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리뷰 총점9.2 리뷰 18건 | 판매지수 2,454
베스트
한국사/한국문화 68위 | 역사 top20 5주
정가
17,000
판매가
15,3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438g | 140*210*17mm
ISBN13 9791191308228
ISBN10 1191308227

이 상품의 태그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18,000 (10%)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상세페이지 이동

코스모스

코스모스

17,910 (10%)

'코스모스' 상세페이지 이동

사피엔스

사피엔스

24,120 (10%)

'사피엔스' 상세페이지 이동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13,500 (10%)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상세페이지 이동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13,500 (10%)

'정의란 무엇인가' 상세페이지 이동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16,200 (10%)

'공정하다는 착각' 상세페이지 이동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19,800 (10%)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상세페이지 이동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14,850 (10%)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상세페이지 이동

지리의 힘

지리의 힘

18,000 (10%)

'지리의 힘' 상세페이지 이동

[예스리커버] 인스타 브레인

[예스리커버] 인스타 브레인

13,500 (10%)

'[예스리커버] 인스타 브레인' 상세페이지 이동

침묵의 봄

침묵의 봄

16,200 (10%)

'침묵의 봄' 상세페이지 이동

거꾸로 읽는 세계사

거꾸로 읽는 세계사

15,750 (10%)

'거꾸로 읽는 세계사' 상세페이지 이동

오십에 읽는 논어

오십에 읽는 논어

14,400 (10%)

'오십에 읽는 논어' 상세페이지 이동

당신이 옳다

당신이 옳다

15,750 (10%)

'당신이 옳다' 상세페이지 이동

유럽 도시 기행 2

유럽 도시 기행 2

15,750 (10%)

'유럽 도시 기행 2' 상세페이지 이동

두 번째 지구는 없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15,300 (10%)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상세페이지 이동

우울할 땐 뇌 과학

우울할 땐 뇌 과학

15,300 (10%)

'우울할 땐 뇌 과학' 상세페이지 이동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12,600 (10%)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상세페이지 이동

최종경고 : 6도의 멸종

최종경고 : 6도의 멸종

18,000 (10%)

'최종경고 : 6도의 멸종' 상세페이지 이동

인간 본성의 법칙

인간 본성의 법칙

28,800 (10%)

'인간 본성의 법칙' 상세페이지 이동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낮의 역사, 밤의 이야기가 된 조선의 괴물들

1장 괴물은 백성의 말을 먹고 자란다
삼천리강산을 누빈 괴물들


전쟁으로 쇠락한 지네 호텔: 오공원(충청도)

할리우드 영화와 통하는 조선 괴물 이야기│지네와 두꺼비가 한판 대결을 벌이다│벌레를 각시로 부르는 해학│오공원은 어디에

천하의 전우치를 골린 여우: 흰 여우(전라도)

여우는 많고 구미호는 드물다│20세기 대중문화가 키운 스타│고구려와 백제를 농락한 흰 여우│전우치와 흰 여우, 서로 속고 속이다

풍년과 흉년을 예언한 행운의 편지: 삼구일두귀(전라도)

머리는 하나요 입은 셋이라│민심을 어지럽힌 일기예보│조선판 행운의 편지│조선 백성의 생활상을 담다

가뭄과 홍수보다 혹독한 농부의 적: 강철(경상도)

조선을 대표하는 괴물│폭우를 내리거나 햇볕을 내리쬐거나│철을 먹는 조선판 키메라│“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

남해를 붉게 물들인 별: 천구성(경상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강아지│악한 괴물이 땅을 덮치다│붉은 바다의 공포│좋은 손님, 나쁜 손님, 이상한 손님│조선 천문학의 자존심│별이 된 기대승의 혼

고래기름보다 좋은 인어기름: 인어(강원도)

우리 인어 이야기의 서늘한 맛│사람 같기도 짐승 같기도│진주 눈물을 흘리는 교인│강치는 비밀을 알고 있다

2장 상감마마를 지켜라
궁전을 뒤흔든 괴물들


왕건으로 이어지는 용의 계보: 용손(경기도)

고려판 《오디세이아》│관세음보살을 닮은 용의 딸│힘을 합쳐 늙은 여우를 잡다│왕건의 할머니가 해적이라면

부처가 된 세조의 경고: 생사귀(전라도)

조선을 뒤흔든 어느 군인의 꿈│〈인터스텔라〉를 뛰어넘는 4차원의 신비│저승사자는 무슨 옷을 입었을까│짐승이 지키고 공무원이 다스리는 저승│“임금이 장영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성종의 관심을 끈 땅속 귀신: 지하지인(서울)

조선 제일의 귀신 이야기│귀신도 총과 대포는 무서워│상반신은 없고 하반신은 있다│뼈만 남은 두 다리│폴터가이스트, 또는 가스 중독

중종을 떨게 한 연산군의 그림자: 수괴(서울)

수괴의 등장│겁에 질린 군인들│왕이 거처를 옮기다│정현왕후의 트라우마│백성의 고통을 살피지 않는 정치

인종이 죽자 나타난 검은 기운: 물괴야행(황해도)

단군의 사당을 찾아서│노한 신령들이 전염병을 퍼뜨리다│정치가 혼란하고 민심이 흉흉하니

사도세자를 향한 저주: 도깨비(전라도)

임금의 아들을 노리다│도깨비의 두 얼굴│한·중·일의 이매망량│네 모습을 밝히거라│밀레니엄 도깨비

정조의 마음을 어지럽힌 사슴과 곰: 녹정과 웅정(경상도)

