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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수업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회디자이너들의 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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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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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 희망을 말해주던 인생의 스승들
스물에 만난 그의 질긴 삶 _홍세화
‘싸가지’ 없던 학생의 유일한 스승 _오창익
‘소도둑놈’ 선생님의 혼이 깃든 가르침 _정찬용
대전교도소에서 배운 민중의 삶 _김제선
어머니가 받고 있는 ‘치매’라는 수업 _고은광순
동양고전을 공부하게 된 한 정치학자의 깨우침 _배병삼
내 이름에 얽힌 자존감의 의미 _김금옥
데모 못하는 대학은 삼류다? _송재봉
앎에 대한 열정이 이어준 영국인 스승과의 인연 _서순탁
삶의 화두가 된 친구 K의 충고 _권미혁
나눔을 실천하는 ‘책임’을 배운 시간들 _김혜경
“너의 머리로 남의 행복을 생각하라”_김영호
힘들수록 유머를 잊지 말라던 그 뜻 _나효우
‘학문하기’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배우다 _조명래

2부 | 시대와 역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독일에서 맞은‘5월 광주’, 그리고 그 약속 _정범구
‘군 부정선거 양심선언’을 이끈 중대장의 눈물 _이지문
‘보도지침사건’이라는 역사로 남은 인생수업_김주언
부모를 기다리던 단칸방 아이들의 죽음 _이은애
‘여자 공원’에서‘여성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다 _최순영
‘똥물세례’를 받은 동일방직 노동자와의 만남 _남윤인순
군홧발 아래서 배운 민주주의 _이학영
노조결성 2시간 만에 계엄령이 떨어졌지만 _배옥병
피 흘리던 현실과 모범생의 만남 _권영국
촛불의 바다, 무대에 오르며 _노정렬

3부 | 실천과 배움을 나누며 함께 꾸는 꿈
고난의 수업은 계속된다 _박원순
교사는 학생들로부터 배운다 _정진화
꼬리치레도롱뇽과 어색하던 막걸리 술상 _박병상
〈쉰들러 리스트〉 같던 농촌학교 지키기의 추억 _전성환
부족함 속에서 얻는 삶의 여유로움 _김혜애
본전을 뽑고도 남은 그 수업 _김언경
사회 변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_오성규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 _박진섭
생의 가장 절박한 수업, 백혈병에서 살아남기 _강주성
IMF의 상처를 딛고 나눌 수 있던 마음들 _위정희
여성이기에 후회 없는 최고의 선택 _이화영
어떤 이유로든 희생은 안 된다 _이호

4부 | 삶은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전한다
아직도 갚지 못한 인생의 빚 _김성훈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온 예수 _문창식
의약분업 논쟁의 광기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한 그 힘 _이상윤
택시기사들과 맺은 걸쭉한 연대 _박세길
더운 여름날의 ‘짜고 치던’ 어떤 수업 _김성인
농활서 먹은 꿀맛 같던 감자의 기억 _이유정
10남매 막내와 하늘나라 어머니의 데이트 _정청래
대안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_조희연
산골에서 찾은 강호제현의 한 수 _곽노현
“자네는 차라리 유학을 가게나”_김남근
음악다방 디제이가 겪은 새 세상을 향한 열병 _지금종
어쭙잖은‘위장취업’, 부끄럽지 않게 살기 _오관영
철마산 자락에 뿌린 가슴시린 청춘의 흔적 _김성희
관념의 숲을 헤치고 사람들 속으로 _남효선
학문의 길로 이끈 총학생회장 낙선 _이장희
앞으로 계속될 새로운 수업을 기대하며 _최승국
인생수업의 중간성적표를 적어보자 _이승희

저자 소개 7

朴元淳

1956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서울대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으로 구속, 제명된 후에 다시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구 지검 검사를 거쳐서 변호사가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수많은 양심수 사건을 변론하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왔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조제도개혁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그 시대 박 변호사의 발자취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영국 런던대학 정경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미국 하버드법대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무처장
1956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서울대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으로 구속, 제명된 후에 다시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구 지검 검사를 거쳐서 변호사가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수많은 양심수 사건을 변론하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왔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조제도개혁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그 시대 박 변호사의 발자취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영국 런던대학 정경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미국 하버드법대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역임 하면서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영역을 나눔과 기부로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8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에서 주는 여성운동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선을 시작으로 제35~37대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2020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는 『경청』, 『정치의 즐거움』, 『희망을 걷다』,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프리 윌』 등이 있다.

