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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면서

제1부 왜 죽어야 하는가 — 문제의 본질

1장 신앙이 바뀌지 않는 이유
2장 “나”라는 존재의 실체
3장 선악의 틀 안에 갇힌 삶
제1부의 결론

제2부 십자가 — 존재 교체의 문

4장 십자가는 무엇을 끝내는가
5장 죽음은 사건인가, 과정인가
6장 죽기 전에 죽는다는 것
제2부의 결론

제3부 실제로 일어나는 죽음

7장 무너짐 —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작업
8장 고통 — 구원의 메신저
9장 침묵 — 자아가 사라지는 공간
10장 기다림 — 하나님의 시간으로 들어감
11장 버려버리기(아피에미)는 어떻게 삶이 되는가
제3부의 결론

제4부 죽음 이후 — 새로운 존재

12장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존재
13장 항상 기도하는 삶의 시작
14장 보좌의 쉼으로 들어감
15장 몸을 통한 통치
제4부의 결론

나가면서
삶으로 쓴 증언들
『죽기 전에 죽는 삶』을 마친 당신에게
보좌시리즈 안내

저자 소개 1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너희가 나에게 큰 순종을 보일 수 있는 곳이다.” 소외된 목사 부부 모습 그대로를 늘 존귀하게 대하시던 주님께서 이제는 붙여주는 영혼들에게 그렇게 대하며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땅에 묻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서툴고 때로는 어리석기까지 한 지난 20년의 목회였지만, 주님께서는 순종하는 저자를 토기장이의 원하심을 따라 빚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저자의 생애와 사역 전반에 걸쳐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현재,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한 영혼이 더 구원받아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즉, 죄 용서를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는 영혼의 거처에서 안식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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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09쪽 | 152*225*20mm
ISBN13
9791122124125

책 속으로

1. 나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니라, 끝나야 할 존재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기도 중에 멈추었습니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갑자기 낯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들의 중심에는 여전히 ‘나’가 있었습니다. 내 불안, 내 소원, 내 판단, 내 방향.
“나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니라, 끝나야 할 존재였다.”
이 말은 정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해방감이었습니다. 더 노력해서 나를 고치려는 수고가 끝나는 자리, 그 자리에서 다른 생명이 시작될 수 있다는 예감이었습니다.
2.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주체입니다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변해야 할 것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보도, 방법도, 환경도 아닙니다. ‘나’라는 주체입니다.
3. 그리스도가 사시기에 나는 존재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존재한다’는 근대적 자아의 선언은 십자가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의 선언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사시기에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존재 교체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수양이 아닙니다. 노력으로 이루는 변화도 아닙니다. 실제로 주인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존재의 중심이 됩니다.
4. 죽음은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단회적 사건입니다. 이미 일어났습니다. 완료된 일입니다.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야 할 영적 목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삶 속에서 실제가 되어 가는 것은 과정입니다.
결국 죽음은 목표가 아닙니다.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오늘,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됩니다.
5. 아피에미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존재를 맡기는 자리입니다
버려버리기(아피에미)는 내 힘으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붙들 수 없는 자리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내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의 주권 자체를 하나님께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아피에미는 내 신실함을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Pistis Christou)에 존재를 맡기는 자리입니다.
6. 무너짐은 인간 주권의 파산 선언입니다
무너짐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작업입니다. 무너짐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붙들고 있던 거짓 기반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인간 주권의 파산 선언이며, 자기 통치가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경계선입니다.
7. 보좌의 쉼은 인간의 상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의 귀환입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통치하고 계신 실재 안으로 존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안식은 이미 임하신 하나님, 이미 연합된 그리스도의 실재 안으로 존재가 내려앉는 것입니다.
보좌의 쉼은 인간의 상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의 귀환입니다. 이 쉼은 나태함이 아닙니다. 가장 능동적인 순복입니다.
8. 안식처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안식처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살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실재’를 입은 그 사람 자신이, 알고리즘이 침범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안식처, 곧 성령의 집이 됩니다.
그리고 그 통치는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시작됩니다.
9. 내려놓으려는 것과 버려버리는 것의 차이를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겉으로는 내려놓은 것 같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남편이 바뀌기를 계속 기대하며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남편마저 하나님께 버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변화시키는 일은 제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온전히 맡겨 드렸습니다.
‘내려놓으려는 것’과 ‘버려버리는 것’의 차이는, 내가 여전히 붙잡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손을 떼느냐의 차이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45세, 간호사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살아가십니다
이 책은 당신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기 위해 씌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 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알아보게 하기 위해 씌어졌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와 함께 살아났으며, 하늘 보좌에 함께 앉혀졌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인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당신 안에서 살아지고 있는가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살아가십니다. 보좌의 생명이 지금 여기에서 흐릅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더 죽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십자가에서 이미 끝난 ‘나’에서 시작되는 존재 교체의 복음

