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9월 2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530g | 145*210*20mm |
ISBN13 | 9791196533458 |
ISBN10 | 1196533458 |
발행일 | 2019년 09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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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530g | 145*210*20mm |
ISBN13 | 9791196533458 |
ISBN10 | 1196533458 |
추천의 말 프롤로그_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1부. 달라진 세대, 달라진 시대 1.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내 꿈을 이루려면 몇 점이 필요한가│공정세대의 탄생│무임승차하지 마라│적극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세대 2. ‘돈도 실력인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묻지 마라│나쁜 놈과 위선자 사이│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목격한 이들│‘세습사회’라는 고전적 사회에 던져진 세대│왜 이들은 너나 할것 없이 정치 덕후인가│노력할 수 있는 사회부터 만들라 3.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눈을 낮추면 감당할 수 있으십니까│젊은 세대는 왜 억울해하는가│90년대생들은 어떤 세상에서 자라났나│평등의식이 가장 높은 세대│일방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마라 4. 바닥은 놔두고, 천장만 없애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배려와 지원은 어디에 필요한가│밑바닥에 대한 젊은 세대의 공포│사랑에도 밑바닥이 있다│남녀 모두 각자의 이유로 가부장제를 싫어한다│최종 보스는 누구인가 5. 자신도 지키지 못할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한 사람의 삶이 전체의 삶만큼 중요하다면│내가 하면 로맨스│왜 제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죠?│ 엘리트는 필요 없다 6. 개인적인 것에 올바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나쁜 개인’에 주목하는 사회│우리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공적인 것에만 올바름을 물어라│캡틴아메리카가 말해주는 것 2부.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1. 누가 더 불쌍한 피해자인지 경쟁하지 말자 고통과 불행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야! 너도? 야! 나도!│친구 만들기의 정치│다수가 나의 편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자 2. 실제 세계에 집중하자 허상과 싸우지 말자│힙통령은 탄핵되지 않는다│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대│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권력을 잡을 수 없다 3.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말자 사과하기를 강요받는 세대│‘올바른 금기’란 없다│잘못한 것만 잘못했다고 해라│후진 선택지는 거부하자 4. 웃음이야말로 강력한 무기임을 명심하자 웃기면 웃으세요│그들이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함께 웃을 때 함께 분노할 수 있다 5. 다른 점에 주목하기보다 같은 점을 발견하자 차이에 눈이 가는 건, 우리가 같기 때문│진짜 없애야 할 것을 없애자 6.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자 우리가 이루어낸 대단함에 집중하자│자부심을 가질 때, 과감한 변화도 가능하다│소녀의 꿈과 소년의 야망이 만날 때│다수의 지지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우리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 인용 및 참고문헌 |
제목:공정하지 않다
지은이:박원익,조윤호
펴낸곳:지와인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환경과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고,
그들을 내멋대로 비판하고 평가한 점, 깊이 사과한다.
나는 73년생으로 우리나이로 47세이며 87년 민주화이후에 대학에 들어가고 경제적으로도 아직 고성장의
시기에 사회생활을 하였다.
수입회사에 일하던 나는 97년에 IMF사태로 사회가 많이 변한 것을 체험하였지만 그런대로 몇번의 이직을 통하여
지금까지 실업을 겪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률도 낮은 20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실 속으로는 욕도 많이 했다.
내가 보기에 20대는 사회적 이슈에는 관심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 못할 세대로 생각했다.
그런데 금번 조국사태를 겪고 나서 유독 20대들이 조국에 반대하는 상황을 보면서 왜 그들은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
진지한 물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책 '공정하지 않다'를 접하게 되었다.
저자인 박원익은 87년생,조윤호는 89년생으로 20대를 갓 넘긴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정말로 생각지 못한 사실들을
담고 있었다.
우선 프롤로그의 한 문장부터 가슴에 와닿았다.
'오늘날 청년들은 '오늘의 현실'과 '어제의 비참'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의 비교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가능성이다'
독일 총리가 한 말인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항상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우리 예전에는 이랬는데 훨씬 좋아진 현재에 살면서 왜 이렇게
불평만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었다. ㅜㅜㅜ
청년들은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우리의 과거는 아무런 필요도 없고 상관도
없는 역사책속에서나 있는 일인 것이다.
사실 이책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액기스라 할 만 하다.
