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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007
해설 |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서다 353 |
Grazia Deled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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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조그만 우리 집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는 추위와 배고픔과 온갖 병을, 버려진다는 게 뭔지를 알게 되었지요. 늙으신 숙모 두 분이 저를 도와줬지만 두 분 역시 가난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이 뭔지 알게 되었어요. 아, 빌어먹을. 배고픔은 훌륭한 선생입니다! 저는 남의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법과 일을 배웠지요. 그래서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 p.20 농부들과 마을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수다를 떨며 포도 수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뒤쪽으로 회색 산이 펼쳐져 있었다. 해 질 녘의 흐릿한 안개 속에서 말을 탄 몇몇 노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포도나무 이파리, 짓이겨진 포도, 축축한 풀 냄새가 공기 중에 배어 있었다. 수레에 실린 포도들은 희미한 보랏빛을 반사했다. 수레바퀴는 하얀 흙먼지가 덮인 길에 깊은 고랑을 남겼다. 골짜기에서는 벌써 불빛이 몇 개 반짝였고 바위들 위에서, 카파레다 다리 위에 우뚝 솟은 절벽들 사이에서 딸랑이는 방울 소리도 몇 번 들렸다. 길을 잃은 염소의 목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짐을 잔뜩 실은 수레의 바퀴가 단조로우면서도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요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수레꾼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쓸쓸하고 차분히 가라앉은 가을 황혼에 본능적으로 깊이 빠져 있던 피에트로만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pp.42~43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요…….” 그런데 그들은 이미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나? 과연 그렇게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한 게 잘한 일이었을까?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망의 죄, 거짓의 죄, 부모에게 불효한 죄, 하인을 속인 죄를 말이다. --- p.135 그는 걷고 또 걸었다. 밤이 찾아왔다. 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고 식은땀을 흘렸으며 피로로 온몸을 떨었다. 길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피에트로는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 pp.189~190 그는 권총을 쏘았다. 총소리가 골짜기의 불안한 침묵을 깨뜨렸다. 곧이어 사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격렬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벌써 범죄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불현듯 정신을 차렸고 사악한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에서 걸음을 멈출까?’ 그는 구름이 여기저기 떠 있는 신비한 하늘 아래에서 걷고 또 걸었다. 때로는 어두웠다가 때로는 도망치는 달이 남긴 푸르스름하고 희미한 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친 오솔길이었다. 그의 영혼도 희미한 빛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 빛은 이따금 완전히 꺼져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꿈속에서처럼 끝이 없고 불가사의한 악의 길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 pp.192~193 피에트로를 우리 집에 들이기로 결정한 그날처럼 불행한 날이 있을까. --- p.267 이제 전직 하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깊은 모욕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열정에, 고삐 풀린 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망에 자기를 완전히 내맡겨버렸다. --- p.316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악의 유령이 지켜보는 회색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그리고 이제 교차로에 이르렀고 그 주위로는 모두 똑같이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다른 길들이 열려 있었다. 이 길로 들어서든 저 길로 들어서든 똑같았다. 그 길들은 모두 같은 속죄의 장소로 이어졌다. --- pp.351~352 인간은 태양과 대지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과 싸워야 한다! 만약 그녀가 복병들이 숨어 있는 끔찍한 삶 속에서 덫에 걸리고 패배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고 여전히 싸워야 한다면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 p.346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누오로 지방의 흙먼지에 뒤덮인 오솔길을 걷거나 잘 익은 포도송이를 따거나 쟁기질을 하거나 보랏빛으로 물드는 해 질 녘을 넋 놓고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델레다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거칠고 원초적인 땅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다양하고 풍부한 언어를 통해 그곳의 미묘한 색감과 향기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소설 속의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를, 주로 피에트로의 마음을 반영해서 때로는 평화롭게, 때로는 격정적이고 공포스럽게 묘사된다. ---「해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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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땅에 뿌려졌다가 우연히 싹을 틔운
