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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어두운 포옹 7
2월 1일 시 믿는 사람 11 2월 2일 시 선릉과 정릉 15 2월 3일 편지 계절 서간―봄 19 2월 4일 에세이 종점 일기 1―내가 보는 모든 것 25 2월 5일 노트 무드 인디고 31 2월 6일 시 나는 37 2월 7일 편지 계절 서간―여름 41 2월 8일 동시 태어날 조카를 위해 쓴 동시들 47 2월 9일 에세이 종점 일기 2―죽음이 찾아오면 53 2월 10일 시 양양 59 2월 11일 시 강릉 해변 메밀막국수 63 2월 12일 시 파주 67 2월 13일 노트 문제없습니다 71 2월 14일 시 사랑의 바깥 79 2월 15일 시 나루터를 지키는 사람 83 2월 16일 편지 계절 서간―가을 87 2월 17일 시 감은 빛 93 2월 18일 동화 쥐똥 이야기 97 2월 19일 노트 매튜와 마테오 117 2월 20일 시 겨울꿈 123 2월 21일 에세이 종점 일기 3―피라미드 127 2월 22일 시 피부와 마음 137 2월 23일 편지 계절 서간―겨울 141 2월 24일 시 해빙기 147 2월 25일 시 돌아온 이야기 151 2월 26일 에세이 종점 일기 4―평행우주 155 2월 27일 시 차마 161 2월 28일 시 봄꿈 165 2월 29일 편지 계절 서간―추신 169 부록 음악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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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사람은 어제에 있고
이렇게 나는 또 날짜를 스스로 조용히 옮겨적고 있지만 그 사람은 내가 다가온다 말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온다 말한다 눈이나 비처럼 하나하나 온다는 것 이곳에서 나의 슬픔이란 이런 것이다 ---「2월 1일 믿는 사람」중에서 곧 저녁입니다. 어두워지면 이곳에는 사람도 짐승도 지나지 않아 무척이나 호젓해지지요.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만 어쩌다 지나가고, 신호등에는 노란빛이 계속 깜빡거립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시야에 가득 들어와, 그래서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앞이 깜깜한 곳.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은 더 또렷해지고 눈감아보면 문득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난 오래된 라디오 같은 게 되어선, 그들이 나한테 들려준 자상한 말을 소리 내보아요. 이곳에서 그건 완전한 혼잣말이지만 그게 퍽 슬프진 않습니다. 그 사람들을 나는 계속 지니고 살 것으로 분류해놨으니까. 그리고 거기에는 늘 당신이 꼭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니 꿈에라도 놀러오길. 당신이 이리로 와 나랑 같이 웃으면 좋겠습니다. ---「2월 3일 계절 서간―봄」중에서 이곳까지 데려다준 것과 같은 번호의 노선버스가 저기 간다. 아직 아무도 그 안에 들지 않았다. 저 앞 정류장에도 사람은 없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곳을 지나친다. 그러고 보면 2월은 저 널따랗고 기다란 차 같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멀어지지만 그 일조차 결국 다시 돌아오기 위한 일. 정차하는 장소같이 나는 오래 기다렸던 적도 있다. 시간을. 시간의 얼굴을 한 사람을. 내 안에 잠시 깃들어 살다 영영 떠나겠다, 그러고는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굴다 끝내 언제나 되돌아오고 마는. 이런 생각이 아니라면, 나 하나에 관해서는 굳이 해명할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고. 그렇게 앞이 조금은 막막해지지만, 그렇다고 더 나빠질 건 없다. 단지 코 안에 든 맑고 싸늘한 공기가 입 밖으로 나올 때는 탁하고 뜨듯해진다는 것. 나의 안개가 옅어지고 사라질 때 언젠가 그 누군가가 건네는 말이 되어 내 귀에 다시 들어올 것임을 알고 사는 것. 그런 날을 위해 귀 뒤를 깨끗이 씻고 손톱을 바짝 깎고 팔꿈치에 로션 잘 바르고 빗질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2월 4일 종점 일기 1―내가 보는 모든 것」중에서 사랑하고 오는 길에 나지막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빛을 통해 문득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 혼자 걷다 그만 넘어진 이에게 다가가 먼저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 세상의 오해와 맞서는 이의 곁에 가까이 서서 그의 편을 드는 사람 그러니까 도무지 사랑해서 그 빛에 자주 눈이 시린 탓으로 내리 걷다가 닿은 바닷가에서도 전속력으로 해변을 달리는 이가 보이면 끝내 늦지 않기를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 바다 앞에 어정대다 결국 웅크려서 어깨를 들썩이는 이의 옆에 앉는 사람 눈으로는 파도를 쓰다듬으면서 한 사람을 내내 생각하는 사람 ---「2월 6일 나는」중에서 인간은 늘 어리석고 둔하지만, 누구에게나 특히 더 그렇게 돼버리는 시기가 있는 거 같아요. 