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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김용술 “나는 잡초야, 어떤 구뎅이에 떨어져도 악착같이 다시 일어나” 연표 이영식 “나는 가난하고 마누라도 자식도 없어요”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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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그 세계를 몰라. 동물의 왕국이야, 그게. 어떡해, 끗발 없어서 군대 끌려온 놈이. 피할 수도 없고 대들 수도 없구. 그럼 이를 갈면서 버티는 거지. 입대 초기에 그러구 나니까 나중에는 맞는 게 편해지더라구. 여긴 이러구 사는 데다 그러면서 다른 대가리만 굴리는 거야. 그래야 살잖아. 아니면 못 살아. 난 군대가 좋았어.
--- p.51 대한민국은 유병언이 같은 사이비 교주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그런 구조야. 박태선이 세운 전도관이나 문선명이 세운 통일교, 그게 다 유병언이 구원파랑 비슷한 거지. 내가 결혼 전에 전도관에 다녔구, 애들 엄마도 거기 어린이부 교사랬잖아. 그때 박태선이가 신앙촌을 만들었어. 거기가 뿌리가 돼서 우리나라 사이비 종교들이 모두 나왔다고 봐. 나중에 제정신 들어서 보면 그게 다 완전 사기꾼 집단이야. 근데 공무원들 하는 짓이 그거랑 도낀개낀이라니까. --- p.70 그때 정말 못된 짓 많이 했네. 늦게사 성의 희열을 알아서 돈만 있으면 계집질이었어. 유부녀나 처녀들이 아니고 술집에 몸 파는 애들 데리고 노는 거야. 허무하고 말 게 어딨어? 오히려 책임이 없으니까 편하지. 술집 기지바들이랑 하룻밤 풋사랑은 했을망정, 따로 길게 만나고 살림 차리고 그런 거는 없었어. 나중에 집사람이랑 이혼할 때랑 그다음에는 살림도 차려봤지만. 캬바레서 만난 여자들이랑도 여관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길게 연애하고 그런 거는 없었어. --- p.75 일수방 아까워서 니야까에서 자면서 2만 8000원을 키우면서 다시 살아온 거야, 지금까지. 제일 싸구려 돼지호박 5500원 어치로 완전 밑바닥에 굴러떨어진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거야. 그때만 해도 처자식 서울로 불러올릴 일념으로 정신 차리구 모은 거지. 유별나게 바람이 센 모퉁이가 있지. 그걸 지나오면 또 달라져. 나는 잡초야. 어디다 집어던져놔도, 어떤 구뎅이에 떨어져도, 내 힘으로 악착같이 다시 일어나. --- p.99~100 한 놈 한 놈한테 몇 백이라도 쥐어주고 나와야지 생각하니까 최소한 돈 1000만 원은 있어야겠더라구. 그러느라구 자꾸 늦어져. 막내 아들놈이 서른여덟이야, 77년생. 다들 결혼도 하고 자식들도 있겠지. 애들이 더 나이 먹으면 어떻게 될지. 애들 얘기는……그만합시다. 그 얘기만 하면 여엉……(다시 운다). --- p.111 당시 나는 꿈도 없고 그냥 배불리 먹고 친구들이랑 노는 거만 알았죠. 모자르는 게 없는 여건이어서 그랬나 봐요. 아니, 모자른 건 있었는데 채울 수 없는 거였지요. 마음 붙일 곳……, 나를 챙겨주는 어머니나 집, 그런 거요. --- p.170 저러다 죽는구나 싶더라구요. 한참 지나서야 헬기가 와서 그 친구랑 다른 부상자들을 실어 가고 우리는 다른 헬기 타고 부대로 돌아왔어요. 결국 그 친구는 죽었대요. 헬기에서요. 그러면 정말 여러 날을 무지 힘들지요.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그런 소리가 났을까도 싶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소리도 계속 들리는 것 같고. 안됐지요. 제일 팔팔하고 좋을 나이인데 남의 나라 군인으로 남의 나라 전쟁에 와서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으니……. 언제든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 p.200~201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그렇게 떠돌았는지……. 생각해보세요.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온 거잖아요. 그러니 몸이고 마음이고 붕 떠 있는 거예요. 내내 마음을 못 잡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하는 일 없이 돈 떨어질 때까지 술 먹고 여자랑 놀고 그러다가는, 서울 형네도 잠깐 있었고, 동대문 근처에서 완구 노점도 하고. 그렇게 떠돌며 일도 하다가, 뭘 해도 현실감이 없고, 뭘 하고 싶지도 않고.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사람된다고 하는데, 저는 사람이 안 됐어요. 등 비빌 데도 없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목수 일은 그 한참 뒤에 시작한 거예요. 많이 떠돌다가 청주 고향 동네 형 따라서 공사장을 다니다가 목수가 된 거예요. --- p.222~223 조치원서 방황하며 살 때 오다가다 여자들도 여럿 만났고, 같이 산 여자들도 있어요. 