“왜 이렇게 오래 믿었는데 나는 아직도 변하지 않는가?”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한 번쯤은 이 질문 앞에 선다. 말씀을 알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한다. 더 좋은 신앙인이 되려고 애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갈등이나 두려움이 찾아오면 오래된 자기 방어가 다시 나타난다.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고, 미래를 통제하려 하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다시 결심한다. 더 기도하자. 더 낮아지자. 더 내려놓자. 더 죽자. 『죽기 전에 죽는 삶』은 바로 이 자리에서 신앙의 방향을 뒤집는다. 정말 부족한 것은 노력의 양인가? 아니면 그 모든 노력을 수행하는 ‘나’가 여전히 삶의 주체로 남아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관통한다.
저자는 어느 날 기도 중 자신의 말이 멈추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 기도의 중심에는 자신의 불안과 소원, 판단과 방향이 가득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듣는 분이었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마저 자신의 드라마를 들어 주는 청중이 되어 있었다. 그때 한 문장이 찾아왔다.
“나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니라, 끝나야 할 존재였다.”
이 말은 정죄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이었다.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고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끝없는 종교적 수고에서 벗어나, 다른 생명이 시작될 수 있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위기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존재의 위기입니다

이 책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다.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설교와 강의, 성경 프로그램과 영성 콘텐츠도 넘쳐난다. AI는 이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글쓰기와 분석, 창작과 판단의 일부까지 인간 대신 수행한다. 그런데 정보가 늘어난 만큼 존재도 깊어졌는가? 저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AI 시대의 위기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존재의 위기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지식을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있다. 성경 지식조차 자기 통치를 강화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고, 내가 적용하고,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한, 신앙의 재료가 달라져도 삶의 왕좌에 앉아 있는 주체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에덴으로 돌아간다. 선악과는 단순히 하나의 금지된 열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선악의 판단 기준이 되어 삶의 중심에 서려 한 사건이다. 그 자기 통치는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특히 알고리즘은 인간 안에 이미 존재하는 욕망과 분노, 두려움과 선호를 학습하여 같은 판단을 반복해서 강화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반복된 반응 구조 안에서 점점 더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십자가는 ‘나’의 종결을 선언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복음은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십자가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십자가는 자기 학대나 종교적 자기 부정이 아니다. 십자가는 죄만이 아니라 자기 통치의 주체인 ‘나’의 종결을 선언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 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한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며, 하나님마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던 옛 주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끝났다. 그리고 다른 생명이 시작된다.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존재 교체다.
여기서 『죽기 전에 죽는 삶』은 중요한 구분을 제시한다. 십자가에서의 존재 교체는 이미 이루어진 단회적 사건이다. 죽음은 미래에 내가 이루어야 할 영적 성취가 아니다. 그러나 그 완료된 사건이 몸과 관계와 역사 속에서 살아지는 것은 계속되는 여정이다. 저자는 이것을 존재 전환 또는 존재 정렬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성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스스로 고쳐 완성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존재 교체의 실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 혼과 몸과 삶이 그리스도의 통치 질서 아래 정렬되는 과정이다. 이 구분을 놓치면 두 극단이 생긴다. 존재 교체의 완료를 놓치면 인간은 끝없이 더 죽으려 애쓴다. 반대로 삶에서 살아지는 존재 전환을 무시하면 십자가는 머리로 동의하는 교리적 선언으로만 남는다. 이 책은 두 가지를 함께 붙든다. 이미 끝났다. 그리고 그 끝이 지금 삶에서 살아진다.

아피에미와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아피에미는 그 둘을 잇는 중요한 언어다. 아피에미는 무책임하게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자기 주권 자체를 하나님께 방류하는 것이다. 그 방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결단력이 아니다. Pistis Christou,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이다. 내가 손을 놓을 때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신실하신 분께 붙들린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자기 통치는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고통론 역시 단순하지 않다. 무너짐, 고통, 침묵, 기다림을 자동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간의 자기 통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경계선이 될 수 있음을 본다. 실패는 자기 주권의 파산을 드러낼 수 있다. 침묵은 자기 언어가 사라지는 자리가 된다. 기다림은 자신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지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영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붙들지 못한다.
이것이 아나파우시스다. 내 활동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하는 멈춤. 그리고 그 멈춤의 더 깊은 곳에서 카타파우시스, 곧 보좌의 쉼이 열린다. 보좌의 쉼은 인간이 신적 경지로 올라가는 영적 상승이 아니다. 이미 임하신 하나님, 이미 연합된 그리스도의 통치 안으로 존재가 돌아가는 것이다. 보좌의 쉼은 상승이 아니라 귀환이다. 이 쉼은 가만히 있는 무기력과도 다르다. 오히려 가장 능동적인 순복이다. 내가 할 수 있지만 내가 통치자가 아니기에 기다릴 수 있고, 즉시 반응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를 바라보며 멈출 수 있다.

