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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 안내문
들어가는 말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이 책에 대하여 두 권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 성경 읽기표 1주 차 I AM의 임재: 출애굽에서 알파와 오메가까지 2주 차 죽기 전에 죽은 야곱, 거룩한 민족의 씨앗입니다 3주 차 광야에서 드러난 두 시선, 임재의 주권으로 사는 백성 4주 차 사람의 저주가 끊어지고, 은혜로 다스려지는 가나안 5주 차 기름 부음 아래 두 왕: 누가 다스리는가 6주 차 보좌의 쉼과 몸의 순복: 누가 움직이는가 7주 차 왕들의 벌판을 가로지르며: 하나님이 왕이시다! 8주 차 거룩의 심판, 구속의 길: 돌아오라! 9주 차 뽑고 허물어 ‘주체를 교체’하시고 새 생명을 심으시는 하나님 전반부 결론 하나님이 왕이셔야 나라가 삽니다 뽑고 허무셔서 다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I)』을 마친 당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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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을 통해 나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말씀을 통해 나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을. 바로 이 발견에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의 여정이 시작된다. 2. 성경을 읽는 자리에서 말씀에 읽히는 자리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는 고백은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말씀을 파헤치는 자리에서 말씀 앞에 내 존재가 드러나는 자리로 옮겨가며, 존재의 주권이 말씀 곧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양된다. 3.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이제 누가 사는가, 누가 다스리는가. 성경 66권의 세계를 통과하며 존재는 말씀이 다시 빚으시는 재창조의 여정으로 들어간다. 4. 구원의 시작부터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은 인간의 가능성이나 준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고통 가운데 언약을 기억하시는 I AM이 친히 역사하시며, 사건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5. 내일을 통제하려는 자아를 버려버립니다 출애굽기 16장의 만나는 내일을 통제하려는 자아를 버려버리고 하나님께 의존하도록 빚어가시는 훈련입니다. 광야는 “스스로를 유지하지 않아도 살아진다”는 존재의 질서를 배우는 자리다. 6. 성경의 중심 질문은 누가 주체인가입니다 성경의 중심 질문은 ‘누가 주체로 서 있는가’입니다. 구원은 내가 주체로 서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존재 교체이며 통치의 전환이다. 7. 산당은 오늘도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통치는 여전히 내가 쥐고 있으려는 마음. 산당은 과거의 종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결정권은 자신이 쥐려는 인간 자기 통치의 구조로 읽힌다. 8. 말씀과 자기 말을 섞지 않습니다 참된 청종은 내가 지금 하려는 이 말이 정말 여호와에게서 온 말인지, 그분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을 자신의 판단과 욕망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말씀의 통치 아래 서는 중요한 시작이다. 9.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주체입니다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주체입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통치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실 때 통치는 하나지만 인간이 왕좌를 붙들면 생각과 감정과 몸, 예배와 삶, 말씀과 현실이 갈라진다. 10.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성전의 파괴는 거짓 주체의 종결이며, 폐허의 바닥에서 말씀이 주체가 되는 새 창조가 시작된다. 11. 마지막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제, 누가 왕인가? I권은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의 통치가 끝나야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고 선언하며 끝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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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많이 읽어도 내가 여전히 왕일 수 있다
말씀을 이용하여 나를 유지하는 신앙에서, 말씀이 나를 읽고 해체하며 다시 다스리는 신앙으로 성경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I)』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바꾼다. 성경을 읽는 ‘나’가 끝까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말씀을 많이 알 수 있다. 설교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으며, 말씀을 인용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말씀을 사용하는 최종 주체는 여전히 ‘나’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내 세계를 유지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며, 내 계획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붙들 수 있다. 