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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2007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동인문학상-38이동
은희경 | 창비 | 2007년 04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2 리뷰 57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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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7년 04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50쪽 | 364g | 153*224*20mm
ISBN13 9788936436995
ISBN10 8936436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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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 릴케, '두이노의 비가' 中

은희경의 아홉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그녀는 '한가지의 고독을 이겨냈다'는 말로, 또 하나의 소설을 완성한 소감을 전한다. 수록된 단편 모두 개성과 색깔이 뚜렷하지만, 비루하고 초라한 삶들을 조용하게 연민하며 공감의 시선을 보내는 점과 특유의 경쾌한 문체는 한결같다.

2006년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이었던 표제작을 비롯하여 한편 한편 공들여 쓴 중단편 총 6편이 수록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포함한 가족관계 속에서 삶과 정체를 탐구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현대의 고독하고도 분열적인 인물을 다루고, 그 소소한 일상의 국면에서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그녀의 섬세한 시선과 서사가 빛을 발하는 소설집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해설ㅣ신형철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 지면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밥알은 달게 씹혀 목구멍 안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내 몸이 미칠 듯이 환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장이 춤추듯 꿈틀거렸으며 뱃속이 흐뭇할 만큼 따뜻해졌다. 자, 네가 그토록 원하는 탄수화물이다. 숟가락질이 점점 빨라졌다. 나는 이상한 감동으로 국밥을 퍼먹고 있었다. 굶주린 자식을 먹이는 아비의 마음을 넘어 고통받아온 몸을 구원하는 메씨아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자포자기, 그리고 자기 파괴적이며 충동적인 악의가 팔에 속도를 붙였다. 잔칫집의 초대받지 않은 식객답게 입가로 국물까지 흘리면서 나는 탐욕스러운 속도로 순식간에 국밥 그릇을 깡그리 비우고 말았다. 국물까지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자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상복 여인이 다가와 말했다.
--- p.111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2006년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이던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서른다섯번째 생일날,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전작이었던 장편 『비밀과 거짓말』이나 소설집 『상속』의 표제작에서 은희경이 바라보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어릴 적 아버지와 만나던 이태리 식당에 걸려 있던 보띠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잊을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는 뚱뚱한 모습만을 보였고, 이제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은 아버지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매일 먹는 밥을 거부하는 다이어트란 결국 인간의 문명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은, 끝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달라진 모습으로 빈소를 찾고, 아버지는 「비너스의 탄생」을 유품으로 남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현실에서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 음식에 대한 거부와 연결된다.
또한 이번 소설집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긴장과 착종이다. 서사를 따라 충실하게 읽다보면 소설 속에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현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 일정한 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의심을 찬양함」)내듯이, 하나의 허구(소설) 안에 허구적인 설정이 겹겹으로 등장한다. 바깥의 허구(소설 속의 현실)보다 더 허구적이고 황당한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소설 속 삶과 현실은 오롯하게 다른 차원의 삶으로 열리며 진정성을 얻는다. 겹겹의 허구 속에서 한 차원 다른 생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

「고독의 발견」에서 거짓말도 못하고 별볼일도 없는 만년고시생 주인공 K는 생일날 찻집에서 몽환적인 노래를 들으면 잠에 빠졌고, 그뒤로 펼쳐지는 일들은 꿈속처럼 묘한 분위기이다. 한 사내가 나타나 W시의 여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W시에서 난쟁이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자신을 여러 개로 쪼갤 수 있다고 말하며 나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모두 꿈속 상황이고 인물이다. 다시 꿈에서 깬 K는 제 삶을 관통하는 거대한 고독을 발견하고 소리없이 오열한다. 「의심을 찬양함」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도플갱어를 설정해놓고, 현실의 우연과 필연의 통계학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주인공 유진은 친구 S의 결혼식에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자신이 서점에서 산 책과 똑같은 책을 들고 탄 남자와 동석을 하게 되고, 오피스텔 밀집 지역에서 살던 당시의 일을 떠올린다. 유진은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 잘못 배달된 사과상자의 주인이라며 찾아온 오피스텔 옆동 남자를 동일인으로 생각하고 만날 약속을 하지만, 정작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은 그 남자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의 형이 고의적으로 유진에게 접근했다며 세상에 운명이나 우연은 애초에 없고 과학과 인과관계의 법칙에 의해서만 지배될 뿐이라고 유진에게 강변한다.