마테오가 마테오가 아니었을 무렵, 절도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혔을 때처럼 말입니다. 다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해요. 삶은 자주 엉망이지만 거기엔 내 몫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아직 남아 있고, 그 아름다움은 반드시 예정되어 있다고. 마테오의 노래를 듣는 난 아직도 더럽고 치사하지만, 언젠가는 아니게 될 수도 있지요. 이제부터 착해지고 예뻐지겠다, 맘먹고서 지은 노래를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그럴 거예요. 나에게는 나의 아름다움이 준비되어 있다고 믿으며 살면 말입니다. 마테오가 된 매튜가 그걸 증명했잖아요. ---「2월 19일 매튜와 마테오」중에서 |
당신이 이리로 와 나랑 같이
웃으면 좋겠습니다. ‘2’라는 숫자 참 이상하지요. 둘이라서 다정인데 둘이라서 하나는 아닌, 그 ‘따로’라는 거리. 달력의 시작은 1월, 봄의 시작은 3월, 시작과 시작의 틈에 엉거주춤 선 ‘사이’라는 거리. 『선릉과 정릉』, 두 개의 능(陵) 나란히 세워놓은 제목 속에도 ‘양지 바른 무덤’, 그 밝음과 어둠 묘한 거리로 남은 듯하고요. 그렇게 시인에게 2월은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손잡고 가고/저 둘이 같이 있어도 된다는 사실을/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짧고도 추운 달입니다. 누군가는 “단념하기 좋은 달”이라 혼잣말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마음을 다하는 사람들” 있음에, “절망과 싸우느라 한데 뒤엉켜/부둥키고 뒹구는” 모습마저 “사랑이라” 부르는 한 사람 있음에(「어두운 포옹」), 바로 그 시인의 눈으로 우리는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지요. 뭐라 뭐라 해도 둘이라는 거, 2라는 거, 사랑 아닐 리 없다, 하고요. 전욱진 시인은 ‘사랑’이다, 말해봅니다. 그만큼 사랑한다 하는 수사만은 아니고요, 언제나 사랑해서 사랑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러 마침내 사랑으로 물든 사람, 시인이기도 하여서요. 사랑하는 사람은 시를 쓰지요. 사랑하니까 편지를 쓰고, 오늘의 사랑을 일기에 남깁니다. 카페에 앉아, 침대에 누워, 버스 안에서,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생각이라는 사랑을 합니다. 워낙에 음악을 사랑하는 시인이라 이 시와 편지와 일기와 노트 사이 곳곳에도 음악이 흐르는데요, 그러니까 시인에게 사랑은 음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상해봅니다. 보이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서 흐르고 있는 사랑. 그러니 책 말미에 ‘덤’처럼 내어준 시인의 플레이리스트를 두고 전욱진의 ‘사랑’ 리스트라 불러도 좋지 않으려나요. 사랑하고 오는 길에 나지막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빛을 통해 문득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 혼자 걷다 그만 넘어진 이에게 다가가 먼저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 (……) 그러니까 도무지 사랑해서 그 빛에 자주 눈이 시린 탓으로 내리 걷다가 닿은 바닷가에서도 전속력으로 해변을 달리는 이가 보이면 끝내 늦지 않기를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 바다 앞에 어정대다 결국 웅크려서 어깨를 들썩이는 이의 옆에 앉는 사람 눈으로는 파도를 쓰다듬으면서 한 사람을 내내 생각하는 사람 ―본문 중에서 나로부터 당신에게로, 당신으로부터 나에게로. 시의적절 시리즈는 계절과 시간에 밝고도 깊이 헤아릴 줄 아는, 참으로 ‘적절’한 시인들이 꾸려가는 일이지만요, 계절이란 본디 흐름이라는 거, 끊임없고 끝도 없으니 언제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거, 그리 알고 또 믿는 이로는 전욱진만한 이름 없겠구나 합니다. 그러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의 「계절 서간」을 띄우고서 다시 ‘추신’을 쓰는 이의 마음 같은 것. 네 편의 기록에 「종점 일기」라 이름 붙일 때 응당 ‘기점’과 ‘회차’ 또한 염두에 두었을 시인의 믿음 같은 것.