박원순의 다른 상품

Hong Se-hwa,ホンセファ,洪世和,

저자는 무역회사원, 난민, 택시기사, 언론인 생활을 거쳐 은퇴한 산책자의 일상을 보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 명함을 자랑스럽게 휴대하였다. 197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에 체류 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망명하였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관광 안내·택시 운전을 하며 이주노동자로 생활하였다. 이때 집필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똘레랑스’라는 용어에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귀국하여 언론, 출판,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저자는 무역회사원, 난민, 택시기사, 언론인 생활을 거쳐 은퇴한 산책자의 일상을 보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 명함을 자랑스럽게 휴대하였다.

197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에 체류 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망명하였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관광 안내·택시 운전을 하며 이주노동자로 생활하였다. 이때 집필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똘레랑스’라는 용어에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귀국하여 언론, 출판,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 시민 모임 ‘마중’을 통해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된 외국인들을 지원하였다. 주요 저서로 『미안함에 대하여』, 『결: 거칢에 대하여』, 『공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생각의 좌표』, 『지구를 구하는 정치 책』 등이 있고, 『노루 인간』, 『딸에게 들려주는 인종차별 이야기』, 『왜 똘레랑스인가』 등을 번역했다.

2024년 4월 18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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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인권운동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과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썼고, 『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간신』을 함께 썼다. [한겨레]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썼으며 지금은 [경향신문]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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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明來

1954년 안동생.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제18대 환경부 장관 및 제11대 한국환경연구원장을 역임했다. 현실 정책과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자본주의하의 공간환경 문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단국대학교 법정대를 거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 영국 서섹스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간과 환경의 정치경제학’이 주로 연구하는 분야다. 그간의 연구 성과로는 『포스트포디즘과 현대사회위기』(1999), 『녹색사회의 탐색』(2001,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현대사회의 도시론』(2002,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개발정치와
1954년 안동생.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제18대 환경부 장관 및 제11대 한국환경연구원장을 역임했다. 현실 정책과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자본주의하의 공간환경 문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단국대학교 법정대를 거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 영국 서섹스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간과 환경의 정치경제학’이 주로 연구하는 분야다.

그간의 연구 성과로는 『포스트포디즘과 현대사회위기』(1999), 『녹색사회의 탐색』(2001,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현대사회의 도시론』(2002,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개발정치와 녹색진보』(2006), 『지구화, 되돌아보기 넘어서기』(2009), 『지식지형??(2011, 공저), 『공간으로 사회 읽기』(2012) 등 60여 권(공저 포함)을 냈고, 4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공간으로 사회 읽기』(문광부 우수도서, 2014), 『녹색토건주의와 환경위기』(2013), 『현대사회의 도시론』(문광부 우수도서, 2008) 등이 있다.

한국NGO학회장, ≪환경과 생명≫ 편집인, 한국도시연구소장(역임), 한국공간환경학회장(역임), 환경정의 공동대표, 인간도시컨센서스 공동대표,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서울YMCA 시민정치위원장, 충남도 행정혁신위원장,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수도권광역경제 발전위원, 세종시평가위원, 국회정보화자문위원, 환경부갈등조정위원장(역임), 외통부환경자문위원(역임), 문광부평가위원(역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역임)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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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oo-Un,金周彦

김주언은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 서울고를 졸업한 뒤 1972년 서울대 문리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됐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 군에 입대했다. 군 생활 이후 복학하여 1979년 졸업했다. 1980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문화부, 과학부, 편집부, 사회부, 경제부 기자로 근무했다. 기자로 재직하던 중 1986년 '말'특집호를 통해 '보도지침'을 폭로하여 구속되었다. 1987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한국일보에 복직하였다. 1992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냈다. 19년간
김주언은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 서울고를 졸업한 뒤 1972년 서울대 문리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됐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 군에 입대했다. 군 생활 이후 복학하여 1979년 졸업했다.

1980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문화부, 과학부, 편집부, 사회부, 경제부 기자로 근무했다. 기자로 재직하던 중 1986년 '말'특집호를 통해 '보도지침'을 폭로하여 구속되었다. 1987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한국일보에 복직하였다. 1992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냈다.

