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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내 하는 이 말을 조용히 들으라
총석정 해돋이〔叢石亭觀日出〕 좌소산인에게〔贈左蘇山人〕 비가 잠깐 걷을 때 길을 가다가〔一鷺 道中乍晴〕 농가집〔田家〕 해인사海印寺 새벽에 길 가다가〔曉行〕 극한極寒 산길을 가다가〔山行〕 압록강을 건너서 용만성을 바라보고〔渡鴨綠江回望龍灣城〕 구련성에서 노숙하면서〔露宿九連城〕 통원보에서 비에 막혀 묵으면서〔滯雨通遠堡〕 요동벌의 새벽길〔遼野曉行〕 연암에서 돌아간 형님을 생각하고〔燕岩憶先兄〕 2부 양반이 한 푼도 못 되는구려 방경각외전 머리말〔放?閣外傳自序〕 말거간전〔馬?傳〕 예덕 선생전穢德先生傳 민 노인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김 신선전金神仙傳 광문자전廣文者傳 우상전虞裳傳 허생전許生傳 범의 꾸중〔虎叱〕 열녀 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3부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중국에서 마음 맞는 벗을 사귀다〔會友錄序〕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楚亭集序〕 어떻게 영숙의 길을 만류하겠는가〔贈白永叔入麒麟峽序〕 생활이 유익해야 덕이 바로 선다〔洪範羽翼序〕 보름날 해인사에서 기다릴 것이니〔海印寺唱酬詩序〕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孔雀館文稿自序〕 의인과 소인배〔大隱菴唱酬詩序〕 역관 보기 부끄러워〔自笑集序〕 멀리 보이는 산에는 나무가 보이지 않고〔鍾北小選自序〕 말똥구리의 말똥덩이〔?丸集序〕 파란 앵무새에게 말하노니〔綠鸚鵡經序〕 선비의 작은 예절〔愚夫艸序〕 뒷동산 까마귀는 무슨 빛깔인고〔菱洋詩集序〕 사흘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북학의〔北學議序〕 책을 빌려 주지 않는 사람들아〔柳氏圖書譜序〕 무관의 시는 현재의 시다〔?處稿序〕 아침 나절에 도를 듣는다면〔炯言挑筆帖序〕 옛 사람을 모방해서야〔綠天館集序〕 내 책으로 장항아리를 덮겠구나〔冷齋集序〕 먹던 장도 그릇을 바꾸면 새 맛〔旬稗序〕 몇백 번 싸워 승리한 글〔騷壇赤幟引〕 밤길의 등불 같은 책〔爲學之方圖跋〕 4부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 제 몸을 해치는 것은 제 몸속에 있으니〔以存堂記〕 백척오동각을 지어 놓고〔百尺梧桐閣記〕 연암의 제비가 중국에서 공작새를 보다〔孔雀館記〕 아침 연꽃, 새벽 댓잎〔荷風竹露堂記〕 제 몸 혼자 즐기기에도 오히려 부족하다〔獨樂齋記〕 곽공을 제사 지내며〔安義縣縣司祀郭侯記〕 다섯 아전의 큰 의리〔居昌縣五愼祠記〕 천 년 전의 최치원을 기리며〔咸陽郡學士樓記〕 흥학재를 지은 뜻〔咸陽郡興學齋記〕 바위에 이름을 새긴들〔髮僧菴記〕 여름밤에 벗을 찾아서 놀다〔夏夜?記〕 사흘째 끼니를 거르고〔酬素玩亭夏夜訪友記〕 겨울 눈 속 대나무〔不移堂記〕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素玩亭記〕 내가 하나 더 있어서〔琴鶴洞別墅小集記〕 늘그막에 휴식하는 즐거움〔晩休堂記〕 자고 나니 내가 없구나〔念齋記〕 나무가 고요할 때야 바람이 어디 있느냐〔蟬橘堂記〕 말머리에서 무지개를 잡으니〔馬首虹飛記〕 벗들과 술에 취해서〔醉踏雲從橋記〕 5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이름을 걸고 칼날 위에 서다〔名論〕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 주어라〔限民名田議〕 서자는 부끄러운 자식입니까〔擬請疏通?疏〕 천하 사람의 근심을 앞질러 근심하시오〔賀三從姪(宗岳)拜相因論寺奴書〕 화폐가 흔한가 귀한가〔賀金右相(履素)書〕 김귀삼의 살인 사건〔答巡使論密陽金貴三疑獄書〕 장수원의 강간 미수 사건〔答巡使論咸陽張水元疑獄書〕 굶주린 백성이 살 길〔答丹城縣監李侯論賑政書〕 나는 껄걸 선생이라오〔答大邱判官李侯論賑政書〕 과연 나를 아는 정도가 너무다 얕다〔答應之書一〕 오래 머물랴, 급히 떠나랴〔答應之書二〕 돼지 치는 이도 내 벗이라 나더러 오랑캐라 하니〔答李仲存書一〕 《열하일기》에 아직도 시비라니〔答李仲存書二〕 웃음의 말〔答兪士京書〕 아이가 나비를 잡으려 하나〔答京之 之三〕 약하게 단단할지언정〔與中一 之三〕 이름을 숨기지 말고〔答蒼厓 之一〕 도로 네 눈을 감아라〔答蒼厓 之二〕 개미와 코끼리〔答某〕 평생 객기를 못 다스리더니〔答洪德保書 第一〕 돼지 치는 이도 내 벗이라〔答洪德保書 第二〕 출세한 벗에게 이르노니〔答洪德保書 第三〕 나의 벗 홍대용에게〔洪德保墓誌銘〕 |
朴趾源, 호 :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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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허순용(sellavy@yes24.com)
