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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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80쪽 | 724g | 140*210*35mm |
ISBN13 | 9791191247022 |
ISBN10 | 1191247023 |
발행일 | 2021년 0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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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80쪽 | 724g | 140*210*35mm |
ISBN13 | 9791191247022 |
ISBN10 | 1191247023 |
MD 한마디
[기록된 단어들 사이, 자리를 잃은 존재들에 대하여]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 이야기는 어린시절의 상당 부분을 사전 편집실에서 보낸 한 여자아이의 시선을 따라간다. 단어에 대한 아이의 질문은 이내 세계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며, 그 답을 찾는 여정 속에서, 마땅히 복원해야 할 사라진 이들의 역사가 되살아난다. -소설MD 박형욱
프롤로그 1886년 2월 1부 1887~1896년 Batten널빤지~Distrustful불신을 품은 2부 1897~1901년 Distrustfully불신을 품고~Kyx텅 빈 줄기 3부 1902~1907년 Lap무릎~Nywe새로운 4부 1907~1913년 Polygenous다원성의~Sorrow슬픔 5부 1914~1915년 Speech연설~Sullen시무룩한 6부 1928년 Wise현명한~Wyzen식도 에필로그 애들레이드, 1989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연표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작가의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지난 열흘남짓의 시간동안 한권의 책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과 그 인물이 겪어나가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있다 이제야 조금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기분이다.
바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이야기이다.
사전에서 단어를 훔친 여자아이, 그리고 사전을 만드는 실제의 이야기이자 잃어버린 단어들을 통해 누락되고 삭제된 세계를 복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문구에 홀리듯 끌려 읽게된 한권의 책이었다.
중간중간 책을 읽다 해야할 다른 일들 때문에 내려놓았다 읽었다 반복하면서 꽤 오랜시간을 붙잡고 있었던 책인데, 끊어졌다 읽기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이 책의 몰입도와 흡인력은 굉장했다. 책을 잠시 내려놓은 순간에도 책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인물들의 감정이 계속 떠올랐다.
주인공인 에즈미의 1인칭 시점으로 모든 사건들이 묘사되고 생각들도 표현되다보니 더 몰입이 되었고 결국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나는 온전히 에즈미란 인물에 푹 빠져서 그녀의 상실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위로의 감정을 온전히 내것으로 느끼면서 함께 웃고 함께 눈물흘리는 지경이 되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긴 여정을 지치지 않고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는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한건 바로 이 책이 저자 핍 윌리엄스의 첫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이었다. 첫 소설을 어떻게 이렇게 쓸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계속 할수밖에 없는 대단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나를 두번째로 놀라게 한건 옮긴이의 말에서 초보번역가에게 이런 책을 맡겨준것에 감사의 말을 표현한 마지막 부분이었다. 정말 훌륭한 번역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또한번 놀라움을 주었다.
작가는 두가지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단어들이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것을 의미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단어들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가능할까?
작가는 사전이라는 것이 특히 남성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고 (20세기 초반 완성된 옥스퍼드 영어사전 기준) 모든 편집자가 남성이었고, 거의 모든 조수가 남성이었으며,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단어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로 사용된 문학작품과 책자, 신문기사들 또한 대체로 남성에 의해 쓰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여성들은 어디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부재는 중요한 문제일까?
역사를 뒤지며 사전편찬과 관련되어 여성들을 찾기 시작했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발견한 역사속 여성 인물들에는 중요하지 않고 부차적인 역할들이 주어져 있었으며 그 수도 남성에 비해 훨씬 적었고 역사는 그들의 존재를 되살리기 위해 힘겹게 애를 쓰고 있었다고 표현한다.
그런 경험들 끝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초판 편집에 남성들의 경험과 감수성을 우선시하는 편견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 경험과 감수성이 빅토리아 시대 나이 많은 백인 남성들의 경험과 감수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언어를 정의하는 방식이 우리를 정의할 수 도 있다.
이 소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에즈미는 여섯살 무렵부터 사전편잔작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옥스퍼드대학 안에있는 사전편찬 작업실이자 다른이들에게는 기록방이라고도 불리는 스크립토리엄을 들락거리게 된다.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사전만드는 작업을 위해 단어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검토하는 조수들 사이에서 아버지와 사전편찬 책임자인 머리박사님의 작업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스크립토리엄을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그녀만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느끼며 성장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분류테이블 아래서 놀던 그녀는 누군가 떨어뜨린 단어하나를 줍게 되는데 이걸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자신을 돌봐주던 하녀인 리지의 방에 있는 트렁크에 숨기게 된다. 그 단어는 bondmaid라는 단어. 바로 '여자노예'라는 뜻이다.
