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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시인선

책소개

목차

1부 문에도 멍이 든다

하늘
올비
문에도 멍이 든다
부부송
찔레꽃조기
향나무지팡이
봄볕에 뜨락에 나와 앉아
콩나물과 예술 사이
동막 마을
여우와 늑대의 오감도
불치
함부로 밀지 마라
어떡하니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2부 달리는 펑크

달리는 펑크
툇마루에 걸터앉아 달을 보며
燕鴻相違연홍상위
풍경이 살풍경을 말하다
배롱나무
매화가 나에게
눈치
가슴벽
물싸리꽃을 기다리다
땅은 내려다보고 있는 멍든 하늘이다
공생
북한강에서
시의 힘
산문散文에 기대어

3부 매괴화 두 송이

발견자 양금숙
넝쿨아내
매괴화 두 송이
홍시 1
무쇠솥
강 쪽으로 굽은 소나무
도모지塗貌紙
목련 아동 꿈터
공터에서 낚아 올린 것들
불면
사 살려 주 주세요
금남로錦南路
꽃무덤
영혼을 적시는 시

4부 녹두죽이 먹고 싶다 했더니

달밤
번개엄마
활과 휠체어
녹두죽이 먹고 싶다 했더니
꽃물
검은 도마
동짓날
눈꽃
가방
절망
사친별곡思親別曲 1
이자이李滋伊
유서
매화꽃 말씀

해설 전천후와 열망을 향한 헌사 이정환(시인)

저자 소개 1

정여운鄭餘芸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시립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2013년 『한국수필』로 수필, 2020년 『서정시학』에 시 「문에도 멍이 든다」 외 2편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붉은 도장」으로 불교신문 10·27법난 문예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2021) 『녹슨 글라디올러스』(2024) 공저 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2023) 외 다수, 詩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2023)가 있다. 2024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 부문에 선
정여운鄭餘芸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시립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2013년 『한국수필』로 수필, 2020년 『서정시학』에 시 「문에도 멍이 든다」 외 2편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붉은 도장」으로 불교신문 10·27법난 문예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2021) 『녹슨 글라디올러스』(2024) 공저 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2023) 외 다수, 詩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2023)가 있다. 2024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 부문에 선정되었다. ‘새얼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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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94g | 125*188*9mm
ISBN13
9791186557341

책 속으로

문에도 멍이 든다


누가 저 방문에 목숨 한 숟가락 꽂았을까

추위는 검은 두루마기 같은 구름 두르고 찾아왔다
안방이 단단히 잠겨 있다

나비장석에 걸려 있는 놋쇠 빼다가
왜 목숨 하나가 갇혀 있는지를
네발로 기어 다닐 때 암죽을 먹여주고
두 발로 걸어 다닐 때 도시락 챙겨주고
두레상 펼쳐놓고 함께 밥을 먹던
그 숟가락을 생각한다

곰팡이 푸르게 슬은 모진 쇠붙이 하나
겉과 속을 나누는 문 앞에서
늙은 숟가락이 늙은 사람을 붙들고 있다

명치 끝 방에 피멍이 드는 밤이다
삭은 문이 흔들리며 몸서리치고 있다

휠체어 바퀴 테두리가 반짝인다
뼈만 남은 반달 숟가락에 얼굴이 비친다

평생을 한 몸처럼 입속에서 살아온 쇠붙이
아버지의 목숨 한술 뜨고 있다

-----------------------------------------------------

부부송


우두두둑 뚜두둑
봄기운에 잔설을 털어내는 소나무 가지들
관절 풀리는 소리가
악양 평야의 마디마디를 깨운다

겨우내 두꺼운 추위 껴입고서
황량한?들판 지키느라?잔기침도 많았겠다
온기 없는 빈방에서?선잠 자느라
삭은?몸이 얼음장 되었겠다
이웃도 경로당도 없는 외딴 들녘에
적막 한 칸 세 들이며 사느라 밤도 길었겠다

