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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의 쉼, 가정 안에서 나타나다
황웅렬
보좌의쉼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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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왜 십계명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 관계의 기술을 넘어, 근원의 질서로

Part 1. 근원 — 하나님과의 관계

1장 근원의 질서: 모든 관계의 시작
2장 한 몸의 비밀: 부부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질서

Part 2. 흐름 — 관계 질서의 시작 (5계명)

3장 질서가 흐르는 통로: 다섯째 계명의 근원과 구조
4장 교회를 세우는 질서: 공경이 공동체로 흐를 때

Part 3. 붕괴 — 뒤집힌 질서

5장 부모라는 우상: 공경이 무너질 때
6장 자녀라는 우상: 사랑이 무너질 때

Part 4. 회복 — 교회 안에서 다시 세워짐

7장 새로운 가족: 질서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
8장 상호 책임의 질서: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관계
브릿지 에세이
가정에서 시작된 질서, 공동체로 흐르다

Part 5. 열매 — 공동체 안에 드러나는 계명 (6-10계명)

9장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 여섯째 계명의 회복
10장 관계의 순결: 일곱째 계명의 회복
11장 나눔의 질서: 여덟째 계명의 회복
12장 진실의 공동체: 아홉째 계명의 회복
13장 중심의 문제: 열째 계명의 회복
묵상 에세이
보좌의 쉼으로 재편된 거실의 풍경

Part 6. 결론 — 다시 흐르는 질서

14장 살아 있는 교회: 질서가 생명이 되는 자리

맺음말
질서 안에 거하는 자가 누리는 약속
나눔을 위한 질문(Study Guide)
소그룹 인도자 가이드 노트
참고자료 — 이 여정에 함께한 증인들
『보좌의 쉼, 가정 안에서 나타나다』를 마친 당신에게

저자 소개 1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성균관대학교 B.A.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
보스턴대학교 STM 영성 전공
케임브리지연합장로교회 교육목사
필라한겨레교회 2003년 개척-현재

· 저서
하나님 임재와 천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좋은땅)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좋은땅)
God’s Presence and Heaven In the Present (WestBow)

2003년 봄, 저자는 보스턴에서 아내와 자식과 함께 주님의 몸이 되어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주님께서 필라델피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여라. 그곳은 너희가 나에게 큰 순종을 보일 수 있는 곳이다.” 소외된 목사 부부 모습 그대로를 늘 존귀하게 대하시던 주님께서 이제는 붙여주는 영혼들에게 그렇게 대하며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땅에 묻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서툴고 때로는 어리석기까지 한 지난 20년의 목회였지만, 주님께서는 순종하는 저자를 토기장이의 원하심을 따라 빚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저자의 생애와 사역 전반에 걸쳐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현재,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한 영혼이 더 구원받아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즉, 죄 용서를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는 영혼의 거처에서 안식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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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13쪽 | 152*225*20mm
ISBN13
9791122124156