역모에 매인 삶│음모의 근거지가 된 지리산 선원촌│신선이 된 최치원, 사람이 된 사슴│《정감록》에서 시작된 가짜뉴스│고대 북방 문화의 흔적

3장 국경으로는 막을 수 없다
바다를 건너온 괴물들


조선의 빅풋은 벽곡의 달인: 안시객(강원도)

영생, 축복인가 저주인가│수준이 다른 원조 자연인│원숭이도 아니고 빅풋도 아니고│파란 털의 수행자가 전하는 교훈

바다 건너 거인의 나라: 거인(강원도)

역사와 전설의 공동 작업│신라부터 조선까지 계속된 거인 이야기│조선의 키클롭스는 네덜란드인?│혐오라는 이름의 거인

행운의 상징, 불행의 상징: 금두꺼비(강원도)

다민족 국가 고구려와 두꺼비│금두꺼비의 어두운 역설│갑작스러운 행운이 죽음을 부르다│금두꺼비를 조심히 다룰 것

전쟁을 끝낸 사슴 발의 여인: 녹족부인(평양)

사슴 발의 부인과 아홉 아들│시대를 초월한 평화의 상징│인도에서 찾은 녹족부인의 흔적│1,000년 만에 부활하다

코끼리, 얼룩말 그리고 불가살이: 박과 맥(평안도)

죽지 않는 괴물│코가 긴 짐승 떼│총을 쏘아 맥을 잡다│골칫거리 맥, 불가살이가 되다│호랑이와 표범을 잡아먹은 박

호랑이를 떨게 한 사자: 산예(함경도)

현실과 상상의 경계│춤추는 사자│사막을 건너 한반도로│호랑이를 떨게 한 산중왕

만 인의 피를 마신 뱀: 만인사(함경도)

용왕의 아들, 이무기가 되다│사람 말을 하고 구슬을 품은│뱀 괴물 사냥법│신령처럼 모신 업│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라

참고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왜 하필 조선 후기에 지네 괴물 이야기가 생겨 유행한 것일까. 18세기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퍼져나가면서 같이 들어온 유럽 문화에 자극받은 면이 있지 않을까. 또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소설의 유통이 늘어나면서 그 소재나 묘사에 영향받아 퍼져나간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쟁으로 쇠락한 지네 호텔: 오공원(충청도)」중에서

나는 괴물 이야기로 그렇게 심각한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는 괴물 이야기가 퍼지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을 조금씩 캐보는 일이 더 재미있다. 소문으로 떠돈 괴물 이야기들은 임금님과 대신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나, 영웅을 찬양하는 서사시가 담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구일두귀(三口一頭鬼)’ 이야기에서는 조선 전기 전라도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풍년과 흉년을 예언한 행운의 편지: 삼구일두귀(전라도)」중에서

그렇다면 강철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괴물의 이름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창, 칼, 대포를 상징하는 말로 전쟁을 의미했을 수 있다. …… 그게 아니라면 임진왜란 때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군인들에게서 전해진 어떤 외래어가 변형된 것일 수 있다.
---「가뭄과 홍수보다 혹독한 농부의 적: 강철(경상도)」중에서

조선 시대 이야기에서 인어는 신비롭고 고결한 바다의 왕족도 아니고, 선원들을 유혹하는 마법적인 매력을 지닌 괴물도 아니다. 좀 희귀할 뿐이지 그저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하다. 낚시꾼에게 붙잡히고, 어부는 ‘기름 짜는 것’으로 인어의 쓸모를 말한다.
---「고래기름보다 좋은 인어기름: 인어(강원도)」중에서

조선 시대 중기의 이야기책 《어우야담》에는 고려 임금 우왕이 죽기 직전 자신도 용의 자손이라며 그 증거로 웃옷을 벗어 용 비늘이 돋은 피부를 보여주었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 이성계 일파가 고려 임금의 자손이 아니라 신돈(辛旽)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처형하려고 하자, 자신은 고려 임금의 자손이라고 항의하며 용 비늘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왕건으로 이어지는 용의 계보: 용손(경기도)」중에서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생사귀의 모습은 검은 옷, 검은 갓 차림의 저승사자와는 아주 다르다. 생사귀는 몸이 검은색이고 뿔이 다섯 가지로 갈라져 돋아난 모습이라고 한다. …… 생사귀는 저승사자 하면 떠오르는 중년 남자의 모습보다는 아기나 어린아이의 모습에 좀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처가 된 세조의 경고: 생사귀(전라도)」중에서

도깨비는 무당이 섬기거나 무언가를 부탁하는 귀신, 또는 신령 같은 대상이다. 심지어 임금의 아들을 해치는 음침한 주술까지 들어주는 듯하다. …… 영조 시대 무당과 추종자들은 도깨비를 전염병 귀신과 비슷한 괴물로 믿었다고 추측해볼 만하다.
---「사도세자를 향한 저주: 도깨비(전라도)」중에서

21세기 들어서도 한국에는 외따로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만으로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믿는 사람이 꽤 있는 편이다.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제법 퍼져 있는 것은 조선 후기 유행한 여러 가지 벽곡 이야기의 간접적 영향이 아닐까 싶다.
---「조선의 빅풋은 벽곡의 달인: 안시객(강원도)」중에서

