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꽉찬이와 텅빈이가 만났어. 텅빈이는 꽉찬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꽉찬이는 너무 꽉 차 있어서, 텅빈이가 들어갈 틈이 없었어. 꽉찬이가 텅빈이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지. 꽉찬이가 텅빈이를 완전히 채우면, 텅빈이는 사라지고 말아. 새해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새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새 학년으로 올라가 만나는 친구들,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만나는 동료들.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는 늘 쉽지 않습니다. 나를 많이 내어 주자니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상대를 많이 받아들이자니 내가 없어지는 거 같지요.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관계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
숲노래 그림책 2021.6.25.
그림책시렁 702
《꽉찬이 텅빈이》
크리스티나 벨레모 글
리우나 비라르디 그림
엄혜숙 옮김
이마주
2021.3.5.
우리 오늘을 늘 새롭거나 새삼스러이 보는 눈이 하나요, 어제하고 똑같다고 여기는 눈이 하나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똑같은 날은 있을 턱이 없지만 마음에 기쁨이나 보람이나 노래가 흐르지 않을 적에는 다 다른 날을 다 같다고 받아들이면서 빛을 잃습니다. 달종이에 적힌 셈(숫자)으로도 모든 날은 다르지만, 바람도 해도 비도 언제나 달라요. 일터에서 똑같구나 싶은 일을 되풀이한다지만, 바라보는 눈을 스스로 바꿀 줄 안다면, 눈빛을 스스로 바꾸고 말빛도 스스로 밝히기 마련입니다. 《꽉찬이 텅빈이》는 두 빛살을 맞대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책이름에 나오듯 ‘꽉’하고 ‘텅’이 맞물리고, ‘찬’하고 ‘빈’이 어울립니다. 더 들어설 틈이 없는 ‘꽉’하고 덜어낼 틈이 없는 ‘텅’입니다. 더 넣을 자리가 없는 ‘찬’하고 빼낼 살림이 없는 ‘빈’이에요. 언뜻 보자면 둘은 다릅니다. 깊이 보자면 둘은 같아요. 나누거나 같이하지 못하는 매무새가 다르면서 같고, 새롭게 피어나려는 빛이 없는 몸짓이 같으면서 다릅니다. 달이 차기에 이운다고 하듯, 올라가기에 내려간다고 하듯, 잠들기에 일어나고, 일어나니 잠들어요. 삶은 늘 하나입니다.
ㅅㄴㄹ
#PienoVuoto #LiunaVirardi #BellemoCristin
흑백 일러스트의 그림책이다. 이마주 출판사의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의 한 권인 이 책은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물음에 대한 답을 명사와 함께 찾아가는 그림동화' 라고 설명되어 있다. 책의 뒷부분에 명사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 책은 번역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엄혜숙씨가 해설을 맡았다.
꽉찬이 텅빈이
PIENO VUOTO
크리스티나 벨레모 글, 리우나 비라르디 그림
철학하는 아이 - 18
이마주
꽉찬이와 텅빈이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흰 배경을 뒤로 한 검은 실루엣의 꽉찬이와, 검은 배경을 뒤로 한 흰 실루엣의 텅빈이가 서로가 누군지 묻고 인사를 나눈 뒤,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에 꽉찬이와 텅빈이가 함께 나오는 어떤 장면들은, 책의 제본선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서로의 실루엣이 겹쳐진다. 배경에서 누군가를 오려낸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모든 걸 가졌다'고 자랑하는 꽉찬이에게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응수하는 텅빈이. '외롭지 않다'는 꽉찬이에게 '언제나 자유롭다'고 대답하는 텅빈이. 대화를 나누다보니 둘은 꽉 찬 게 어떤 것인지, 텅빈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진다.
서로 너무나 다른, 어찌보면 양면적인 두 사람은 서로 합쳐보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꽉찬이가 텅빈이를 채우면 텅빈이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에서는 슬쩍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제 짝을 찾아 완전해진 동그라미가 되었지만 너무 빠르게 구르다가 꽃을 만나도 향기조차 맡지 못하고, 나비를 만났지만 무동도 태워 주지 못하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던 그 장면. 무조건 합친다고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말이다.
결국 꽉찬이와 텅빈이는 자신의 조각을 서로에게 나눠주기로 한다. '텅빈이 조각을 지닌 꽉찬이'와 '꽉찬이 조각을 지닌 텅빈이'는 "네 자신과 지금은 네가 된 내 작은 조각을 잘 돌보아 주렴" 이라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나눈다. 어떻게 조각을 나눴는지, 조각을 나눈 뒤 꽉찬이와 텅빈이가 느낀 것들은 어떤 것인지는 책 속에서 확인해보시길.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
작가는 '전쟁과 평화', '남자와 여자', '백인과 흑인', '행복과 불행' 등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세상에 살아오면서, 양면적인 두 존재는 정말 완전한 반대일까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마주의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에는 좋은 책들이 많은데, 문고형 판본으로 쉽게 펼쳐지지 않는 무선제본( 혹은 떡제본? ) 형식이다보니 그림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책들이 좀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원서처럼 하드커버로 사철제본양식 버전도 나오면 펼쳐서 감상하기에도 참 좋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 개인적인 호불호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