시민적이고 도덕적이고 학문적인 세계와의 작별, 황야의 이리의 완승을 의미했다. --- p.122 헤르미네의 왼 젖가슴 아래에는 새로 생겨난 동그란 얼룩이 하나 보였는데 거무스름한 그 자국은 파블로가 곱게 빛나는 이빨로 물어 놓은 사랑의 상처였다. 나는 그 얼룩이 있는 곳을 주머니칼로 날이 쑥 들어갈 정도로 깊게 찔렀다. 헤르미네의 희고 부드러운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만약 모든 상황이 약간만 달랐더라면, 모든 것이 조금만 다르게 진행되었더라면, 나는 키스를 하면서 그 피를 핥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눈을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 p.311 |
하리 할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낯선 감정을 느끼며 고독한 방황을 하는 자신을 ‘황야의 이리’라고 부른다. 현대 문명과 기술 발전에 혐오감을 느끼는 그는 시민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며 삶의 유희를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우연히 ‘검은 독수리’라는 술집에서 미모의 여인 헤르미네를 만나게 되고, 춤추는 사람과 술 마시는 사람이 뒤섞인 낯선 공간에서 그들은 운명적으로 끌린다. 헤르미네는 폭스트롯과 보스턴 춤 등을 가르쳐 주며 그동안 경험한 적 없는 낯선 세계로 할러를 이끌어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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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고백 소설이자
‘헤세 열풍’을 선도한 히피들의 바이블 헤르만 헤세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의 작품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다. 1927년에 발표된 『황야의 이리』는 자기 내면의 전기인 동시에 시대의 기록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당시 헤세가 처했던 개인적인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그는 우스꽝스럽고 역겨운 세상에서 자신이 철저히 배제된 존재라고 여겼는데, 그런 시민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내면의 자살 충동이 작품 속 주인공 하리 할러가 경험하는 삶의 위기로 표출된다. 『황야의 이리』는 헤세 생전에도 전쟁을 경험한 후 삶의 의미와 방향에 목말라 있던 젊은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미국에서는 사후인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탈권위주의, 반전, 반핵, 환경 운동을 내세우며 미국 및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68 학생운동’ 세대와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히피’들이 바이블처럼 여기고 열독하면서 ‘헤세 열풍’을 선도했다. 헤르만 헤세의 영혼과 인생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 자전적 소설 헤세가 쉰 살이던 1927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쉰 살 생일을 자살 감행 시점으로 정한 고독한 존재 하리 할러가 쉰 살 생일을 얼마 앞두고 삶을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시기에 헤세는 좌골 신경통과 통풍, 시력 약화, 심한 두통 등 육체적 질병으로 자주 괴로워했는데, 소설에 작가의 이런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하리 할러가 경험하는 댄스 교습, 축음기 구매, 가장무도회 참여 등도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시기에 헤세는 춤추는 법도 새로 배우고 술집을 전전하는 것 외에 성적 유희에도 몰두했다. 하리 할러라는 시민 사회의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편집자의 서언, 황야의 이리에 관한 소논문, 하리 할러의 수기로 나누어 다중 인물을 서술자로 등장시킨 ‘시점의 다양화’ 서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이 소설은 셋집 여주인의 조카가 셋집 거주자인 주인공이 남긴 수기를 편집한 인물로 등장해 하리 할러라는 인물에 관해 서술하는 내용(‘편집자의 서언’)으로 시작한다. 이때 서술자는 객관적인 시점의 외양을 취하면서 회고와 성찰의 형태로 주인공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일반 독자는 ‘편집자의 서언’ 부분이 소설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편집자가 하리 할러의 수기를 처음 읽은 독자이자 수기를 해석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독자가 수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하도록 준비시킨다. 그리고 하리 할러가 남긴 자서전적인 글 ‘하리 할러의 수기’에는 할러가 어느 날 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에게서 받은 「황야의 이리에 관한 소논문」이라는 글이 담겨 있는데, 「황야의 이리에 관한 소논문」이 하리 할러라는 존재를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분석한 글이라면 ‘하리 할러의 수기’는 할러가 헤르미네라는 여인을 만나기 전과 후로 크게 나누어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군국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비판하고 평화주의자이자 세계주의자로 살아가는 할러는 특히 장군, 거대 자본가, 정치인 등 당시 독일의 권력자들이 지난 전쟁에서의 살육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 그러면서 괴테와 모차르트를 ‘영원한 존재들’의 지위에 오른 인물로 존경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긴다. 이런 할러의 시대 비판은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할러는 대중오락을 포함해 어리석은 소비를 일삼는 현대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천박하다며 비판한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기술 문명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약물로의 도피, 자살 충동, 평준화된 삶에 대한 거부 등은 1960년대 미국에서 문명 반대에 나섰던 히피 세대의 세계관과 상통해 히피 세대는 이 소설을 숭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소설은 할러의 문화 염세주의를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술 극장에 등장한 모차르트는 할러에게 삶에 포함된 찌꺼기가 삶의 진정한 정신을 파괴하도록 허용하지 말고, 저주받은 ‘삶의 라디오 음악’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할 거라고 충고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와 군중 속에서 길을 잃은 황야의 이리, 이 문제의 인물이 겪는 영혼의 병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시대 자체의 병이라 할 수 있다. 헤세는 1941년에 쓴 후기에서 “나로서는 『황야의 이리』가 병과 위기를 묘사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병과 위기 또는 몰락이 아니라 그 반대, 즉 치유를 그려 낸 소설임을 독자들이 알아차린다면 기쁠 것이다”라며 이 작품이 치유까지 나아가는 소설임을 내비쳤다. 헤세가 의도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주인공의 열린 결말’은 똑같은 잣대로 평가되는 삶과 자본주의 사회 경쟁에 지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한 인간의 영혼에 내재한 질병을 다룬 흥미롭고도 매혹적인 소설로,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가차 없는 고발이다.” - 「뉴욕 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