실제로 제주도에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같은 네덜란드인들이 표착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이들과 말이 통하게 되었을 즈음 …… 누군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키클롭스 이야기를 풀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역사적 사실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붉은 머리 유럽인을 닮은 거인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바다 건너 거인의 나라: 거인(강원도)」중에서

조선 후기 유행한 녹족부인 이야기는 인도에서 불교와 함께 한반도로 전파되어 변화, 탄생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본에도 불교가 전해졌기 때문에 비슷한 예가 있다. …… 일본의 고귀한 인물인 고묘황후(光明皇后)가 승려와 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전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한 일본의 전통 버선인 다비(足袋)가 발가락이 두 개인 것처럼 생긴 이유는 녹녀부인의 발이 사슴 모양이기 때문이라는 설화도 있다.
---「전쟁을 끝낸 사슴 발의 여인: 녹족부인(평양)」중에서

그 정체가 무엇이었든 ‘발포’라는 표현을 보면, 결국 군인들이 조총으로 공격해 죽인 것 같다. 군인들이 가죽을 벗겨 서울에 보내니, 어떤 신하는 박인 것 같다고, 어떤 신하는 맥인 것같다고 했다.
---「코끼리, 얼룩말 그리고 불가살이: 박과 맥(평안도)」중에서

선하거나 악하게, 집 안처럼 가까운 곳이거나 외국처럼 머나먼 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괴물들은 어떤 한 가지 기준이나 편견을 따르지 않는다.
---「만 인의 피를 마신 뱀: 만인사(함경도)」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조선에 괴물이 살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삼천리강산을 누빈 괴물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 기록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눈길이 간다. 어떤 괴물은 백성의 마음을 흔들었고, 어떤 괴물은 궁궐을 뒤집어놓았으며, 어떤 괴물은 이역만리에서 흘러와 백두대간의 산중왕으로 군림했다. 왕과 신하, 백성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괴물을 만났는지, 그 괴물은 왜 나타났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을 놓고 고민했다. 그래서 조선의 괴물 기록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상, 세상을 이해하는 관념과 문제의식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부터 『열하일기』까지 각종 사료에서 발굴한 스무 괴물을 중심으로 조선을 이야기한다. 2007년부터 한국 괴물들을 채집, 소개해오고 있는 작가 곽재식이 기존의 백과사전식 서술에서 벗어나, 조선을 만나는 새로운 소재로서 괴물 이야기를 풀어간다. ‘도깨비’, ‘흰 여우’ 등 친숙한 괴물들뿐 아니라 ‘삼구일두귀(三口一頭鬼)’, ‘녹족부인(鹿足婦人)’ 등 낯선 괴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조선의 다양한 풍경을 그린다. 여기에 조선 팔도 어디에 괴물이 살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조선괴물지도』와 각국의 신화를 한국풍으로 재해석해 표현하는 삽화가 곰곰e(김진영)의 그림이 더해져 보는 맛을 더한다.

“삶의 현장에서 만나다”
백성을 웃고 울린 괴물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주제는 ‘백성과 괴물들’, ‘왕과 괴물들’, ‘외국에서 온 괴물들’이다. 수많은 백성이 조선 각지에서 괴물을 만났다. 이때의 만남은 단순한 목격이나 조우가 아니었다. 백성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괴물의 존재를 믿었고, 그 믿음이 강할수록 괴물은 백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먹고사는 일을 놓고 가장 활발히 벌어졌다. 농업이나 어업과 관련된 괴물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이유다. 하늘에서 내려와 밥을 많이 얻어먹은 대가로 일기를 예보해준 삼구일두귀, 가뭄과 홍수를 불러와 재앙으로 받아들여진 ‘강철(?鐵)’, 바다를 붉게 물들여 물고기를 죽이는 ‘천구성(天狗星)’, 양질의 기름을 짜낼 수 있어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된 ‘인어(人魚)’ 등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괴물들의 이야기가 매우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에 더해 삶의 현장에서 겪고 느낀 것들이 괴물 이야기에 녹아 있다. 예를 들어 강철 이야기는 임진왜란으로 형성된 피폐한 정서가 깔려 있다.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라는 속담은 아무리 공들인 일이라도 큰 재앙이 닥치면 별수 없다는 뜻으로, 전쟁이라는 파괴적 상황에 부닥친 백성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괴물 이야기는 백성의 처지에서 조선을 바라보게 한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실마리를 사람 아닌 존재, 즉 괴물이 품고 있는 것이다.

“궁궐의 담을 넘다”
임금의 마음을 어지럽힌 괴물들


임금이라고 괴물에게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성종은 영의정 정창손과 호조좌랑 이두의 집에 나타난 귀신 ‘지하지인(地下之人)’의 처리를 놓고 신하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종이 눈을 감은 날 검은 기운인 ‘물괴야행(物怪夜行)’이 서울을 휘감아 백성이 두려움에 떤 이야기, 일군의 인물이 도깨비를 동원해 사도세자를 암살하려다가 적발되어 영조의 분노를 산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중종을 시름에 잠기게 한 ‘수괴(獸怪)’다. 영화 『물괴』의 소재로도 유명한 수괴는 1511년과 1527년 궁궐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나 조정을 발칵 뒤집었다. 기록을 보면 개처럼 생겼고 말처럼 컸다고 하는데, 정현왕후가 무서워해 거처를 옮기면서 소문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수괴의 등장을 연산군과 연관 짓는다. 정현왕후는 연산군을 친자식처럼 키웠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를 몰아내는 데 가담했다. 삐뚤어진 연산군에 대한 죄책감과 절대 권력자라도 하루아침에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복잡한 감정을 품었을 법하다. 수괴의 등장은 이러한 감정이 폭발하는 데 방아쇠처럼 작용, 정현왕후를 공포에 떨게 한 것 아닐까. 저자는 ‘개처럼 생겼다’는 기록에도 주목한다. 연산군은 궁궐에서 수많은 동물과 사냥개를 키웠는데, 그중 몇 마리가 주인을 잃으며 근처 산이나 숲으로 달아났다가 돌아온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그럴듯한 추측을 한다. 1511년 수괴가 처음 등장하기 며칠 전 기록을 보면 궁궐 근처 민가들에서 큰불이 났다고 쓰여 있다. 이때 백성의 절망은 뒷전이고 권력을 둘러싼 아귀다툼을 벌이느라 정신없던 높으신 분들의 눈에 불을 피해 궁궐로 들어온 떠돌이 개가 괴물처럼 보인 것이라면 어떨까. 이처럼 괴물 이야기는 권력자들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권력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백성의 바람을 담고 있다.