「날씨와 생활」에서는 꿈 많은 몽상소녀 B가 출생의 비밀이나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자신을 끊임없이 상상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르고, 오히려 냉혹하기만 하다. 잔뜩 긴장한 B는 할부 책값을 받으러 온 수금원과 어머니의 담담한 모습에 주체할 수 없이 큰 웃음을 터뜨린다. 상상(혹은 환상)과 현실의 팽팽한 긴장이 풀리며 쏟아져나온 그 허탈한 웃음이야말로 은희경 문학의 진정한 페이소스이다. 끝까지 비극인 인생도, 마냥 희극인 인생도 없다는 명확한 이치를 깨달은 어린 소녀는 누구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삶이 녹녹하지 않듯이 소설도 쉽고 잘 읽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작가는 문장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여 수사적 긴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로 말하자면, 질문과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인 채로 아름답고 낯설고 (섣부른 전망을 거절한다는 의미에서) 끝내 허망하기까지”(해설 ?거대한 고독, 인간의 지도?) 하다고 풀이한다. 선 굵은 서사 대신 독특한 서사와 인물을 통해 작가는 범상치 않은 일상과 현실의 단면을 극적으로 클로즈업함으로써 냉소와 위악 대신, 조용하고 나직한 공감과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수사든 서사든 무색무취하게만 느껴지지만, 삶과 현실을 관통하는 힘은 그의 전작이나, 요란한 그 무엇보다 힘이 세고, 그래서 아름답다. 이를 두고 김중혁은 흑백영화의 무궁무진한 색감에 비유하며 “그곳은 조금 불편할지 모르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고, 불편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뒤표지 글)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날씨와 생활」을 오디오북으로 꾸며 책과 함께 선보인다. 꿈많은 어린 몽상 소녀의 유쾌 발랄한 상상 속 세계와, 상상과 다른 냉혹한 현실을 빗댄 이 작품은 누구나의 유년시절일 법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디오북에는 작가의 육성으로 소개하는 작품 설명과 성우들이 낭송한 작품이 실려 있다. 책과 문자로만 만나던 문학작품을 오디오로 듣는, 귀로 읽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회원리뷰 (57건) 리뷰 총점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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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은희경 내용 평점1점   편집/디자인 평점1점 북*리 | 2017.09.0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2007년 7월 19일>-  목   차  -의심을 찬양함고독의 발견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날씨와 생활지도 중독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한 작가를 오랜 시간 대하다 보면 (물론 작품을 통해서 말이다) 작품 분위기의 변천사를 주루룩 나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작가는 처녀작부터 세상 짐을 홀로 다 떠안은 듯, 창작자는 이렇게 고뇌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 무;
리뷰제목

<2007년 7월 19일>

-  목   차  -

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한 작가를 오랜 시간 대하다 보면 (물론 작품을 통해서 말이다) 작품 분위기의 변천사를 주루룩 나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작가는 처녀작부터 세상 짐을 홀로 다 떠안은 듯, 창작자는 이렇게 고뇌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 무겁고, 시니컬하고, 회색빛 투성이의 글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후로는 마치 탈피를 한 듯 훨씬 가볍고 밝고 명랑한 작품으로 돌아와서 독자를 벙긋 웃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나는 왠지 그 작가가 한층 더 자란것 같은 기분에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은 건방진 생각마저 든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 관점에서의 발로인데 나는 재밌는 작품이 좋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작가의 글솜씨와 스토리에 매료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좋다. 단순하고 무식한 독자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은희경 님의 이번 작품은 왠지 실망스럽다. 어느 단편 하나 술술 읽히질 않았고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고를 반복했던, 교통 체증 구간 같은 작품집이었다.

 

단편이 그렇듯 글 초반에 글 흐름을 캐취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번번히 실패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군 싶으면 되려 다른 줄기를 타고 약간은 생뚱맞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잡은 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황당해지기 일쑤였다.

 

이해를 돕고자 작품 끝에 달린 문학평론가 신형철 님의 해설을 읽어보았는데 해설이 더 어렵다. 해설을 쓰는 사람들은 어려운 말 대회라도 나온 것 처럼 왜 그리도 말을 어렵게 쓰는지. 단어 또한 뜻을 알 수 없는 한자가 대부분이고 말이다. 휴... 한숨만 나온다.

 

마이너리그를 참 재밌게 봤던 독자로서 오랜만의 은희경 님의 작품에 잔뜩 기대를 부풀린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실망도 더 컸을까.

 

작가가 꼭 경쾌한 작품만 쓰라는 법은 없다. 정말 없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게 작가라는 직업이다. 하지만 방식의 차이라는 것은 있겠다. 작가 박민규는 배꼽잡고 웃게 만들면서도 마지막에는 꼭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은희경 님의 어떤 차이가 '마이너리그'와 이 작품간의 간극을 만들어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작가님 스스로도 '이 정도면 됐어. 다음에 잘하지 뭐' 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다음 작품을 다시! 기대해 보기로 하겠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비판만 늘어놓은 리뷰가 되어버려서 미안하지만 사실, 각 단편들에 대해서는 줄거리 요약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줄거리 요약도 생략하고 싶어서 관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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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은* | 2014.01.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고독한 인간들에게 건배를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살다가 위험한 조각을 마주했을 때 우린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을 피하거나 혹은 그 조각을 마주하고 쪼개지거나 상처받으며 내 삶을 변형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본능적으로;
리뷰제목

