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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인간이라는 심연,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한 사제의 기이한 순교담 그레이엄 그린 연보 |
Henry Graham Gre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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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냄새가 사방에서 올라왔다. 지구가 우주 공간 속으로 떨어져 나올 때의 화염에도 그 습기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래 봐야 이 끔찍한 지역의 안개와 구름만 겨우 빨아들였을 뿐이리라. 쭉쭉 미끄러지는 노새 위에서 아래위로 흔들거리며 그는 브랜디로 굳어 버린 혀를 놀려 기도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그는 탈출하려 했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바람이 잠잠해지지 않을 때면 몸조차 눕히지 못했던 서아프리카 한 부족의 추장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 p.33
때리려고 치켜드는 마리아의 손, 어스름 속에서 애어른처럼 떠들어 대는 페드로, 숲을 뒤지는 경찰들. 폭력은 도처에 있었다. 그는 조용히 기도했다. 「아, 하느님, 통회하지 않겠사오니 어떤 식으로든 죄 중의 상태로 저를 죽여 주시고, 다만 이 애를 구하소서.」 그는 영혼들을 구제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그 일은 정말 간단했다. 축복의 기도를 내리고, 조합을 만들고, 창살이 달린 창 안에서 할머니들과 커피를 마시고, 검은 장갑을 끼고 작은 향으로 새로 지은 집을 축성하는 일……. 그건 돈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쉬웠는데 이제는 신비로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그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절망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낄낄대며 도망가려고 하는 아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사랑한다, 얘야. 난 네 아버지고 너를 사랑한단다. 넌 알고 있어야 해.」 --- pp.134-135 〈사생아〉라는 단어를 들으니,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애인의 이름과 같은 꽃 이름을 낯선 남자가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처럼 그의 가슴이 쓰라렸다. 〈사생아!〉 그 단어 덕분에 그는 비참한 행복에 푹 빠져들었다. 그 단어를 떠올리자, 아이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쓰레기 더미 옆 나무 아래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딸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했다. 무심함을 가장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는 다시 〈사생아〉라고 되뇌었다. --- p.201 어디로 가든, 어느 정도 가면 물론 마을이 나올 것이다. 계속 가면 해안에, 태평양에, 과테말라로 가는 철도 선로에 닿을 것이다. 거기에는 길도 있고 자동차들도 있을 것이었다. 기차를 마지막으로 본 건 10년 전의 일이었다. 해안을 따라 검은 선이 쭉 이어지는 지도를 그는 상상할 수 있었다. 50마일, 1백 마일 너머로 펼쳐진 미지의 땅도 그는 볼 수 있었다. 거기가 바로 그가 지금 있는 곳이었다. 인간들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이제 그를 죽일 수 있는 건 자연뿐이었다. 가던 대로 그는 계속 걸었다. 버려진 마을, 죽어 가는 잡종 개와 구둣주걱이 있는 바나나 농원으로 다시 돌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기어 내려가고 또 기어 올라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수밖에 없었다. 비가 지나간 뒤 협곡의 맨 위에 서서 바라보니 젖은 회색 장막이 출렁이는 아래로 일그러진 땅과 숲과 산들뿐이었다. 그건 꼭 절망을 바라보는 일 같았다. --- p.202 사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숨소리를 들으려고 사내의 입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다. 역겨운 냄새가 치올랐다. 토사물 냄새와 시가 냄새, 퀴퀴한 술 냄새가 뒤섞였다. 들릴락 말락 한 영어가 그의 귀에 닿았다. 「튀어요, 신부님.」 문밖 폭풍 앞의 햇살 속에서는 메스티조가 무릎에 조금 힘이 풀린 듯 오두막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살아 있는 거 맞소?」 사제가 활기차게 말했다. 「서둘러야겠군. 얼마 남지 않았으니.」 「튀라고요, 신부님.」 「나를 필요로 한 사람이 당신 맞소? 가톨릭 신자요?」 「튀어요.」 다시 목소리가 속삭였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배운 것 중 기억할 수 있는 표현은 그것뿐이라는 듯. --- p.297 이것이 바로 내가 항상 모든 이들에게 느껴야 했던 감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혼혈인, 경위, 심지어는 몇 십 분 동안 함께 앉아 있었을 뿐인 치과 의사와 바나나 농원의 그 아이에게로 생각을 돌려 보려고 했다. 끄떡도 하지 않는 무거운 문을 밀듯 주의를 한곳으로 모으며. 모두 각자의 위험에 처해 있던 그 사람들에게로. 「그들 모두를 보살피소서.」 그는 기도했지만, 기도하는 순간 그의 신경을 쓰레기 더미 옆에 서 있던 자기 딸에게로 돌아갔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실패였다. --- p.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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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상상 세계의 창조자이자 스릴러의 대가, 그러면서도 인간 실존과 신의 관계를 깊이 고찰한 신앙인이기도 한 그레이엄 그린의 대표작 『권력과 영광』이 소설가 김연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그린의 멕시코 여행 직후 탄생한 이 작품은 한 타락한 신부의 도피와 고뇌를 통해 정치와 신앙의 대결, 그리고 신앙의 초월성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고통이 기쁨의 일부이듯, 지상은 천국의 일부입니다.」 불구가 된 세상이 신의 대리인에게 내리는 가혹한 형벌, 혹은 놀라운 축복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마치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를 연상시키는 이 기도는 어느 타락한 신부의 것이다. 사제들은 강제로 결혼을 하거나 총살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군사 혁명 시절의 멕시코에서, 범법자이자 도망자를 자처한 〈위스키 사제〉. 그의 고독은 결국 사생아를 낳고, 그의 절망은 금기시된 술을 찾는데……. 끝없이 쫓기며 누군가에게 세례를 주고 또 누군가에게 배신당하는 위스키 사제.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의 순교상과는 잔인할 정도로 판이한 그의 행보. 타락한 삶에 괴로워하면서도 타락의 열매인 딸을 그리워하며 번민하던 그가 어느 순간 돌아선다. 그리고 자신을 쫓는 그 무언가를 향해, 어둠을 향해, 어둠의 중심부를 향해 걷는다. 그 이유에 대한 물음은, 아마도 이 책이 우리에게 묻는 가장 무거운 질문일 것이다. 『권력과 영광』은 열린책들이 2009년부터 펴내기 시작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146번째 책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고전 시리즈의 새 이름으로, 상세한 해설과 작가 연보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한편 가볍고 실용적인 사이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렸다. 앞으로도 열린책들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을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낡고 먼지 쌓인 고전 읽기의 대안 불멸의 고전들이 젊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목록 선정에서부터 경직성을 탈피한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본격 문학 거장들의 대표 걸작은 물론, 추리 문학, 환상 문학, SF 등 장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들, 그리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한국의 고전 문학 까지를 망라한다. 더 넓은 스펙트럼,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 소설 문학에 국한하지 않는 넓은 문학의 스펙트럼은 시, 기행, 기록문학, 그리고 지성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 인문학 저작까지 아우른다. 원전번역주의에 입각한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으로 정전 텍스트를 정립하고 상세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를 더하여 작품과 작가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품격과 편의, 작품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낸 디자인 제작도 엄정하게 정도를 걷는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실로 꿰매어 낱장이 떨어지지 않는 정통 사철 방식,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재질을 선택한 양장 제책으로 품격과 편의성 모두를 취했다. 작품들의 개성을 중시하여 저마다 고유한 얼굴을 갖도록 일일이 따로 디자인한 표지도 열린책들 세계문학만의 특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