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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이 책에 대하여 1주 차 고통과 괴로움은 구원을 향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메신저 2주 차 죽기 전에 죽은 야곱, 그 꺾인 허리에서 일어난 70명이 거룩한 민족이 되는 이야기 3주 차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깨닫는 광야 이야기 4주 차 사람의 저주가 끊어지고 하나님 은혜로 다스려지는 땅, 가나안 5주 차 기름 부음을 받은 두 왕 이야기 6주 차 참지혜를 배우자로 모시고 사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7주 차 사랑하는 이에게 몸을 기대고 왕들의 벌판을 달리며 선포: 하나님이 왕이시다! 8주 차 거룩과 구속이 만나니, 주의 영이 임하여 거룩한 길을 가게 하십니다 9주 차 뽑고 허물고 파괴시키는 사역에서 세우고 심는 회복의 사역으로 10주 차 천국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합니다 11주 차 예루살렘과 성전은 혼이 본래 있어야 하는 아버지 집과 보좌를 상징합니다 12주 차 포로로 잡혀간 바빌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13주 차 새 언약과 새 창조를 향한 마지막 기다림, 여정의 완성 14주 차 옛 자아의 종결과 보좌의 통치: 새 창조의 시작 15주 차 하나님 임재 아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천국입니다 16주 차 주님과 연합된 혼의 부활능력으로 주님 다시 오실 길 예비합니다 17주 차 어린양 혼인잔치가 펼쳐지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 결론(120일째) 창조의 시작과 완성 부록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17주 120일 읽기표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을 마친 당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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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나는 이미 내려오고 있습니다
“만나는 이미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을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 저자는 이 질문을 계기로 성경일독을 말씀의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 아니라, 날마다 주어지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 담을 광주리를 준비하는 삶으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2.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양식이며 생명입니다 말씀이 심중에 새겨질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말씀대로 살기 위한 새로운 자기 노력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 안에서 나타나는 생명의 열매다. 3. 성경 66권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읽으며 그리스도를 읽고, 신약을 읽으며 구약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봅니다. 이 책은 모세의 출애굽과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출애굽을 하나의 구속사적 구조로 보며 성경 전체를 읽는다. 4. 출애굽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세가 아닙니다. 모세와 함께 계시며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비전을 수행하는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을 수종 드는 존재로 그려진다. 5. 성막은 임재와 통치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일은 무조건 하나님 방식을 따라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성막을 완성했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다. 말씀의 통치와 임재가 연결되는 장면이다. 6. 말씀 앞에서 자기 통치가 끝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선과 악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는 자신을 최종 판단의 주체로 삼지 않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아간다. 7. 성경의 시작과 마지막은 연결됩니다 창조되고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의 에덴에서 새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인간은 그분과 연합하여 그 일하심을 수종 드는 존재로 부름받는다. 8. 새 예루살렘은 임재의 완성입니다 임재 자체가 그 도시의 생명이며 빛입니다. 새 창조에서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거리와 장벽이 사라지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가 도성 전체를 채운다. 9. 성경을 읽는 자리에서 말씀이 나를 읽는 자리로 내가 성경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존재를 붙들고 다스리는 자리로. 120일의 성경일독은 완독의 성취에서 끝나지 않고 말씀의 통치 아래 존재가 살아가는 다음 여정으로 이어진다. 10. 성경을 읽는 사람에서 말씀과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쩌면 이제, 당신은 성경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과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17주 120일 여정의 마지막에 남는 존재의 방향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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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것과 말씀의 통치 아래 사는 것은 같은가
