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추천의 글 | 토끼 발과 카페오레
감수의 글 | 위대한 작가의 불완전한 시절 소개 서문 1부 길 위의 방황 생 미셸 광장의 좋은 카페 거트루드 스타인의 가르침 길 잃은 세대 가난한 소설가를 위한 서점 센강은 고독해 2부 파리를 헤매는 시간 봄날 아침 경주마에 거는 도박 배고픔에 대한 생각 작가들의 뒷담화 행운의 부적과 방해꾼 3부 펜 끝이 향하는 곳 위스키를 마시는 화가 에즈라 파운드의 후원 모임 잘 가시오, 스타인 선생 동명이인을 만나다 주머니에 시를 넣고 다니는 남자 악의 대리인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하여 4부 초조한 마음 미친 소설가 부부 크기의 문제 파리는 영원한 축제 |
Ernest Hemingway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의 다른 상품
정지현의 다른 상품
김욱동의 다른 상품
“그래. 피카소는 자네 수준이 아니야. 비슷한 또래들 그림으로 사야지. 자네처럼 전쟁에 나가 군복무를 한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을 알게 될 걸세. 근방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실력 있는 신인 화가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자네가 옷을 많이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항상 여자들이야. 비싼 건 여자 옷이거든.”
아내는 스타인 선생이 입은 이상한 싸구려 옷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행히 억지로 시선을 피하는 티가 나진 않았다. 그들은 우리 집 방문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우리를 여전히 좋게 생각하는 듯했고 플뢰루스 거리 27번지에 다시 와 달라고 초대했다. --- p.46 「거트루드 스타인의 가르침」 중에서 “그의 소설은 어때요?” 내가 물었다. 선생은 앤더슨의 작품에 대해서는 조이스만큼이나 입에 올리기를 싫어했다. 그녀 앞에서 조이스의 이름을 두 번 꺼냈다가는 다시는 그녀의 집에 초대받지 못할 것 같았다. 한 장군 앞에서 다른 장군을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실수를 처음 하는 순간,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남았다. 반면 그 장군이 이긴 적 있는, 패한 장군에 대해서는 언제든 언급해도 된다. 장군은 신이 나서 자신에게 패한 장군을 오히려 칭찬하고 자기가 어떻게 이겼는지 자세한 무용담을 들려줄 것이다. --- p.58 「길 잃은 세대」 중에서 사실은 그동안 걱정하지 않았다. 내 단편들은 꽤 훌륭하니까 결국 미국에서 발표되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신문사 일을 그만두었을 때는 단편이 출간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보내는 원고마다 돌아왔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이유는 에드워드 오브라이언이 내 단편 「나의 아버지」를 『최고 단편선Best Short Stories』에 넣어 주었고, 그해에 그 책을 나에게 헌정했기 때문이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맥주를 더 마셨다. 그 단편은 잡지에 실린 적이 없었지만, 오브라이언이 그의 원칙을 깨고 책에 실어준 것이었다. 내가 또 혼자 피식거리자, 웨이터가 내 쪽을 힐끔거렸다. --- pp.102-103 「배고픔에 대한 생각」 중에서 에즈라 파운드는 언제나 좋은 친구였다. 그는 항상 사람들을 도와주곤 했다. 그가 아내 도로시와 함께 사는 노트르담 데 샹 거리의 아파트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아파트와는 극과 극일 정도로 가난했다. 그래도 빛이 잘 들었고, 난로를 따뜻하게 피웠으며 에즈라가 개인적으로 아는 일본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일본 귀족 출신이었고 머리를 길게 길렀다. --- p.140 「에즈라 파운드의 후원 모임」 중에서 피츠제럴드 부부는 에투알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틸시트 14번지에 있는 가구가 비치된 아파트를 빌려서 살고 있었다. 그때는 늦봄이라서 시골 풍경이 최고로 아름다울 테니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스콧은 정말 친절하고 이성적인 사람 같았다. 물을 섞지 않은 위스키 두 잔을 마시고도 멀쩡했다. 지금 이렇게 매력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을 보니 며칠 전 딩고에서의 일이 불쾌한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리옹에 함께 가겠다고 했고, 언제 떠날 것인지 물었다. --- pp.186-187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하여」 중에서 스콧은 젤다를 매우 사랑했고, 그녀에 대한 질투심도 있었다. 그는 나와 산책할 때 아내가 프랑스 해군 조종사와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그녀가 또다시 다른 남자 때문에 그를 질투하게 만든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해 봄 젤다는 다른 여자들과 어울려 스콧이 여자들을 질투하게 했다 --- p.222 「미친 소설가 부부」 중에서 파리에는 끝이 없다. 파리에서 산 적 있는 사람들의 기억은 그 누구의 기억과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어렵거나 쉬운 상황인지 상관없이 늘 파리로 돌아갔다. 파리는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파리는 항상 가치 있는 곳이었고 무엇을 가져가든 꼭 돌려주었다. 내가 아주 가난하고 아주 행복했을 때, 나의 첫 파리는 그랬다. --- pp.254-255 「파리는 영원한 축제」 중에서 |
