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서양의 사료나 문학 작품, 도상 등에는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실존 인물이든 허구의 인물이든 그들 모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소외되거나 배척된 사람들이었다. 유대인이나 이단자, 어릿광대나 곡예사, 나환자나 망나니, 창녀,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에 나오는 반역자, 구약 성서 시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 유다 등 대부분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사람들이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거의가 악마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 p.9~10
창녀는 숄이나 어깨끈 장식 또는 드레스에, 망나니는 반바지나 두건에, 곡예사나 어릿광대는 재킷이나 챙 없는 모자에 줄무늬를 넣어 신분을 표시해야만 했다. 이들이 선량한 시민들과 뒤섞여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줄무늬를 강요했던 것이다.
--- p.31
15세기와 16세기의 플랑드르 화가들은 캔버스나 화판의 중심이 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나 주의가 집중되는 지점에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의 시선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붙잡아 두려고 했다. 한스 멤링,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터르 브뤼헐 같은 화가들이 특히 이 방식을 노련하게 사용했다.
--- p.52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털에 줄무늬나 반점이 있는 동물은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호랑이, 하이에나, 표범은 살생을 즐기는 잔인한 동물, 송어와 까치는 남의 것을 훔치는 동물, 뱀이나 말벌은 위험하고 교활한 동물, 고양이나 용은 악마 같은 동물로 여겨졌다. 심지어 르네상스 시대의 동물학자들이 즐겨 논하던 얼룩말도 중세 말에는 위험한 동물로 간주될 정도였다.
--- p.54~56
중세 사람들은 줄무늬가 있는 표면이 바탕과 무늬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농간한다고 여겼다. 10-11세기에 이미지를 읽는 방식대로 바탕의 면에서 시작해서 관찰자의 눈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 달리 말하면 겹을 구분해서 이미지를 읽어 내는 방식이 줄무늬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층상 구조’에 익숙해 있던 중세 사람들에게 줄무늬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바탕과 무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무늬였다. 따라서 그들은 줄무늬를 정상이 아닌 것, 거의 악마적인 것으로 여겼다.
--- p.64
줄무늬는 유럽 사회가 근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고 과거에 지녔던 줄무늬의 특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 p.77
영국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처음 등장한 노랑과 검정의 세로 줄무늬 조끼는 유럽 대륙과 미국까지 빠르게 전파되어 호텔 따위의 객실 담당자나 지배인의 제복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이런 제복을 입은 직원을 볼 수 없지만, 의복이 중요한 상징의 역할을 하는 영화나 캐리커처, 만화 등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세로 줄무늬 조끼가 등장하여 추억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자들은 호텔 지배인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예로 벨기에 출신의 만화가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일 잘하고 충실한 집사 네스토가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이며 노란색과 검은색의 세로 줄무늬 조끼를 입고 있다.
--- p.90~94
줄무늬는 16세기부터 귀족 계급의 사교 모임에서 품위를 지닌 무늬로 유행하였으며, 초기 낭만주의 시대인 18세기 후반에는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무늬로 사랑받았다. 처음에는 의복에서 주로 활용되었다가 점차 다른 분야에도 확대되었는데, 특히 실내 장식용 천에 많이 사용되었다.
--- p.96
줄무늬의 역사는 미국에서 독립 혁명이 시작된 1775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전쟁이 지속되던 10여 년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그리 흔하지 않았고 이국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줄무늬가 의복은 물론이고 직물, 엠블럼, 실내 장식의 세계로까지 물밀 듯 파고들었다. 그리고 낭만과 혁명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 p.107
엄밀히 따지면 18세기 말의 줄무늬는 프랑스 혁명의 창조물이나 독점물이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낭만과 혁명의 줄무늬는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스트라이프’는 ‘미국적인 것’을 암시한다.
--- p.114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에게서 특정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줄 사이의 간격이 넓고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줄무늬 옷을 볼 때는 대부분 죄수를 떠올린다.
--- p.130
사실 모든 뱃사람이 줄무늬 셔츠를 입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원래 수부, 즉 항해사나 갑판장, 부사관 등의 지휘 아래 허드렛일을 하는 하급 선원들이 입었다. 18세기 회화에서 줄무늬 셔츠는 수부를 표상하는 의복 역할을 했던 듯하다. 그리고 이 역할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입는 것으로 줄무늬 셔츠가 사용되었으므로 그 옷은 때때로 경멸의 뜻을 나타냈다.
--- p.161
아이에게 줄무늬 옷을 입히는 것은, 좀 더 즐겁고 편하게 놀 수 있게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린이의 줄무늬가 우리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줄무늬 세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레저와 바캉스, 바닷가의 줄무늬이고, 다른 하나는 곡예사, 어릿광대 등 어떤 형태로든 ‘노는’ 것과 연관된 사람들의 줄무늬다.
--- p. 178
이탈리아 토리노를 연고로 한 명문 축구 클럽 유벤투스는 흰색과 검은색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유럽의 축구장을 누비고 있다. 이 유명한 줄무늬 유니폼에 대해서도 역사학적으로 파헤쳐 보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 p.189
화가들이 줄무늬 표면이나 천에 끌렸던 이유는 줄무늬가 시선을 끌고, 일탈을 꿈꾸게 하며, 그림에 리듬감과 생동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피터르 브뤼헐의 사례에서 보았듯 화가들은 일찍부터 줄무늬를 그림에 도입했을 뿐 아니라 고딕 시대의 종교화부터 현대의 추상 예술까지 오랜 세월 동안 줄무늬를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몇몇 화가들은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줄무늬 옷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거나 파격 변신의 도구로 이용했다. 대표적인 예로 파블로 피카소는 ‘괴짜 얼룩말’답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아래로 줄무늬 옷을 착용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자신의 엉덩이에 줄무늬를 그어야 한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 p.196
현대의 줄무늬는 중세 때처럼 악마를 상징하거나 사회 질서의 위반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주로 위험을 알리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제는 배척의 표지가 아니라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알리는 신호로 작동하는 것이다. 위험을 알리는 줄무늬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곳은 교통안전 표지다. 주의를 요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빨간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등장해 위험을 알리고 접근을 금지한다.
--- p.202
줄무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고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어디가 비어 있고 어디가 채워진 것일까? 열린 부분은 어디이고 닫힌 부분은 어디일까? 안쪽 면은 어디이고 앞쪽 면은 어디일까? 윗면은 어디이고 아랫면은 어디일까? 얼룩말은 유럽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흰색 말일까, 아니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흰색 줄무늬를 가진 검은색 말일까?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