고독한 인간들에게 건배를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살다가 위험한 조각을 마주했을 때 우린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을 피하거나 혹은 그 조각을 마주하고 쪼개지거나 상처받으며 내 삶을 변형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본능적으로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은희경은 역시 그러할까.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을까. 소설집의 제목.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이 낯선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정이다. 불안의 영역에 있는 것을 꺼내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왜 불안인가. 그 답을 하기 전 우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오랜 기간 끊임없이 논의 되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다다르고자 하는 이상의 영역중 하나이다. 그것이 나를 무시한다. 그것은 분명 끔찍한 일일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실체를 우리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꿈꾸는 일은 결국 내면에서 불안한 일이 된다. 하지만 은희경은 그 불안이 주는 경악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라고 그대로 인정한다. 마주봄. 즉, 인정은 불안하고 고독한 인간에게 손을 건네며 회복의 길로 인도한다. 하지만 제목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작품을 통해 삶에서 위험한 조각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알아가 보고자 한다. 은희경. 그녀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천천히 잔을 채우기 시작한다.

 

 

 

  1. 고르기 : 환상 속에서 꿈꾸는 당신에게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형태의 환상과 공존한다. 살다보면 우리는 환상 속에 의도적으로 빠질 수 있고, 오래도록 축적 되어온, 피할 수 없는 환상들을 마주 할 때가 있다. 환상은 황홀하지만 그만큼 가벼워 금방 훅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늘 그런 불안함을 안고 있는 환상이 유지 되는 삶은 생생하지 않다. 환상의 얼굴은 아니 환상이 쓰고 있는 가면은 어떤 모공도 없이 매끈하고 아름다운 표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그것이 흐릿한 막을 형성하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게 만든다. 그 깊고 어두운 속내를 숨긴 환상의 가면에 시선이 빼앗긴 사람들이 은희경의 소설집에 등장한다.

  의도적으로 환상에 빠진 남자는 <고독의 발견>, 여자는 <날씨의 생활>에서 등장한다. <고독의 발견>에서는 주인공 K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꿈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남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말로 우리를 속이고 거짓을 말한다. 그 남자는 꿈을 꾸며 거짓이 아닌 척 이야기를 한다. 그는 애인과 헤어지고 변변한 직장도 없는 융통성 없는 남자다. K의 갑갑한 삶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 환상의 영역인 꿈이라는 이상적인 모양의 병을 고르게 만든다. 남자는 외롭고 고독한 현실에서 도망쳐 꿈에서 안식처를 찾아 속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는 거짓 안에서 진실로 보이는 것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꿈꿔온 소망인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꿈이다. 여전히 꿈이라는 기제 속에 숨어 있다.

  <날씨와 생활>에서 등장하는 소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 살고 있다. 그녀의 환상은 자라면서 자연스레 극복되어져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역을 대신해주었어야 할 큰 오빠의 부재에서 채워지지 못한 욕구가 만들어 졌고, 그것은 상실한 인간의 텅 빈 환상의 영역에서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었다. 그 욕구는 끝끝내 갈 곳을 잃고 결국 환상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주었다. 소녀는 크고 아름다운 모양을 한 환상을 집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놓는 법을 몰라 그것이 전부인양 붙들었다. 소녀는 자라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소녀의 영역에 머물며, 죽는 순간까지 환상을 붙들며 현실을 마주 할 수 없었다. 죽는 순간까지 진실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집은 병의 겉모습에 홀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녀가 살아낸 것은 무엇이었던가.

  오래도록 인간사에 축적 되어온, 피할 수 없는 환상에 매달린 남자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등장한다. 그가 선택한 환상은 아름다움. 수많은 아름다움의 정의 중에서 비너스가 지닌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뇌의 요구를 어겨가면서 까지 닿으려 했던 곳. 하지만 그가 닿으려 했던 그곳은 실상은 없는 곳이다. 어떻게 한들 그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은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욕망은 우리를 비웃으며 매 번 자리를 달리한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우리는 가질 수가 없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생긴 자신의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해 절대 영역인 비너스를 향한다. 그의 간절한 노력에 덕에 몸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점점 비대해진다. 그는 자기 자신과 환상을 분리해서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경멸하게 된다. 그 때 그 모습은 친한 친구가 보기에도 낯설고도 거북한 모습이 된다. 남자는 진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겉모습을 지니게 되었을지라도 그것은 환상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껍질의 일부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그의 속은 결코 도달 할 수 없는 영역인 아름다움을 쥐기 위해, 진짜 삶을 마주하지 못하며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단 한 번이라도 뚱뚱하지 않은 아들로 보이고 싶었던 마음은 진짜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놓치게 하고 만다. 그는 결국 살 뺀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 줄 수조차 없었다. 그는 무엇을 향해 달려 간 것일까. 그가 닿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약해보이지만 완벽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병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손은 허공에서 혼자 쥐어졌다. 하지만 남자는 손을 뻗기 전까지 그것이 분명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병의 모습에 취해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는 그에게 그것은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허공을 쥐었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서 말해준다 한들 그것이 옳은가. 아니 말해주는 이라는 것이 사실 있기는 한 건가.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위험한 조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피해 환상의 영역으로 도망쳐 머무른 것이다. 환상의 영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눈에 아름다워 보여 쫒는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아름답지 않으며 불쌍하고 가엾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들은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삶을 채우기 위해 환상을 선택했고, 헛된 욕망을 위해 환상을 골라 나아갔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환상을 선택했다. 그들은 애쓰고 애쓴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붙잡은 곳이 환상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채워가며 오롯이 살았다. 라고 미안하지만 말하기 어렵다.