66권을 완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말씀이 존재의 주체를 다시 묻는 120일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다. 교회에서는 성경통독 프로그램이 반복되고, 1년 1독, 100일 통독, 맥체인 성경읽기 등 다양한 방식이 사용된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읽는 것과 말씀의 통치를 받는 것은 같은 일인가?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직면한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말씀 밖에 서 있을 수 있다. 본문을 분석하고, 뜻을 설명하고, 교훈을 찾아내며,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은 읽히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이 성경일독의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말씀을 읽는 자리에서, 말씀에 의해 읽히는 자리로. 이 문장은 단순한 독서 태도의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깊게는 주체의 문제다. 누가 누구를 다스리는가? 내가 말씀을 붙들고 사용하는가? 아니면 말씀이 나를 붙들고 내 생각과 판단과 말과 몸을 다스리는가? 성경읽기가 아니라 임재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시작은 성경읽기가 아니다. 임재다. 저자는 2015년 40일 기도 가운데 생명의 말씀이 하늘에서 만나처럼 내려오는 장면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그때 남은 질문은 “말씀이 오는가?”가 아니었다. “만나는 이미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을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 말씀은 이미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새로운 말씀을 만들어 내거나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광주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 광주리는 기술이 아니다. 말씀 앞에 앉을 수 있는 존재다. 자기 판단을 잠시 멈추고, 자기 계획을 앞세우지 않으며, 하나님 임재 가운데 경청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의 하루는 아침과 저녁의 임재에서 시작한다. 각각 약 15분씩 지금 여기 현존하시는 하나님 앞에 머문다. 그 시간은 영적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행이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의식하며 보좌 앞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 후 성경을 읽는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하나님 앞에 앉고, 그다음 말씀 앞에 앉는다. 말씀을 붙들기 전에 임재 가운데 자신이 붙들린다. 그러면 읽기의 방향이 달라진다. 문장을 빨리 이해하려는 조급함보다 경청이 앞선다. 성경을 내 생각 안으로 가져오기 전에 내 생각이 말씀 아래 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말씀은 눈으로 읽는 텍스트에서 심중에 심기는 생명의 씨앗이 된다. 주 성령께서 말씀을 심중에 새기실 때, 그 말씀은 생각을 만들고, 말을 만들며, 몸의 방향을 다시 정렬한다. 저자는 이것을 새로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의 자연스러운 열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 앞에서 자기 통치를 멈추라고 초대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일반적인 통독 안내서와 방향이 다르다. 통독의 성취보다 존재의 정렬을, 정보의 축적보다 생명의 섭취를, 독서 속도보다 하나님 임재 가운데 머묾을 앞세운다. 출애굽에서 시작하는 하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 책의 구성 또한 독특하다. 성경 66권을 창세기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출애굽기에서 시작한다. 왜 출애굽인가? 저자가 성경 전체를 모세의 출애굽과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출애굽이라는 하나의 구속사적 구조로 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속박에서 이끌어 내어 자신의 임재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이야기다. 출애굽의 목적은 단지 이집트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고 선언하시고, 시내산으로 데려가 말씀을 주시며, 성막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데 있었다. 구원의 목적은 임재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출애굽이 완성된다. 죄와 죽음과 자기 통치 아래 있던 인간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진다. 이렇게 보면 성경 66권은 서로 떨어진 66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다. 출애굽. 광야. 가나안. 왕국. 선지자. 포로. 새 언약. 십자가. 부활. 교회.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이 긴 역사 속에서 질문은 계속 반복된다. 누가 왕인가? 광야에서는 백성이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려 한다. 가나안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땅을 차지하려 한다. 