금싸라기?알곡들?방앗간으로 밀려간 뒤
제비가 낮게 뜨니 비가 오겠구나
두 눈을 비비니 더욱 침침하구나
들 끝에 바람을 얹고 삭정이로 흔들리는
앙상한 부부송

섬진강 따라 매화꽃길 따라
평사리로 시집왔던 봄
그때가 좋았다고
송홧가루 날리며
예순네 해를 서로에게 뿌리내렸다

-----------------------------------------------------

올비*

?
잠든 아기 머리맡에
뻥튀기 옥수수 한 바가지 놓고?
호미 들고 나간다
?
해마다 하천이 넘쳐 물에 잠긴?너였다?
죽 한 그릇이면?살 수 있다는 올비밭
쌀 한 말 이고 가서 건졌다

자고 나면 번지고 자고 나면 커지고
뽑아도 자라고 찍어도 내리고
아래로 위로 시퍼런 등줄기가?들불처럼 번졌다
가난은?뿌리에서부터 찾아오는가
?
네 뿌리를 잘라 먹으며 가난을 캤다
해도 깨지 않은 첫새벽부터 별 뜨는 밤까지
목숨보다 질긴 올비를 캤다
세 살배기 아들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사람들과 사수재를 넘고 와룡산을 뒤졌다
사흘 만에 집 앞에 있는 못에서
낮달이 떠올랐다
싸늘한 달을 품에 안고 애장터에 묻었다

뿌리 하나 뽑는데 한 생애가 지나갔다

*뿌리가 깊고 번식력이 좋은?잡초의 일종.

------------------------------------------------------------------

불치


이십 년 이상 앓고 있다
쉽게 낫지 않는다

신열이 난다 오한이 들고 춥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뛰고 자주 멍해진다
어깨와 목이 뻐근하고 온몸이 노곤하다
밤을 새는 날이 많다
흔들리는 벚꽃만 봐도 마음을 빼앗긴다
?
흑석역에 내려야 하는데 고속터미널역까지 간다
전철 선반에 목도리를 놓고 내린다
자동차 키를 꽂아둔 채 문을 닫고 내린다
충전하던 휴대폰을 강의실에 두고 나온다
세탁한 빨래가 통 안에서 잠을 잔다

밥을 하면서도 빨래를 널면서도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그의 생각으로 빼곡하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누가 불러주는 말이 들려 노트에 적는다
?
독감보다 지독한 상사병,
시를 앓고 있다
약이 없다 행복한 불치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아프리카에서 노인 하나가 죽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체험 속에 스며있는 자연과 풍속과 역사의 가치는 그만큼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다. 오래 묵은 낱말과 곰삭은 생각들로 구멍 난 것, 삭은 것, 이승의 기억들 끝에 겨우 매달려 있는 것들을 포획하는 정여운의 시는 오늘날 욕망의 속도에 사로잡힌 문명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가는 유능한 말들을 훌륭하게 뒤엎는다. 이 시대로 하여금 ‘좋은 언어’ ‘선한 언어’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인간의 숨결에 담긴 ‘먼 곳’의 가치를 끝까지 연민하는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언어에 뜨거운 축복이 함께 하길 빈다.
- 김형수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먼 길 돌아왔다
가다가 돌아선 길은 못내 그리웠다
문학의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다
소설 숲 끝에서 운명처럼 시를 만났다
언어의 마술에 걸린 듯 시에 빠졌다
이제는 헤어질 수 없다, 온몸으로 받는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사람은 어머니이다
말년의 어머니 삶을 볼 때마다 시가 터졌다
심장에 날아든 측은의 씨앗들
?
어머니가 꽃구름 타고 가신 지 4주년이 되어 간다
아버지는 재작년에 나비구름 타고 따라가셨다
평안한 극락왕생 기원하며 이 시집을 바친다

2021. 10.
광명에서 정여운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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