“괴물에게 국경은 없다”
바다 건너, 사막 건너 조선에 온 괴물들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여도 문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괴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외국 괴물 이야기가 한국에 전해지며 어떻게 변형되었고 무엇이 유행했는지 밝힐 수 있다면, 당시 한국인의 성향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어떤 외국 괴물들이 들어왔을까. 가장 먼저 ‘금두꺼비’를 꼽을 수 있다. 부의 상징으로 너무나 익숙해 대개 우리 토종 괴물로 생각하지만, 금두꺼비는 고대 중국의 ‘항아(嫦娥)’ 설화가 원조다. ‘산예(?猊, 사자)’도 마찬가지다. 북청사자놀음 같은 전통 사자춤 속 사자의 모습은 인도의 불교 문헌에 영향받은 것이다.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라기보다는 국가 정책의 결과로 조선에 소개된 괴물도 있다. 바로 사람 1만 명을 잡아먹었다는 ‘만인사(萬人蛇)’다. 이 괴물은 원래 여진족 계통의 북방 이민족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런데 세종의 북방 개척으로 조선에 그 이야기가 흘러들어 온 것이다. 만인사는 사람 1만 명의 피가 뭉친 ‘만인혈석(萬人血石)’을 품었다는데, 다양한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한 북방의 처절한 역사가 녹아 있는 듯하다. 이처럼 괴물 이야기는 당시 국가 간 문화 교류의 흔적과 그 역사적 맥락을 품고 있다. 이는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흔히 생각하지 못한 조선의 색다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회원리뷰 (18건) 리뷰 총점9.2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실록이 기록한 괴물들, 역사를 이야기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e*a | 2021.05.24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원래 귀신이나 괴물 같은 것을 잘 믿지 않는다. 좀비 영화 같은 것도 그냥 좀비만을 가지고 노는 영화는 별로 보질 않는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괴물을 다룬 책에 내가 애초에는 흥미를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역사 기록 속의 괴물을 다뤘다는 데 관심이 갔다. 역사 기록 속에서 괴물을 찾는 것 자체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나 기묘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기록했다는 것에 의미;
리뷰제목

원래 귀신이나 괴물 같은 것을 잘 믿지 않는다. 좀비 영화 같은 것도 그냥 좀비만을 가지고 노는 영화는 별로 보질 않는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괴물을 다룬 책에 내가 애초에는 흥미를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역사 기록 속의 괴물을 다뤘다는 데 관심이 갔다. 역사 기록 속에서 괴물을 찾는 것 자체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나 기묘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기록했다는 것에 의미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조금 놀란 것은 조선의 괴물 이야기가 기록 속에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어우야담같은 야사(野史)에서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유교적 이상을 추구하며 세워진 국가이며 망할 때까지 그런 기조를 유지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사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갖가지 괴물에 대한 얘기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작가 곽재식은 그 많은 기록 중에서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괴물들을 중심으로 스무 개를 골라내서 소개하고 있는데, 단순히 그때 그런 괴물이 나타났거나 기록했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그 괴물들을 보고한 이들이라든가, 기록된 사정 등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조 이후라든가, 연산군 이후라든가 하는 시기에 특히 괴물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돌았다는 것은 권력이 자연스런 방식에 의해 넘어가지 못한 사정과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전란이라든가 반란과 같은 사건 전후에 더욱 그런 보고가 많이 올라온다는 것은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 것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역사적 맥락 외에도 그 괴물들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를 나름대로 추측하는 대목들이다. 인어라든가, 용의 자손이라든가, 바다가 붉게 물들어지는 현상, 도깨비 등등이 어느 정도는 사람들이 착각과 과장이 가져온 것이거나, 또는 자연 현상에 대한 무지에서, 혹은 사람들의 바램이 투영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이 귀신이나 괴물을 믿지 않는 나의 구미에 맞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의미 있게 읽은 부분들은 구미호라든가, 불가사리 같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괴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근대 이후에야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도깨비와 같은 경우에도, 우리는 장난끼 많은 도깨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최근 들어서야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상당히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다.