IMF가 97년에 터졌으니 20대들은 거의 IMF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우리도 겪어본 바와같이 IMF이후는 우리사회는 급속도로 고용환경이 변했으며 이제 평생직장은 옛말이 되었고
양질의 직장도 줄어들었으며 그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들은 고성장의 안정된 직장은 거의 겪어보지 못한 시대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도생의 환경에서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어졌으며 공기업과 공무원시험에 목을 메는 이유도
바로 이런 직장환경의 변화로 인한 것이며 그래서 그나마 공정한 위의 직장을 공부하는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그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고군분투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였다.
비판하기는 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과연 내 자식들이 젊은이가 되었을때는 지금과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 얼마나 더 힘들고 불공정한 세상이 되어 있을지..
생각하면 암울하지만 이렇게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면 나은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90년생이 온다"로 독서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공정하지 않다>의 부제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보고
이 책 또한 읽어야 될 것 같았어요.
어찌 보면 단순하게 읽기 시작한 책이지만, 읽으면서,
읽고 난 후에도 읽기를 잘 했다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공정하지 않다>를 소개할게요.
어떤 시대에 살던, 세대는 자신들의 청년기 때 가졌던
자기 시간과 자기 문제가 따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20대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평생 그 세대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의 과제도
그 사회의 청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죠.
그들의 불만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습니다.
지금의 90년대생은 대학 진학률이 80%이며,
20대의 대부분을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산업예비군으로 보냅니다.
취직을 준비하는 기간이 이토록 긴 세대는 없었어요.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하면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내가 한 노력'은 너무나 소중하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노력'과 '나의 노력' 사이에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주어진 신분, 출신,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지위나 임금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인 '업적주의'를 낳습니다.
이런 업적주의에 위배되는 것은 이들 세대에게 '정의롭지' 않다고 합니다.
문제는 한국 청년세대가 볼 때
'자격 없는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에 있습니다.
이른바 '무임승차'가 벌어지면 이들 세대는 분노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양성평등을 집, 학교에서 경험한 공정세대는 일방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느 편인지, 이념을 양자택일하는 문제로 보지 않고,
어떤 것은 찬성이지만 다른 부분은 반대한다고 개개인의 목소리를 냅니다.
바닥은 그대로인데 천정만 없애려는 것은 공정하지 않으며,
자신도 지키지 못할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것에 올바름을 묻는 것 역시 공정하지 않으며,
각 개인이 겪고 있는 모든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편견, 차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PC(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주의를 줍니다.
오늘날 PC주의는 대중의 인식을 비하하거나 개인의 사생활을 공격하는 태도로 변질되어
인간이 스스로 검열하고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국가기관이 나설 필요도 없지요. 이렇게 개개인에게 잘못을 물어버리면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의 불안정 문제가 덮어지게 되고,
이 문제는 '가장 공정하지 못한 것'인 '계층 이동성'이 차단이 된 사회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공정세대는 촛불로 나라를 바꾼 주역이지요.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내부 분열로 나눠 싸우지 말고,
이 고통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누가 더 피해자인지 경쟁하면 '내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라는 생각에 파묻히고
결국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은 나에게만 있다'라는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 연민과 동정심을 만들어내려고
'고통받는 자'의 처지를 계속 부각하는 방식이 굳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 고통의 당사자들은 보편적인 시민으로서의 지위에 올라서지 못하고
계속 고통받는 상태에 놓여야만 합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비교하려는 순간 어떤 고통을 더 중히 여길지에 대해
자의적 판단이 개입됩니다.
청년세대들이 할 일은 싸우는 상대방이 연대할 수 있는 '내 편'으로 부르고,
또 내가 그들 옆에 '네 편'으로 서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편인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이 행동에 함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세대인 만큼
허상과 싸우기보다 현실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우군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오늘날 대학 캠퍼스는 학생 개인을 향한 문책과 규탄과 청문회가 넘쳐납니다.
'대(大)사과의 시대'가 열렸어요.
이를 둘러싼 90년대생들의 갈등은 격렬합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그 잘못의 정도에 맞게 책임을 지면 됩니다.
내가 한 일은 한 일이고,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일입니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누구도 인격까지 통째로 매장할 권리는 없습니다.
행동에 따라 처벌받는 것이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대가로 지불할 이유는 없어요.