 

 

 

  2. 열기 : 지도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라

 

 

  와인은 와인 오프너로 열어야 하며, 소주는 돌려서 따야하고, 맥주는 병따개로 열어야 한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술병들을 여는 방법. 그러나 이것이 정말 맞다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되물어본다. 극단적인 가정으로 몰아붙여본다. 와인 오프너가 없으면? 돌려서 열어지지 않으면? 병따개가 없다면? 우리는 술을 마실 수가 없는 것일까. 앞에서 술병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눈이 잔뜩 있다고 가정한다면. 심지어 그 눈이 즐겁고 호기로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면? 눈 씻고 찾아도 병을 열 방법이 없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분위기를 흐릴 것인가. 그런데 이것이 술병이 아니라 삶의 길목이라면? 삶을 여는 데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살다보면 종종 막다른 골목에 치달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골목 끝으로 몰아붙인 존재의 무게감과 크기 혹은 막다른 골목의 벽의 높이가 각각 다를지라도 그 순간이 주는 막막함이 분명 있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애초에 다다르지 않기 위해 너무도 쉽게 다른 것에 의존한다. 그것은 지도이다. 겁먹은 인간들은 막다른 길 같은 건 알려주지 않을 것 같은 믿음(환상)을 붙들고 지도를 들여다본다. <지도중독>에서는 평화주의자로 불리는 P가 나온다. 그리고 지도중독으로 보이는 선배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면 처음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비밀이 하나 풀린다. 지도에서 계속해서 눈을 떼지 않았던 선배와의 산책 중 대화의 일부이다.

 

 

  (...)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가 지도를 보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도상으로는 이미 길이 끊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밟고 있는 것은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조성해놓은 길이 아니라 야생의 흙이었다.

  - 지도에도 없는 길이면 등산로가 아니잖아요. 그만 돌아가죠.

  - 나는 남이 안 가본 길을 가는 재미로 살아. (180쪽)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주인공은 그제야 더럭 불안을 느낀다. 지도 중독은 지도를 내내 보고 있던 선배가 아니라 주인공 본인이었다. 선배는 가보지 않은 길을 위해 지도를 보고 있던 것뿐이었다. 오히려 주인공이 평화주의자라라는 고운 이름을 뒤집어쓰고서 안전한 길만을 가고자 했던 겁쟁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찾고 의존하고 있는 지도, 인생의 길. 과연 정말 인생에 답이라는 것이 있는가.

 

 

  -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182)

 

 

  신성한 아름다움, 천연함 그리고 존재를 압도하는 위엄을 마주한 선배의 말이었다. 그토록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지 않았던 곰을 마주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 밖으로 걸었기 때문이었다. 올바른 길이란 건 애초에 없다. 아무리 애써도 답이 없다. 하지만 그 말을 달리 말하자면 어떤 방향이든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방향 혹은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것은 히스테리 증자들의 증세이다. 답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잘 정제된 환상이다. <고독의 발견>에서 주인공에게 노파가 말했던 것처럼 믿었던 지도가 틀렸을 수도 있고, 또한 <지도중독>에서 나온 것처럼 지도를 벗어나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수많은 가능성과 풍요가 우리를 뒤덮는다. 오른쪽으로 가야 된다 믿었는데 막혀있다면 왼쪽으로 가면 된다. 이 당연한 소리를 환상은 너무도 쉽게 막아선다. 지도를 붙들고, 환상을 붙들던 주인공들의 삶은 진짜 삶이었던가. 그들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도로부터 길들여진 자신을 깨고, 지도를 움켜쥔 손을 펼쳐 무궁무진한 진짜 세계를 붙들어야 한다. 술병을 열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어 언제든 병 안에 담긴 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3. 따르기 : 고독한 인간임을 인정할 것

 

 

