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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소리가 우리의 자리가
취약함과 연결에 관한 열세 번의 만남
박지하
이매진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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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왜 그토록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했을까

1부 여기 내 자리는 어디인가
이 새벽을 넘기면 어떤 아침이 올까
거부당한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이 자리를 내 자리로 만들겠다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구명줄
존재에 자격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맞서

2부 취약한 정체성들을 교차하며 나를 설명하기
환대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초대장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을 넘어
그럼 내가 하자, 여기서 뭐라도 하자
어울리고 말고를 떠나서 내 소개니까
벽장을 나와 다시 만난 세계

3부 들을 마음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내 얼굴을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당신이 모르는, 또 알 수도 있는 그런 사람
그래 어디 한번 나한테도 해 봐라
그렇구나, 알아 두겠다

4부 뜨거운 겨울밤은 가고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 견디는 일
내가 변하면 세상도 더 빨리 변한다
말해도 가닿지 못할 것들을 삼키며
당신의 목소리가 우리의 자리가 될 때

에필로그 저는 ···입니다

저자 소개 1

활동가로 살기를 결심해 놓고는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는 먹는데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나와 우리 운동에 어떤 발전이 있나’ 생각하며 초조해 하는 사람. ‘누구는 얼마를 번다더라’나 ‘누구는 집을 샀다더라’ 같은 말에 위축되지만 앞으로도 주식은 하지 말아야지 결심하고는 또 흔들리는 사람. 국가보안법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사람. 이론 없는 실천은 위태롭다길래 연구자라는 부캐를 시도하지만 여전히 논리보다는 흥에 취해 떠드는 사람.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28*188*20mm
ISBN13
9791155311653

책 속으로

노래가 나오는 동안 나는 무슨 말로 나를 소개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앞선 발언자처럼 농민의 딸이라고 해야 할까? 농활은 여러 번 가면서도 정작 우리 집 과수원에는 한 번도 안 간 내가? 염치도 없다. ‘티케이의 딸’들도 있으니까 ‘충청도의 딸’이라고 할까? 애향심도 없는 내가……. 잠깐만 딸? 내가 어디 가서 딸로 나를 소개한 적이 있나? 어색한데. 페미니스트? 이런 멋진 말로 나를 설명하기에는 타협하며 살아온 시간이 부끄러운데…….’
--- p.10

형대가 대사회 커밍아웃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감동을 기억하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냈다. 그런 미섭은 무대 앞쪽 청중들이 보인 냉담한 반응과 먼 곳에서 들려오는 ‘호로잡년’ 끌어내라는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
--- p.60

서울은 가능성과 다양성이 허용되는 공간으로 상상된다. 그럴수록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더 집중되고 지역은 주변으로, 타자화된 장소로 배치된다. 둘 사이에는 위계가 만들어진다. 서울에서나 가능한 일들, 서울에만 갖춰진 인프라 때문에 서울이 그나마 한국 사회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퀴어로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질수록 지역에 사는 이들은 ‘규범에서 낙오되었다’는 인식을 중첩적으로 하게 된다.
--- pp.102-103

‘자기는 방구석에 웅크려 있던 되게 약한 존재다. 하지만 계엄령을 보고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여기로 나와서 발언을 서게 됐다’라고 했는데,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저희 언니랑 같이 참석을 했었거든요. 집회를. 저희 언니도 좀 그런 은둔 성향이 있어 가지고 그 말을 듣고 되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 p.132

혜연은 무대에서 내려와 눈물을 흘리며 탄원서 서명을 호소하는 전단을 뿌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간 전단이 바닥에 버려지거나 밟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고 각오했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500명만 함께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다짐했다. 혼자 힘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었다. 2만 6000명이 넘게 탄원서에 서명하리라고 혜연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 p.151-152

“남태령에서 사회 봤죠? 저는 한번 보면 안 까먹어요.” 그러고는 사라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쪽에서 와서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지 몰라 나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래서 나처럼 혼자 사는 후배 목청 좋은 사회자 박민주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나보다 얼굴이 더 많이 알려진 너는 집회 마친 밤에 혼자 집에 갈 때 조심히 살피며 다니라고 당부했다. 수빈을 만나고 나서 나는 그 일을 후회했다. 다행스럽게도 박민주는 어차피 내 이야기를 잘 안 듣는다.
--- p.172

