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았던 시들은, 바람이 부는 곳과 햇볕이 드나드는 자리를 알고 제멋대로 창문을 열어둔 집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후자가 되고 싶어서, 애써 알고 배워온 것들을 잊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숙련된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게 된다. 서툴게 언어를 고르고 이미지를 불러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 과정을 계속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순수가 나를 불러줄 때까지.
--- p.27
상담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는,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제어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감정의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고는, 평정심을 위해서 불편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점을 선생님은 꼬집었다. 물론 기쁜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기쁘거나 벅차오르는 감정마저도 냉철하게 억누르면서 지내온 내 방식이 지금 일어난 많은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수평대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만의 균형 감각이 앞으로 가는 일엔 필요했지만, 깊어지거나 높이 가는 여정에 있어서는 불구의 자세에 가까웠다.
--- p.32
어둠 속에 모여, 더 어두운 것을 가리켜보는 것, 그래서 좀 더 어둡지 않은 것을 밝아 보인다고 말해보는 것, 그런 어둠과의 실랑이 속에서 우리의 문장이 계속되어간다는 것을 잠시나마 실감해보는 것이, 쓰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수업을 모두 마치는 날에는 가장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출석부에 적힌 낯선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읽어보며 혼자서 먼 배웅을 하기도 한다. 각자 문밖으로 나가면 다시 시작될 어두운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온실을 떠나 거대한 숲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론 또 만날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을 혼자 겨누며 사람들의 이름을 자꾸 되뇌곤 한다.
--- p.43
나는 시의 마지막 문장을 늘 의심한다. 마지막을 위해 쓴 문장은 문을 닫고 영영 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열려 있는 시, 문장들이 문을 여닫으며 환기하는 시, 그런 시가 살아 있는 시라고 믿는 나는 퇴고할 때마다 늘 마지막 문장을 지워서 보고는 한다. 그것을 어젯밤에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제는 채워서 이루고 싶은 게 있었고 오늘은 비우면서 이루고 싶은 게 있으니까. 어제는 허전해 보였을 것이다. 오늘은 마땅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시가 눈을 비비며 아침을 만난다. 탁자 위에 놓인 두 편의 시 위로, 거짓말처럼 햇빛이 기운다. 독백이 끝난 뒤 텅빈 의자를 비추는 핀 조명처럼.
--- p.80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통학 버스 타러 가던 길에, 봉고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내 시를 읽어주던 선생님이었다. 창문을 내리고는 내 시가 적힌 종이를 펄럭이며 내게 무슨 말을 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시에 쓴 어떤 단어 대신에 이런 단어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고, 나는 차 엔진 소리와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때문에 알아듣진 못했으나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버스에 올라타 생각했다.
내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이게 차를 멈춰 세워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 p.90
나의 작품은 마치, 삶이 시와 같을 순 없을 것만 같지만, 시가 삶에 끼어든 자체가 느껴진다고. 시가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내 삶도 시를 모사하기 시작했고, 생활의 반경과 시의 반경이 맞닿는 지점에서 긴장하고 위축된 근육처럼 경련하듯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삶을 살아내고, 그렇게 돌아보면 삶 자체가 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삶 자체가 쓰다만 시처럼, 삶 자체가 시 한 편처럼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은 그렇게 날 선 종이처럼 온다.
--- p.104~105
나는 어떤 글을 쓰든지 간에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외할머니가 이 글을 어떻게 읽을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이 문장이 흘러가 작은 연못이 되는 곳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발 담그며 푹 쉬고 있는 외할머니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미 소리가 여름을 찢어가며 더위를 고조시킬 무렵, 그림자 작은 나와 동생은 그때만 해도 크고 웅장한 그림자를 가진 외할머니 뒤를 쫓아 시장에도 가고, 김밥도 먹고, 이상한 구구단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 여름이 나의 어딘가에 새겨져 무늬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그 여름의 열기가 나의 춥고 얼어붙어가는 무언가를 녹여준다는 사실까지도. 훈데르트바서가 어느 날,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릇에 예쁘게 꽃무늬를 그려넣은 것을 보고는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결심한 일처럼, 내 모종의 씨앗이 어디에서 불어왔는가 생각하면 그 방향은 따뜻하고 아늑한 쪽임이 틀림없다. 신파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유일하게 생각하는 나의 드넓고 존재 자체로도 훌륭한 정원이 있다면 그것은 외할머니가 기르고 일궈온 작은 세계다. 나의 몇 가지는 그곳에서 걸음마를 배워 걸어나왔다.
--- p.121~122
여기에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건드리고, 그 이야기가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또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노래 한 곡이 끌어당기는 우리 안의 이야기들, 각자의 이야기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토록 작은 공간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 하거나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우리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이 끝끝내 건드리고 마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
--- p.127
첫 시집을 깊숙이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나다운 내가 있으니까요. 나는 여기 책 바깥에 있는데 책 안에 있는 것이 나를 원관념으로 무수히 많은 다발로 태어나 있으니까 징그럽고, 또 지금의 나보다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 p.14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