 

곽재식은 이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어떤 것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들을 엮어서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만들면 좋겠다, 도깨비 마을이라든가, 캐릭터 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다 등등. 괴물 이야기가 현대로 이어지면서 더 풍부해지고, 문화로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작가의 입장에서 찾는 것 역시 의미가 있어 보인다.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댓글 0
구매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m********y | 2021.09.18 | 추천2 | 댓글1 리뷰제목
구전(口傳)은 신뢰하기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며, 인간이 삶에서 축적한 편견과 지식은 천차만별이고, 일관성이 없어 그렇습니다. 따라서 구전의 내용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반복 확인해야 하며, 정확성을 높이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여건이 된다면 직접 확인이 필요합니다. 기록이 풍족하지 않은 우리 역사에서 구전의 역;
리뷰제목

구전(口傳)은 신뢰하기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며, 인간이 삶에서 축적한 편견과 지식은 천차만별이고, 일관성이 없어 그렇습니다. 따라서 구전의 내용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반복 확인해야 하며, 정확성을 높이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여건이 된다면 직접 확인이 필요합니다. 기록이 풍족하지 않은 우리 역사에서 구전의 역할을 생각보다 지대한 거 같습니다.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하여 정리한 책들이 있어 그나마 그런 구전의 내용을 현재에도 전달받습니다만,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역사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자세도 중요하고, 기록을 지시한 권력자의 마음가짐도 너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일반 상식과 과거의 기록을 보는 현재의 상식이 다르므로 번역과 판단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주류를 지배하는 사상과 축적된 지식, 기술 등은 현재 우리가 배우고 익힌 상식과 지식과 상당히 차이가 있고,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역사 기록의 해석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현재를 사는 일반의 평범한 시민에게 단순하고 당연한 현상이 과거의 일반인에게는 신의 저주, 혹은 분노 같은 초자연적인 무엇인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폭우, 가뭄은 현재의 우리에게는 지구와 달, 온도, 습도 등에 따른 자연현상일 뿐이지만, 과거의 사람에겐 임금의 부덕의 소치 인간의 커다란 불의, 죄와 연결시키는 등 비과학적인 뭔가의 결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기록하여 남긴 기록은 그래서 막연한 수용이나, 맹목적 신뢰보다는 자료를 반복해 교차검토를 해야 하고,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찾아내 최대한 객관적이고 증거에 기인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저자 곽재식이 조선왕조실록 등을 주요한 근거로 정리한 이 책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은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실록이나 또는 당시 선비들이 남겼던 각종 기록에서 총 20개의 괴물을 뽑아내 기록의 출처를 밝히고, 그 괴물이 펼쳤던 각종 기이한 현상을 소개하며, 당시 사람들이 그 괴물을 어떻게 인식했고, 판단했는지도 소개하고 있으며,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현대인의로서의 상식과 기초적 과학적 판단을 통하여 저자가 그 괴물에 대한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덧붙입니다. 역사를 인식하는 아주 모범적인 자세와 지식으로 과거의 기록을 바라보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초자연적인 기이한 현상과 대상은 그런 대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없는 현재를 사는 일반 시민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전설의 고향’이라는 상당히 인기있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니 말이죠. 결국 이런 초자연적인 괴물에 대한 기록도 설화 또는 신화같은 상징적 기록의 한 종류일 수 있을 것이고, 당시 그 괴물을 바라보는 시대적 상식과 지식으로 그 괴물을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니 그런 상식과 지식이 과학의 발전과 지식의 축적으로 현재의 우리에게는 나름의 상식적 판단이 가능한 자연현상이나 현상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나름의 합리적 추측일 뿐이겠지만 말이죠.

 

 20개 괴물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경험하면서 그리고 저자의 나름의 설명과 합리적 추론을 읽어가면서 공통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시대상을 느꼈습니다. 괴물이 등장하는 시점의 시대상이 뭔가 길(吉)하기 보다는 흉(凶)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전쟁으로 쇠락한 지네 호텔 오공원, 전우치를 골린 흰여우, 풍년과 흉년을 예언한 행운의 편지 삼구일두귀(三口一頭鬼), 가뭄과 홍수보다 혹독한 농부의 적 강철, 남해를 붉게 물들인 별 천구성, 고래기름보다 좋은 인어기름 인어, 왕건으로 이어지는 용의 계보 용손, 부처가 된 세조의 경고 생사귀, 성종의 관심을 끈 땅속 귀신 지하지인, 중종을 떨게 한 연산구의 그림자 수괴, 인종이 죽자 나타난 검은 기운 물괴야행, 사도세자를 향한 저주 도깨비, 정조의 마음을 어지럽힌 사슴과 곰 녹정과 웅정, 조선의 빅풋은 벽곡의 달인 안시객, 바다 건너 거인의 나라 거인, 행운의 상징 불행의 상징 금두꺼비, 전쟁을 끝낸 사슴 발의 여인 녹족부인, 코끼리 얼룩말 그리고 불가살이 박과 맥, 호랑이를 떨게 한 사자 산예, 만인의 피를 마신 뱀 만인사...결국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평소와 다른 괴이한 상황과 그에 걸맞는 괴물의 등장은 초월적인 어떤 대상이 만들어낸 혹은 그 대상의 활동으로 기인한 불길한 결과라는 인식이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 볼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자세는 현재에도 이어지는 듯 합니다. 인간의 심리와 정신세계 속에는 그래서 신적 존재를 거부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상, 존재, 사건 등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나,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경우 막연하게 초자연적 대상이나 현상으로 인정해 버리는 자세, 심리이겠지요. 언젠가는 극복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1
포토리뷰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곽재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피* | 2022.02.19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오늘 읽은 책은 조선판 요괴열전이다. 심지어 무려 실록에도 기록된 요괴들의 이야기다. 조상님들 두루마기 입고, 갓을 쓰던 그 시절에 무슨 요괴야? 그냥 단순히 상상아니야? 라고 하고 싶지만..... 놀랍게도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에 말이다.      엄청나게 유명했던, 단순히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라고 생;
리뷰제목

오늘 읽은 책은 조선판 요괴열전이다. 심지어 무려 실록에도 기록된 요괴들의 이야기다. 조상님들 두루마기 입고, 갓을 쓰던 그 시절에 무슨 요괴야? 그냥 단순히 상상아니야? 라고 하고 싶지만..... 놀랍게도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에 말이다. 