이때 말씀은 살아 있는 왕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종교적 도구가 된다. 이 책의 출발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자는 팬데믹이라는 정지의 시간을 지나며 자신의 목회와 신앙을 다시 보게 된다. 17년 동안 목회했고, 말씀을 읽고 전했으며, 교회를 섬겼다. 그런데 모든 것이 멈춘 자리에서 한 사실이 드러난다. 말씀을 붙든 줄 알았지만, 말씀을 통해 자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발견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다. 신앙의 주체에 관한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는 제목은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책 전체의 존재론적 명제다. 내가 말씀을 더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다루던 ‘나’의 주권이 끝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체가 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존재 교체다. 6권과는 다른 역할, 독자 자신을 이야기 속으로 그러므로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는 6권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과 밀접하게 연결되지만 역할은 다르다.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이 성경 66권 전체를 하나의 구속 이야기로 펼쳐 보여 주었다면, 이 책은 그 이야기 속으로 독자 자신을 데려간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광야에서 원망하는 백성을 보면서 그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상황을 말씀보다 크게 보는 시선을 발견한다. 사울의 조급함을 읽으면서 고대 왕의 실패만 분석하지 않는다. 말씀이 더디게 들릴 때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나를 발견한다. 산당을 읽으면서 이스라엘 종교사를 공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통치권만큼은 양보하지 않기 위해 내 삶에 세워 둔 오늘의 산당을 찾는다.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를 읽으면서 그들의 오류만 비판하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의 뜻이라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말씀 앞에 선다. 이것이 말씀에 의해 읽히는 성경읽기다. I AM, 그리고 내일을 통제하려는 자아 그리고 그 여정의 첫 출발은 I AM이다.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 전략을 제공하지 않으신다. 먼저 자신을 계시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구원의 근거는 인간의 준비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다. 그분이 보시고, 들으시며, 기억하시고, 내려오신다. 그래서 이 책에서 고통은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자기 통치가 작동하지 않는 자리에서 이미 임하시는 I AM을 보게 하는 문이 된다. 출애굽은 인간이 탈출 계획을 성공시킨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 속에서 나타난 사건이다. 이 출발을 잊는 순간 모든 신앙은 다시 자기 노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광야가 그 사실을 드러낸다.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매일 만나를 받아야 한다. 내일 먹을 것까지 쌓아 두면 썩는다. 왜 하나님은 비효율적으로 매일 만나를 주셨는가? 책은 이를 내일을 통제하려는 자아를 버려버리고 하나님께 의존하도록 빚어 가는 훈련으로 읽는다. “너는 스스로를 유지하지 않아도 살아진다.” 이것이 광야의 존재 수업이다. 가나안의 타협, 사울과 다윗 그런데 인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다시 자신이 삶을 유지하려 한다. 가나안의 위기는 약속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계산을 더 신뢰하면서 시작된다. 타협하고, 공존하고, 조금씩 자신의 통치 공간을 만든다. 그 결과 사사기 마지막에는 왕이 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왕이 된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인간 자기 통치의 성경적 초상이다. 이스라엘은 마침내 눈에 보이는 왕까지 요구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관리 가능한 인간 체제로 보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사울과 다윗을 통하여 드러난다. 사울의 문제는 단순히 성격이 급했다는 데 있지 않다. 말씀보다 상황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다윗 역시 실패하지만, 자신의 왕권보다 하나님의 왕권을 더 깊은 실재로 인정한다. 그래서 이 책이 묻는다. “기름 부음을 받았는가?”보다 먼저 “지금 누가 다스리는가?” 7주 차에 이르면 수많은 왕이 지나간다. 솔로몬의 영광도 지나가고, 나라가 갈라지며, 왕들은 죽고, 왕조가 교체된다. 그런데 말씀은 남는다. 정치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 역사의 중심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며 그 말씀을 수종 드는 존재가 생명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왕들 한복판의 엘리사가 그것을 보여 준다. 책은 여기서 힘의 이동보다 말씀의 성취를 보게 한다. 그렇게 왕들의 벌판을 모두 지나고 나면 고백은 하나뿐이다. 하나님이 왕이시다. 산당, 그리고 성전의 붕괴 그러나 왕의 고백은 입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8주 차에는 산당이 등장한다. 산당은 인간 자기 통치의 매우 정교한 모습이다. 하나님을 없애지 않는다. 