19년간 근무했던 신문사를 떠나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를 창랍하고 사무총장을 맡아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2002년부터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를 지냈으며 2005년엔 신문발전위원회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SBS와 EBS 시청자위원, 방송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보도지침』, 『신문편집의 자율성 증대를 위한 편집책임자의 규정과 그 역할 및 권한에 관한 연구』, 『2000년대 한국 언론의 이념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미디어 2.0시대 시청자 권리와 수용자 운동』 등 연구보고서를 공동집필했다.

현재 시민단체 '언론광장' 감사, '열린 미디어 연구소' 이사, '민주평화국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시민사회신문' 편집인을 맡아 '편집인 레터'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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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고집불통의 서생. 군 생활을 빼고는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고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1976년 인하대학교에 생물학과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1988년까지 마치고, 가톨릭대학교 환경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생태적 시각으로 여러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동물인문학』 『탐욕의 울타리』 『파우스트의 선택』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우리 동물 이야기』 『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
도시와 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고집불통의 서생. 군 생활을 빼고는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고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1976년 인하대학교에 생물학과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1988년까지 마치고, 가톨릭대학교 환경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생태적 시각으로 여러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동물인문학』 『탐욕의 울타리』 『파우스트의 선택』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우리 동물 이야기』 『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 『녹색의 상상력』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등을 썼고,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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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수학했다. 대학생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후 줄곧 재야에 머물렀다. 1990년대 전반기에는 노동자와 한국근현대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역사교양 활동에 매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단체와 연구기관 상근자로 활동했다. 1993년 기존 세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미래를 탐색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 2007년부터는 오로지 연구와 집필 작업에만 전념했다. 지은 책으로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3』,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세계를 바꾸는 역사』,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
1962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수학했다. 대학생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후 줄곧 재야에 머물렀다. 1990년대 전반기에는 노동자와 한국근현대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역사교양 활동에 매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단체와 연구기관 상근자로 활동했다. 1993년 기존 세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미래를 탐색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 2007년부터는 오로지 연구와 집필 작업에만 전념했다.

지은 책으로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3』,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세계를 바꾸는 역사』,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 1~2』, 『자본주의, 그 이후』, 『젊은 국가』,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 『선언』, 『한국혁명』, 『두 번째 프레임 전쟁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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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15g | 148*210*20mm
ISBN13
9788977152083

책 속으로

스무 살에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 그분을 나는 상념 속에서는 수도 없이 만났다. 그분은 나에게 살아남은 것이 부채임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준다. 그분은 내 삶의 처절한 교사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하는 대신 그런 사람을 낳는 사회에 분노한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과 싸우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낳는 사회와 싸우고 나 자신과 싸우려고 애쓴다면, 그 속에 그분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바가 있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분은 그의 삶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 하염없이 겸손할 것을 가르쳐주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죽는 그날까지. --- 1부 ‘스물에 만난 그의 질긴 삶(홍세화)’ 중에서

1995년 12월 5일, ‘보도지침 삼총사’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대법원 법정이었다. 천경송 재판장은 “상고를 기각한다”라고 짧게 선고했다. 9년여에 걸친 보도지침사건 재판이 무죄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9년여에 걸친 내 인생의 첫 수업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보면 보도지침사건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거의 이 사건을 모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민주항쟁조차도 모르는데, 하물며 보도지침사건을 배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도지침사건은 한국 언론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내 인생의 첫 수업이 이제는 역사가 되었다. --- 2부 ‘보도지침사건이라는 역사로 남은 인생수업(김주언)’ 중에서