  드디어 은희경의 목소리가 따라내는 술의 빛깔을 본다. 조명에 따라, 내가 앉은 위치에 따라 술의 빛이 색을 달리 한다. 그녀가 따르는 액체를 마시고 나면 어떻게 될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병 안에서 무언가 흐른다는 것은 분명히 보인다. 그렇게 흐르는 액체의 길을 따르는 목소리를 읽는다. 그녀의 목소리를 빌자면 진짜 삶이란 지도를 내려놓고 환상을 의심하고 지나쳐 깨부수어진 날 것의 나를 마주해야 보인다는 것이다.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 인간에게 고독은 필연이다. 왜냐하면 살며 끊임없이 질문은 따르는 데 답은 알 수가 없다. 그 어떤 누구에게 물어도 답은 따라오지 않는다. 사실 답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덜컥 겁이 날 것이다. 그렇게 우린 결국 모두 고독해진다. 그래서 겁나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가지지 못 한 채, 다른 곳에서 자신의 공허, 공포, 그 이름이 무엇이든 자신의 컴컴한 빈 공간을 채울 무언가를 붙든다. 너무 쉽게 붙들리고 마는 아름다운 것, 환상이다. 하지만 환상의 아름답고도 가벼운 가면을 벗겨내고 나면 그곳엔 헐벗은 내가 있다. 원래 있던 모습이 잠시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다. 변하는 건 없다. 다만 자신의 나약한 실체와 마주보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 생생한 삶을 붙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한다. 인정하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들에게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은희경의 목소리가 전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고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인정을 하고나면 이 전에 겁먹었던 것이 부끄러워지며, 놀랍도록 빠르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럼 곧 손이 빨라진다. 위험한 조각을 만나 환상을 지나쳐 헐벗은 혹은 산산이 조각난 나를 붙들고서 다시 그 조각을 맞추어 나갈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없는 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길이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인정하는 순간 고독은 더 이상 고통이나 슬픔이 아니다. 고독하기 때문에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조각났던 나를 스스로 끼워 맞추고, 몸의 형체를 이룩한다면 힘이 생기고 생생한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앞으로 어떻게 자신을 맞추어 나갈지, 맞추어져 어떤 걸음으로 걸을 것인지는 자신만이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특권과 동시에 풍요로운 지금이 가슴을 가득 메울 것이다.

 

 

  잔이 가득 찼다. 은희경은 술잔 가득 술을 따라주었을 뿐이다. 이제 당신은 얼마나 마실지, 마시고 나서 보이는 세상에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지, 취해 잠들고 일어나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다. 잠들기 전과는 분명 같은 인간이지만 사실은 다른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라며. 그 모습 그대로를 내내 응원할 것이니. 곰과 한 잔 하고픈 밤. 자, 고독한 인간들에게 아니, 당신에게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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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경우, 분신술에서 변신술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은**니 | 2013.06.0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1. 분신술   예로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사로잡은 것들 중에는 과학기술문명의 진보에 힘입어 실제로 현실화된 게 적지 않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그저 공상으로만 치부될 게 분명해 보이는 것들도 제법 있다. 예컨대, 타임머신 시간여행, 순간공간이동, 투명인간, 꿈을 찍는 카메라 따위. 이 불가능의 목록에서 비교적 상위에 랭크될 또다른 것으로는 분신술이 있다. 너무;
리뷰제목

1. 분신술

 

예로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사로잡은 것들 중에는 과학기술문명의 진보에 힘입어 실제로 현실화된 게 적지 않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그저 공상으로만 치부될 게 분명해 보이는 것들도 제법 있다. 예컨대, 타임머신 시간여행, 순간공간이동, 투명인간, 꿈을 찍는 카메라 따위. 이 불가능의 목록에서 비교적 상위에 랭크될 또다른 것으로는 분신술이 있다. 너무나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 시대 도시 직장인들의 경우라면, 어쩌면 서유기의 손오공을 부러워하면서 분신술을 제1순위로 손꼽을 수도 있겠다. 1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2는 집에서 책이나 읽으며 빈둥거리고, 3은 땀 뻘뻘 흘리며 산을 타고…… 상상만으로도 참 좋잖아.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부러울 게 하나 없는 인생이지. 만면에 떠오르는 흐믓한 미소는, 그렇지만 딱 여기까지다. 눈을 떠보면 사무실, 밀린 보고서를 재촉하는 상사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 분신술을 현실에서 실제로 실천하면서 그걸로 먹고 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배우들과 작가들이다. 그들은 영화와 TV드라마와 연극과 소설과 시나리오와 희곡과 드라마대본 등에서 자신의 분신들을 창조해낸다. 에이, 그런 분신들도 모두 가짜잖아? 그리고 그런 분신들은 배우나 작가랑 똑닮은 것도 아니고. 그럼 분신이라고도 할 수 없지, 안 그래? 대뜸 반문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맞다. 연기와 창작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분신들 역시 현실이 아니라 허구, 즉 공상의 세계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 분신들이 개츠비나 베르테르처럼 우리 모두가 아는 고유명사가 되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현실 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대성공을 거둔 이런 유명한 분신들이 아니더라도, 배우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분신들은 모두 현실 세계에 크든 작든 영향력을 미친다. 그렇기에 그 분신들을 우리가 가끔씩 몽상하는 분신들과 같은 부류의 허구적 존재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 분신들은 배우나 작가들 자신과 똑닮은 쌍둥이는 아니겠지만 삶의 경험, 사상, 취향, 정서 따위를 서로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분신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배우나 작가들 자신의 외모와 성격과는 조금도 닮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인 인물이 분신으로 태어나기도 하는데, 그게 그들에게는 조금도 치욕이 아니다. 아니, 그들이 창조해낸 분신들 간의 변이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그들은 칭송받는다. 그들의 분신술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똑닮게 그리고 얼마나 많이 분신들을 만들어내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다양하게 또 얼마나 매력적인 분신들을 만들어내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무한반복동형복사는 손오공에게는 뿌듯한 자부심이겠지만 배우들과 작가들에게는 도태의 지름길일 뿐이다.

