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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1부. 붕괴 — 인식의 자리를 잃어버린 시대 1장. 알고리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2장. 격물은 왜 무너졌는가 3장. 반응하는 인간과 분별하는 인간 2부. 전환 — 누가 보고 있는가 4장. 코람 데오 — 하나님 앞에서 보기 시작하다 5장. 연합 — 존재의 방향이 바뀌다 6장. 존재 교체 — 누가 보는가 3부. 거주 — 보좌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 7장. 카이로스 — 현재를 회복하다 8장. 레올람 — 영원의 통치 안에서 보다 9장. 카타파우시스 — 보좌의 쉼 안에 머물다 4부. 흐름 — 몸을 통한 통치 10장. 보좌의 쉼은 어떻게 몸이 되는가 에필로그 보좌 앞에서 다시 세계를 보다 부록 1. 핵심 용어 해설 부록 2. 보좌의 인식론 묵상 질문 참고 문헌 보좌 시리즈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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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I 시대의 위기는 정보보다 인식의 자리의 문제입니다
AI 시대의 문제는 단지 정보가 넘쳐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에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식의 출발점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술보다 먼저 “나는 지금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2. 알고리즘은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 시선을 훈련합니다 알고리즘은 단순히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 무엇에 분노할지, 무엇을 현실로 받아들일지를 반복적으로 훈련합니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인식 문제는 기술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자리 문제입니다. 3. 보는 자리는 정보를 바꾼다고 회복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자료를 읽는다고 시선이 바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재의 중심이 그대로라면 정보도 결국 자기 통치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보는 자리는 존재의 중심이 이동할 때 비로소 바뀝니다. 4. 존재 교체는 인식 주체의 교체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선언은 삶의 태도만 바뀌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세계의 최종 판단자로 세웠던 옛 주체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인식의 중심이 되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존재 교체는 곧 보는 자리의 교체입니다. 5. 카이로스는 빼앗긴 현재를 되찾는 자리입니다 끊임없이 다음 정보로 밀려가는 시대에 인간은 현재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카이로스는 반응에 끌려가는 시간을 멈추고, 하나님이 지금 일하시는 현재 안에 다시 서는 자리입니다. 보좌 앞의 분별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6. 레올람은 현실보다 깊은 통치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눈앞의 결과와 숫자와 상황이 현실의 전부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레올람은 그 현실 안으로 스며드는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보게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7. 카타파우시스는 자기 주도를 멈추고 보좌에 거하는 자리입니다 인간은 세상을 직접 붙들고 통제해야 안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카타파우시스는 바로 그 손을 멈추고, 보좌의 통치 안에 존재가 실제로 거하는 자리입니다. 쉼은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현실로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8. 알고리즘은 연결하지만 그리스도는 연합시키십니다 오늘의 기술은 사람들을 취향과 반응으로 묶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결은 생명의 연합과 다릅니다. 그리스도는 서로 다른 지체들을 한 몸으로 연합시키시며, 보좌의 쉼은 그 한 몸 안에서 공동체적 생명으로 흘러갑니다. 9. 보좌의 인식론은 머릿속의 이론이 아니라 몸의 길입니다 보좌 앞의 분별은 머릿속 생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말하기 전에 멈추고, 분노하기 전에 다시 보고, 누군가를 쉽게 분류하고 배제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몸의 길로 나타납니다. 보좌의 쉼은 몸을 통해 통치로 드러납니다. 10. 마지막 질문은 “무엇이 옳은가?”보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입니다 이 책이 남기는 마지막 질문은 인식 방법론이 아닙니다. 다시 하나의 존재의 질문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 알고리즘의 흐름 속에서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앞 보좌의 쉼 안에서 분별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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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가장 깊은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자리다 AI 시대를 다루는 책은 많다. 어떤 책은 기술의 발전을 말하고, 어떤 책은 직업의 미래를 전망하며, 어떤 책은 AI를 더 잘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보좌의 인식론』은 다른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지가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AI 시대의 문제를 인식 주체의 위기로 진단한다. 인간이 세상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인간을 읽고, 인간의 시선을 다시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위기를 단순히 경계하거나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복음적 해답으로 들어간다.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한다고 인식이 회복되지 않는다. 좋은 자료를 더 많이 읽는다고 시선이 바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중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바울의 존재 교체를 인식의 문제와 연결한다. 내가 세상을 판단하는 최종 주체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언제나 자기 통치의 한계 안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옛 주체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실 때, 보는 자리도 함께 바뀐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보좌의 인식론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인식의 자리를 세 개의 좌표로 풀어낸다. 카이로스는 빼앗긴 현재를 회복하는 자리이고, 레올람은 현실보다 깊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보는 자리이며, 카타파우시스는 자기 주도를 멈추고 보좌의 쉼 안에 거하는 자리다. 이 세 좌표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한 존재가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좌표다. 이 책의 강점은 여기서 다시 몸과 공동체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보좌의 인식론은 머릿속의 사유 체계가 아니다. 말하기 전에 멈추고, 분노하기 전에 다시 보고, 누군가를 쉽게 분류하고 배제하기 전에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몸의 길이다. 또한 교회는 취향과 반응의 유사성으로 묶이는 네트워크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한 생명으로 연합된 몸이라는 사실도 다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우리를 하나의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 알고리즘의 흐름 안에서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좌의 쉼 안에서 분별하고 있는가? 『보좌의 인식론』은 AI 시대의 정보 문제를 넘어, 존재의 자리와 시선의 근원을 묻는 책이다. 기술의 시대를 두려움으로만 보지 않고, 보좌 앞에서 다시 세계를 보게 만드는 책이다. 대상 독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AI 시대의 문제를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인식과 존재의 문제로 깊이 생각하고 싶은 독자 무엇을 더 많이 아는가보다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를 묻고 싶은 독자 알고리즘이 인간의 시선과 주의와 반응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성찰하고 싶은 독자 『대학』의 격물·수신 구조와 기독교의 존재 교체를 함께 대화시키고 싶은 독자 데카르트 이후 서양 인식론의 흐름과 복음적 인식의 자리를 비교해 보고 싶은 독자 어거스틴의 안식, 칼뱅의 코람 데오와 연합, 바울의 존재 교체를 한 흐름으로 읽고 싶은 독자 존재 교체가 삶의 태도뿐 아니라 인식 주체의 교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카이로스, 레올람, 카타파우시스라는 세 좌표를 통하여 지금 여기의 삶을 다시 정렬하고 싶은 독자 보좌의 쉼을 심리적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존재의 자리로 묵상하고 싶은 독자 몸과 관계와 공동체를 통하여 보좌의 생명이 어떻게 통치로 드러나는지 보고 싶은 독자 알고리즘의 연결과 그리스도의 연합의 차이를 분별하고 싶은 독자 AI 시대 속에서 교회가 어떤 인식의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목회자와 성도 현재천국을 보좌 앞에서 세계를 다시 보는 삶으로 탐구하고 싶은 독자 “무엇이 옳은가?”보다 먼저 “나는 지금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를 삶의 질문으로 붙들고 싶은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