1921년 청년 헤밍웨이의 서툰 시절을 담은 파리 회고록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파리를 떠올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헤밍웨이는 이렇다. 전쟁문학의 걸작인 『무기여 잘 있거라』로 명성을 얻었고,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로 수십만 부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둔 작가. 인간의 한계를 불굴의 정신으로 풀어낸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자신의 문학론을 통해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명문을 남긴 작가. 우리가 알고 있는 헤밍웨이는 보통 이 정도다. 그가 명성을 얻은 이후의 모습에 국한될 뿐 그에게도 서툰 시절이 있었음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한다. 위대한 소설가 헤밍웨이에게도 서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헤밍웨이는 스물다섯에 해외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건너가 아내 해들리와 가난하게 살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헤밍웨이는 문학계 동료들뿐만 아니라 예술계 유명인들까지 우연히 만나 교류하며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헤밍웨이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떠올리면 된다.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벨 에포크(유럽의 태평성대) 시대의 예술가들.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폴 고갱, 그리고 헤밍웨이. 국적도 다르고 예술론도 다른 그들은 모두 프랑스 파리로 왔고 서로를 만났다. 생 미셸 광장의 카페에 가면 언제나 누구 한 명은 꼭 그곳에 있었고 혹시 아무도 모르더라도 간단한 소개로 새로운 친분을 가질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문학적 성공의 자양분은 파리였다고 할 수 있다. 스물다섯의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예술론을 공부하며 역량을 키운 덕에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작가로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명성을 얻은 이후 1957년 가을 쿠바에서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회고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위대한 작가의 사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당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마치 흑백영화를 보듯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물다섯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만난 예술가들 삶의 본질적 고통과 그들이 던진 찬란한 질문들 이 책에는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만났던 인물들과의 일화가 자세히 소개된다. 특히 사람인 거트루드 스타인과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당대에 이미 문학계 거장으로 인정받은 거트루드 스타인은 청년 헤밍웨이와 그의 지인 예술가들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명명했다. 길 잃은 세대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절망과 허무감을 문학에 반영한 젊은 세대를 뜻했으며 인생의 의미나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는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예술가였다. 스타인은 허무와 체념에 빠져 일상을 내팽개치는 길 잃은 세대를 향해 자주 쓴소리를 퍼부었다. “자네들은 모두 길 잃은 세대야. 전쟁에 나갔다 온 젊은이들 전부 다 마찬가지라고. 자네들은 재능은 있지만 존중심이란 게 전혀 없어. 죽도록 술만 퍼마시고 헛소리만 내뱉으면서 다 파괴하려고 하지.” 스타인이 하는 말을 듣고 그날 밤 헤밍웨이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자기중심적이고 정신적 나태함을 간직한 스타인과 (헤밍웨이의 지인이자 소설가인) 셔우드 앤더슨의 절제력을 비교해 보면 누가 누구를 길 잃은 세대라고 명할 수 있겠는가? 헤밍웨이는 길 잃은 세대라는 명칭을 “비열한 꼬리표”라고 반박하며 한 세대를 납작하게 평하는 스타인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계 거장인 스타인은 헤밍웨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여러 예술가 인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정한 위로와 애정을 표하는 스타인을 떠올리며 헤밍웨이는 “어쨌거나 거트루드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1920년대 파리는 이런 곳이었다. 