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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일본 사람이야? ● 7
이래도 정신 안 차릴 테야? ● 19 태극기 딱지 사건 ● 30 도철이와 할아버지의 비밀 ● 43 요시라 순사의 행패 ● 58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 ● 68 안성 장터에서 ● 79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 87 일본인 주재소와 우편소를 불태워라! ● 101 끌려가는 할아버지 ● 113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어! ● 123 그날이 올 때까지 ● 137 작가의 말 ● 152 |
李圭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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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919년, 독립 만세를 부른 아이들 어렸을 때였다. 해마다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 1일만 되면 할머니는 늘 서랍에 고이 간직했던 태극기를 꺼내어 대문 옆에 달곤 했다. 물론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까막눈에다 나라 돌아가는 일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노인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느 날 나는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태극기를 정성껏 달아요? 안 다는 집도 많은데.” “너는 안 겪어봐서 몰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저 툭하면 찾아와 닦달하고 쌀이며 보리, 놋그릇까지 싹 빼앗아 갔다니까. 내 이름 금자도 가네꼬로 부르게 하고. 만세를 부른다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붙잡아다가 고문하고 반송장으로 만들었다고. 에고, 그놈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할머니는 마치 일본 순사가 앞에 있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할머니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아주 훗날이었다. 학교에서, 신문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일제강점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강압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특히 1919년 3?1 만세 운동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붙잡혀서 모진 고문을 받다 죽어가고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 뜻있는 백성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멀고 먼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등으로 떠났는지를 말이다. 어느 해였던가. 텔레비전으로 3?1 운동 기념식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919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지? 그렇다면 그 많은 태극기는 다 어디서 났을까? 일제의 감시 때문에 마음 놓고 태극기를 찍어낼 수도 없었을 텐데.’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는 그런 나의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어느 날 3?1 운동에 관한 자료를 찾으러 목천 ‘독립기념관’과 안성 ‘3?1 운동 기념관’으로 간 나는 전시실에 놓인 태극기 목판본을 보는 순간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아, 바로 저거였구나!’ 짙은 밤색 나무판 위에 오롯이 새겨진 문양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얼마나 많은 태극기를 찍어냈는지 도들 새김한 부분이 반들반들하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던 태극기는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인쇄소에서 찍어내기도 했지만, 인쇄 시설이 별로 없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목판본을 이용해서 태극기를 찍어 낸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두꺼운 나무판에다 태극기 문양을 조심스레 파 내려갔을 그 누군가를 떠올리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목판본 위에 종이, 옥양목, 광목을 대고 몰래몰래 태극기를 찍어내던 누군가의 분주한 손길들도 떠오르고. 나는 전시실 앞에 발을 멈춘 채 낡고 오래된 태극기 목판본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때였다. 문득 한 남자아이가 후미진 곳에 앉아서 징과 끌로 정성을 들여 태극기 목판본을 파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래, 모든 사람이 나서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일 때 어린아이들이라고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쩌면 어떤 아이도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도 어른들처럼 무언가 힘을 보태려 저 태극기 목판본을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력은 점점 더 켜져서 어느 틈에 나는 ‘도철이’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를 쓰기 시작하였다. 특히 서울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자, 4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대대적인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던 안성 원곡면과 양성면을 배경으로 말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도철이와 그 가족, 친구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만세 운동에 나섰던 그때를 떠올리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안성 원곡면, 양성면, 만세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날의 만세 시위로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르고 죽고 나라를 떠나는 슬픔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3?1 운동의 우렁찬 함성과 용기, 희생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독립의 의지를 다지고,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가 자주 국가임을 알리고, 애국지사들이 뜻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게 하였으니까. 나는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를 통해 도철이와 친구들뿐 아니라, 일제의 총칼에도 굽히지 않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던 수많은 분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동화작가 이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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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를 읽을 친구들에게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지금부터 100년 전, 만세 소리는 삼천리 방방곡곡 울려 퍼지지 않은 곳이 없었답니다.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일제의 만행으로 다치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셀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일제가 탄압하면 할수록 더욱더 독립에 대한 열망은 커졌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철이와 친구들처럼 더 큰 꿈을 꿉니다. 백성 모두가 주인이 되는 나라, 남자 여자, 어른이나 아이 없이 모두가 똑같이 주인인 나라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비록 남의 나라 중국 상해 땅이었지만 국민을 대표하여 모인 사람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웁니다. 기미년 봄 3·1 만세 운동을 경험했던 도철이와 친구들이 아버지보다도 더 많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한민국이 당당한 독립국가가 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첫 구절 잘 알고 있죠? 국민이 주인인 나라 대한민국,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 아시겠어요? 100년 전 도철이와 친구들이 지금으로 온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요? 여러분이 만약 100년 전 기미년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린이 여러분,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와 함께 100년을 넘나드는 소중한 시간여행 한 번 어때요? 첫 장을 펼치는 순간 100년 전 안성에 사는 도철이와 친구들이 여러분에게 말을 건넬 겁니다. - 김봉수 (남창초등학교 교사, 사단법인 모아재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