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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 노릇
2. 빨갱이 섬 3. 기묘한 사람들 4. 가을 운동회 5. 대통령 선거 6. 한 방 맞은 기분 7. 할머니의 사과 8. 네까짓 게 9. 조작된 기록 10. 제주도의 비밀 11. 나만 몰랐던 이야기 12. 나의 아버지 13. 밝혀진 진실 14. 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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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도 아버지는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나도 아버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 등 뒤에서 아버지의 넓은 어깨를 바라봤다.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한 부산항에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 없이 근사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군복과 모자도 근사했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빨갱이 섬 아니라 빨갱이 할아버지 섬이라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그 두려울 것 없던 마음은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부질없이 허물어졌다. --- pp.26-27 “억울하다고? 땅을 빼앗겨서? 집을 빼앗겨서?” 나를 보는 고찬숙의 눈빛이 서늘했다. “집을 다 태워버리는 건? 집이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건? 하루아침에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나라 군인이 쏜 총에 죽었다면?” “야!” 김영선이 찬숙이 입을 막고는 끌고 나갔다. 모여 있던 아이들도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또다시 멍하게 서 있었다. 이번에는 순철이도 근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분명 밀친 건 나인데,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 pp.70~71 매일 봐도 제주도의 석양은 눈부셨다. 하늘이 온통 불에 타는 것 같기도 했다. “히야, 하늘 좀 봐 봐. 마을 전체가 불에 타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감상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옆에서 나란히 걷던 순철이와 근수가 걸음을 멈춘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둘 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서 있었다. --- pp.103~106 “여기는 바다에서 5킬로미터 안에 포함되는 지역이라 그래도 정말 피해가 적었던 동네야. 그런데 중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이 죽고, 잡혀가고, 마을 전체가 불에 타서 통째로 없어져 버리기도 하고…….” 순철이가 나를 다시 봤다. “네가 노을을 보고 마을 전체가 불에 타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더라.” “아……, 그랬겠구나. 난 전혀 몰랐어.” “당연히 모르고 한 말이었겠지. 나도 알아.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정말 동네 전체가 불에 타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이 많거든. 찬숙이 큰아버지네 집도 그때 불에 타고 가족들도 전부 다 죽었대. 두 돌밖에 안 되었던 사촌 동생도. 그 사촌이 보고 싶다며 큰아버지 따라 놀러 갔던 찬숙이 큰오빠까지. 전부 군경이 쏜 총에 당했대.” --- pp.118~119 아니, 그럴 리 없다. 내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다. 아버지는 그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산 대한민국의 육군일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 섬을 갈아엎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또다시 미궁 속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나를 풀면 또 하나의 문제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답답했다. 아버지에게 감히 이따위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효 같지만 자꾸만 물음표가 생겼다. --- p.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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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대신 보낸 편지〉는 이름 짓지 못한 역사 4·3을 배경으로 가해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반성 그리고 화해를 다룬 작품입니다. 역사적 사건에서 가해자의 아이가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 이야기입니다. 억지스럽지 않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화해의 시도가 자연스럽고 감동적입니다.
- 제2회 현북스 역사동화 공모전 심사평에서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사건에는 각각의 이름이 있어요. 3·1만세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이 그것이지요. 이름만 들어도 그 사건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내용이었을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단어들을 담아서 이름을 짓지요. 그런데 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제주 4·3사건’만은 성격을 알 수 있는 아무런 말을 붙이지 않은 채 그저 ‘사건’이라거나 그도 아니면 ‘제주4·3’처럼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 동안 온 제주를 휩쓸고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은, 마무리되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주 사람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상처로 남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에요.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가면 바닥에 누워 있는 ‘백비’를 볼 수 있어요. 백비(白碑)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하얀 비석이란 말인데,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비석이에요.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 말이지요. 이 비석의 옆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지요.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불려 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