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면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이 책에 대하여 두 권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 후반부 서론 폐허를 지나, 말씀의 통치가 새 창조를 여는 길 성경 읽기표 10주 차 절망의 한복판에서, 천국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 읽다 11주 차 아버지 집 귀환, 보좌 앞 성전 12주 차 포로의 땅 바빌론, 거룩의 씨가 빚어지는 자리 13주 차 새 언약과 새 창조를 향한 마지막 기다림, 여정의 완성 14주 차 옛 자아의 종결과 보좌의 통치 — 새 창조의 시작 15주 차 하나님 임재 아래 있는 ‘지금 이 순간’ — 이미 시작된 천국 16주 차 주님과 연합된 혼의 부활능력으로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합니다 17주 차 어린양 혼인잔치가 펼쳐지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 결론(120일째) 원석에서 보석으로, 에덴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나가면서 말씀의 세계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 부록 임재 신학 통합 가이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를 마친 당신에게 |
황웅렬의 다른 상품
|
1. 폐허는 끝이 아니라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십니다. 무너진 성전과 끊어진 왕조는 하나님의 패배가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세우려던 통치가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은 언약을 따라 다시 세우고 심기 시작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끝처럼 보이는 폐허가 하나님께는 새 생명을 심으시는 시작의 자리가 됩니다. 2.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사는 이는 누구인가”로 바뀝니다 이제는 내가 말씀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 거하시며 나를 통과해 살아 움직이는 삶입니다. 보좌의 생명이 존재의 중심을 다스릴 때 혼은 쉼에 참여하고 몸은 그 통치에 순복합니다. 신앙의 중심은 내가 말씀을 더 잘 실행하는 데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자신의 생명을 살아가시는 데로 옮겨갑니다. 3. 외적인 개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벽이 세워지고 말씀이 다시 낭독되어도 자기중심적 존재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공동체는 다시 흔들립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망은 더 강한 개혁이 아니라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더 강한 의지를 요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영을 그 안에 두셔서 존재의 중심 자체를 새롭게 하십니다. 4. 고난의 질문은 “왜?”에서 “누구인가?”로 바뀝니다 욥이 폭풍 가운데 만난 것은 고난의 모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었습니다. 인간의 질문이 “왜?”에 머물 때 하나님의 질문은 “누구인가?”라는 통치자의 실재를 대면하게 합니다. 고난의 해답을 모두 얻는 것보다 더 깊은 전환은, 세계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며 그분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5. 현재천국은 이미 시작된 새 창조의 삶입니다 새 창조는 미래에만 기다리는 현실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그 생명이 몸과 관계와 일상을 통하여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하나님 통치입니다. 성도는 완성될 나라를 기다리면서도 오늘 이미 보좌의 쉼에 참여하며 그 나라의 생명을 몸으로 살아갑니다. 6. 말씀의 통치는 몸으로 나타납니다 쉼 → 존재 정렬 → 몸의 순복 → 통치의 드러남 순종은 자기 강화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정렬된 존재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혼이 보좌의 쉼에 머물고 몸이 순복될 때,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포함한 일상의 삶이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통로가 됩니다. 7. 교회는 어린양의 승리에 참여하는 증인의 공동체입니다 땅의 역사가 흔들려도 하늘의 보좌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승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어린양을 바라보며 그 승리를 지금 여기의 삶으로 증언합니다. 교회의 승리는 세상의 힘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혼란 속에서도 어린양의 생명을 받아 진리와 사랑으로 끝까지 서는 데 있습니다. 8. 오늘의 작은 식탁도 어린양의 잔치를 미리 살아내는 자리입니다 이 책은 순례하는 교회가 장차 올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사랑의 식탁에서 미리 살아간다고 봅니다. 애찬은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과 공동체가 몸을 얻는 자리입니다. 함께 먹고 서로를 받아들이며 사랑을 지키는 작은 식탁에서 교회는 아직 오지 않은 혼인잔치의 생명을 지금 여기에서 먼저 맛봅니다. 9. 에덴의 원석은 새 예루살렘의 완성으로 향합니다 에덴의 금과 보석의 이미지가 마지막 새 예루살렘에서 정금의 길과 진주 문, 보석 기초석이라는 완성된 도성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고난과 순종과 인내도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성전으로 빚어 가시는 여정 안에 놓여 있습니다. 10. 성경일독이 끝난 자리에서 말씀의 삶이 시작됩니다 성경 일독의 대장정은 끝났으나, 말씀의 참된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다시 성경을 펼치는 이유는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이 내 안에 거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성경은 내가 분석하고 소유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내 삶의 주어를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며 날마다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세계가 됩니다. --- 본문 중에서 |