공정세대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외부의 압력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는 여러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중 어떤 현상이 더 지배적인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현상에 더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회가 어떤 가치에 더 주목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현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작은 현상도 큰 파도가 되어 퍼져 나갈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관점'의 힘입니다.
지금 여러 갈등으로 첨예한 청년세대가 가져야 할 관점은
우리가 가진 공통점을 재확인해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다는 관점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90년대생들은 여러 갈등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갈등, 젠더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이 진짜 해결해야 할 갈등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대대로 이어가려는 엘리트 권력층과 싸우는 것이
공정세대가 벌어야 하는 진짜 싸움인 거죠.
변화를 이룬 세대이니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저도 믿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토픽을 찾으라고 하면 정의와 공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최순실 사태로 인하여 드러났던 정유라의 SNS에서는 "부모도 스펙"이라는 단어를 자아내면서 청년들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수저계급론이 생기면서 지금은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그리고 다이아몬드수저까지 나오면서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마냥 웃으면서 접근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최근 만평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어떤 청년은 말 그대로 "튼튼한" 두다리로 열심히 뛰어가는 모습을 그렸지만 다른 청년 A, B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단어로 자동차를 타고 달려가는 모습을 봤었습니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전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웃픈 현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은 열거하기도 힘들정도로 무수하게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대표되는 것이 남자와 여자의 갈등 좌와 우의 갈등 그리고 지역대립 등등 열거하기에도 힘든 대립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의문이 드는 것은 누가 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일까? 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갈등으로 치면 사석에서는 그렇게 치고박고 하는 것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누가 어떻게 그런 내용을 담을까요? 라는 의문을 쉽사리 가질 수 있습니다. 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는 커뮤니티는 대립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었습니다만 저는 사실 언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언론에서 나온 선정적인 기사는 충격. 이유? 이럴수가! 라는 단어로 조회수를 늘리고 있으며 그 기사에는 댓글로 누군가가 열심히 대립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통계에서도 보여주듯이 20대의 사고를 들여다보면 가사노동에서 분담을 해야한다는 응답이 남, 여 모두 80퍼센트를 웃돌고 있습니다. 누구하나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극구 혐오하고 있으며 누구나 이제는 맞벌이 부부로서의 생활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가부장적인 면모를 혐오하는 세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혐오를 누군가가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기성세대와 언론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전 학교에서 당연하게 교육하였던 교련을 보더라도 여성은 붕대와 구호술을 남성은 총검술을 교육하던 때가 있었던가 하면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으로 색을 규정짓기도 하면 어떤 교사는 너는 남자니까 너는 여자니까라는 말로 규정하던 때가 있었고 그런 교육을 거치면서 내면에는 그런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단어가 배태되어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최근에는 학생들의 자치법규에서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생각, 단어, 행동을 모두 배격하는 법규를 내놓았을 때 마지막의 단어는 "교사도 남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라는 조항을 삽입하였을 때 그런 생각을 더욱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근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노동현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뉴스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그것이 출범하였다는 기사를 접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김훈 선생님의 언급에서도 드러났었고 예전 형사를 지냈던 분의 발언에서도 드러났지만 1993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그 속에서 500명이 죽었을 때 그 속에서 책임자는 아무하나 나타나지 않았고 그리고 누구하나 책임지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마지막 사형이었던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에서는 지존파와 관련된 자는 모두 사형으로 말로을 맞이했습니다. 그 범죄자가 불쌍하다 혹은 옹호를 한다는 의견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책임의 가중으로 본다면 당연히 산술적으로는 500명을 살해한 자가 더욱 큰 책임을 지고 더욱 큰 처벌을 받아야하지만 그 법은 누구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존속살해를 한 자 혹은 연쇄살인을 한 자는 모두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지만 세월호, 그리고 용역업체 산업사고로 돌아가신 분에 대한 처벌은 그 누구도 드러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사고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여기서 김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한민국이 IT최강국을 달리고 스마트폰을 만들고 위성을 쏘아대고 최첨단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어떻게 산업재해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인재라고 일컬어지는 해상사고나 항공사고 그리고 산업사고는 예전에도 똑같은 레퍼토리였고 지금도 똑같은 레퍼토리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고 절대 그 누군가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공평이라는 단어를 운운할 수 있을까요?
"공정하지 않다."는 똑 부러지는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해결책을 제시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해결책에 집중하여 보기보다는 왜 우리 사회에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에 대한 환기성을 주목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