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1부 말문 뜨거운 발 겨울에서 봄 사이 금서 개기일식 달콤한 무기 삭제된, 선유仙遊 은수이야기 수레 유고시집 과녁은 빗나가거나 묘미를 찾거나 키다리아저씨 화살나무 뼈 어미 곤드레밥 2부 몰입 가지가지 그 여자, 지니genie 강릉에서 골목이라는 말속엔 늙은 식탁을 위하여 담쟁이는 가능할까 길마가지 꽃 꽃 향유 녹청 등 의자 부패의 저녁 별똥별 여름을 보내는 방식 오래된 사과나무 3부 일요일의 키스 유리벽 심장을 가졌다 보르헤스를 읽는 밤 단단함에 대하여 은하수 편의점 거절 술 발효의 계절 혼자 놀기 돌탑의 말 발목 잡히다 목련에게 당하다 부다페스트 야경투어 전어를 굽는 저녁 한계령을 지나며 이 별의 시간 정약용 4부 파경破鏡 모과나무는 궁금하다 방목 칼과 달 자작나무 도서관 신, 규방가사 징후들 불쾌한 골짜기 땀을 위하여 봄을 수리하다 쌀죽 한 그릇 야생野生 위구르 여인 한 호흡 백두산 천지 서유구 해설 시의 심장을 가진 시인 │이숭원(문학평론가) |
김지헌의 다른 상품
|
하늘이 말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장맛비에 꽃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흙을 뚫고 수련이 말문을 열었다 과묵을 늘상 달고 다니던 아이가 아기아빠가 된 것 만큼이나 저 수다스러움은 위대하다 살아 있다고 소리치는 거 꽃이 잠깐 한눈판다 한들, 내가 엄마를 찢고 나와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엄마도 그랬으리라 공원묘지의 봉분들, 말문을 닫은 그 이유라는 거 알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정선 비행기재를 지나는데 한여름 적요 속 터널이 속사포를 쏟아내고 있었다 살기 위해 죽을힘 다하는 폭포수처럼 고요라는 평형수가 터널의 말문을 닫아버린다 언젠가 말이 문을 닫을 때 그때를 위해 문장 하나는 남겨놓아야 한다 한 줄 휘갈겨 쓴 번개처럼 ---「말문」중에서 양파를 썰다가 왼손 중지 첫째 마디를 베었다 둑이라도 무너진 듯 솟구치는 통증 아래 붉은 아가미가 입 벌리고 있다 어떤 힘으로 마그마가 틈을 찾아냈는지 이미 굳어버린 고집을 흔들어 따뜻하게 대지를 적시는 붉은 소낙비 심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눈물 흘리는 것으로는 너의 반의반도 적시지 못한다는 듯 신은 어느 날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여 ‘버려진 어둠을 헤치고 담장 안에 장미를 심으라’ 명령을 내렸다 꽃과 가시를 내장한 채 줄줄이 담장을 넘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전장에 나가는 붉은 군사들에게 신은 또 명령한다 꽃이라는 문장으로 세상을 제압해보라 생이라는 협곡을 통과하기 위해선 가시에 찔리고 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 소낙비가 그치고 붉은 아가미가 닫히고 넝쿨장미는 줄줄이 담장을 넘으며 너머의 세상을 향해 온몸을 발기하고 있다 ---「심장을 가졌다」중에서 몽골 쳉켓 마을에서 염소젖 짜는 여자를 보았다 버터에 구운 빵을 위해 염소젖을 짜는 여자 염소는 건초를 우유로 바꾸고 젖 짜는 여자는 다시 치즈와 버터와 요거트로 나는 바꾸기로 했네 버터와 치즈를 고소한 시 한 편으로 꽃사과와 설탕을 항아리에 버무려 과실주를 담근다 술이 익는 동안 나는 연애편지 쓰듯 시 한 편 쓴다 아침이면 설익은 내 시를 다시 버린다 싸한 기운으로 내 안을 통과할 때까지 내 시는 좀체 발효되지 않는다 베란다 앞 산사나무 한 그루 빨강을 내 보인다 빨강 밥을 먹으려고 온갖 새들이 날아든다 이미 발효의 계절을 통과했다는 것 뿌리 근처에서 향기롭게 썩어간 이파리도 발효 끝에 꽃 피우고 빨강 열매를 가득 달고 왔다는 것 겨우내 뿌리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는 것 밀가루 반죽이 발효되는 동안 내 시도 고소하게 부풀어 갈 것이네 효모를 약간만 뿌리고 소금을 살짝 첨가해 화덕에 구워내면 고소하고 영양 좋은 시 한 편 구워질 것이라고 ---「발효의 계절」중에서 |
|
시인의 말
시를 위한 여백이라고 핑계 삼으며 8년이 갔다 여전히 남루를 걸치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어쩌랴 집 앞 작은 화단에 장미를 심었다 수련도 여름내 보랏빛 얼굴을 내밀었다 뒤란 텃밭엔 몇 가지 채소가 햇살과 잘 놀고 있다 사이사이에 시의 밭도 일궈 묶어낸다 김지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