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05 시인의 말
제1부 ----------- 013 덤 015 여름 016 춘애 018 시시한 날 020 간이역 022 감기 023 갑순 여사, 그날 025 동행 027 음력 오월 육일과 칠일 사이는 029 고인돌 030 귀신이 산다 031 그가 옷을 입는다 033 그냥 & 아무거나 034 금낭화 035 날씨를 고쳐 드립니다 036 노천탕 038 눈새기꽃 제2부 ----------- 043 대책 없는 계절 045 마루 밑의 저녁 047 비명 같은 햇살을 뚫고 048 말꼬리 049 묻어온 길 051 박하 향 방석 053 밥맛이 없습니다 054 복도의 끝 056 비단풀 058 모자 059 빈 가지에 햇살 열린다 060 뻥이요 061 삶은 만두 062 12월 3일 밤 습설 063 아무 일 없는 것처럼 064 아버지의 일출 066 애인 교체하는 날 제3부 ----------- 071 야금야금 072 어쩌나 074 여름은 계절을 투표하지 않는다 075 오늘을 늘려 입는다 077 구월 078 웬수 죽은 지 47년 080 유월은 낙동강 쪽으로 가라앉는다 081 이력의 옷핀 082 작은 잔 084 장염 085 재활용 목록 086 저녁을 푸는 연 088 저울 089 접속되지 않는 나 090 정전 092 텅 빈 들 093 풍경 094 고드름 제4부 ----------- 099 하지 100 한 그릇 101 행거 102 엄마 오는 길 103 환전 104 흐르는 강 105 희망은 한정판 107 털 머위의 노래 108 여름은 세로쓰기 중 110 비가 만든 그늘 111 몽돌의 바다 112 첫음절 114 뒤적이며 116 세탁 118 눈사람 119 비정규직 121 바다는 있었고 124 다음 126 해설 | 문턱을 건너는 기척들 | 성은주 |
|
덤 아버지 집에는 남의 시간을 건너온 살림이 살았다 냉장고, 텔레비전, 장롱, 스쿠터 긁힌 자국도 삐걱거리는 소리도 값에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것들을 새것처럼 끝까지 썼다 나도 1+1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몇 푼 아끼겠다고 더 먼 마트까지 다녀왔고 손바닥에 손잡이 자국이 무겁게 남았다 에어컨은 셋쯤 모여야 돌아가는 줄 알았다 나는 사람 수에 들지 않는 줄 알았다 한여름 커다란 거실에 혼자 앉아 에어컨을 켠다 찬바람이 불자 계량기 어디선가 아버지의 헛기침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끄지 않는다 내가 있으니까 ----- 13~14쪽 오늘을 늘려 입는다 흘러나오는 유행가마다 내 사연 끼워 넣으며 끄덕이는 일 시집 펼치다 어느 문장에서 너를 만난 듯 끄덕이는 일 계족산이 마지막 빛을 털어낼 때 내 몸 어딘가도 같이 저물고 있음을 끄덕이는 일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뱉은 말에 내 귀가 베일까 고개를 접는 일 뒤통수 맞은 하루 끝 강아지 코코의 맑은 눈이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면 따라 끄덕이는 일 다 입고도 버리지 못한 치마 헐거워진 고무줄 속으로 하루를 한 뼘 더 넣어 본다 쓰다 만 시 한 줄 허리춤을 당겨 매듯 오늘을 늘려 입는다 ----- 75~76쪽 |
|
그의 시들은 결국 ‘남아 있음’의 의미를 묻는다. 사람은 떠나고 계절은 지나가며 비도 그친다. 그 뒤에도 어떤 흔적은 사물과 몸, 공간의 습관에 머문다. 사라짐은 관계의 끝을 단정하지 못한다. 사라진 뒤에야 드러나는 몫도 있다. 이봄애의 시는 그 미세한 잔여에 귀를 기울이며 기억과 부재 사이에 한 사람의 몫을 남겨둔다. 문턱에 머무는 기척을 알아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이 시집이 타인을 기억하는 가장 조심스러운 방식일 것이다.
이봄애의 시학을 지탱하는 것은 생활의 작은 감각을 세심하게 붙드는 태도다. 손에 잡히는 물건과 몸의 움직임, 한 끼의 냄새와 낡은 말투, 사람 사이에 남은 기척은 삶의 시간을 알아보는 단서가 된다. 시인은 판단을 늦춘 채 사물과 몸, 말의 표정을 한참 바라본다. 그 시선 속에서 평범한 하루는 제 무게를 되찾고 사소해 보였던 감정도 생의 중요한 결로 살아난다. 경험에 여러 의미가 머물도록 하는 태도는 독자가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시 안으로 들어올 틈을 만든다. 첫 시집 『오늘을 늘려 입는다』의 힘도 여기에 있다. 생활 가까이에서 사람을 읽으며 해석의 문을 끝까지 열어두는 것. 이봄애의 첫 시집은 그 조심스러운 개방성으로 서로 다른 시간을 만나게 한다. - 성은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