에즈미는 성장해가면서 자연스럽게 스크립토리엄에서 일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비록 편지를 전하거나 도서관에 자료를 반납하거나 빌리는 허드렛일에 가까운 비중낮은 일들이지만 그곳에 소속되어 아버지와 함께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단어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은 스크립토리엄 바깥 세계에서 또다른 단어들을 수집하게 만든다. 그 단어들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전에 나오지 않을만큼 저속하다고 평가되는, 흔히 들을수 없는 단어들을 수집해나간다.
그 계기는 하녀인 리지가 다니는 시장을 함께 가면서 시작된다.
사전에 등장하는 단어와 그 단어를 정의하는 대표인용구들은 문학작품이나 유명인의 언어를 통해 인용되는 말들로 채워진다.
에즈미는 배우지못한 시장사람들, 특히나 여성들이 쓰는 단어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전속에 등장하지 않는 많은 단어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여진 단어들은 먼 훗날 바로 '여성들의 단어와 그 의미' 라는 제목을 갖춘 에즈미의 사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단어들은 이야기랑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스웨트먼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변화하죠. 단어의 의미는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에 맞춰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해요.
사전은 그런 변형을 다 담아낼수가 없어요.
(p.205)
단어에는 끝이라는 게 없다. 그 의미에도, 그것들이 사용되는 방식에도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시대 , 우리의 혀 위에서 빚어지는 단어들이야말로 진실하고 완결된 것이라고. 하지만 어떤 단어가 최초의 발화된 뒤에 따라붙는 모든 것은 사실상 오염임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었다.
(p.295)
이 책은 방대하다.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툼한 두께의 책 안에는 작가가 남성들의 시각과 남성들의 생각으로 제작되었던 사전편찬과 관련되어 누락되고 미처 담지 못한 여성들의 단어들과 그들의 섬세한 시각과 경험의 이야기들이 세밀하게 표현되고 있다.
에즈미라는 한 여성, 그녀의 인생 전체를 통해 작가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들 그리고 사전편찬작업이라는 단어를 다루고 단어를 채집해서 정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 일이 갖는 의미와 지금 우리시대에 새롭게 주는 의미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에즈미가 한창 젊었던 20대초반, 서프러제트는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으며 결혼한 중반에는 1차 세계대전을 겪게 된다. 여성참정권을 떠올리며 유리창을 깨고 폭탄을 터트리고 감옥에 갇히며 투쟁을 했던 서프러제트를 떠올리며 책을 읽다가 과격한 투쟁이 아닌 비공격적 참정권 확정론자들로 구성된 단체들도 상당수 있었음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여성의 권리투쟁을 위한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했고 그 방법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견차가 있었음에도 그런 다양한 시도와 활동들이 있었기에 여성 참정권에 대한 권리획득이라는 결실을 얻을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호주에서는 그보다 15년정도 일찍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 '보통 선거권'을 두고 당대의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을 때 여성의 투표권에 대해 기탄없이 발언을 하시는 분이었단다.
우리의 사전이 '보통 Universal'을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하구나.
그때는 그 말이 인종이나 경제적 수입, 혹은 재산과 관계없이 모든 성인을 뜻했단다. 하지만 여성을 의미하지는 않았고, 할아버지는 이 점을 비판하셨어.
너는 전에 어떤 단어들은 단지 기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단어들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했었지. 너는 그런 생각을 함으로써, 교육받은 남성의 말들이 여성을 포함해 교육받지 못한 계층의 말들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문제제기를 했던 거란다.
(p.372)
서프러제트 때문에 교도소에 갇힌 여성들의 이름을 신문에서 찾던 에즈미는 좀더 자세히 나와있는 <타임스 오브 런던> 신문지면에서 그들의 이름을 찾아낸다.
샬럿 마시는 화가인 아서 하드윅 마시의 딸이었다.
로라 에인즈워스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장학관이었다.
메리 리는 건축업자의 아내였다. 이것이 여성들의 정의되는 방식이었다.
