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7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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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522g | 140*210*30mm |
ISBN13 | 9788936465957 |
ISBN10 | 8936465953 |
발행일 | 2020년 07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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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522g | 140*210*30mm |
ISBN13 | 9788936465957 |
ISBN10 | 8936465953 |
책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어느 하루의 시작 1장 죽음의 장면 1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지 못한 의사 2 생사의 갈림길에서 √ 의료인문학 수업 I 2장 백세시대 3 왜 우리는 이렇게 죽게 되었을까? 4 노화에서 죽음으로 5 생로병사의 이유를 찾지 마세요 √ 의료인문학 수업 II 3장 죽음 비즈니스 6 왜 의사들은 죽음 앞에서 거짓말을 할까 7 연명의료결정법 사용설명서 8 중환자실에서 생기는 일 9 법률 서커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준비하며 4장 좋은 죽음, 바람직한 죽음 10 죽음의 미래 11 어떤 죽음 12 집에서 죽고 싶어요 에필로그 나의 엔딩노트 |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그 시기를 알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멀리한다. 죽음이란 먼 훗날의 이야기일 뿐이며 따라서 지금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듯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시기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죽음이 멀리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라도 나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과 전문의 김현아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죽음이 바람직한가는 사람마다 각기 생각이 다르지만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30년간 의료현장 일선에서 마주한 죽음들을 사례로 들며 왜 우리가 죽음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이 책에 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같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집에서 죽기를 원했고, 죽으면 집에서 초상을 치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접하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의례화된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를 떠나 그만큼 죽음이라는 실체가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현대의학은 노환이라 할지라도 환자가 병원으로 넘어온 순간 죽음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시킨다고 한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좋은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희망은 ‘병원의 죽음 비즈니스’에 묻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 저자는 노화와 죽음의 의미부터 시작하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까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물론 죽음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사전에 알아야 하는 좋은 죽음을 위한 준비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인간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인류가 생겨난 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수명은 겨우 2배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식량의 안정적 공급으로 인한 영양상태 개선과 공중위생의 발전에 힘입어 또다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인간의 몸이 이러한 급작스러운 수명 연장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즉 인체의 기능은 그대로인데 사용 기간만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노화에 의한 죽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망진단서에는 노화 대신 각종 의학적인 진단명이 붙는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의학은 죽음의 원인은 물론 속도와 시간, 장소마저도 마음대로 조정한다. 자연스러운 노화라는 단어를 잘게 쪼개어 알지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질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현대의학이지만 대부분의 질병에 대한 원인을 아직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암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의료는 암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마음을 이용하여 의미 없는 진단, 수술로 이어지는 과잉 진료하고 있다며, 고령 환자의 암은 노환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즉 사람이 늙고 죽는 문제가 마치 질병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유를 찾지 않고 두고 본다’는 입장을 지키기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인체가 노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노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3년 전엔가 아내와 함께 보건소를 찾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보아온 연명치료에 대한 환멸 때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각종 첨단 의료기기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지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아도 생존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할지라도 위급한 상황이 닥쳐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환자와 보호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연명치료의 굴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2019년까지 33만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지만 그 뜻에 따라 생을 마감한 사람은 725명에 불과한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연명치료는 소생이 목적이 아니라 가족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과 죄책감, 타인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굴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병원으로 가는 순간 죽음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되는 까닭에 ‘내가 어떤 경우에는 병원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결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 마지막을 딸들에게 남기는 ‘엔딩노트’로 끝맺는다. 유쾌하게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나열하던 저자는 자신이 의식을 잃었을 때의 희망 사항을 이야기한다. 암은 완치 가능성, 생존확률이 50퍼센트를 넘으면 수술하고, 항암치료는 완치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해달라고 부탁한다. 또 노화로 인한 경우 죽는 과정을 그대로 두고 절대 병원으로 이송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연스러운 죽음, 좋은 죽음을 배우고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난 후 명절 때 집에 온 아이들한테 나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었다. 아이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했을 때 그냥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 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죽음 역시 삶과 동일하게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배운다는 게 가능한 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닥치고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죽음이지만, 모두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외면하고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작가처럼 그렇게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사람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 앞에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언젠가 떠나가실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르고 단호한 결정을 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담담히 결정하고 마주할 정신력과 체력을 가질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것은 있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던 죽음에 대한 많은 일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