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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36g | 128*188*15mm
ISBN13 9791165796334
ISBN10 1165796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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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연이었으나 부모의 젊고 기운찬 시절을 찍어두길 정말 잘했다. 두 사람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과거 영상과 허리가 굽은 지금의 영상을 비교하여 보면 ‘사람이 늙어가는 것’의 잔인함과, 반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것’의 풍요로움, 이 양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 p.38

집에 오니 아버지가 커피를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받느라 고생한 엄마를 위한 아버지 나름의 위로였을 테다. 나는 엄마가 코트를 넣으러 방으로 들어간 순간을 노려 아버지에게 알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래요.”
검사 결과지를 건네자 아버지는 잠시 읽더니 납득한 모양인지,
“역시.”
한마디. 그 말에 엄마가 되돌아와 농담하듯 말했다.
“아유 정말이지, 치매 아닌데 죄다 치매라고 하잖아요.”
--- p.50

아버지의 말도 이해는 된다. 부부 둘이서 서로를 지탱해가며 천천히 시들어가는 것,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미학일지 모른다. 아버지도 엄마도 서로를 신뢰하는 둘만의 생활이 정신적으로는 충만해 보여서, 이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둘이서 사이좋게 영원히 시들어버리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을 말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그게 영화나 소설이라면 아름답겠지만 현실이라면? 이웃들은 그런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할까?
--- p.104

카메라를 들고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레 ‘객관적’인 시점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비참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일이 의외로 다르게 다가왔다. ‘치매 할머니와 귀먹은 할아버지의 맞물리지 않는 어긋난 대화’에는 적당히 우스꽝스러운 맛도 있다. 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점차 ‘왠지 모르게 이 두 사람 훈훈하다. 좋은 캐릭터구나.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었다.
--- p.146

빨래뿐 아니라 다 마르면 개는 것도 아버지의 일이다. 엄마의 브래지어를 “이건 가슴에 차는 것” “이건 팬티” 하면서 개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엄마의 속옷을 개는 아버지를 촬영하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처음이다, 네 아버지 이러는 거. 여태 한 번도 안 했는데.” 그러나 아무리 봐도 처음 하는 사람의 손놀림이 아니다.
--- p.149

치매 전문의 이마이 유키미치 선생님에게 “가족은 그 사람을 사랑해주는 것이 제일의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얼버무리며 피해왔던 내 마음을 제대로 마주해야만 하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진정으로 엄마를 사랑하고 있나?
--- p.228

아버지는 매뉴얼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신념으로 엄마와 정면 승부를 보았다. 그리고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엄마라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엄마를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 치사함을 나무라는 것 같아 패배감마저 느꼈다. 내게 그 정도의 각오는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p.247~248

“나오코 씨, 저는 엄마를 간병하다 떠나보내고서 생각했어요.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라고요.” 이 말을 부모가 건재한 동안에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지금,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 자식인 내가 인간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마지막 육아를 해주고 있구나.
--- p.253

엄마에게 아버지는 변함없이 계속해서 말을 건다. “우리 얼른 집에 가세. 기다리고 있잖소.” 아버지는 정말로 엄마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아버지의 속마음이 궁금하지만 무서워서 묻지 못한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아직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내린 커피를 둘이서 마실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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