거짓과 배반, 허영과 기만의 소용돌이 델레다는 사르데냐섬의 내륙지역인 누오로시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교사에게 표준어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을 배우는 동안 사르데냐 농민들의 삶과 그들의 도전적인 정신에 영감을 받아 단편소설을 쓰는 데 관심을 보였고, 이후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델레다는 수많은 작품에서 독특하고 신비한 사르데냐섬의 풍경과 문화를 다루었는데, 이를 단순히 배경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사르데냐섬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등장인물들의 삶과 감정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쓰인다. 192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고향인 외딴섬’에서의 삶을 맑은 물속처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에트로는 갈아놓은 흙 속의 씨앗처럼 오래 잠을 잤다. 그 역시 신비하고 거친 땅에 아무렇게나 뿌려졌다가 우연히 싹을 틔우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운명에 몸을 맡긴 씨앗이었다. 그는 한밤중에 일어나 초막으로 들어갔다. 잿빛 안개가 낀 어둠이 고원과 계곡을 덮치고 해변의 산들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해변에서는 바다의 포효 같은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76쪽) ‘피에트로 베누’는 원초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주변 풍경을 자신의 몽상이나 순간적인 열정에 성급히 이입하는 청년이다. 그는 ‘마리아 노이나’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데, 마리아는 누오로시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농부의 딸로 허영심이 있으며 탐욕스럽다. 일을 막 시작할 때만 해도 피에트로는 마리아의 사촌인 ‘사비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연한 엇갈림을 매몰찬 거절로 여겨 괴로워하고, 그 순간 다른 친구 ‘로사’가 “피에트로 베누. 마리아는 사비나를 질투해요”라고 던진 농담에 사로잡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다. 마리아는 비천한 출신의 하인들을 경멸하지만 피에트로의 적극적인 구애에 생긴 허영심이 점점 커져 위험한 열정에 자신을 내맡긴다. 부자가 되면 마리아와 결혼할 수 있다고 믿는 피에트로와 달리 마리아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좋아한, 시의원이자 부유한 목동인 ‘프란체스코 로사나’와 결혼을 결정한다. 분노에 휩싸인 피에트로는 프란체스코를 죽여버리겠다며 숙모 집에서 몰래 권총을 챙겨 나오지만,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억울한 일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는 권총을 쏘았다. 총소리가 골짜기의 불안한 침묵을 깨뜨렸다. 곧이어 사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격렬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벌써 범죄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불현듯 정신을 차렸고 사악한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 그는 구름이 여기저기 떠 있는 신비한 하늘 아래에서 걷고 또 걸었다. 때로는 어두웠다가 때로는 도망치는 달이 남긴 푸르스름하고 희미한 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친 오솔길이었다.”(192∼193쪽)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에서 걸음을 멈출까?”라고 외치는 피에트로. 절망적으로 방을 서성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되뇌는 마리아. 선과 악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실타래처럼 엉켜 있고, 등장인물 모두가 부도덕의 공범으로 살아간다. 미끄러운 장대 끝에 스카프, 치즈, 가방, 신발 등을 달아두고 끝까지 올라가기만 하면 모두 차지할 수 있는 장면에서, “낫날 조각을 발에” 묶는 반칙을 저지른 사람은 높은 곳에 도달해 원하는 것을 얻고, 정직하게 “맨발로 기어오르려고 애쓴” 사람은 미끄러지기만 한다. 사람들은 반칙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를 닮으려 하고, 혹은 그저 관망할 뿐이다. 『악의 길』에는 주인공인 피에트로와 마리아뿐 아니라 아주 잠깐 등장하는 목동들까지도 자신들이 지은 죄가, 혹은 저지르고 싶은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는 이상한 논리를 동원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지요!”), 누구는 절망하며(“주여, 그 징벌이 너무 가혹합니다…….”), 누구는 침묵한다(“목동들은 두려움과 비겁함으로 침묵했지”). 되돌아갈 수 없는 한복판에서 꽉 쥔 주먹 움켜쥐고 있는 건 외면, 혹은 진실 소설 말미. 끔찍한 진실을 마주한 마리아는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다 끝내 “피에트로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연관” 짓는다. 떠올리는 건 예전에 봤던 죄수들의 행렬이다. “함께 사슬로 묶인 채 둘씩 둘씩” 나아가던, “같은 쇠사슬에 묶여 같은 형벌의 장소”로 향해 가던 모습. 델레다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 수 없는 길 한복판에 인물들을 데려온 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알려준다. 그 상태로 어디로든 나아가라 재촉한다. 이 지점에서 『악의 길』은 단순히 사랑과 배신, 분노와 범죄 이야기를 넘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삶으로 스며든다. 사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부도덕의 공범이 아니냐고, 내면에 감추고 있는 거대한 모순과 욕망이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