'여자 노예'. 그 단어가 생각났고, 나는 우리를 가장 자주 정의하는 단어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련해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을 설명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p. 368)
전쟁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아직 채 어른이 되지도 않은 소년병들과 젊은 청년들이 전쟁터로 징집되어 나가면서 옥스퍼드 출판사와 인쇄소에도 자신의 아들들이 돌아올수 없게되었다는 말을 전하러 온 그들의 엄마의 모습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아들, 오빠, 동생, 아버지들이 전쟁의 공포속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모습들을 묘사하면서 여자들이 느끼는 전쟁의 비극을 또다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드가 유일한 자식이었다는데, 그 애가 다음주에 열일곱살이 될 예정이었다는 말을 멈출수가 없는것 같았어요.
활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요. 전쟁이 시작된 지 겨우 몇달밖에 안됐는데 사람들은 이게 몇년으로 길어질 거래요. 제드같은 사람이 몇명이나 더 생길까요.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어요.
내가 뭔가 쓸모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슬픔'이라는 말을 조판해봤자 슬픔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드어머니는 사전에 모가 적혀 있든 느껴지는걸 느끼실 거에요."
"하지만 어쩌면 그분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게 도울수 있을거에요."
내가 한 말이기는 했지만 나 자신도 설득이 안됐다.
어떤 경험들에 대해 사전은 오직 거기 가까운 말들을 제공할 뿐이었다. '슬픔'도 그중 하나임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p.436)
에즈미가 평생에 걸쳐 만나오고 교류해온 많은 여성들이 책속에 등장한다. 그녀를 언제나 지지해주고 사회에서도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준 디트고모, 어릴적부터 에즈미를 돌봐준 하녀였지만 이후에는 평생에 걸쳐 동등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 리지, 사전편집실에서 함께 일을 했던 엘시와 로스프리스 자매 등등 그중에서도 내마음 가장 깊은곳에서부터 슬픔을 자아냈던 메이블을 잊을수가 없다.
시장한켠에 작은 궤짝위에 쓸모없는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앉아있는 늙은 노파였는데 자신이 파는 쓸모없는 물건만큼이나 그녀의 인생 전체가 부정 당하고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는데 익숙한 할머니였다. 젊은시절 몸파는일을 하다 이제는 늙어서 병을 얻고 시장 한켠에서 사람들의 무시속에서도 당당하게 욕지꺼리를 내뱉는 할머니다.
그녀에게 난생처음으로 들어보는, 저속하다고 사람들이 입에 담기도 민망해하는 온갖 단어들을 채집하면서 에즈미와 메이블은 특별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메이블이 시장 한켠에 쓰러지는 날까지.
이 책 전체에는 강인한 에즈미의 열정적 삶과 긍정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한계와 아픔때문인지 시작부터 끝까지 슬픔의 감정이 지속되는데 결국 에즈미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보내는 장면에서 그 슬픔이 분출된다. 탄생의 기쁨을 나누고 모두의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 어머니가 된 그녀는 주위에 말도 하지 못한채 홀로 그 시간을 감당하고 아이마저도 멀리 떠나보내게 된다. 자신의 아이를 보내는 상실의 아픔은 딸을 낳아본 내 경험이 오버랩되면서 그 아이가 조금씩 커나가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감정이 어떤것인지를 알기에 그걸 송두리채 잃은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생의 자락에서 다시금 스크립토리엄으로 돌아와 단어의 일에 매진하면서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삶의 자리를 이어가는 그녀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에서 두번째로 그 슬픔은 증폭되었다. 엄마의 자리까지 채워주기위해 늘 애를 썼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에즈미 만큼이나 내게 당혹스러웠고 그 슬픔은 가슴에서 차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나의 감정을 가장 복받치게 한것은 바로 스크립토리엄의 이사였다. 이제는 창고로 남게되고 그곳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올드 애슈몰린빌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그곳의 추억들이 서린 단어서랍들과 낡은 책상, 물건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에즈미 만큼이나 나는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딸아이를 보내는 아픔에도, 아빠를 잃은 슬픔에도 그녀를 견디게 해 준것은 바로 그 공간이었음을 알기에 그곳이 더이상 기록방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텅빈 공간으로 남게 되었을때의 그 공허한 느낌이 책을 너머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더이상 그 공간에 사람들의 숨결이 존재하지 않고 단어 작업들로 채워지는 공간이 아닌 텅빈 공간으로 하나의 창고로 남겨진 것을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놀랐던건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실존인물들이었으며 옥스퍼드사전 편찬과 관련된 연표에 역사적 사실로 등장하는 행사들과 기록들이 이 책 속에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책의 마지막 연표를 보고서야 조수들과 제임스머리의 딸들까지 실존인물임을 알게되었다)
이 책의 역사적 고증을 확고히 하기위해 저자는 옥스퍼드 도서관의 고문서들을 여러차례 확인하고 옥스퍼드 사전편찬과 관련된 문서나 전문가들을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들을 오랜시간에 걸쳐 조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사전편찬과 실재 존재했던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 위에 저자의 상상을 더하여 펼쳐진 이야기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더이상 사용하지 않아 오래전 버리려고 몇번을 고민하다 차마 버리진 못하고 방 한켠에 치워놓았던 두툼한 영어사전을 오랫만에 펼쳐보았다. 책안에 있는 단어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펼친 사전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작업 과정들이 떠올랐고 어떤 수고가 뒷받침 되었는지를 상상해볼수 있었다.