실존적 안식처, 그리고 다양한 세대의 증언

그리고 그 쉼이 몸을 얻는다. 15장에서 존재 교체는 더 이상 개인 내면의 경험으로 남지 않는다. 몸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고, 관계는 자기 보존의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자리로 옮겨진다. 가정, 일터,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도 보좌의 질서가 시작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거하는 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이동하는 안식처가 된다. 책이 부르는 Existential Sanctuary, 실존적 안식처다. 장소가 사람을 안식처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거하는 존재가 머무는 곳이 안식처가 된다. 그렇기에 이 안식처는 움직인다. 가정에서 일터로, 식탁에서 공동체로, 사람과 사람 사이로 이동한다.
이 책에는 바로 그 복음을 살아온 사람들의 증언이 함께 실려 있다. 9세 어린이에서 청소년과 대학생, 직장인, 목회자와 70세 성도까지 서로 다른 세대가 “나는 끝나야 할 존재였다”는 말을 각자의 삶에서 만난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고,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바꾸려 했던 자기 통치를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의로 신앙생활을 했음을 보았고, 어떤 사람은 결과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던 자기 기준을 발견했다. 공통점은 상황이 즉시 완벽하게 바뀌었다는 데 있지 않다. 누가 삶을 붙들고 있는가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선언은 단순하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살아가십니다. 보좌의 생명이 지금 여기에서 흐릅니다.”
『죽기 전에 죽는 삶』은 보좌시리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다. 아니, 시리즈 스스로의 표현대로 보좌시리즈의 심장이다. 임재도, 말씀도, 기도도, 공동체도 이 심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자기 통치를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질문은 결국 하나다. 지금, 누가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종교적 프로젝트가 끝난다. 그리고 바로 그 끝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시작된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지만 반복되는 자기 판단과 두려움, 자기 방어에서 자유롭지 못한 독자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강하게 결심했지만 삶이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이유를 알고 싶은 독자
“나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니라 끝나야 할 존재였다”는 말을 자기 혐오나 자기 파괴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단순한 신앙 고백을 넘어 존재의 실제로 탐구하고 싶은 독자
십자가를 죄 사함뿐 아니라 자기 통치의 종결과 존재 교체라는 관점에서 더 깊이 묵상하고 싶은 독자
존재 교체와 존재 전환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사건이 몸과 삶에서 어떻게 살아지는지 알고 싶은 독자
더 죽으려고, 더 포기하려고, 더 겸손해지려고 애쓰는 신앙의 수고 자체가 또 다른 자기 통치가 될 수 있음을 직면하고 싶은 독자
버려버리기(아피에미)를 체념이나 책임 회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삶의 주권을 맡기는 믿음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자녀와 배우자, 재정과 미래, 성공과 실패를 붙들고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고 싶은 독자
무너짐과 고통, 침묵과 기다림을 단순한 실패나 버림받음이 아니라 자기 통치의 구조가 드러나는 자리에서 새롭게 읽고 싶은 독자
아나파우시스와 카타파우시스, 보좌의 쉼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이해하고 싶은 독자
보좌의 쉼을 심리적 안정이나 수동적 휴식이 아니라 자기 통치가 끝난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안식하는 존재 상태로 경험하고 싶은 독자
AI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반응과 판단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시대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인간이 아니라 더 깊이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은 독자
연결망과 연합의 차이를 이해하고, 시스템의 연결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연합을 추구하는 독자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복된 몸과 관계, 가정과 일터가 다른 사람도 쉴 수 있는 실존적 안식처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독자
다양한 세대의 실제 간증을 통해 존재 교체와 자기 통치의 종결이 삶에서 어떻게 경험되는지 만나고 싶은 독자
보좌시리즈 전체의 중심축인 자기 통치의 종결 → 존재 교체 → 보좌의 쉼 → 존재 전환 → 몸을 통한 통치의 신학적·영적 토대를 먼저 이해하고 싶은 목회자, 신학생, 성도와 영성 훈련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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