연암 박지원은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걸출한 문장가요 사상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 진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박지원의 문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우선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열하일기>조차 완역본을 구할 수 없었으며(민족문화추진회에서 나온 것은 오래 전에 절판되었다),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 교과서를 통해 알려진 소설 몇 편을 제외하곤 그의 글을 구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일부 작품이 출간된 경우라도 출판사에 따라 작품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기 일쑤여서 박지원의 전체적 면모를 엿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열하일기>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는 출간의 의미가 매우 크다. 특히 <열하일기>의 가치는 말을 보태는 것이 사족에 가까울 정도로 탁월한 것이며, 그 번역이나 제작 상태 또한 훌륭하여 높이 칭송할 만하다. 그런데 <열하일기>가 워낙 대단한 작품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감이 있다. 하지만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도 결코 놓칠 수 없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 책은 연암의 문집에서 가려 뽑은 90여편의 글을 싣고 있다. 특히 소설은 전 작품 모두 수록되었고, 시13수, 각종 문집 서문과 상소, 논문, 묘지명, 그리고 척독(짧은 편지글)까지 두루 실려 있다. 게다가 책 뒤에는 연암 연보와 원문, 6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전문연구가의 해설까지 붙어 있다. 이를테면 이 작품집은 연암 선집으로서 빼어난 체재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리즈는 북한에서 편집한 것이라 북한 학자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이 책의 번역자가 벽초 홍명희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우리에겐 작은 즐거움이 된다. 북한 학자의 번역은 남한 학자에 비해 진솔하고 구수하며, 오염되지 않은 우리 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연암의 문학 세계는 한 마디로 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비범한 재능은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 혹은 볼테르처럼, 그 시대 뿐 아니라 그 나라 전체를 대표할 만큼 크고 높은 것이다. 그는 말의 군대를 지휘하는 탁월한 장군으로, 힘과 세기,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천재였다. 그는 비유의 달인이었고, 함축, 생략, 숨겨두기의 명인이었다. 엉뚱한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절묘하게 주제와 갖다붙이는 재능에서 그의 오른 편에 나설 자는 없다. 독창성과 자유분방함, 핍진한 묘사와 도도한 논설이 읽는 사람을 거듭 감탄케 한다. 이 작품집은 이러한 그의 풍요로운 표정과 깊은 내면을 담고 있다. 물론 <열하일기>를 읽지 않고 박지원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또 여기 실린 글들을 읽지 않고 그를 논할 수도 없다. 특히 시 <좌소산인에게(贈左蘇山人)>, 박제가의 문집 서문인 <옛 것을 배우랴 새 것을 만들랴(楚亭集序)>, 글을 군대의 진법에 비유한 <몇백 번 싸워 승리한 글(騷壇赤幟引)> 등은 그의 문예미학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한편 그는 유머를 즐기고 신분을 초월하여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벗들과 술에 취해서(醉踏雲從橋記)> <돼지 치는 사람도 내 벗이라(答洪德保書 第二)> 같은 산문, 기타 척독이나 묘지명에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넘친다. 다만, 선집이다 보니 그랬겠지만, 명편(名篇) 중의 하나인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이 빠진 것은 좀 아쉽다. 덧붙여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은 박지원 관련서가 몇 권 있다. 박지원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비슷한 것은 가짜다(정민, 태학사)>는 꼭 읽어보시라. 작품을 전재하고 한번 읽은 다음 분석/해설해 주는데, 박지원의 글이 가진 깊이와 맛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도 있어 일거양득이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종채, 돌베개)>도 추천한다. 박지원의 아들이 쓴 <과정록>을 번역한 것인데, 다른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가 들어있다. <열하일기 연구(김명호, 창비)>는 절판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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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껄껄 선생이라오》가 지닌 특별한 점 몇 가지