 

2. 은희경의 경우, 분신술에서 변신술로

 

지금까지 내가 읽은 많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은희경은 신작을 펴낼 때마다 이전과는 뭔가 다른 낯섬과 새로움을 보여주는 분신술의 고수로 여겨지는데, 이 소설집 『아름다움이 멸시한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도 그녀의 분신술은 매우 뚜렷해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분신술에 예민한 소설가답게,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두 다 분신술 그 자체를 중요한 모티프로 삼고 있어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소설들 속에서 그녀의 분신술이 드러나는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명시적 방식인데, 「의심을 찬양함」과 「고독의 발견」에서 보이는 것처럼 동명이인, 쌍둥이, 도플갱어, 짝패(double) 등 겉으로 육체화되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분신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이다. 이 경우, 소설 속에서 분신들이 서사의 흐름에 개입하는 강도는 상당히 큰 것이어서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이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분신들의 의도적인 치밀한 계획이 개입된 필연의 결과인지 명백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의심을 찬양함」). 또한 소설 속 주인공의 현실과 분신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서로 삼투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려진다(「고독의 발견」).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분신들에 대해 끝내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되거나, 아니면 아래 인용한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해 잊혀지고 마는 분신들의 신세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역시 종내는 고독한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는 여러 개로 흩어져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서로 몹시 달라요. 화를 잘 내는 나도 있고 수줍은 나도 있고 말 잘하는 나도, 어리석은 나도, 그리고 아름다운 나도 혐오스러운 나도 다 있어요. 그것들은 흩어져 존재하지만 어느 한순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갑자기 사람들의 눈에 띄게 돼요. 외롭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은 내게 와서 말하죠. 어제 시장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물건값을 깎고 있는 천박한 너를 보았어. 어제 극장의 로얄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페라를 감상하는 우아한 너를 보았어. 비닐하우스 안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오이를 따는 늙은 너를 보았어.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는 평화로운 너를 보았어. 남자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울며 뒤쫓아가는 미친 너를 보았어.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일을 곧 잊어요.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많은 법이고 그리고 한사람이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죠. (59~60, 「고독의 발견」)

 

반면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에서는 암시적인 방식으로 분신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 소설 속 주인공들의 독서 체험이나 어린시절에 받았던 상처 또는 젊었을 때의 추억과 같은 방식으로써 주인공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분신들을 은근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의 육체를 갖지 못한 채 다만 주인공의 내면 속에 잠재된 형태로만 존재하기에 이러한 분신들이 주인공의 현실에 대해 갖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서사도 환상의 개입이 없이 분명하고 뚜렷한 현실 속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러한 잠재된 분신들은, 그게 비록 잠시 동안의 환상이 될지라도, 주인공의 내면 속에서 뛰쳐나와 육체를 갖춘 어엿한 분신으로서 존재하고 싶어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겪는 강박증 또는 중독은 이러한 분신들의 집요한 요구에 맞서거나 또는 고무시켜서 그 활로를 터주려는 나름대로의 안간힘이다. 구체적으로 그 강박증 또는 중독의 목록과 분신들의 정체를 잠시 들여다보자.

 

우선, 어머니의 부정한 혼외관계로 태어났기에 살아오는 내내 친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아보지 못한 뚱보 아들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뚱뚱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인 자신의 몸매를 부끄러워한다. 중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날, 그는 필사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날씬해져서 예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즉 분신)을 보게 되면, 아버지도 생각이 달라져 그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당신의 어엿한 아들 중의 하나로 인정하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다이어트 강박증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소녀B는 동화적인 몽상을 즐기는 여중생이다. 그녀에겐 몽상이 바로 현실인 셈이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미납할부책값을 받아내기 위하여 그녀가 다니는 학교로 찾아온다. 어쩔 수 없이 수금원을 꽁무니에 달고 집까지 돌아가게 된 소녀B는 이 곤경에서 자신을 구해낼 묘책을 궁리하느라 자신이 읽었던 동화책들(수금원이 엄마로부터 할부책값을 받아내려고 하는 바로 그 동화전집의 책들)속 주인공들(즉 분신들)을 끊임없이 기억해낸다. 이 소녀는 동화책 강박증이다. (「날씨와 생활」)