집회부터 온갖 행사까지 사회를 봤다. 활동가라는 사명으로 살았지만, 직업은 없어서 불러만 주면 어디든 갔다. 노조나 농민 단체뿐 아니라 대학 축제도 가고, 달집태우기 같은 민속 행사도 가고, 지역 향토 가수들 행사에도 갔다. 판촉 내레이터 모델로 로드 숍 화장품도 팔고, 어린이날에 장난감도 팔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도 팔았다. 그러다가 퇴진 광장 트럭도 타고 무대에도 올랐다.
--- p.221

나는 이탈하지 않고 내 운동을 지키면서 산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20년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런 눈길은 아무 상관 없다. 다만 떠나가는 사람들이 슬플 뿐. 이 자리에 오래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헤어지기를 견뎠을까.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늘 찾아오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기도?

--- p.223

출판사 리뷰

말할 몸과 들을 마음 - 교차하고 연결하고 자기소개하는 취약한 정체성들

이야기는 늘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광장에 나와 무대 위에 서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취약한 정체성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기소개는 이 사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 당당한 구성원으로 환대받지 못한 이들이 건네는 절박한 초대장이다. 이름표 달기다. 목소리 내기이고, 말 걸기다. 굳이 나서서 자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은 모를 마음이다. 말할 것 있는 몸들이 이야기하면 들을 마음 있는 자들이 듣는다. 교차하고 연결하고 자기소개하는 취약한 정체성들은 광장에서 그렇게 이어지고 기록된다.

한정된 시간 동안 여러 사람 앞에서 한 광장 발언 때 못 꺼낸 이야기를 박지하는 정성껏 듣고 쓰고 전한다. 성 소수자로 ‘그냥 살고 싶다’는 평소 생각을 말한 형대, ‘여기 내 자리가 어디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신의 자리가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하러 마이크 앞에 선 트랜스젠더 새벽, ‘할 수 있는 사람’은 해야 한다면서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 ‘맞는 말 하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구조’를 폭로한 레즈비언 미섭, 미섭이 야유받는 모습을 보고 밀어붙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손가락질당할 정체성’을 앞세워 나선 부산 온천장 ‘노래방 도우미’ 유진, 기억하고 싶은 이들 이름을 부르며 ‘보수의 심장’에 무지개 깃발을 띄운 진아, ‘그냥 내 소개니까’ 나라는 존재를 내 목소리로 소개한 ‘화린’, 광장에 선 약한 존재들을 보고 벽장 밖으로 나설 용기를 얻은 ‘지역에 사는 퀴어’ 지구, 내 삶을 짓누르는 고통은 내 탓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한 전세 사기 피해 청년 지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외치자 목소리가 돼 준 이들을 만난 산재 사망 유가족 혜연, 손을 덜덜 떨며 광장에 나온 덕분에 여럿하고 연결된 학교 폭력 피해자 미래, 다음 세대의 증인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현주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취약한 정체성들은 서로 교차하고 함께 연결된다. 내 목소리로 우리 자리를 만든다.

잊지 않고 잇기 - 당신의 목소리가 우리의 자리가 될 때

취약한 정체성들이 광장에서 풀어놓은 자기소개와 밤새 이어진 이야기는 삶을 이어 가게 한 숨구멍이다. 한 사람이 설 자리를 만들고 싶어 한 이야기 덕분에 넓어진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숨 쉰다. 박지하는 잊지 않으려면 잇자고 말한다. ‘잊지 않고 잇기’란 지금 여기에서 연결하기다. 이름표 달기, 목소리 내기, 드러내기, 이야기 듣기, 타자의 얼굴 마주하기, 이어 말하기, 우리 말하기다. 이야기와 목소리에 매겨지는 위계를 전복하고 또 다른 광장에서 낯선 이들을 기꺼이 마주칠 때, 당신의 목소리가 우리의 자리가 될 때, 취약함은 교차하고 연결된다. 당신의 목소리가 우리의 자리가 되려면, 말하는 당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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