책 속으로

1. 관계를 바꾸기 전에 존재를 묻습니다
관계를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지금 이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나’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입니까.
관계의 문제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중심에 서 있는가의 문제이며, 자기중심이 살아 있는 관계에서는 사랑조차 집착이 되고 책임은 통제가 될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2. 계명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계명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질서가 삶과 공동체 안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모습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계명을 더 잘 지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자리에서 계명이 생명으로 나타나는 존재의 질서로 독자를 초대하는 데 있다.
3. 한 몸은 존재 교체의 결과입니다
한 몸은 사랑의 결과라기보다 질서의 결과, 더 깊이 말하면 존재 교체의 결과입니다.
배우자는 나의 결핍을 채워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함께 서 있는 존재가 되며,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안에서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자유가 되고 책임은 통제가 아니라 돌봄으로 옮겨간다.
4. 자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버려버립니다
“이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구나.”
자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향한 주권을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처럼 자녀의 인생을 책임지려던 자리를 놓아버리고 참부모이신 하나님께 맡길 때, 부모와 자녀는 함께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온다.
5. 관계의 회복은 작은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반응하는 것은 나인가, 아니면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인가.
자녀의 성적표, 배우자의 한마디, 예상치 못한 실패 앞에서 즉각 반응하던 자아가 잠시 멈출 때 존재는 다시 보좌를 향해 정렬된다.
6. 살리지 않는 관계도 여섯째 계명의 빛 앞에 섭니다
분노와 상처의 순간, 나는 즉각 반응(Reaction)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나파우시스(위를 향한 멈춤) 속에서 그리스도의 응답(Response)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여섯째 계명의 회복은 단지 살인을 하지 않는 데 머물지 않고, 공동체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렬되는 데 있다.
7. 관계는 소비가 아니라 경외의 사귐입니다
일곱째 계명의 성취는 나의 숙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분의 풍경입니다.
관계의 순결은 상대를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 존중하는 데서 드러난다.
8. 움켜쥠은 흐름을 막습니다
소유는 고여 있는 저수지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와 다시 생명에게로 흘러가는 강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공급은 사유재산의 절대화가 아니라 맡겨진 생명이며, 불안에서 움켜쥘 때 그 흐름이 막힌다고 책은 설명한다.
9. 십계명은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제 십계명은 하나씩 지켜내야 할 도덕적 숙제가 아닙니다.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온 집안을 적시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질서가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될 때 그 질서는 한 몸과 관계와 공동체를 살리는 생명으로 나타난다.
10. 교회는 보좌의 쉼이 몸을 얻은 풍경입니다
교회는 보좌의 쉼이 몸을 통해 가시화된 풍경입니다.
교회는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조직 이전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들이 모여 하나님의 질서가 관계 속에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다.
11. 거실과 식탁이 임재의 처소가 됩니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감정의 배설 같던 언어는 응답(Response)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내가 멈춘 자리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자리가 되고, 거실과 식탁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처소로 바뀌기 시작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랑하는데 왜 관계는 반복해서 무너지는가

관계의 기술보다 먼저, 관계를 살아가는 존재의 중심을 묻는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준다. 낯선 사람에게는 참을 수 있는 말을 배우자에게는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자녀에게는 기다려 줄 수 있으면서 자신의 자녀에게는 조급해지며, 교회에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누군가를 지워버린다. 왜 그런가?
우리는 흔히 관계 기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좋은 대화법을 배우고, 감정을 조절하며, 상대의 성향을 이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익힌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보좌의 쉼, 가정 안에서 나타나다』는 관계보다 먼저 존재를 묻는다.
“지금 이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나’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입니까?”
이 질문 하나가 십계명 전체를 새롭게 읽게 한다. 십계명을 단순히 “해야 한다 /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규범으로 읽으면 인간은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로 흐르기 쉽다. 열심히 지키며 자기 의를 세우거나, 지키지 못하고 정죄 가운데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출발점은 계명이 아니다. 먼저 출애굽이 있다. 하나님께서 노예 된 백성을 구원하시고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자신을 계시하신 후 계명을 주신다. 구원이 먼저이고 질서가 뒤따른다. 관계가 먼저이고 계명이 그 관계 안에서 주어진다. 그러므로 계명은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수행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통치 안에 들어온 존재에게서 나타나는 생명의 질서다.

십계명을 존재 교체의 관점에서 읽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독특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십계명을 관계론으로만 읽지 않고 존재 교체의 관점에서 읽는다. 내가 중심에 서 있는 한 첫째 계명부터 흔들린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내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고, 배우자에게 하나님 역할을 요구하며, 부모의 인정에서 존재 가치를 얻고, 자녀의 성공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려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는 계명을 충분히 지키지 못한 데만 있지 않다.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그 ‘나’가 여전히 왕좌에 앉아 있다는 데 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여기에서 관계의 복음이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선언은 개인 영성에만 머무는 말씀이 아니다. 부부 관계의 뿌리이고, 부모와 자녀 관계의 뿌리이며, 교회 공동체의 뿌리다. 존재의 주체가 바뀌면 관계의 질서가 바뀐다.