하나, 연암의 시를 홍기문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는 ‘총석정 해돋이‘를 비롯해 모두 10편의 시가 실려 있다. 홍명희 선생의 아들인 홍기문이 한시의 맛을 한껏 살린 우리 말로 번역해 놓아 문장가로서의 연암을 새롭게 만나게 해 주고 있다. 연암의 글을 모아 놓은 정민 교수의 《책 읽는 소리》, 《비슷한 것은 가짜다》나 김혈조 교수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에는 들어 있지 않은 것이라 연암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퍽이나 반가운 글이다. 특히 ‘총석정 해돋이‘는 보리에서 펴낸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에도 실려 있어서, 두 가지 번역을 함께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으리라 믿는다. 연암이 고루한 옛 문체를 버리고 새로운 문체를 쓰게 된 까닭을 알게 하는 ‘좌소산인에게‘도 중요한 작품이다. ?내가 보았노라 세상 사람들이 / 남이 지은 글 칭찬하는 것을. / 산문은 으레 한나라에 비기고 / 시라면 당나라를 이끌어대겠다. / 같다고 말하니 이미 참 아니라 / 한나라, 당나라가 어디 또 있으랴? / 우리네 버릇이 전례를 좋아해 / 야비한 이 말도 이상할 게 없겠다.? 연암이 주장한 법고창신의 정신이 이 시 한 편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서 용만성을 바라보고〔渡鴨綠江回望龍灣城〕‘나 ‘구련성에서 노숙하면서〔露宿九連城〕‘, ‘통원보에서 비에 막혀 묵으면서〔滯雨通遠堡〕‘, ‘요동벌의 새벽길〔遼野曉行〕‘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꼭 함께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둘, 연암의 미학 사상이 잘 드러난 산문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에는 시와 소설을 빼고 모두 69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의 작품에서 연암의 문학론을 엿볼 수 있다. 이덕무의 시를 두고 상사람의 비속함과 시속의 일을 담고 있어 비루하다고 평하자 ‘무관의 시는 현재의 시다〔?處稿序〕' 라는 글에서, "옛날을 본위로 삼아 지금을 본다면 지금이 참으로 비속한 것이지만, 옛 사람이 자기를 스스로 볼 때도 그 역시 자기를 꼭 옛날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 당시 보는 사람에게는 역시 지금일 뿐이다." 라는 말로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했다. 또한 연암은 ‘예덕 선생전‘에서 겉으로 드러난 지위나 계급을 넘어 사람이 지닌 인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람의 향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이 짧은 소설에서 밝혀 놓고 있는 것이다. "본디 사람의 숨이 떨어지면 입 안에 구슬을 넣어 주는 것도 깨끗이 가란 뜻일세그려. 저 엄 행수가 똥을 지고 거름을 메어다가 그걸 업으로 사는 것이 지극히 깨끗지 못하다고 보겠지만 생활은 지극히 향기롭고, 몸을 굴리는 것이 지극히 더럽다고 보겠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은 지극히 높은 것일세. 그 뜻을 미루어 생각건대 비록 굉장한 벼슬자리도 그를 움직이지는 못할 것일세." 셋, 연암의 실학 사상을 담은 산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돼지 치는 이도 내 벗이라〔答洪德保書 第二〕‘에서 연암은 홍덕보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에서나 바른길로 인도해 준다면 돼지를 치는 종놈도 내 어진 벗이요, 의리를 가지고 충고해 준다면 나무하는 머슴도 내 좋은 친구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친구나 벗을 전연 못 가진 것은 아닙니다."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배울 수 있고, 누구와도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이었다. 허례허식에 빠져 정작 취해야 할 것을 취하지 않고, 공리공담만 일삼는 당대의 양반들은 연암이 보기엔 명예와 잇속, 권세의 허망에 빠져 제대로 선비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함양에서 벼슬을 사는 동안 새로 지은 흥학재에 쓴 기문 ‘흥학재를 지은 뜻〔咸陽郡興學齋記〕‘에서 연암은, "만약에 농사짓고 누에치는 일을 흥성시키고 세금과 부역을 공평히 하면 도망가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본래의 생업으로 돌아가서 인구가 저절로 늘어날 것이요, 따라서 군사 관계의 일을 정비하는 것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소송 사건과 아전의 작폐도 번거로운 형벌이 없이 줄어들고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앞세워야 하겠는가? 