 

 

엄청나게 유명했던, 단순히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라고 생각했던 『별에서 온 그대』, 『푸른바다의 전설』 의 모티브도 전부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에서 나왔다. #별에서온그대 모티브는 《조선왕조실록》, #푸른바다의전설 모티브는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에서 나왔다.

 

 

자 그럼 본 책을 리뷰하기에 앞서, 맛보기용으로.... #별그대 #푸른바다전설 에 대한 이야기를 스윽 펼쳐본다.

 

"간성군(杆城郡)에서 8월 25일 사시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태양이 비치었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는데, 우레 소리가 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갈 즈음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푸른 하늘에서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습니다.

 

원주목(原州牧)에서는 8월 25일 사시 대낮에 붉은 색으로 베처럼 생긴 것이 길게 흘러 남쪽에서 북쪽으로 갔는데, 천둥 소리가 크게 나다가 잠시 뒤에 그쳤습니다.

 

강릉부(江陵府)에서는 8월 25일 사시에 해가 환하고 맑았는데, 갑자기 어떤 물건이 하늘에 나타나 작은 소리를 냈습니다. 형체는 큰 호리병과 같은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컸으며, 하늘 한 가운데서부터 북방을 향하면서 마치 땅에 추락할 듯하였습니다. 아래로 떨어질 때 그 형상이 점차 커져 3, 4장(丈) 정도였는데, 그 색은 매우 붉었고, 지나간 곳에는 연이어 흰 기운이 생겼다가 한참 만에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사라진 뒤에는 천둥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했습니다.

 

춘천부(春川府)에서는 8월 25일 날씨가 청명하고 단지 동남쪽 하늘 사이에 조그만 구름이 잠시 나왔는데, 오시에 화광(火光)이 있었습니다. 모양은 큰 동이와 같았는데, 동남쪽에서 생겨나 북쪽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매우 크고 빠르기는 화살 같았는데 한참 뒤에 불처럼 생긴 것이 점차 소멸되고, 청백(靑白)의 연기가 팽창되듯 생겨나 곡선으로 나부끼며 한참 동안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우레와 북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다가 멈추었습니다.

 

양양부(襄陽府)에서는 8월 25일 미시(未時)에 품관(品官)인 전문위(全文緯)의 집 뜰 가운데 처마 아래의 땅 위에서 갑자기 세숫대야처럼 생긴 둥글고 빛나는 것이 나타나, 처음에는 땅에 내릴듯 하더니 곧 1장 정도 굽어 올라갔는데, 마치 어떤 기운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습니다. 크기는 한 아름 정도이고 길이는 베 반 필(匹) 정도였는데, 동쪽은 백색이고 중앙은 푸르게 빛났으며 서쪽은 적색이었습니다. 쳐다보니, 마치 무지개처럼 둥그렇게 도는데, 모습은 깃발을 만 것 같았습니다. 반쯤 공중에 올라가더니 온통 적색이 되었는데, 위의 머리는 뾰족하고 아래 뿌리쪽은 짜른 듯하였습니다. 곧바로 하늘 한가운데서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더니 흰 구름으로 변하여 선명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이어 하늘에 붙은 것처럼 날아 움직여 하늘에 부딪칠 듯 끼어들면서 마치 기운을 토해내는 듯하였는데, 갑자기 또 가운데가 끊어져 두 조각이 되더니, 한 조각은 동남쪽을 향해 1장 정도 가다가 연기처럼 사라졌고, 한 조각은 본래의 곳에 떠 있었는데 형체는 마치 베로 만든 방석과 같았습니다. 조금 뒤에 우레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끝내는 돌이 구르고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그 속에서 나다가 한참만에 그쳤습니다. 〈이때 하늘은 청명하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습니다.〉"

 

 

광해군일기[중초본] 20권, 광해 1년 9월 25일 계묘 3번째기사 - 강원도에서 일어난 기이한 자연현상에 대해 강원 감사 이형욱이 치계하다

 

위 기사가 별그대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아주 멋진 외계인 김수현을 만날 수 있.ㅇ.....ㅋㅋㅋㅋㅋ 흠흠흠. 위 기사는 말그대로 기이한 자연현상을 기록한 것인데, 이 자연현상에 현대인들이 상상을 한스푼 첨가하여 멋진 판타지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괴에 대한 기록도 실려있는 《조선왕조실록》인데, 이런 기이한 현상에 대한 기사 쯤이야!

 

 

김담령이 흡곡현의 고을 원이 되어 일찍이 봄놀이를 하다가 바닷가 어부의 집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어부에게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어부가 대답했다.

