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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목격한 사람

: 고병권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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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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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70g | 130*205*22mm
ISBN13 979116981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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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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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세 번째, 네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한데 두 번째 자리는 그렇지 않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슬퍼했다거나 분노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뻘게진 눈알을 본다. 무엇보다 두 번째 사람이 선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다. 그걸 알기에 나는 세 번째에 서고, 겁이 날 때는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도망친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많기에 세상의 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 운다.
--- 「두 번째 사람 홍은전」 중에서

언제부턴가 공부란 호기심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만큼 나를 매혹시키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내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다. 어떤 주제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신기해서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고 걱정이 되어서 혹은 서럽고 화가 나서일 수도 있다. 내가 가만히 있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심정이라는 것도 있다.
--- 「공부하는 심정」 중에서

실제로 사람들은 이들의 호소를 곧잘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네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폭력을 유발한 건 아닌지. 너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너무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닌지. 이것이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 「구차한 고통의 언어」 중에서

한 사회는 의외로 소리 없이 크게 실패할 때가 있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혹은 다른 소란 때문에 중요한 실패가 지각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실패를 더욱 큰 실패로 만든다.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의 이전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던 실패.
--- 「“민폐만 끼쳤다”」 중에서

그는 관람자로서는 고통을 들여다보지만 당국자로서는 고통을 외면한다. 불쌍한 자에게는 연민을 느끼고 적선하지만, 권리를 주장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자에게는 법과 원칙을 내세운다. 관람자로서는 자선가이고 당국자로서는 공안 통치자다.
--- 「선한 관람자」 중에서

애초부터 미등록 이주자들은 인권 박탈 상황에 놓여 있었다. 노동할 때는 언제든 퍼 쓸 수 있는 저수지의 물이었고, 단속반이 덮칠 때는 숨을 헐떡이며 산으로 도망치는 토끼였으며, 포획된 후에는 외국인보호소라는 곳에서 등이 꺾이는 새우였다. 마치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착취 시스템 같다. 불법에 대한 이런 단속이 내게는 인간이 인간에게, 생명이 생명에게 저지르는 거대한 범죄의 일부처럼 보인다.
--- 「포획의 계절」 중에서

‘지은이 이규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물음이다. 자립성과 독립성, 개인성으로 이루어진 저자라는 신화에 대한 문제 제기다. 세상의 검문소에서 그는 혼자서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숱하게 받아왔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혼자 옷을 입을 수 있는지. 마치 의존 없는 삶이 세상살이의 자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 혼자 지은 것인가. 이 삶은 당신 혼자 살아낸 것인가. 그렇지 않다.
--- 「지은이 이규식」 중에서

그는 사람을 모욕하고 있었다. 상부에서 어떤 지시를 받은 건지, 스스로 어떤 오기 내지 충동에 휩싸였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수십 년간 이 사회에서 묵음 처리 당한 사람이 내는 간절한 목소리에 대고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을 때 나는 제발 그러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 「“너희가 사람이냐”」 중에서

세상의 진보를 믿었던 사람들은 곧잘 역사를 열차에 비유해왔습니다. 우리는 삼각지역을 거쳐, 숙대입구역, 서울역으로 열차가 나아가듯 인류는 진보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이전 역에서는 남성의 권리만 보장받았지만 다음 역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고, 이전 역에서는 인권이 사실상 백인만의 권리였지만 다음 역에서는 유색인의 권리이기도 할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역사가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역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차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중에서

‘살려주세요!’ 나는 내가 ‘사람 살려’를 강의한 곳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사람 살려’를 보았다. 눈시울만 붉어질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철학도, 어떤 문학도, 어떤 정신 승리도 불가능했다. 지난날의 아름다운 말들은 모두 잠꼬대였던가. ‘사람 살려’ 때문에 잠은 깨버렸고 꿈은 실패했고 말문은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지금 이렇게 글을 맺는 순간에도, 나는 말을 찾고 있다.
--- 「에필로그 ― 사람 살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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