서로를 폄하하고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 한 세대를 자기 마음대로 명명하고 타인을 쉽게 평가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뭉칠 때면 무엇도 따지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다른 이들을 도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파리라는 장소가 주는 무한한 특권이었을지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지나간 것들을 두고 미웠던 것까지도 모두 사랑했었다고 회고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무척 가난하고 매우 행복했던, 우리들의 눈부신 젊은 시절 파리의 모습 그 자체를 뜻한다.” 한 작가의 인생론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의 소설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다채로운 삶에 대한 행적을 낱낱이 좇는 게 중요하다. 파리에서 머문 6년의 시간은 헤밍웨이에게 소중했던 시간이다. 그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만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가난하고 미숙했던 헤밍웨이만이 말할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이었는지. 당대의 가장 유명했던 예술가들이 실제로 어떤 말을 주고받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헤밍웨이의 눈으로 보았을 때 거트루드 스타인의 이기주의와 피츠제럴드의 부부 싸움은 어떤 모습을 하였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이 씨앗이 되어 30년 후 헤밍웨이를 위대한 소설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서툰 시절’은 있을 수 있다. 하물며 위대한 작가에게도 그런 시절은 필연적이다. 가난하고 미숙한,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청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가능성을 품고 살아갔던 헤밍웨이와 당대 예술의 도시 파리의 삶을 탐험할 시간이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위대한 작가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가 되고 싶든 글을 잘 쓰고 싶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싶든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배경이 필요한 법이다. 헤밍웨이에게 파리는 자양분이었다. 그가 이룬 업적의 모든 것이 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파리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헤밍웨이의 아주 사소한 진면모까지 모두 알고 싶다면 그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파리의 생활을 꼭 알아 둘 필요가 있다. (...)
위대한 작가의 사소한 일상까지 모두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드나든 카페와 광장, 거리 그리고 서점. 일상에서 만난 친구와 문인들. 생생히 전달되는 대화와 당대의 예술들. 이것은 한편의 생생한 흑백 영화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것과 같다. 헤밍웨이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함께 파리로 가야 한다. - 김욱동 (교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헤밍웨이의 파리가 자아내는 노스탤지어는 우리가 과거를 향해 자주 품게 되는 그것과는 다르다. 그의 파리가 선사하는 축제는 언제나 동시대적이다. 그가 늘 노트와 연필을 지참하고 주머니에 부적처럼 토끼 발을 넣어두고 (「행운의 부적과 방해꾼」) 여행하듯 살아내는 파리의 매일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멕시코 요리가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은 두 명의 외국인처럼 이국적이기 그지없고, 백여 년 전의 시공간은 너무나 현재적인 순간들로 우리에게 도래한다. 이 책과 짝패인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중요하게 제시하는 바도 그와 같다. 모든 과거는 세계의 가장 좋은 시절Belle Eoque이다, 그러니 곧 명예로운 과거가 될 지금 이 순간에 몸을 흠뻑 담가라. (...)
자, 이제 당신 앞에 놓인 카페오레를 들어라. 토끼 발을 주머니에 넣은 두꺼운 손의 마초와 함께 오늘을 방랑해보자. 과거가 아닌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을 말이다. 헤밍웨이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와 함께 움직이는 당신은 세계의 좌표를 바꿀 것이다. - 전승민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