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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티카, 오믈렛을 훔쳐서 두들겨 맞다
2. 페티카, 금시계를 손에 넣다 3. 페티카, 보육원에 들어가다 4. 페티카, 금시계를 마당에 파묻다 5. 페티카, 한밤중에 경찰서에 불려가다 6. 페티카, 금시계 위에 장작더미가 쌓인 걸 보다 7. 페티카, 폐렴에 걸려 앓아눕다 8. 페티카, 잘못을 말하지 못하다 9. 페티카, 공부와 일을 통해 새로워지다 10. 페티카, 나타샤를 만나다 11. 페티카, 금시계를 다시 손에 넣다 12. 페티카, 금시계를 돌려주고 앞으로 나아가다 번역자의 말 “아이들을 구하자” |
Leonid Pantele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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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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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티카는 실망하고 마음이 상한 채로 생각했다. 그제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사람은 그래도 살 수 있을까? 구치소 안에 갇혀 있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하늘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까? 대단한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그까짓 달걀빵 때문이라니, 쳇! 빌어먹을.
하지만 우연히 구치소 옆 칸의 주정뱅이 아저씨에게서 ‘금시계’를 뺏고 나서, 자신의 뒤바뀐 운명에 ‘와, 정말 운이 좋은걸!’ 이라고 하면서 ‘잘 됐다. 모든 게 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금시계’는 이후 페티카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된다. 보육원에 가게 된 페티카는 금시계 때문에 보육원에 머물게 되는데??. 페티카는 이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알게 된다. 따뜻한 목욕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식사 그리고 폭력행위에 대한 엄격한 금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벌을 주지만 그것도 복도에 서 있게 한다든가, 밖에 놀러 나가는 걸 금지하는 정도이다. --- p.11 “음,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여기에서는 누구도 때려서는 안 된다. 사람을 때리는 건 안 돼. 거리에선 그랬더라도. 여기에선 절대 안 돼. 알겠니? 다른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넌 여기에 서 있거라.” 또한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보육원 살림을 한다. 일의 의미를 가르치고 책임에 대해 배우게 한다. 처음에 일을 맡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지만, 페티카는 일을 하면서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 --- p.60-61 페티카는 보육원의 경제 사무를 책임지게 되었다. 처음엔 자신이 생각해도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치 장사꾼처럼 열쇠를 들고, 윗옷 주머니에는 연필을 묶은 공책을 넣고 다녔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도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지?그러나 그 해답은 얼마 안 가 얻게 되었다. 너무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 일을 하고 나면 바로 저 일을 해야 해서 여기저기로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 p.124~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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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페티카는 가족도 없고 집도 없으며, 거리를 떠돌며 먹을 것을 훔칩니다. 학교는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나이에 비해 약삭빠르고 영악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페티카가 깨끗한 침구와 따뜻한 방,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사, 따뜻한 보살핌과 자신을 믿어 주고 아껴 주는 어른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본래의 올바른 마음을 되찾게 됩니다. 페티카를 믿어 준 경찰관, 페티카를 동정하는 보건 선생님, 페티카에게 폭력은 안 된다고 가르치는 보육원 원장, 그리고 페티카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친구 미뤄눠프.
페티카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바로 현재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주위 사람들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데 주위에서 관심 갖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 동화는 러시아 작가 판텔레예프(Leonid Panteleev)가 쓴 동화를 중국의 루쉰이 번역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의 방정환과 중국의 루쉰은 비슷한 시기를 산 분들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문학 활동으로 제국주의에 맞선 운동을 했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정환이 주로 어린이 문화 운동에 힘을 쏟았다면, 루쉰은 아동문학 작품을 번역했습니다. 두 『금시계』가 발표된 시기는 비슷하지만, 주인공과 사건의 전개 등 내용은 다릅니다. 같은 시대에 한국과 중국에서 어린이 문화 활동을 했던 두 인물이 같은 제목의 동화를 쓰고, 번역했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루쉰은 낡은 중국 사회가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글을 썼습니다. 또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을 골라 번역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루쉰이 주로 어른들을 위한 소설과 글을 쓴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동화도 꽤 많이 소개하였습니다. 여기에 소개한 동화는 루쉰이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 『금시계』에는 새로운 아이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선사하여 새로운 세계를 향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루쉰의 뜻과 바람이 잘 담겨 있습니다. 올바른 어린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환경과 더불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그리고 주변 어른들의 따스한 사랑과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