|
인간의 끝은 빈자리가 아니다
자기 통치가 무너진 폐허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폐허는 두려운 장소다. 무너졌다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붙들던 것이 사라지고, 자신을 설명하던 이야기가 끝나며, 안전하다고 믿었던 구조가 더 이상 나를 지탱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무너진 뒤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세우려고 한다. 새 계획을 만들고, 새 방법을 찾고, 다시 강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II)』는 서두르지 않는다. 다시 내가 세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라고 한다. 이것이 07-1권과 07-2권의 결정적인 차이다. 첫 번째 권은 인간의 자기 통치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 주었다. 출애굽의 백성은 광야에서 자기 판단을 붙들었고, 가나안에서는 타협했으며, 왕들은 하나님의 통치보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려 했고, 성전과 종교마저 자기 안전의 장치로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모두 무너진다. 그러나 두 번째 권은 그 폐허를 인간의 실패라는 한 단어로 끝내지 않는다. 그 자리가 하나님의 새 창조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선언한다. 바빌론, 거짓 의존이 벗겨지는 자리 이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포로기다. 성전이 무너졌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으셨다. 땅을 잃었다. 그런데 언약은 끊어지지 않았다. 왕조가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야 하나님께서 친히 성소가 되신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그래서 바빌론은 단순한 추방의 장소가 아니다. 거짓 의존이 벗겨지고 새 언약을 받을 존재가 준비되는 장소다. 이 책은 바로 여기에서 외적 개혁과 존재 교체를 구별한다. 에스라가 말씀을 읽는다. 백성은 운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세운다. 공동체의 질서가 회복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혼합과 무질서가 들어온다. 왜 그런가? 구조는 바뀌었지만 삶의 주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벽은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인간은 스스로 새 마음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새 언약이 필요하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이것이 복음의 방향을 바꾼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더 나은 종교 도구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씀이 산다’는 것은 성경 문장이 자율적으로 활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믿는 사람 가운데 거하시며 자신의 생명을 살아가신다는 뜻이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이용하여 더 성공적인 삶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말씀의 통치 아래 자신을 내어드린 사람이다. 그래서 신앙의 질문도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내 안에서 사는 이는 누구인가?”로 옮겨간다. 욥, “왜”에서 “누구인가”로 그리고 이 질문은 욥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욥은 끝까지 이유를 묻는다. 왜 이런 고난이 왔는가? 왜 의인이 고통받는가? 그러나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욥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긴 강의를 주지 않으신다. 오히려 질문하신다. 세상을 창조하신 이는 누구인가?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이는 누구인가? 별들을 다스리시는 이는 누구인가? 질문의 방향이 “왜?”에서 “누구인가?”로 바뀐다. 이것이 보좌시리즈의 질문과 만나는 지점이다. 고난의 이유를 모두 아는 것이 존재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왕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존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래서 욥이 자신의 말을 거두어들인 자리에서 복음서가 열린다. 인간의 말이 끝난 자리로 말씀이 오신다. 말씀이 육신이 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간 자기 통치의 옛 질서가 끝난다. 그 끝은 공백이 아니다.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끝난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시작된다. 이것이 새 창조다. 새 창조는 단지 죽은 뒤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지금 믿는 사람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 그래서 15주 차의 현재천국은 이 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왕은 이미 오셨다. 성령은 이미 주어졌다. 그리스도는 이미 믿는 사람 가운데 거하신다. 그러므로 새 창조의 삶도 이미 시작되었다. 혼은 보좌의 쉼에 참여하고, 몸은 그 통치에 순복하며, 몸의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과 관계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통로가 된다. 