공무상 안 되는 일이지만 기꺼이 공원 한편에 빨랫줄과 세면대를 설치하던 동사무소 직원들의 수고로움, 저녁시간에는 노숙으로 위험할 수 있다며 구급패트롤을 시작하던 소방서, 쌀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쌀을 책임져준 사찰들, 그리고 지원방안을 체계적으로 마련하자며 모인 6개 종단의 성직자들, 국과 찌개에 넣으라며 배달차량을 세우고 고기를 내려주던 도매상인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이어지던 그곳. 봄으로 넘어가던 2000년 서소문 공원은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지는 힘인 ‘내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은은한 향기’로 가득 찼던, 내 인생 감동의 나날이 있던 곳이었다. --- 3부 ‘IMF의 상처를 딛고 나눌 수 있던 마음들(위정희)’ 중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에 신규교육생은 4~5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전남을 대표하던 쟁쟁한 지도자 내지는 활동가들이었다. 이른바 ‘물이 괜찮은 놈들’이 세상물정을 모르고 교육을 받으러온 것을 눈치 챈 선배들이 ‘웬 떡이냐’ 하고 반색을 하며 그 2박 3일 동안 교육생처럼 위장해 그토록 열심히 ‘밀봉교육(?)’을 한 것이었다. 그 뒤에 같이 활동을 하면서 “내가 형님들 덕에 이 구렁텅이에 떨어져 이 모양 이 꼴로 고생하고 사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의를 하면, 그 선배들이 “교육은 원래 고도의 사기란 걸 이제 알았냐” 하며 서로 박장대소하던 기억이 새롭다.
별로 해놓은 것도 없이 벌써 나이 오십이 되었지만, 그 무덥던 여름날의 농민교육은 내 삶의 좌표를 바꾼 수업이었던 셈이다.

--- 4부 ‘더운 여름날의 ‘짜고 치던’ 어떤 수업(김성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과거 회귀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꿋꿋이 걸어온 과거를 회고하며 뚜벅뚜벅 전진!!!!


“시대가 아무리 험해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힘은 모일 것입니다.
…… 국가 명예훼손죄로 법정에 서더라도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는 계속하겠습니다.” --- 박원순 변호사

대한민국을 디자인하는 사회디자이너, 시민운동가들이 전하는 삶의 터닝포인트 이야기! 『내 인생의 첫 수업』에 실린 53인 사회디자이너들의 이야기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양심’의 길에 선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타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통해, 사회활동을 통해 깨우친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삶을 설계했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열망하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디자인’ 작업들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무관심과 자포자기를 딛고 ‘업그레이드된 사회’를 위해 함께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들이 회귀하려는 과거는 음습하지만, 우리가 회고하려는 과거는…“

얼마 전 작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말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라며, ‘행동하는 양심’으로 떨쳐 일어서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더 많은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들의 삶을 보라!
『내 인생의 첫 수업』 필자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2006년 희망제작소를 만들면서 시민사회운동가들을 부르기 시작한 이름, ‘사회디자이너(Social designer). 즉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자, 무엇을 하면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일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시인, 변호사, 한의사, 방송인, 시민단체 대표, 교수 등 직종은 다양하지만,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을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모인다.
사회가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으며 그 시절만큼 엄중하고 힘들다는 탄식이 들려온다. 『내 인생의 첫 수업』에서 필자들은 담담히 과거의 어느 순간을 회고한다. 미래의 희망을 향해 전진하겠다고 뜻을 세우던 그 순간들을. 그리고 그들은 외친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입니다.”라고.

섬광처럼 또는 시나브로 다가온 깨달음의 순간을 회고하다
『내 인생의 첫 수업』 필자들에게 ‘내 삶의 터닝포인트’라는 주제와 소장 사진을 부탁드렸을 때, 그들이 전한 사연과 사진은 자신들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어느 순간에도 놓지 않은 ‘변화는 가능하다’라는 자기 확신과 사회에 대한 관심들, 그리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또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찍은 사진들. 지나온 인생에서 ‘농(農)’ 자와 ‘임(林)’ 자를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회고한 김성훈 환경정의 이사장은 지금의 모습과 거의 다름이 없는 1958년 대학 1학년 때의 사진을 건넸다. 사진 속에서 그는 쌀가마니 지게를 지고 전남 진도 임회면의 한 농부와 해맑게 웃고 있다. 2009년 국정원 민간사찰을 고발한 죄로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소송에 휘말린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운동가의 삶을 풍찬노숙하던 독립운동가의 그것에 비유했다. 어렵사리 구해준 사진 속 박 변호사는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회의에 자리도 없이 끼어 앉아 회의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은 그런 모든 일들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현재 그는 엄혹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원점에 선 마음자세로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은 대학교를 점령한 군인들의 군홧발 아래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그 뒤로 권력이 부당하게 국민을 짓밟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촛불시민에 대한 경찰들의 물리적 진압을 막고자 골목길에 누웠다가 군홧발에 다시 무참히 짓밟혔고, 이 일로 대한민국 경찰청 자문위원직을 사퇴한다.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의 용산참사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 사진은, 스무 살에 단 한 번 만난 반공포로를 상념 속에서 수도 없이 떠올리면서 사람에게 분노하는 대신 그런 사람을 낳는 사회에 대해 분노해야 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와 오버랩되어 깊은 울림을 준다.