사물에 대한 설명을 넘어서서 우리를 설명하고 우리의 감정을 담아내는 단어들을 적은 사전이 갖는 그 한계와 오류를 파고든 작가의 예리함과 뛰어난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한권의 책은 나에게 오래 기억속에 남아 있을것 같다. 내가 마음을 나누고 좋아하는 이들에게 한권씩 선물하고픈 책이다.
영화 '말모이'에서 일본 식민 치하아래 우리나라 각지역의 사투리로 저마다 조금씩 다른 단어들을 모아 채집하고 표준화하는 사전편찬작업을 하던 인물들의 노고를 기억한다. 사전을 만드는일이 그런 작업인것 같다.
채집하고 검증하고 찾아내고. 합의를 끌어내고. 참으로 고독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그 고독한 작업끝에 갖는 권위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작가의 시선이 놀랍고 감동적이다.
책을 덮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과 그 맥락의 중요성들을 고민해 본적이 있는지. 어떤 단어들이 가진 권위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적은 있는지. 그 단어가 가진 한계와 더 큰 포용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지. 그것들은 모두 시인의 몫이라고 해두기엔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우리가 일상의 언어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단어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활자중독에 가까운 나는 단어에 집착한다. 모든 활자를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 가깝다. 읽을거리가 없을 때는 주변에 있는 과자 봉지, 광고지라도 펼쳐 보아야 한다. 한때 사전을 소설처럼 읽기도 하였다. 생소한 단어를 보면 검색해서 뜻을 알아보고 그것을 기억하려 애쓴다. 한글 뿐 아니라 영어 단어도 마찬가지다. 단어의 유래를 찾고 그 뜻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어학자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의 판관이 아닙니다. 분명, 우리의 일은 역사로 기록하는 것이지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41페이지)
에즈미의 놀이터는 ‘스크립토리엄’이라 불리는 사전 편집실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실의 작업 테이블에서 편집자들을 탐구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편집자들은 사전에 들어갈 단어들을 추리고 판단했다. 그때 테이블 밑으로 단어 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Bondmaid(여자 노예)’라는 단어가 쓰인 쪽지였다. 에즈미가 단어를 찾은 게 아니라 단어가 에즈미를 찾아온 거였다. 우리가 좋은 책을 찾아 읽었던 표현을 책이 내게로 왔다, 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Bondmaid(여자 노예)’라는 단어 쪽지는 에즈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어를 탐구함과 동시에 여성의 역할과 지위, 여성의 권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게 된다. 에즈미는 아무도 몰래 그 쪽지를 주머니에 넣어 숨겼다. 당연히 그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누락된다. 에즈미 때문이었는지, 남성 편집자들이 일부러 배제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선생님, 선생님은 지식의 판관이 아니십니다. 지식을 관리하는 사서이시죠. (중략) 선생님이 하실 일은 이 단어들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이 그 평가를 할 수 있게 허락하는 일입니다. (526페이지)
사전 편집자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편집실을 놀이터처럼 여겼던 에즈미에게 단어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크립토리엄에서 사전 편집 조수로 일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첫 생리가 시작되어 이불, 침대 등을 빨갛게 물들였을 때 에즈미는 아빠의 단어 분류 상자에서 ‘menstruate(생리하다)’를 찾아 그 뜻을 읽어보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여성을 나타내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였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에즈미는 여성들의 단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쓰는 단어와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사용한 사람의 이름을 넣어 표기했다. 메이블을 만난 것도 리지와 함께 간 시장에서였다. 죽음을 앞에 둔 메이블은 에즈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듯 울증Morbs은 왔다가 가는 슬픔, 즉 슬픔에서 파생되었다고 한 것이다. 사전에는 문자로 된 출처가 없는 단어들을 포함할 수 없었다. 글로 쓰인 적이 있어야 했다. 그러한 이유로 에즈미가 수집한 단어들은 리지의 침대 밑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이라 쓰인 상자에 오랫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작가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성차별적인 표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소설을 썼다.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역사적 사실을 밝혔을 뿐 아니라 에즈미라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소설적 묘미를 더했다. 남성적인 시각에서 편집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사전을 만드는 과정과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우는 Suffragette(서프러제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단어의 중요성과 단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서프러제트들의 활동은 작가가 어떠한 생각과 의도로 이 소설을 썼는지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에즈미의 아버지가 아내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던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첫 생리를 했을 때의 난감함을 릴리가 있었다면 달랐을 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즉 엄마의 부재,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권리, 그 중요성을 표현한 부분이었다.