현재천국은 미래의 완성을 현재의 삶으로 미리 살아가는 하나님 통치의 실재다. 그 실재는 증언으로 확장된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자신을 지키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성령을 받고 세상으로 나갔다. 바울의 삶도 점점 안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그러나 존재의 중심이 달라졌다. 자기 생존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 깊은 실재가 되었다. 그래서 결박과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증언한다. 말씀이 사는 존재는 자기 보존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가는 통로로 존재한다. 보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흐름은 마지막에 교회와 새 창조로 확장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땅의 역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러나 보좌는 흔들리지 않는다. 어린양은 이미 승리하셨다. 그래서 교회의 임무는 새로운 승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어린양의 승리에 참여하여 그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 책은 교회를 보좌 앞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땅에서 증언하는 공동체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 긴 이야기가 에덴과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된다. 에덴에는 재료가 있었다. 새 예루살렘에는 완성된 도성이 있다. 저자는 이 이미지들을 문자적인 일대일 대응 공식으로 제시하기보다, 창조에서 새 창조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구속과 완성의 상징적 흐름으로 읽는다. 원석은 정련된다. 돌은 다듬어진다. 생명은 고난과 순종을 지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빚어진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을 보석으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자는 하나님이시다. 새 창조의 주체도 하나님이시다. 성경 첫 장에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분이 마지막에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신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씀이 주체다. 그래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II)』의 결론은 결국 제목으로 돌아온다. 나는 죽었습니다. 말씀이 살아갑니다. 보좌의 생명이 지금 여기에서 흐릅니다. 그리고 이 고백 이후에도 성경은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열린다. 성경일독은 끝났지만, 말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삶은 이제 시작된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I)』에서 자기 통치의 종결을 따라온 뒤 그 폐허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시작하시는지 계속 보고 싶은 독자 실패와 무너짐 이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재건하는 길보다 하나님의 새 창조를 배우고 싶은 독자 예레미야애가와 포로기의 역사를 절망의 기록만이 아니라 새 언약이 준비되는 구속의 자리로 읽고 싶은 독자 새 마음과 새 영,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약속을 단순한 행동 개선이 아니라 존재의 재창조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이 왜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는지를 새 언약과 연결하여 보고 싶은 독자 욥의 고난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서 “왕은 누구이신가?”라는 존재의 질문으로 옮겨 읽고 싶은 독자 십자가와 부활을 옛사람의 종결과 새 창조의 시작이라는 흐름에서 묵상하고 싶은 독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지금 내 안에서 살아가는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싶은 독자 내가 말씀을 붙드는 삶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살아가시는 삶으로 옮겨가고 싶은 독자 보좌의 쉼과 혼의 정렬, 몸의 순복, 하나님의 통치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우고 싶은 독자 현재천국을 미래천국의 대체 개념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지금 몸과 관계로 살아가는 실재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통해 부활 생명이 어떻게 증언과 공동체의 삶으로 흘러가는지 보고 싶은 독자 요한계시록의 보좌와 어린양의 승리를 두려움의 종말론보다 현재의 증언과 소망으로 살아가고 싶은 독자 새 하늘과 새 땅,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새 예루살렘을 성경 전체의 창조-구속-새 창조 흐름에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에덴의 금과 보석에서 새 예루살렘의 정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를 새 창조의 상징적 흐름으로 묵상하고 싶은 독자 성경 66권을 완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말씀의 세계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은 목회자와 성도 17주 120일의 전체 여정을 마치며 임재, 존재 교체, 보좌의 쉼, 몸의 순복과 하나님 통치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고 싶은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