하나님을 내 삶에 남겨 둔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안전장치를 함께 만든다. 말씀과 계산. 믿음과 보험. 순종과 타협. 하나님의 통치와 자기 관리. 책은 이 이중구조를 허문다. 하나님이 선택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분이 아니라 유일한 왕이 되셔야 한다. 그래서 요시야가 산당을 파괴한다. 그리고 예레미야 시대에는 그 수술이 성전 자체에까지 이른다. 성전은 하나님의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성전을 자기 안전의 보증서로 바꾸었다.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니 우리는 안전하다.” 하나님의 임재를 신뢰한 것이 아니라 성전이라는 구조를 이용하여 자기 통치를 보존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우상으로 만든 하나님의 성전마저 무너지게 하신다. 이것이 I권에서 가장 급진적인 장면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구조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 자기 통치의 피난처가 되면 허무실 수 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왕조가 끝나며, 성전이 불탄다. 그러나 책은 선언한다. 하나님이 패배하신 것이 아니다. 무너진 것은 인간이 붙들고 있던 거짓 왕좌다. 폐허에서 여는 II권 그래서 전반부 결론은 이 책 전체의 핵심을 압축한다.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주체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통치다. 이 문장은 보좌시리즈 전체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지금, 누가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것이 이렇게 다시 표현된다. “지금, 누가 왕인가?” 두 질문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누가 생각하는가. 누가 판단하는가. 누가 선택하는가. 누가 말씀을 사용하는가. 그리고 누가 내 삶을 통치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왕관을 버려버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로 흐르기 시작한다. 생각과 감정과 몸이 다시 정렬되고,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며, 말씀과 현실이 분리되지 않는다. I권은 그 완성을 보여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폐허에서 끝난다. 그것이 이 책의 힘이다. 인간에게 마지막 가능성을 하나 남겨 놓고 끝내지 않는다. 다 무너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II권을 연다. “뽑고 허물고” 끝내신 하나님께서 이제 “세우고 심으신다.” 폐허에서 새 언약이 선포되고, 돌 같은 마음 대신 새 마음이 약속되며,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다. I권이 “나는 죽는다”라면, II권은 “말씀이 산다.” 그래서 I권의 끝은 절망이 아니다. 부활의 전주곡이다. 인간의 통치가 끝난 자리에서, 말씀이 주체가 되는 새 창조가 시작된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성경을 오래 읽어 왔지만 말씀이 실제 삶의 통치자가 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은 독자 성경 지식과 해석을 축적하는 것을 넘어 말씀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읽히고 드러나는 경험을 원하는 독자 말씀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확신과 자기 삶을 유지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싶은 독자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를 단순한 자기부인이나 노력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주체가 그리스도로 교체되는 복음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내가 말씀을 읽는 자리에서 말씀이 나를 읽는 자리로 옮겨가고 싶은 독자 성경 66권을 임재와 하나님 통치라는 관점에서 읽되, 그 흐름을 자신의 실제 존재와 연결하여 묵상하고 싶은 독자 출애굽의 I AM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를 다시 만나고 싶은 독자 광야의 만나와 정탐 사건을 통하여 자기 통제와 두려움,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고 싶은 독자 가나안과 사사기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의 차이를 묵상하고 싶은 독자 사울과 다윗을 단순한 성공·실패의 왕으로 읽지 않고 “누가 다스리는가”라는 존재의 질문으로 읽고 싶은 독자 보좌의 쉼을 책임 회피가 아니라 자신이 최종 판단자가 되는 자기 통치의 종결로 살아가고 싶은 독자 왕들과 선지자들의 역사를 통해 인간 권력의 흥망보다 말씀의 신실한 성취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 자신 안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제 결정권을 붙들고 있는 ‘산당’이 남아 있는지 돌아보고 싶은 독자 예레미야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혼합하는 신앙의 위험을 직면하고 싶은 독자 종교적 열심과 성전, 제도마저 자기 안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말씀 앞에서 점검하고 싶은 독자 무너짐과 실패를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가 아니라 거짓 자기 통치가 끝나는 자리에서 새 창조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읽고 싶은 독자 1-9주 차의 읽기표와 매일의 묵상 질문, 임재기도, 임재 훈련을 따라 말씀의 통치를 실제로 훈련하고 싶은 성도와 소그룹 I권의 자기 통치 종결을 통과하여 II권의 새 언약과 새 창조, “말씀이 산다”의 여정으로 이어가고 싶은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