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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자작나무 13 닫힌 문 14 촛불이 꽃처럼 번지고 17 수국水菊 1 18 물의 감각 20 소 22 돋보기 24 스위치를 올리다 26 연탄이 28 쇠제비갈매기 30 연애사戀愛史 32 칼을 받다 34 지문 36 겨울 자작나무 38 길티 플레져 40 제2부 천수만에서 45 정오 46 수라비키노 갱생원 48 호박 궁전 50 나를 찾아보다 52 개 밥 주는 여자 54 반구대암각화 55 우포늪 56 플랫폼에서 58 이석증耳石症 60 물길 61 달맞이꽃 62 수국水菊 2 64 개미들 66 제3부 간판 69 도플갱어 70 느락골 4 72 느락골 5 74 만두 별 75 개망초 76 아암도 78 낙관 80 나팔꽃 82 석장리 막집 83 노랑나비 84 로즈메리 86 붉은 강 88 묵상默想 89 제4부 삭제 93 엄마의 강 94 느락골 3 96 둠벙배미 98 삭힌 가슴 102 맨발 104 아버지의 새끼줄 106 다시 벚꽃이 피다 108 등짐 한 채 109 왼손 110 걸어가는 사람 112 누굴까 114 풍선덩굴 115 해설 고광식 창공을 보며 숨을 고르다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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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달팽이 같은 입술과
볕 한 뼘만큼의 그늘을 주소서 느릿느릿 이 등짐 한 채 지고 먼 하늘까지 무사히 건너게 하소서 2019년 11월 류인채 ---「시인의 말」중에서 지문 공항 출입국 심사대 어디에 내 손가락을 빠뜨렸을까 돌아보니 너무 서둘러 온 길 왼손과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마디 안쪽의 둥근 지문指紋이 없다 손거스러미를 쥐어뜯으며 무심코 돌멩이를 던지던 강을 떠올린다 넋 놓고 수면을 바라보면 신천옹信天翁의 날갯짓 같던 소용돌이 강 한가운데로부터 바깥으로 둥글게 퍼져 사라지던 지문 같은 파문 물새가 날개를 접어도 수면은 이따금 태동처럼 불룩 올라왔다 수태되기 전 이미 두 손에 꼭 쥐여 주신 로고스 아무도 지울 수 없는 선명한 지문 많은 무늬를 품고 여문 강물은 고요해졌다 ---「지문」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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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을 사물을 사건을 향해 열려 있는 류인채의 오감을 좋아한다. 그는 안개에 베인 고니의 상처를 보며, 자작나무의 흐느낌과 눈물을 보며, 새들이 일으키는 물결에 종아리가 간지러워 흔들리는 갈대꽃을 본다. 멀리 섬처럼 떠있는 가창오리 떼와 오리를 목이 긴 항아리로 본다. 꽃 섶을 파고드는 개미를 본다. 그는 빗방울이 잎새를 두드리는 소리를,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우는 소리를 듣고, 그는 연어에서 엄마 냄새를 맡는다. 들쥐의 땅속 일을 감각한다. 달팽이의 입술과 한 뼘만큼의 볕과 그늘을, 촉촉한 그늘을 감촉한다. 그러므로 류인채는 감각하는 자작나무이며, 감각하는 갈대이고, 감각하는 고니이며, 감각하는 가랑잎이며, 감각하는 연어이다. 류인채는 오감으로 길모퉁이에서 젖은 수국을 통해 실의에 젖은 이웃을 보고, 휘날리는 가랑잎과 귀에 바코드를 박은 소를 통해 사육당하는 자신을 본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풍선덩굴을 보고, 쇠제비갈매기를 통해 남편을 본다. 류인채는 만물을 향해 오감을 열어놓아, 인생의 늪을 걸어본 사람만이 젖은 발이 무엇인가 안다는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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