교육을 가장 앞세워야 한다. 어떻게 앞세울 것인가? 자기 몸으로써 솔선 앞세워야 한다." 고 썼다. 연암은 농사가 잘 되고, 세금과 부역이 공평해야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서, 연암은 자신의 글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태도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굶주린 백성이 살 길〔答丹城縣監李侯論賑政書〕‘에도 이런 연암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넷, 중세에서 근대를 꿈꾼 지식인 연암의 새로운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연암은 백성들이 유리 걸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부호들의 겸병과, 그 겸병을 방임하고 있는 법제상의 결함에 있다고 보았다.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 주어라〔限民名田議〕‘에는 연암이 실시하고자 했던 토지 정책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정확한 수치를 동원해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한 이 글은 명쾌한 논리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핵심에 파고드는 확고한 설득력을 지닌 명문장이다. "토지 소유를 제한한 이후라야 토지의 겸병이 그치고, 토지의 겸병이 그친 이후라야 산업이 균등해지고, 산업이 균등해진 이후라야 백성들이 모두 땅에 꽉 붙어서 각각 자기의 농경지를 경작하는 동시에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이 드러나고,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이 드러난 이후라야 농업을 장려할 수 있고 백성들을 교양할 수 있습니다." 연암은 또, ‘화폐가 흔한가 귀한가〔賀金右相履素書〕‘에, "이제 백성들이 걱정하는 문제와 나라의 중요한 계책이 오로지 화폐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외국과 배가 통하지 않고 국내에서도 수레로 왕래하지 않으니 만든 화폐가 그만큼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국가에 있지 않으면 민간에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국가나 민간이나 모두 돈이 말라서 위아래에서 쩔쩔매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재정 정책이 합당치 못한 까닭입니다." 라고 적어 놓았다. 화폐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이며, 국내 물자를 어떤 식으로 유통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연암의 정책 제안서를 읽다 보면 연암을 일러 ‘시대를 앞서 나간 거인‘이라 하는 까닭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적서 차별의 부당함을 밝힌 ‘서자는 부끄러운 자식입니까〔擬請疏通疏〕‘ 또한 연암의 근대 의식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글이다. 다섯, 연암의 단편 소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유일한 책이다! ‘허생전‘이나 ‘양반전‘, ‘범의 꾸중‘ 같은 소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글들이다. 교과서나 개별 이야기만 따로 떼서 만든 단행본으로나 여러 가지 형태로 알려진 작품들이기도 하다. 이 세 작품에 비해서는 다소 덜 알려지긴 했지만 ‘방경각외전‘의 소설들 또한 사회에서 배척받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양반 계급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열녀 함양 박씨전‘은 수절을 강요하는 사회 세태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욕구를 긍정적으로 인정한 진보적인 윤리관을 담고 있는 글이다. 연암이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 내려간 소설 작품들은 그가 쓴 다른 편지글이다 문집 서문, 기문 따위들과는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데, 소설 작품 곳곳에서 이야기 형식을 빌어 당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자의 혜안과 문장력에 놀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