어떤 단어들은 다른 단어들보다 중요하다. 스크립토리엄에서 자라나는 동안 나는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지를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2페이지)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라고 했던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배를 엮다』와 조선어를 말살시키려는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키려는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말모이>는 또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 남성 편중적인 시각에서 제작된 성차별적인 단어들이 사전에 실려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에즈미가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나타냈던 것처럼 이 시대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언어로, 각자의 단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 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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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해내려고 손을 뻗었지만, 갈색 종이는 이미 숯 검댕으로, 거기 적혀 있던 글자들은 모두 흔적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겨울이 되어 빛이 바래고 바삭바삭해진 오크 나뭇잎을 잡듯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감싸자 그 단어는 부서져 내렸다. "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손을 불구덩이 속에 쳐 박으면서 살이 녹아내리는지도 모르면서 건지려 했던 그 단어는 '릴리' 바로 그녀의 엄마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는 대작의 스멜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간만에 읽고 나서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는 독서였다.
물론 분량(579p)도 압도적이었지만 40년이라는 기간의 영국 옥스퍼드사전 제작의 시작과 끝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여성참정권 운동까지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하지도 거창하지도 구태의연하지도 않았다.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아마 주인공 에즈미의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에즈미와 머리박사님의 하녀 리지가 보여주는 끈끈함과 시대나 계급을 초월한 서로에 대한 존중, 에즈미의 아빠의 개방성과 자애롭고 학구적인 대모 디트, 늘 같은 자리에서 지켜 볼 것 만 같은 개러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너무 매력적이고 적절했다.
1886년 그녀가 6살 무렵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녀의 아빠는 옥스퍼드사전 편집자였고 ,그녀에겐 엄마가 없었기에 아빠와 함께 일터인 스크립토리엄에서 대부분 보냈다. 그것도 편집자들와 조수들이 모여 작업하는 테이블 밑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Bonmaid 여자노예 라는 단어쪽지가 눈앞에 떨어진다.
그 단어가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의 시작이 되었다.
사전에 실릴 수 없었던 단어들 , 여성들의 단어, 가난한 이들의 일상적인 단어들, 그 당시에는 신문에만 인용된 단어들 즉 권위있는 작품의 단어들이 아닌 모든 단어들은 사전에서 배제 되었다.
이런 단어들을 그녀는 리지의 가방에 모으기 시작했고 그 단어들은 그렇게 결국에는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이란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왜 그리 중요한 건데요?"
정확히는 나도 몰랐다. 그건 생각보다 감정에 가까웠다. 어떤 단어들은 꼭 둥지에서 떨어져내린 아기 새들 같았다. 다른 단어들은 단서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
단어들은 남성이나 권위있는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단어들은 시장에서, 여성들의 입에서 ,가난한 노역자들의 입에서 나왔다.
시대가 올드하지만 문체나 표현들은 매우 새련되어서 마음이 살랑살랑 해질 때도 많았는데
마치 빨간머리 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어들은 이야기랑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스웨트먼 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변화하죠. 단어의 의미는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에 맞춰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해요. 사전은 그런 변형을 다 담아낼 수가 없어요. 특히 아주 많은 단어들이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단어와 사전과 여성들의 삶과 사랑과 우정, 같은 일을 하는 연대감, 전쟁, 참정권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게 다루어 졌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졌던 참정권이 불과 100년 전에는 목숨받쳐 쟁취하려던 그 무엇이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떤 단어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것도 그 단어 하나가 세상을 바꿀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좋은 작가를 만난 느낌이 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