한 몸, 부모 우상, 자녀 우상

2장 「한 몸의 비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부부 관계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완성하기 위해 결혼한 존재가 아니다. 배우자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안정시키고, 이해해 주어야 할 하나님 대체물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각각 존재의 근거를 얻은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함께 설 때 한 몸의 질서가 드러난다. 따라서 사랑을 더 많이 해야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이 바로 설 때 사랑이 다른 질서로 흐른다. 집착은 자유가 되고, 통제는 돌봄이 되며, 기대는 용납으로 옮겨간다.
이러한 한 몸에서 다음 세대가 나온다. 여기서 책은 다섯째 계명을 다룬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일방적 복종의 계명으로 읽지 않는다. 부모도 하나님 아래에 있고, 자녀도 하나님 아래에 있다. 부모의 권위는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맡겨진 권위이며, 자녀의 공경 역시 부모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 우상화가 아니다. 이 구분이 사라지면 ‘공경’은 쉽게 부모 우상으로 바뀐다. 특히 한국 문화 속에서 효는 매우 귀한 가치이지만, 하나님보다 부모의 뜻을 우선시키는 순간 그 방향은 뒤집힐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 자체가 아니다. 부모를 붙들어 자신의 존재를 안전하게 만들려는 ‘나’다. 그래서 회복은 부모를 버리는 데 있지 않다. 부모의 인정이 자신을 살린다는 자기 통치를 버려버리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위에 존재의 닻을 내리는 데 있다.
6장 「자녀라는 우상」은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부모는 대개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랑한다. 그러나 책은 사랑의 양보다 사랑의 질서를 묻는다. “나는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녀를 통해 살고 있는가?” 자녀가 자신의 미래가 되고, 성취가 부모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자녀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면, 사랑은 자기 통치를 감춘 가장 정교한 형태가 될 수 있다.
AI 시대에는 이 불안이 더욱 커진다. 교육, 진로, 기술 변화, 알고리즘, 스마트폰, 경쟁. 부모에게는 끝없이 개입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그러나 복음은 자녀의 삶에 무책임해지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책임을 요구한다. 자녀의 하나님이 되려 하지 말라. 아피에미는 자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자기 주권을 버려버리고 참부모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놀랍게도 부모가 그 통제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 자녀는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새로운 가족과 거실의 3초

그리고 가정의 질서는 혈연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가족을 선포하셨다. 교회에서는 부모도 자녀도, 목회자도 성도도 모두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함께 선다. 그래서 7-8장은 새로운 가족과 상호 책임을 말한다. 상호 책임은 단순히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개념이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질서다. 권위자는 상대를 소유하지 않고, 순복하는 사람도 자기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를 하나님께로 세워주는 관계가 된다.
이 책이 매우 현실적인 것은 이 신학을 가정의 짧은 순간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찌른다. 자녀가 기대와 다르게 행동한다. 부모의 말이 오래된 상처를 건드린다. 우리는 거의 생각하기 전에 반응한다. 바로 그 순간 책은 말한다. 멈추십시오. 아나파우시스. 위를 향한 멈춤. 3초라도 괜찮다. 숨을 고르고 주님 앞에 선다.
“지금 반응하는 것은 나인가, 아니면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인가?”
이 질문 하나가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 Reaction이 Response로 바뀐다. 반응하지 않는 냉담함이 아니다. 자기 통치의 자동 반응을 멈추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원고는 이 짧은 멈춤에서 거실과 식탁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처소로 바뀌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성막의 상징으로 읽는 6-10계명