왕국에서는 인간 왕에게 하나님 자리를 맡긴다. 선지자 시대에는 우상과 자기 욕망을 따른다. 포로기에는 성전과 예루살렘이 무너진다. 그리고 역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다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하나님이다. 7주 차에 왕들의 이야기를 통과한 독자가 외치는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그래서 단순한 교리 선언이 아니다. 120일 성경일독 전체의 질문에 대한 존재의 응답이다. 내 삶에서 누가 왕인가? 존재 교체와 성경읽기가 만나는 지점 그리고 이 질문은 십자가에서 가장 깊어진다. 14주 차의 욥과 마태복음은 중요한 경계선이다. 욥의 자기 의와 자기 판단이 끝나는 자리에서 임마누엘이 오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선악 판단의 최종 주체로 삼았던 옛사람의 질서가 종결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존재는 더 이상 자신을 말씀의 심판관으로 세울 수 없다. 말씀의 통치 아래 산다. 이것이 이 책에서 존재 교체와 성경읽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존재 교체 없는 말씀읽기는 자칫 새로운 자기 의가 될 수 있다. 많이 읽었다는 자부심, 많이 안다는 확신, 정확하게 해석한다는 자기 확신이 다시 ‘나’를 왕좌에 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자리에서는 말씀을 이용하여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드린다. 말씀이 심중에 새겨지고, 그 말씀이 생각과 감정과 몸을 통하여 살아나도록 순복한다. 성경일독은 이때 지식의 행위에서 존재 전환의 자리가 된다. 에덴에서 새 예루살렘까지 그리고 120일의 마지막에는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이 다시 만난다. 처음에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다.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고, 말씀하신다. “빛이 있으라.”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임재가 도성 전체를 채운다. 특정한 장소만 성전인 것이 아니다. 주 하나님과 어린양 자신이 성전이시다.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거리가 사라진다. 임재 자체가 그 도시의 생명이며 빛이다. 성경은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을 향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것. 에덴에서 시작된 임재가, 성막과 성전을 지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고, 성령이 거하시는 몸 된 교회로 확장되며, 마침내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된다. 120일의 성경일독도 바로 그 길을 걷는다. 읽기의 끝은 지식이 아니다. 연합이다. 그리고 연합의 열매는 통치다. 말씀이 생각을 다스리고, 말씀이 입술을 다스리며, 말씀이 몸을 통하여 살아간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독자를 또 다른 책으로만 보내지 않는다. 먼저 한 존재의 모습을 남긴다. “어쩌면 이제, 당신은 성경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과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은 바로 그 사람을 위한 책이다. 성경을 끝낸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다시 시작된 사람.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성경을 여러 차례 읽었지만 성경 지식과 실제 삶 사이의 거리를 느끼는 독자 성경 완독 자체보다 말씀이 생각과 말과 몸을 실제로 통치하는 삶을 원하는 독자 성경을 정보와 지식의 대상으로 읽는 자리에서 하나님 임재 가운데 경청하는 자리로 옮겨가고 싶은 독자 17주 120일 동안 성경 66권을 하나의 구속사적 흐름으로 읽고 싶은 독자 모세의 출애굽과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출애굽을 연결하여 성경 전체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신약에서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는 흐름을 따라가고 싶은 독자 고통과 광야, 가나안과 왕국, 선지자와 포로기, 새 언약과 새 창조를 하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읽고 싶은 독자 “누가 왕인가?”라는 질문을 성경의 역사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에 적용하고 싶은 독자 말씀대로 살기 위한 자기 노력을 강화하기보다, 존재 교체 이후 말씀이 생명으로 살아나는 질서를 배우고 싶은 독자 아침과 저녁의 임재 기도와 성경읽기를 함께 연결하는 실제적인 훈련을 원하는 독자 야고보서 1장 21절의 ‘심긴 말씀’이 혼을 구원하고 생각과 말과 몸을 정렬하는 의미를 실제 삶에서 묵상하고 싶은 독자 자기 판단과 자기 통치를 말씀 앞에서 버려버리고 보좌의 쉼 안에서 말씀의 통치를 받고 싶은 독자 현재천국을 성경 전체의 하나님 임재와 통치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창세기의 에덴에서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까지 창조와 새 창조의 큰 흐름을 따라가고 싶은 독자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정·교회·소그룹과 함께 120일 성경일독을 진행하고 싶은 목회자와 성도 성경을 읽는 사람에서 말씀에 의해 읽히는 사람, 나아가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옮겨가고 싶은 독자 다음 여정인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를 통해 말씀의 통치를 더 깊이 탐구하기 전에 성경 전체의 큰 지도를 먼저 걷고 싶은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