 

캐나다 로키 산맥 트래킹 여행에서 소설 속 화자 M과 동행하는 좀 괴팍한 P선배는 또 어떤가. 그는 세상의 무리들과는 다른 존재(, 분신)가 되기를 꿈꾸는데, 그런 다름은 오직 야생에서만 받아들여지고 존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남이 안 가본 야생의 길을 찾기 위하여 지도에 집착한다. M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길가 풍경에는 전혀 눈을 주지 않고 무릎 위에 펼쳐놓은 자신의 지도만 쳐다볼 정도이다. 그는 지도 중독이다. (「지도 중독」).

 

마지막으로 중년의 출판사 사장이 있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비에트 연방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당시 운동권 대학생이었던 그는 사회주의 몰락 뒤의 환멸과 허무 속에서 자신의 청춘(, 분신)도 함께 장례를 지내고 기나긴 망각의 어둠 속에 그 기억을 묻어버린다. 그리고 바로 언론사에 취직해 출판사업부를 거쳐 본격적으로 출판사업에 뛰어든다. 이후 10여년을 단 한 차례의 휴가도 없이 일에 매진하면서 출판사를 견실한 규모의 알찬 회사로 키워낸다. 그는 일 중독이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이러한 강박증 또는 중독에 의해 억눌려 있거나 또는 고무되어 뛰쳐나올 기회만 엿보고 있던 분신()은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각각 저마다의 계기가 주어지면서 극적으로 현실로 뛰어들게 되고 마침내 육체를 얻게 되다. 예컨대, 죽은 아버지가 뚱보 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긴 보티첼리의 아름다운 그림「비너스의 탄생」으로. 폭우 속에서도 물 한 방울 떨어져 있지 않고 꽃들 활짝 피어난 동화 속같은 옛집 마당으로 급히 뛰어드는 어린 계집애의 모습으로. 깊은 산속 외진 야영장에서 와일드 로즈 비어 상표(P선배가 즐겼던 바로 그 상표) 캔맥주를 서른여섯 개나 훔쳐 마시고 만취한 커다란 갈색 곰으로. 진심을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다른 남자 품으로 가버린 사랑하는 여자의 결혼식 날 밤, 만취해서 상심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그녀에게 적어보내는 애잔하면서도 처연한 청춘의 기억으로.

 

마침내 육체를 얻게 된 이러한 분신들은 소설의 결말을 불꽃처럼 강렬하게 장식한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지만 자신 내면의 분신을 분신(分身)에서 더 나아가 변신(變身)으로까지 밀고 나간(야생을 찾아나섰던 인간이 인간의 맥주를 즐기는 야생의 갈색곰이 되었으니까) 「지도 중독」의 결말이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괴짜니 사회부적응자이니 부르면서 경원시하는 P선배야말로, 어쩌면 곰으로의 변신을 통하여 적응이 아니라 진화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인간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소설 속 화자인 나(M) P선배가 로키 산맥 트래킹을 하면서 나눴던 대화를 읽어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으니 꽤 길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여기에 옮겨보자.

 

— 선배는 산에 자주 간다면서요?

— 난 야생이 좋아.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세계거든. 인간이라는 종만으로는 세상이 너무 뻔하잖아. 인간은 적응을 너무 잘해서 재미가 없어. 적응만 하면 진화를 할 수가 없지.

— 반항아가 진화에 유리하다는 건가요?

— 열대우림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절지동물이 수백만 수천만이고, 깊은 바다에는 수백만 종의 무척추동물이 있지. 그것들도 우리처럼 진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P선배가 대화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방적으로 자기의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숲은 한낮의 정적에 싸여 있었지만 지나치게 서늘한 것도 사실이었다. 깊은 숲 뒤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스윽 지나가는 듯한 환영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눈앞을 스쳐갔다. 나는 애써 대화를 이어갔다.

— 선배가 생각하는 진화란 게 뭐예요?

—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사는 곳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천적도 다르고, 서로 다른 존재들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야.

— 왜 그렇게 지도를 열심히 보세요?

P선배는 피식 웃었다.

— 좌표 읽는 것은 내가 풀어본 중에 가장 쉬운 2차방정식이야. 원점 O가 확실하면 P의 위치는 구할 수 있는 법이거든.

P의 위치가 구해지면 가야 할 방향이 보이겠죠?

— 아니.

