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는 남미 작가 가운데 제2의 마르케스라 불린다. 마르케스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이며, 남미 소설에 푹 빠지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르케스를 대표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다. 아무튼 그런 마르케스의 뒤를 잇는 작가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영혼의 집> 역시 마술적 사실주의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어느 정도 납득할 만;
리뷰제목
이사벨 아옌데는 남미 작가 가운데 제2의 마르케스라 불린다. 마르케스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이며, 남미 소설에 푹 빠지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르케스를 대표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다. 아무튼 그런 마르케스의 뒤를 잇는 작가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영혼의 집> 역시 마술적 사실주의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수준이어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처럼 크게 다가 오진 않았다. 미래를 보는 능력이나 사물을 가볍게 움직이는 능력들은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는 어느 정도 친숙하다. 굿을 하고, 신내림을 받는다거나 점을 보는 행위들은 이미 우리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대단한 소설이었다. 읽다 보면 시간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낯선 환경과 그들의 삶이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더불어 니베아에서부터 클라라, 블랑카, 알바로 내려오는 그녀들의 진취적인 삶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정신없이 푹 빠져 읽었다.
에스테반은 몰락한 자신의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영지를 밤낮으로 일궈 나간다. 거친 시골 삶은 그의 성격을 독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만든다. 이런 그의 성격이 많은 업보를 만들어 냈다. 에스테반은 아내 클라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진심으로 사랑했다. 클라라 역시 자신의 운명의 사람임을 알고 독단적인 그를 이해하며 사랑했다. 그러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인해 클라라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고, 그 후로는 다시는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용서를 빌지만 끝내 클라라의 마음을 돌려놓진 못했다. 결국 그녀가 죽어서야 그녀를 안을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죽음이 그의 삶의 의지를 꺾어 버렸다. 자식들 또한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멀리하게 된다. 혼자 외롭게 삶을 살아간다. 업보다. 오직 손녀 알바만이 그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에스테반은 젊은 시절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영지 내 소작인 여자들을 마구 겁탈했다. 농장 관리인인 가르시아의 여동생 판초는 주인에게 겁탈 당하고 사생아를 낳는다. 그 사생아의 자식이 업이 되어 에스테반의 손녀 알바를 겁탈하고 그녀와 에스테반에게 고통을 준다. 질긴 연의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악연을 끝낼 방법이 있다. 바로 용서와 화해다. 용서와 화해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찌 보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일지 모른다. 알바는 가르시아 대령이 자신에게 행하는 복수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자신 안에 분노를 없애고 고문과 폭행에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의 잔혹한 행동들이 그녀에게 아무런 고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것이 진정한 복수이지 않을까. 알바로 인해 기나긴 복수의 연이 끝이 난다.
소설은 이런 용서의 메시지를 작가의 조국 칠레가 처한 상황을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정부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그로 인한 갈등과 증오가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아무도 원치 않는 독재 군부 정권을 만들었다. 서로의 증오와 분노가 결국 파국으로 되풀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파국의 상황에서 알바를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네 역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 식민시절과 해방 후 625전쟁, 그리고 미 군정으로 이어진 이념 갈등, 만신창이가 되도록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싸웠다. 이어 독재 군부 정권을 경험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어쩌면 우리만의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공감이 되었고 더욱 가슴에 와닿았던 거 같다.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우리에게도 절실해 보인다.
"결국, 인간은 얼마나 사는 걸까?
천 년? 단 하루?
일주일? 수 세기?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죽는 걸까?
'영원히'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 파블로 네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