후반부 9-13장은 십계명의 마지막 다섯 계명을 성막의 상징과 함께 읽으며 관계의 더 깊은 층을 비춘다. 여섯째 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번제단 앞에서 배제하지 말라는 존재의 질문으로 깊어진다.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지우는 것은 그 사람을 공동체의 생명에서 제거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보좌의 쉼 안에 있는 교회는 사람을 쉽게 지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기어이 살려내는 공동체다.
일곱째 계명은 물두멍에서 관계 소비의 습성을 씻는다. 상대는 내 외로움과 욕망,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 여덟째 계명은 진설병 상에서 소유를 다시 읽는다. 소유한 것을 더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것을 필요한 생명에게 흘려보내는 삶이다.
아홉째 계명은 등잔대 앞에서 편집된 자아를 드러낸다. 거짓은 잘못된 정보만이 아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숨기고, 편집하는 존재 방식까지 포함한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가면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열째 계명에서 마침내 지성소의 보좌 앞에 선다. 탐심의 가장 깊은 곳에는 결핍이 있다. 더 가져야 안전하다. 더 인정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 내가 붙들지 않으면 삶이 무너진다. 그러나 지성소에서 한 가지가 드러난다. 나는 내 존재의 하나님이 아니다. 자기 주권을 버려버리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닻을 내릴 때 카타파우시스, 보좌의 쉼이 열린다.
그 쉼 안에서는 계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성격도 바뀐다. 살려야 한다고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람을 살린다. 순결해야 한다고 자기 욕망과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람을 소비할 필요가 없어진다. 나눠야 한다고 의무적으로 손을 펴는 것이 아니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흘려보낼 수 있다. 진실해야 한다고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안전하기 때문에 투명해진다. 탐하지 말아야 한다고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충분하기 때문에 더 이상 결핍이 존재를 통치하지 않는다. 계명은 짐에서 생명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생명이 가장 먼저 보이는 장소가 거실과 식탁이다. 가족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갈등도 일어나고, 감정도 흔들리며, 오래된 습성도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누가 통치하는가. 내가 살아 반응하는 순간마다 다시 멈추고, 자기 통치를 버려버리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가정은 완벽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보좌의 질서가 반복해서 회복되는 작은 성전이 된다. 그리고 그런 가정들이 연결될 때 살아 있는 교회가 드러난다. 교회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보좌의 쉼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풍경이다.
『보좌의 쉼, 가정 안에서 나타나다』는 가정 문제 해결서가 아니다. 십계명 해설서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시험대 위에서 존재 교체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책이다. 부부. 부모. 자녀. 교회. 그리고 내 곁에 있는 한 사람. 결국 모든 관계 앞에서 질문은 하나다.
“지금 여기, 이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나’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입니까?”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배우자와의 갈등을 반복하면서 관계 기술보다 더 깊은 근원의 문제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존재 교체가 부부와 부모·자녀 관계에서 실제로 어떻게 살아지는지 알고 싶은 독자
십계명을 의무와 정죄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질서로 다시 읽고 싶은 독자
부부의 한 몸 됨을 단순한 정서적 친밀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드러내는 질서로 묵상하고 싶은 독자
부모 공경과 부모 우상화의 차이를 구별하고, 하나님 아래에서 자유롭게 부모를 공경하는 길을 찾고 싶은 독자
자녀를 깊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 안에 불안과 통제, 자기 성취의 욕망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싶은 부모
자녀의 성공과 안전을 붙들던 자기 통치를 버려버리고 참부모이신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는 믿음을 배우고 싶은 독자
AI와 알고리즘 시대의 불안 속에서 자녀를 더 강하게 통제하기보다 먼저 부모 자신의 존재를 보좌의 통치에 정렬하고 싶은 독자
교회를 혈연을 넘어 모든 지체가 하나님 앞에 함께 서는 새로운 가족과 상호 책임의 공동체로 경험하고 싶은 독자
갈등 순간의 즉각적인 Reaction을 멈추고 아나파우시스 안에서 그리스도의 Response를 기다리는 실제적인 훈련을 원하는 독자
십계명의 6-10계명을 번제단·물두멍·진설병 상·등잔대·지성소의 상징과 함께 존재와 관계의 관점에서 묵상하고 싶은 독자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방식이 어떻게 자기 통치와 연결되는지 직면하고 싶은 독자
사람을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수단으로 소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선 한 존재로 존중하는 관계의 순결을 살아가고 싶은 독자
소유와 재정을 움켜쥐는 불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며 생명을 흘려보내는 삶을 원하는 독자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편집된 자아를 벗고 진리의 빛 가운데 투명한 공동체를 살아가고 싶은 독자
탐심의 뿌리를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기 주권의 문제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
가정의 거실과 식탁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납과 보좌의 쉼이 살아지는 현재천국의 처소가 되기를 원하는 독자
책을 개인적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Study Guide와 인도자 가이드를 활용하여 부부·가정·교회 소그룹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목회자와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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