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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시인의 말
제1부 ____ 오늘도 면접관은 줄을 세웠다 013 종이인형 015 월요일 인사 018 현호색 020 역주행 022 루푸스 026 틈새 028 신호등을 뒤집어놔서 훔쳐 왔어요 030 지하 정원 032 빅필드 034 후두둑, 가을 036 물구나무 038 예고 없이 041 혼자 떠들고 싶을 때 044 귤의 중력 047 달콤한 스플릿 제2부 ____ 나는 마음을 담는 화분이었다 053 목마르다 054 피크닉 057 낙지 058 공갈빵 060 뺑뺑이 062 아티반, 한 알 064 굽신 067 평균대 070 조화의 탄생 072 손대면 자장가 074 트리거 076 보물찾기 079 자산어보 082 요령 085 구피 087 거짓말 089 타인 091 터널 093 매그놀리아 095 흔들리는 꿈 097 옛날 통닭 제3부 ____ 대답만 오래 준비했다 101 너를 산책한다 104 앵두나무 아래로 코끼리가 지나간다 106 벙커 108 노인 유모차 111 초록 손 113 시든 꽃을 안고 116 바람개비 118 블라인드 면접 120 꽃가마 122 꽃상여 124 소리로 탑을 쌓다 126 물결庵 128 공 130 아마도 133 해설 | 상상력으로 몰고 가는 언어의 드리블 | 김완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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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을 뒤집어놔서 훔쳐 왔어요
내일이 일요일인지 모르고 톡톡 터지는 레드향처럼 까먹는 엄마 집 하나 긁어놓고, 내일은 아빠하고 등기소에 가서 명의 이전해라 내일이 필요 없는 껍질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내일은 안 돼요 왜? 내일은 일요일 앞으로 읽어도 일요일 뒤로 읽어도 일요일 일일이 답장 못 해서 휴무랍니다 깜박거리는 일요일은 빨강 신호등 양손으로 내일을 감싼다 두 엄지로 반 자르고 반쪽을 또 반 자르고 다른 반쪽을 또 반 자른다 지문 잃은 여덟 손가락으로 빠르게 까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 일요일도 없이 울창하게 선 밖으로 굴러다니느라 바쁘다 오늘을 낀 고무장갑은 붉은 잎사귀로 푸른 잎사귀로 22초마다 머릿속을 텅 비운다 핸드폰이 내일로 넘어가는 밑반찬과 함께 냉장고 속에서 코를 곤다 내가 빠른지 느린지도 모르게 코끼리에게 줄 바나나는 샛노란 거짓말 건널목에 서 있는 내일은 빨강 일요일 붉은 눈동자 신호음과 함께 다시 초록 숲으로 뛰어들었다가 여기가 어딘지 방향을 잃고 깜박깜박, 자꾸 까먹는 엄마를 위해 집 안에 신호등을 달았다 ----- 28~29쪽 앵두나무 아래로 코끼리가 지나간다 코끼리가 지나간다, 저기 그늘을 타고 앵두가 가지마다 붉게 익던 날 그 말은 유독 진지해졌다 엄마는 웃었다 ― 설마, 이 동네에 무슨 코끼리야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의 눈을 믿고 싶었다 오래된 눈이었다 많은 것을 본 눈이었다 나는 앵두나무 아래로 갔다 할머니 눈동자엔 탈출한 코끼리가 긴 코를 흔들며 느릿하게 지나갔다 그 뒷모습엔 먼지 대신 오래된 하루들이 붙어 있었다 나는 무게를 헤아리지 못해 숨을 죽였다 바람이 불고 앵두가 흔들렸다 그 사이로 코끼리의 귀 같은 것이 나풀거렸다 나는 손을 뻗었다 앵두인지 귀인지 모를 것을 잡으려다 그만, 할머니 웃음을 닮은 허공을 쥐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풀잎을 스치자, 달빛이 앵두나무 아래 앉았다 그때, 나는 보았다 코끼리가 한 걸음씩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할머니 눈에만 보였던 코끼리는 앵두보다 먼저 익은 그늘이었다 자주 바라보던 빈자리에 내려앉은 무게였다 사라진 하루들이 숨 쉬는 자리 할머니가 오래 기다리던 보이지 않는 사랑이 말없이 깃든 자리 지금도 나는 밤이면 앵두나무 아래 선다 아무것도 없는 길목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나간다 하루들, 말들, 사랑 그리고 코끼리 한 마리 ----- 104~1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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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영의 시집을 읽고 나면 우리는 동화 속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그의 시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시정신이 엿보인다. 그것은 시인이 일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펼쳐 보이는 백미영 시인의 순발력은 우리로 하여금 갇혀 있던 생각의 문을 박차고 나오도록 촉구한다. 또한 닫혀 있던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도록 사유를 열어준다. 상상력과 언어의 부지런한 운용으로 펼쳐내는 그의 시세계는 독자들에게 한껏 시적 호기심과 열정을 일깨워주고 있다. 시를 쓰는 일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갇혀 있는 꿈의 세계를 펼쳐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그것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전개하면서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도록 열어주는 것이다. 시상을 지배하는 상상력과 사유를 지배하는 언어의 영역을 최대화하면서 밀고 나아가는 것은 백미영 시인의 시적 역량이다. 이러한 활동이 점차 힘을 더하면서 그의 시가 동력을 얻을 때 새로운 상상력으로 몰고 가는 언어 드리블의 시세계가 한껏 새롭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의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는 이유인 것이다. 백미영 시인은 이제 더 빨리 달려가라. 저 시의 운동장으로. 그곳에 던져진 언어의 공을 상상력으로 몰고 달리면서 현란한 드리블을 과감하게 펼쳐 보이기 바란다. 그때 독자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백미영 시인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 김완하(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