 

“제가 고기잡이를 나가서 인어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은 창에 찔려 죽었고 나머지 넷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나가서 살펴보니 모두 네 살 난 아이만 했고,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으며 콧대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귓바퀴가 뚜렷했으며 수염은 누렇고 검은 머리털이 이마를 덮었다. 흑백의 눈은 빛났으나 눈동자가 노랬다. 몸뚱이의 어떤부분은 옅은 적색이고, 어떤 부분은 온통 백색이었으며, 등에 희미하게 검은 무늬가 있었다. 남녀의 음경과 음호 또한 사람과 똑같았으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주름 무늬가 있었다. 이에 무릎에 껴안고 앉히자 모두 사람과 다름이 없었으며, 사람을 대하여서도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고 하얀 눈물만 비 오듯 흘렸다. 김담령이 가련하게 여겨 어부에게 놓아주라고 하자, 어부가 매우 애석해하며 말했다.

 

“인어는 그 기름을 취하면 매우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오래되면 부패해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요.”

 

김담령이 뺴앗아 바다로 돌려보내니 마치 거북이처럼 헤엄쳐 갔다. 김담령이 무척 기이하게 여기자, 어부가 말했다.

 

“인어 중에 커다란 것은 크기가 사람만 한데 이것들은 작은 새끼일 뿐이지요.”

 

 

- 어우야담 만물편:인어- (돌베게, p 764)

 

위 야사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된 이야기다. 이 일화를 찾을라고 간만에 책장에서 벽돌책인 어우야담을 꺼내서 읽었다. 후... 

 

다만 여기서 함정인 것은 어우야담 속 인어를 구출해준 김담령,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이민호가 맡았던 김담령은 실제로는 그리 착한 원님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위 야사와 드라마 판타지로 인해 완전 착한 인물인줄 알았던 김담령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여러번 나올 정도로 부패한 조선의 관리였다^^.....

 

여기까지가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리뷰전 맛보기! 이제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저자가 머릿말에서 말했듯이 이 책에는 실록에 실린 총 20여 종의 괴물(또는 요괴)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실록에 대한 기록과 당대 상황을 서술하며, 진짜 괴물이었는지를 추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건....조선괴물지도! 

 

 

실록을 보면 이 괴물들이.. 전국 방방곡곳에서 나오는데, 독자들이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한반도 지도상에 각 지역별로 괴물들이 출몰(?)위치를 표기한 것이다. 이런건 책 페이지 말고도, 별도 족자형식(?)의 부록으로 줘도 좋을 것 같은데...ㅋㅋㅋㅋㅋ

 

 

조선의 괴물지도

 

1. 전쟁으로 쇠락한 지네호텔: 오공원 (충청도)

 

2. 천하의 전우치를 골린 여우: 흰 여우 (전라도)

 

3. 풍년과 흉년을 예언한 행운의 편지: 삼구일두귀 (전라도)

 

4. 가뭄과 홍수보다 혹독한 농부의 적: 강철 (경상도)

 

5. 남해를 붉게 물들인 별: 천구성 (경상도)

 

6. 고래기름보다 좋은 인어기름: 인어 (강원도)

 

7. 왕건으로 이어지는 용의 계보: 용손 (경기도)

 

8. 부처가 된 세조의 경고: 생사귀 (전라도)

 

9. 성종의 관심을 끈 땅속 귀신: 지하지인 (서울)

 

10. 중종을 떨게 한 연산군의 그림자: 수괴 (서울)

 

11. 인종이 죽자 나타난 검은 기운: 물괴야행 (황해도)

 

12. 사도세자를 향한 저주: 도깨비 (전라도)

 

13. 정조의 마음을 어지럽힌 사슴과 곰: 녹정과 웅정 (경상도)

 

14. 조선이 빅풋은 벽곡의 달인: 안시객 (강원도)

 

15. 바다 건너 거인의 나라: 거인 (강원도)

 

16. 행운의 상징, 불행의 상징: 금두꺼비 (강원도)

 

17. 전쟁을 끝낸 사슴 발의 여인: 녹족부인 (평양)

 

18. 코끼리, 얼룩말 그리고 불가살이: 박과 맥 (평안도)

 

19. 호랑이를 떨게 한 사자: 산예 (함경도)

 

20. 만인의 피를 마신 뱀: 만인사 (함경도

 

 

 풍년과 흉년을 예언한 행운의 편지: 삼구일두귀 (전라도)

 

조선판 행운의 편지(?) 주인공 삼구일두귀. 머리는 하나요, 입이 세개 있는 요개라는 뜻이다. 전라도지방에서 성행했다고 한다.

 

《성종실록》에 기록된 내용대로라면 삼구일두귀가 처음 내려온 곳은 함평이 아니라 능성이다.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삼구일두귀는 능성의 한 부잣집에 내렸다. 이상한 모습에 겁먹은 부자는 머뭇거리다가 나름대로 우호를 표하기 위해 밥을 대접하는 듯 하다. 삼구일두귀는 밥을 한 동이나 먹었다. 당시 유행한 이야기에서 밥을 아주 많이 먹었다는 것은 종종 신비롭고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듯 싶다. p 045

 

확실히 옛날엔 팩트체크(?)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더라, 한양에서 멀디 먼 전라도에서 일어나는 요괴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들테니, 장계를 받는 그대로 실록에 기록했다는게 딱 느껴진다. 허허허허. 실록이란게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아주 중요한 보물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쓴거고, 사람이 쓴만큼 주관적일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뭐 여튼 너무나 생소한 삼구일두귀라는 요괴. 그냥 생소한 요괴로 끝나면 거기서 끝날텐데, 실록엔 그 뒷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런 내용이!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소문이 퍼진 과정이 꽤 흥미롭다. 특히 149세 먹은 승려라는 인물의 행적이 눈길을 끄는데, 8월 3일자 기록은 앞서 5월 26일자 기록보다 이를 더욱더 자세히 소개한다. (생략) 즉 나이 많은 승려가 직접 전라도에 온 것이 아니라, 명나라 운남성 원광사라는 절에 살던 어느 노인이 149세가 되어 세상을 뜬 후 그 혼백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혼백은 미래에 난리가 난다고 예언한다. 소문을 퍼트린 사람 중에 무당이 있는 것을 보면, 무당이 굿하는 중에 혼백이 씌웠다고 하면서 말이나 노래로 사람들에게 전한것일지 모른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예언이 편지로 전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편지에는 예언 외의 다른 말도 쓰여 있었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 여기 적힌 내용을 믿지 않으면 눈이 먼다.

