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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 양장 ] 트리플-0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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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0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88g | 117*181*11mm
ISBN13 9788954447065
ISBN10 8954447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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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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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시대였다. 밀레니엄 바이러스 Y2K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었고 한국에서는 같은 이름의 다국적 비주얼 록밴드가 버젓이 활동했다. 하늘에서 앙골모아 대왕이 내려오는지 어쩌는지 살피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잠실에서 마이클 잭슨이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를 대동하고 〈블랙 오얼 화이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 pp.10~11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아이들이 만화 보는 데 따로 이유가 어디 있었겠느냐만 그들이 애니메이션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명확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그곳에선 가능했기 때문이다. (……) 현실의 물리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멋진 신세계가 TV 속에서 펼쳐졌고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바로 저런 세상을 꿈꿨다.
--- p.12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세기말 즈음 아니었던가. 그래 놓고 리부트나 후속작을 내오면 왜들 그렇게 눈에 불을 켤까. 자신의 추억을 망쳤다느니 어쩌니. 애초에 당장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 같았던 그 이상한 시대에 왜들 그렇게 만화를 많이 보여줬을까.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 p.45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코인노래방에서 정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용기가 솟았던 걸까. 혹은 그간 고백할 상대와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발설된 비밀은 무엇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유대? 추억? 대화의 레퍼토리?
--- p.55 「코인노래방에서」

가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부르기도 했지만 이 세 리스트는 고정된 메들리에 가까웠다. 퀸이나 비틀스 같은 더 옛날 노래도 부르고 싶었지만 정우가 잘 몰랐기 때문에 선곡해본 적은 없었다. 팝송을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정우와 친해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 pp.61~62 「코인노래방에서」

게이, 남친, 여친이라는 호명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순간 우리가 딛고 있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소문이 돌았다. 저 새끼들 ‘진짜’다. 우리는 전처럼 반에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지 않았고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친구들은 우리를 무시했고 다른 반 아이들마저 나와 네가 지나갈 때면 키득키득 웃다가 숨거나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 p.68 「코인노래방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원경은 내게 무언가 말을 걸었지만 시끄러운 주변 소리에 묻혀 입만 뻐끔뻐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글씨가 갇힌 거품이 터지듯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읽어낼 수 있었다.
(혼) (자) (는) (안) (돼)
--- p.79 「추억은 보글보글」

나라고 승부욕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원경을 이기는 일보다 더 큰 즐거움을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케이드오락기의 컨트롤러와 가정용 비디오게임의 패드가 두 개인 까닭은 당연히 둘이 함께 게임을 즐기라는 뜻이었다. 몸을 붙이고 한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그 일에 온전히 모든 걸 내던지는 것.
--- p.92 「추억은 보글보글」

“내가 사랑하는 것들 모두 죽어 없어진 것 같아.”
언젠가 도진을 다시 만나게 돼도 이제 도진을 나무랄 자격이 없었다. 과거만 비추는 망막이 이식된 것처럼 자꾸 지나간 일이, 도진과 함께한 마지막 술자리가 떠올랐다. 앞으로 평생 지난 일만 생각해야 하는 저주에 걸린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런 저주는 누가 건 걸까. 흑막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 pp.125~126 「추억은 보글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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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과거의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커다란 사랑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우리는 어느 순간 평범한 어른-머글이 되기 위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가는 듯싶다. 그러니 이 다채로운 사랑의 세계와 덕질의 우주를 건너며 모든 사랑의 형태와 모양을 상상할 수 있었던 그 마법 같은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 조대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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