다음 순간 P선배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내 등 너머 어딘가에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나의 등뒤 쪽에 계속 시선을 붙박은 채로 P선배가 천천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으므로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침엽수의 잎들은 녹색으로 반짝였고 빽빽이 서 있는 나무둥치 아래 카펫 같은 풀밭 위로는 검은 나무그림자들이 길게 길게 늘어졌다. 그 안에서 길고 아름다운 갈색 털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눈가가 검었고 주둥이는 길었으며 얼굴은 우리 쪽을 향해 있었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곰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숨이 멈출 듯했지만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민들레 앞에 멈춰선 곰은 냄새라도 맡듯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꺾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자연 상태로의 존재, 그 아름다움과 천연함, 그리고 위엄에 압도되었다. (180~182, 「지도 중독」)

 

1990년대 중반, 집단과 역사 의식에 무겁게 짓눌려 있던 왜소한 개인을 복권시켜 소설무대의 중심에 다시 세움으로써 한국 소설문학에 돌파구를 열어젖혔던 작가 은희경. 이후 10여년 동안 쉼없이 문장과 사상을 갈고 닦더니만 드디어 분신술에서 변신술로 한 단계 도약하기에 이른 은희경의 모습을, 위 인용문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분신들의 얼굴과 몸을 바꾸는 전환-분신술에서 분신들의 사상과 전망까지도 새롭게 변화시키는 변환-변신술로의 도약 말이다. 위 문장에서 자신의 분신(P선배)을 통해 작가 은희경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패러다임과 범주와 외연은 각각 경쟁에서 공존으로, 적응에서 진화로, 인간에서 생명으로, ()에서 류(), 한 단계 도약하고 확장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소설 속 화자인 나(M) 역시 며칠간 P선배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로키 산맥 트래킹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으로 그 도약을 이루어낸 것이겠다. 그랬기에,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곰의 갑작스런 출현에도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곰의 조용한 몸짓과 무심한 표정을 관찰하면서 아름다움과 천연함, 그리고 위엄마저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위 문장을 읽으며 나 역시 전율을 느끼면서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M의 경우와는 달리 나를 압도시킨 것은 분신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은희경의 놀라운 변신술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 변신, 시스템을 넘어서는 힘

 

우리는 왜 분신술을 꿈꾸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적 삶의 조건 및 능력, 그리고 그 삶이 속해 있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준과 기대수준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에서 비롯되는 불만족, 그게 바로 우리로 하여금 분신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신술은 결핍된 자의 몽상인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 분신()을 꿈꾸는 인물들의 현실적 삶의 조건과 처지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누구 하나 기댈 언덕이 없는 콩가루집안의 딸이거나(「날씨와 생활」)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축복받지 못한 사생아이다(「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삶이 한없이 무거운 서른여덟 살의 만년 고시생이며(「고독의 발견」) 하는 일마다 실패해서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사회부적응자이다(「지도 중독」).

 

비교적 안정되고 성공한 축에 속하는 경우에도 결핍과 몰락의 증후는 발견된다. 번듯한 직장과 자기 소유의 오피스텔을 가진 젋은 독신여성 이유진은 우연한 사건으로 자신이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를 사귀게 되는 행운을 얻지만, 그의 쌍둥이 형제라고 자처하는 남자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그 행운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며(「의심을 찬양함」),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중년의 출판사 사장은 깊이 묻어두었던 망각의 어둠 속에서 십오 년 전 그가 잃어버렸던 사랑과 뒤늦게 마주치고는 그의 인생에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마침내 깨닫게 된다(「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시스템의 주변부에서 부유하는, 그리고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의혹과 회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분신술은 어쩔 수 없는 매혹이다. 그들은 몽상이나 환상을 통해 자신의 분신()을 꿈꾼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태어난 그들의 분신()은 그들의 삶을 규정하고 구획짓고 있는 시스템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잠시 그들을 위로해 주고 즐거움을 안겨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의 삶에 이미 깊숙이 자리잡은 결핍과 불안을 메꿔주지는 못한다.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분신술을 연마해온 작가 은희경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 책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실린 단편들에서도 완강한 시스템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주변으로 밀려난 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기획으로써 분신()을 꿈꾸는데, 이 분신()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삶을 바꿔놓지 못한 채 결국은 허망하게 좌절되거나 의혹의 대상이 되거나 회한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시스템을 넘어서는 길은 영영 없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은희경은 아직도 고민하고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길게 인용한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그 실마리를 잡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분신이 아니라 변신으로의 도약이다. 변신은 분신과는 달리 몸의 일부가 아닌 온몸이다. 그것도 그 내용까지 질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온몸이다. 그래서 변신이 현실의 나와 내 삶에게 주는 충격은 전면적이고, 그 전면적인 충격이 나를 변화시키고 내 삶을 바꾸고 마침내는 시스템을 넘어서는 힘이 된다.

 

분신이 아니라 변신으로 작가가 온몸으로 부딪쳐 온다면 독자도 온몸으로 받아내는 도리밖에 없다. 온몸으로 받아낸 그 충격을 나는 여기에 이렇게 간신히 받아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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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건) 한줄평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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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현실적인 내용,비현실적이라서 몽환적인 내용등 개성강한 여러단편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여***이 |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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