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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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820쪽 | 1564g | 170*220*40mm |
ISBN13 | 9788972883630 |
ISBN10 | 8972883638 |
발행일 | 2010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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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820쪽 | 1564g | 170*220*40mm |
ISBN13 | 9788972883630 |
ISBN10 | 8972883638 |
학창시절에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편집본을 읽은 이후, 마흔살이 넘어서 다시 읽어 보는 <모비딕>은 또한번 기억을 배반한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속의 <모비딕>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여러 작가의 삽화가 들어있었던 그 당시의 <모비딕>은 광기에 가까운 애이해브의 열정으로 읽혀졌지만, 지금 읽는 <모비딕>은 광기가 지배할 수 있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로 해석이 된다.
13세 이후의 청소년기에 집안의 몰락으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던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외면적으로는 포경선을 타게된 초보 선원이 선장 애이해브가 흰고래 모비딕을 추적하는 과정을 기록한 해양모험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작품의 대부분은 포경업을 주제로 한 전문 서적이라고 할만큼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 부분이 쳥소년용 편집본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일텐데, 독자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포경업에 대한 이토록 자세한 묘사는 일반 독자에게 필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인생을 축소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고래 잡이 과정과 그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포경업이 사양화된 현재에서도 유효하다고 본다.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무엇엔가 홀린 듯이 사로잡혀서 주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애이해브이거나 그 배를 탄 선원인 것이고, 우리를 홀리는 것은 공포의 흰고래 모비딕인 것이다. 각자의 흰고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가족이 있는 항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허먼 멜빌이 고래를 연구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과제를 파헤쳐 볼 용기를 가져볼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면, 바다의 심연을 들여다 보듯이 우리의 역사와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우선이긴 하겠지만.
P.S. 개인적으로 이 작품과의 추억은 중학 시절의 친구들이 나를 <모비딕>을 읽던, 자기들과는 좀 달라보였던 소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가 조금은 빨랐던 탓에 생각이 많았던 그 시기에 나는 꽤 책을 읽는 소년이었는데, 그 당시 집에 있었던 세계문학전집에 이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전집이 좀 남달랐던 건, 굉장히 다양한 삽화가 포함된 거였는데, 그 삽화라는 것이 작품에 연관된 회화 작품이나 다른 판본에 포함되었던 삽화를 실어놓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비극과 상징성이 풍부한 언어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삽화는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그 인상이 내 개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제야 되돌아보면서 술회할 수 있다.
P.S. 모리스 포미에의 삽화를 싣고 있다는 점이 작가정신사가 펴낸 이 책의 큰 장점이긴 한데, 삽화의 위치가 해당 내용이 나온 다음, 한참을 지나서야 등장하는 탓에 번번히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짜증스런 절차를 유발한다. Original text 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분명히 삽화는 해당 장면을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있는 것인데, 장면이 한참 지난 다음에 배치가 되면 오히려 독서의 리듬을 깨뜨리는 역기능이 생겨버린다.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삽화의 역할이 큰데, 이해할 수 없는 편집으로 아쉬움이 너무 크다.
책을 선택할 때 책의 분량은 별로 고려대상이 아니지만, 사실 이 책은 조금 각오를 해야 했다. 이 책에 수록된 포경업에 관한 전문적 지식들이 자칫 생소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먼 멜빌은 자신이 포경선을 타고 2,3년씩 대양을 거닐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경업과 포경선 전반에 관해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백과사전식 단순나열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책의 절반 가까이를 채우고 있는 포경업에 관한 내용에는 저자의 포경업을 향한 자부심과 환희,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래와 관련된 일련의 묘사들 속에는 인생에 관한 메타포가 속속들이 담겨 있어 한 구절도 놓칠 수도 대충 읽을 수도 없었다.
"내 이름은 이슈마엘이다."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대사만으로도 이 책은 굉장히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선장 에이해브, 일등항해사 스타벅, 이등항해사 스터브, 이슈마엘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작살잡이인 퀴퀘그, 겁쟁이 픽 등은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화자인 이슈마엘과 선장 에이해브는 성경의 등장 인물로 각각 소외된 채 길을 떠난 자와 신을 대적하여 악을 행하는 자로 대변되는 이름이다. 퀴퀘그는 식인종 부족의 추장아들이고, 픽은 흑인소년으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여행담이 자못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비롯한 30여명의 선원들은 피쿼드호라는 낸터컷 출신의 포경선을 타고 족히 2.3년은 걸릴 머나먼 고래잡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에이해브 선장의 목적은 고래기름을 통한 수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죽이는 데 있었다. 지난 번 출항에서 그는 모비딕으로부터 한쪽 발을 잃었고 그 순간부터 그는 생의 모든 악의 근원을 그 고래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스타벅 일등항해사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피쿼드호를 파멸로 몰아가는 에이해브 선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선원들이 모비딕에게 복수하자는 에이해브 선장의 선동에 동조했음에도 스타벅은 시종일관 에이해브에게 본업에 충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진심으로 조언한다.
그러나 스타벅이 에이해브를 돌이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에이해브는 결국 모비딕과의 사흘간의 혈전 끝에 치명상을 입히지만, 모비딕의 반격에 피쿼드호의 침몰과 더불어 파멸하고 만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에이해브가 맞서 싸운 모비딕이라는 흰 색 고래는 자연일 수도 있고, 절대적 실체일 수도 있고, 운명의 굴레일 수도 있다. 혹은 피쿼드호의 어원에 충실하자면, 인디언을 말살한 제국주의 백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마다 다르겠으나, 우리는 어쩌면 저마다의 대적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이미 각자만의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에이해브는 영웅적인 면모를 지녔으나 피쿼드호에 탔던 모든 선원을 파멸로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에이해브처럼 우리가 맞서 싸워야할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목숨과 내 모든 열정을 걸만큼 가치있는 일일까? 어찌되었든 나 역시 저 넓고 깊고 푸른 대양을 향해 떠나고 싶은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내이름은 이슈마엘..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이슈마엘이기 때문이다.
p.s.
1) 이 책은 상당히 고가의 양장본이지만, 소장용으로서 가치는 뛰어나다고 본다. 오타가 적은 편이고, 칼라판에 종이질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에리스 포미에가 그린 삽화들이 책에서 묘사한 고래와 도구를 거의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어, 글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임스 죠이스의 '율리시즈'급 무게 때문에 별 하나만 감점할까한다.(물론 그보단 적게 나간다.^^;;)
2) 대가의 작품에서는 작가 고유의 문체가 주는 기쁨을 맛보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독백들은 셰익스피어적이라 할 정도로 언어유희의 궁극을 맛보게 해준다. 다음에 읽을 때는 반드시 영문판으로 볼 생각이다.^^
3) 참고로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는 피쿼드호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포경선 수리, 126쪽 ~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