희노애락애오욕, 일곱 빛깔 터닝포인트!
막내아들 걱정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으시던 하늘나라 어머니를 떠올리는 정청래 전 의원, ‘밀봉교육(?)’인 줄도 모르고 농민들의 박식함에 기죽어 농촌 현실을 극복하고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세운 김성인 광주참여자치21 대표 , 환경조사 나갔다가 주민들이 차려준 막걸리 술자리에서 ‘이공계 학자’의 꿈을 접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학습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면서도 도무지 책을 읽지 않고 와서 속을 썩이던 노동자가 사실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낀 오관영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택시기사 총파업투쟁 지지 가두시위가 단 한 명의 연행자 없이 성공하자 승리감에 도취했으나 소식을 듣고 몰려든 택시기사들이 철통같이 엄호해준 덕분이었음을 알고 가슴 찌릿한 경험을 한 박세길 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함께 철거투쟁하던 주민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지켜보면서 어떤 사회운동의 명분이나 활동의 필요성도 당사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이들이 회고한 삶의 터닝포인트는 각기 그 깨달음의 색깔이 다르다. 어설프고, 쉽게 절망하고, 섣부르던 젊은 시절에 타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통해, 조직을 통해,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대한민국 사회를 디자인하는 53가지 방법들!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 53인의 시민운동가들은 다 다르게 또 똑같이 한 길을 걷고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한 ‘인생 첫 수업’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그 관심을 구체화시키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백혈병을 경험하고 환자의 권리에 대해 눈을 뜬 강주성은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만들고, 부모를 기다리던 단칸방 아이들의 죽음을 보고 ‘다시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 죄 아닌 죄로 아이들이 마음대로 뛰놀지 못하고 어이없이 죽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결심한 이은애(함께일하는재단 사무국장)는 선후배들과 함께 노동탁아소를 설립하고 운영한다. 9년여에 걸친 ‘보도지침사건’ 재판을 겪으면서도 김주언은 [시민사회신문] 편집인으로서 여전히 한국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매진하고 있으며,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증언한 이지문(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은 내부공익신고 활성화 등 반부패 유공으로 2008년에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수상했고, ‘너의 머리로 남의 행복을 생각하라’라는 유일한 선생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은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국내 사회책임운동의 핵심 인사로 노력해왔다. 개그맨 노정렬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에 따라 어느 공간이든 달려가 시사개그를 상연하며, 의약분업 논쟁이 휩쓸던 시기에 인의협 회원으로서 전공의와 의과 대학생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병원에 근무하지 않고 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의사가 되었다.
이들은 병마의 고통, 죽어간 어린 생명에 대한 죄책감, 한국 언론사의 산 증인이라는 멍에, 장교라는 신분으로 느낄 수밖에 없던 공포, 편파적이라고 외면당할 수 있다는 걱정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삶이라는 커다란 과정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연료로 삼아 불태운다. 그리하여 각계각층에서 ‘걷고 또 걸으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에 박힌 직업들이 아닌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면서 ‘언젠가 사람들이 그것을 길이라고 부르며 걸어갈 날’을 희망한다.

『내 인생의 첫 수업』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

현대에는 언론과 NGO를 넣어 정부를 5권 분립이라고 하기도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시민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크게 노력해왔지만, 자신들의 형편은 그리 넉넉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들의 활동에 동참하기보다 방관자가 되고 무임승차자가 된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_오평

사회적으로 성숙한 제 인생은 아직 미성숙한 유아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좋은 노하우를 갖고 계신 분들의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큰 책인 것 같습니다._다잘될꺼얌!!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이제 더는 조언을 구할 때가 없음을 가끔 느낀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만한 삶의 경험이 없을 때 이러한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다._프로그래머

한때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젊은 시간을 바치며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혀보고자 애쓴 시간이었습니다. 그 생생하던 아름다운 공간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지금은 소중한 가치들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첫 수업』을 통해 아름다운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고 싶습니다._작은 미소

'사회 디자이너'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명인사'라는 말과 왠지 다른 느낌이네요. 그리고 과거로 남기보다 현재?도 역시 수없는 고비를 넘으며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_코알라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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