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 그렇게 말하면 어떤 안도와 허탈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을 한 번 돌아 다음 2월을 맞을 때, 버스가 제 길을 한 번 돌아 다시 기점에 섰을 때, 우리를 다르게 하고 다음을 그리게 하는 것은 그 시간들을 빼곡히 채운 사랑의 기억임을 시인은 압니다. 그래서 흘러가는 버스에 몸 내맡기긴커녕 사람을 담느라 사랑을 닮느라 한껏 바빠지지요. 일상의 피곤에 치여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깨를, 버스에 남은 연인을 향해 양팔로 하트를 그리는 다정을, 나이든 승객의 휴대전화를 스쳐가는 ‘항암’이라는 글자와 색색 들꽃, 혹은 활짝 핀 손주의 얼굴을. 버스의 안과 밖, 사람과 세상이라는 안팎을 살피느라 한시 없이 바쁜 시인의 눈이 거기 있습니다. 첫 시집의 추천사에서 들었던 “다음 계절이 온다고”(신미나), 그 한마디 또한 허투루 들음 없이 믿음으로 품어둔 시인이지요. 여름과 겨울의 사이에도, 선릉과 정릉의 사이에도, 시인이 가득 심어둔 기억, 사랑이라는 씨앗이 가득합니다. 하루에 한 편, 전욱진 시인의 2월 따라 읽어 따라 흐르다보면 이 기억들 만발하고 만개할 테지요. 그 사랑 한아름 안아들고서 우리는 다음 계절로 흘러가볼 테고요. 전욱진 시인이 내어준 ‘2’라는 거, 우리에게 ‘다음’이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앞이 조금은 막막해지지만, 그렇다고 더 나빠질 건 없다. 단지 코 안에 든 맑고 싸늘한 공기가 입 밖으로 나올 때는 탁하고 뜨듯해진다는 것. 나의 안개가 옅어지고 사라질 때 언젠가 그 누군가가 건네는 말이 되어 내 귀에 다시 들어올 것임을 알고 사는 것. 그런 날을 위해 귀 뒤를 깨끗이 씻고 손톱을 바짝 깎고 팔꿈치에 로션 잘 바르고 빗질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또다른 버스가 나를 지나쳐 간다. 사람들을 싣고 움직인다는 점에서, 저것과 나는 다르지 않구나. 생각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끝이 내 앞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시작이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본문 중에서 ‘시의적절’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한 권 난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 이름하여 ‘시의적절’입니다. 시인에게 여름은 어떤 뜨거움이고 겨울은 어떤 기꺼움일까요.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맞춤하여 틀림없이,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봅니다. 시인들에게 저마다 꼭이고 딱인 ‘달’을 하나씩 맡아 자유로이 시 안팎을 놀아달라 부탁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의 글, 그러해서 달마다 서른 편이거나 서른한 편의 글이 쓰였습니다. (달력이 그러해서, 딱 한 달 스물아홉 편의 글 있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물론, 새로 쓴 시를 책의 기둥 삼았습니다. 더불어 시가 된 생각, 시로 만난 하루, 시를 향한 연서와 시와의 악전고투로 곁을 둘렀습니다. 요컨대 시집이면서 산문집이기도 합니다. 아무려나 분명한 것 하나, 시인에게 시 없는 하루는 없더라는 거지요. 한 편 한 편 당연 길지 않은 분량이니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가벼이 읽으면 딱이겠다 합니다. 열두 달 따라 읽으면 매일의 시가 책장 가득하겠습니다. 한 해가 시로 빼곡하겠습니다. 일력을 뜯듯 다이어리를 넘기듯 하루씩 읽어 흐르다보면 우리의 시계가 우리의 사계(四季)가 되어 있을 테지요. 그러니 언제 읽어도 좋은 책, 따라 읽으면 더 좋을 책! 제철 음식만 있나, 제철 책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입니다. 그 이름들 보노라면 달과 시인의 궁합 참으로 적절하다, 때(時)와 시(詩)의 만남 참말로 적절하다, 고개 끄덕이시라 믿습니다. 1월 1일의 일기가, 5월 5일의 시가, 12월 25일의 메모가 아침이면 문 두드리고 밤이면 머리맡 지킬 예정입니다. 그리 보면 이 글들 다 한 통의 편지 아니려나 합니다. 매일매일 시가 보낸 편지 한 통, 내용은 분명 사랑일 테지요. [ 2024 시의적절 라인업 ] 1월 김민정 / 2월 전욱진 / 3월 신이인 / 4월 양안다 / 5월 오은 /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 8월 한정원 / 9월 유희경 / 10월 임유영 / 11월 이원 / 12월 박연준 * 2024년 시의적절은 사진작가 김수강과 함께합니다. 여전히 아날로그, 그중에서도 19세기 인화 기법 ‘검 프린트’를 이용해 사진을 그려내는 그의 작업은 여러 차례, 오래도록, 몸으로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시간으로 그리는 사진과 시간으로 쓴 시의 적절한 만남은 2024년 열두 달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