그중에는 매춘 생활 하는 여자도 있었고, 남편 있는 여자도 있었구요. 몸 파는 여자는 내가 그 집을 몇 번 가다 보니까 친해지게 됐고, 그러다가 눌러살게 된 거지요. 내가 돈을 벌 때가 아니니까, 주로 여자한테 빈대 붙은 거예요. 매춘하는 여자들이 몰려 있는 동네기는 한데 지방이니까 규모가 작지요. 그런 인연이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사람이 어떤지는 더 겪어봐야 아는 건데, 그걸 알도록 길게 살지는 않았어요. --- p.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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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여자, 돈 ― 아버지가 되지 못한 아버지들 이야기
김용술(71세)은 1945년 해방 때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난다. 일제 강점기에 몰락한 집안은 군산과 속초 등을 떠돌며 가난하게 산다. 아버지는 ‘일본 종놈’을 만들지 않겠다고 학교를 안 보내지만, 김용술은 그 탓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한다. 속초에 정착해 결혼하고 양복을 만들다가 군대에 끌려간다. 제대한 뒤 경기도 안성에서 택시를 몰다가 속초로 돌아와 양복점을 크게 벌인다. 기성복 시장이 커지자 양복점을 접고 섹스 비디오방을 차린다. 그 장사마저 아내에게 맡기고 서울에 와 채소 장사를 하지만 가진 돈 다 도둑맞고 떨이로 파는 ‘돼지호박 5500원어치’로 재기한다. 가정에 소홀해진 사이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외면한다. 속궁합 잘 맞는 강 여사를 만난 뒤 이혼하고 구두 수선을 하며 잘 지내지만, 오늘도 가족들하고 화해하고 자기보다 어려운 노인들을 돕는 노년을 꿈꾼다. 이영식(70세, 가명)은 1946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다. 여섯 살 무렵 실수로 양잿물을 마신 친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큰집에 가서 더부살이한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서울에 와 다방 주방에서 일한다. 남자다워지려고 안 가도 되는 군대에 가지만 작은 키 때문에 무시받자 ‘월남전’에 자원한다. 죽음의 공포를 겪은 뒤 돌아와 오랫동안 방황하며 노숙 생활까지 한다. 목수 일로 자기 생계를 꾸리지만, 가정은 꾸리기가 두려워 평생 홀로 산다. 두 사람의 삶은 군대, 여자, 돈, 군대, 여자, 돈이다. 김용술은 군대는 남자라면 가볼 만한 ‘재미’있는 곳인데 ‘인권’이나 들먹이니 ‘자살’을 하고, ‘꾀’ 못 내고 ‘요령’ 피울 줄 모르고 탈영한 놈들은 ‘병신’이라고 말한다. 이영식도 ‘요즘 애들’이 너무 ‘약해’ 군대에서 ‘사고’가 많다고, ‘때리는 놈’은 ‘통솔’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폭력을 ‘두둔’한다. 그런 두 사람은 화려한 성매매 경험을 자랑한다. “안쓰럽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 그냥 돈 주고 사는 여자지.” “남자 홀리는 여자들이 있거든요. 이쁘게 놀아요. 돈을 반기는 거지 나를 반기는 게 아니지요.” 그렇지만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다. 두 사람 다 평생 쉬지 않고 일했지만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난다. 돌고 도는 돈이 두 사람에게는 손안에 쥔 모래알 같다. 김용술은 자기처럼 ‘손발로 먹고사는 사람’은 ‘부동산 살 만큼 돈’이 모이지 않았다고 하고, 이영식은 평생 모은 돈이 ‘은행에 넣어놓은 5000만 원’밖에 안 되지만 ‘진짜 깨끗한 돈’이라고, ‘30년 노가다로 척추 측만에 망가진 무릎’만 남은 ‘내 몸뚱이’라고 자부한다. 할배의 현대사, 남자들의 고해성사 ― 가난한 남자들의 이야기에 담긴 남성성의 가난함 호탕한 상남자 김용술과 베트남전 참전 용사 이영식의 삶은 얼핏 보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 아니면 꼰대다. 이야기 들어주는 여자 최현숙은 마음속 깊숙이 잠자고 있던 ‘평생 처음 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공감하며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적 없고 제 몫을 해내는 삶을 비하하고 다른 계급의 눈으로 자기 삶이 비정상이었다고 평가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 가난한 남자들이 가난한 남성성을 드러낼 수 있게 이끄는 최현숙은 당신의 삶은 가치 있었다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 위로는 흔들리는 삶에 부대끼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당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곧 나이든 노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