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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왕

고양이 대왕

리뷰 총점9.1 리뷰 27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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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286g | 120*188*20mm
ISBN13 9791160261400
ISBN10 116026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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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등단 후 15년 만에 선보인 김설아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그가 끈기 있게 전달해온 `억압으로부터의 탈주`가 이 책에서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보여지지요. 세상의 시선을 감수하고 진짜 ‘나’로 살아가는 이들의 기묘한 변신담은 우리에게 세상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은근한 용기를 줍니다. - 소설MD 이주은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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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완벽한 교감을 경험했던 이들은 겉으로는 전처럼 사람들을 대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깊은 괴리감과 함께 슬픔을 느꼈다. 아무도 병아리처럼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해주지 않는 데서 오는 슬픔. 자신의 순수한 욕구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에 대한 피로감.
--- p.31

이 시간과 거리의 풍경이 그대로 느껴지던 짧은 순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건물이나 사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 현재라는 시간의 빛. 그녀는 숨을 들이쉬었다. 혹시 이것이 켈리가 말하던 광채인가. 기다림과 희망을 모두 버렸을 때 볼 수 있다던 영원.
--- p.64~65

그 모든 것이 반복되고, 여전히 용암은 무섭고 느리게 검게 죽은 산 표면을 따라 흐르고, 눈에는 별이 반짝반짝. 나는 악마에게 속삭였다. 이것이 저의 하루 일과입니다. 어디 한번 제 다리를 잘라보십시오. 끝까지 춤추며 도망갈 겁니다. 세계와 우주의 끝까지. 오로라와 세포막의 끝까지. 끝과 끝까지. 악마는 용암에 빠지고, 나는 웃는다.
--- p.75

늘 바쁘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회사에서 늦은 밤까지 일하다가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가, 주말이면 죽은 시계처럼 잠을 자던 아버지가 종일 집에 계셨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전에 없이 신체적인 애정 표현이 많아지셨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가끔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얼굴과 머리 옆쪽을 제 몸 구석구석에 비비시며 아주 기분 좋은 듯이 목 깊숙한 곳에서 고롱거리는 소리를 내셨습니다.
--- p.107

“하! 나더러 방금 좀비라고 했냐? 그러는 넌 뭔데? 뭐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건 지 아냐?”
나는 더듬거렸다.
“그, 그건 부모님이 그러니까 같이 잤으니까.”
진구스는 웃었다.
“그건 원인이고, 이유 말이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 또 살아가는 이유.”
내가 살아 있는 이유, 또 살아가는 이유. 대학, 직장, 결혼 등을 떠올려보아도 결국 궁극적인 이유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망설이는 사이, 진구스는 내 양볼을 두 손으로 확 잡더니 자신의 얼굴에 바싹 붙이며 말했다.
“내 눈을 봐. 그 이유를 보여줄게.”
--- p.150~151

유리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작 한다는 말이 업무방해……? 유리나의 새하얀 얼굴이 모욕감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느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가 굵은 물줄기가 되어 뜨겁게 흘러내렸다. 이제껏 그토록 열심히 일했건만 항상 잘되면 자신들 덕이고 못 되면 그녀 탓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제껏 애써 억눌러왔던 울분이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 p.178~179

무엇이었을까, 그 알루미늄 쟁반이 그렇게도 UFO처럼 보였던 까닭은. 그때 즈음에는 나는 셋 말고도 더 큰 수에 대해서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옆집의 우동이 받아보는 학습지를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훔쳐보는 중에 드디어 열까지도 셀 수 있었던 무렵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머리 위로 오르는 쟁반들.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정확히 일곱 개였다.
--- p.189

똑똑한 그조차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이성을 잃었다. 먹는 것은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한 낙이었고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싸고 양많고 맛있는 것이면 다 되었다. 그 세 가지를 너무도 중시했기 때문에 몸에 좋은 것은 옵션조차 못 되었다. 그의 세계관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진정 천국이었다. 저토록 싼 가격에 저토록 많은 음식을 살 수가 있다니. 물론 영양가는 거의 없는, 그저 음식 모양의 쓰레기일 뿐이지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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