 

- 여기 적힌 내용을 한 번 전하면 한 몸이 재난을 피한다.

 

- 여기 적힌 내용을 두 번 전하면 집안이 재난을 피한다.

 

- 여기 적힌 내용을 세 번 전하면 태평한 시절을 본다. p 047~049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7명에게 보내야~’ 라고 하는 한때 엄청 유행했던 그 행운의 편지가 무려 5백년 전 조선에서도 성행했었다니!!!!!!!!!!

 

유행은 돌고돈다더니, 이런 거까지도 돌고도나보다.

 

 

 

가뭄과 홍수보다 혹독한 농부의 적: 강철 (경상도)

 

나에겐 일요 웹툰(합격시켜주세용/이온)에서도 종종 만나서 익숙한 깡철이가 나왔다!!! 완전 반갑반갑 !!!! 웹툰에선 용이 되기 위한 선발과정에 참가한 이무기............이무기인가, 이무기사촌인가, 뭐 여튼 그런 격의 캐릭터로 나온 깡철인데!!! 크 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 후기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괴물을 꼽는다면 단연 ‘강철’이라고 생각한다. 강철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물로 소, 말, 용 등을 닮았다고 묘사된다. 괴물 이야기치고는 기록이 비교적 풍부한 편이고, 전국 각지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강철 이야기는 한 두해 동안 잠깐 돌고 만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이상 끊어지지 않고 전해졌다. 그러다보니 이수광, 이익, 이덕무 같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들도 짧게나마 강철에 관한 글을 썼을 정도다. p 055

 

 

강철 이야기는 과거보다 오히려 현대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듯 싶다. 물론 완전히 맥이 끊겨버린 것은 아니다. 18세기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한 괴물 이야기였던 만큼, 흔적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최근까지 전승된 민속놀이로, 농사를 망치는 재해를 쫓아달라고 기원하는 ‘꽝철이 쫓기’가 있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 실린 사례를 보면 경상북도 일대의 농민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산 능선을 돌았다고 한다. 꽝철이가 산 능선에 앉는 버릇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그렇게 꽝철이를 쫓고 풍년을 빈 것이다. 꽝철이는 조선시대 기록에 등장하는 강철의 발음이 변형된것으로 보인다. 다른 민속놀이에서도 강철을 용이 못 된 이무기 비슷한 것으로 보고, 꽝철이, 깡철이 등 변형된 발음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p 056

 

 

이렇게 보면 강철은 어떤 특정 자연 현상을 상징하는 괴물이라기보다는, 농사를 허망하게 망치는 재해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홍수 피해가 큰 지역에서는 강철을 폭우의 원인으로 본 이야기가 유행하고, 가뭄 피해가 큰 지역에서는 강철을 열기와 메마름의 원인으로 본 이야기가 유행한 것 아닐까. p 059

 

 

웹툰에서도 깡철이가 뜨겁고(?) 불을 잘 쓰던데, 오. 진짜였어!! 심지어 조선시대에 제일 핫했던 친구였어!! 특히 농사가 흉작일때는 더더더욱 핫하고,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친구였어!!!! 하지만 그것도 다 한철. 농업이 주였던 조선과는 달리 현재 대한민국에선, 깡철이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T_T..

 

심지어 농촌인구가 줄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 마저 줄어들고 있으니. 조만간 깡철이도 사라질듯 싶다. 주거형태 변화로 인해 우리나라 가택신들이 사라졌듯이...

 

 

 

고래기름보다 좋은 인어기름: 인어 (강원도)

 

위에서 드라마 #푸른바다의전설 및 어우야담으로 언급했던 인어이야기! 무려 출처는 강원도다. TMI이긴 하지만, 춘천에 있는 할머니댁에 갈때마다 의암댐에 인어상을 매번 봤었다. 그 당시에는 왜 뜬금없이 서양의 인어(?)가 왜 춘천에 있지? 라는 물음표가 엄청 떠다녔었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던거였다니..! 아 물론 강원도에서 발견된 인어들은 우리가 아는 서양의 이쁜 인어공주가 아닌, 중국의 교인쪽에 가까웠던 것 같긴 하지만;;

 

조선시대 이야기에서 인어는 신비롭고 고결한 바다의 왕족(서양인어)도 아니고, 선원들을 유혹하는 마법적인 매력을 지닌 괴물(세이렌)도 아니다. 좀 희귀할 뿐이지 그저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하다. 낚시꾼에게 붙잡히고, 어부는 ‘기름 짜는 것’으로 인어의 쓸모를 말한다. 얼굴은 사람처럼 생겨 김담령에게 깊은 동정심이 우러나게 할 정도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인어를 대하는 태도는 여느 물고기를 대하는 태도와 별 다를 바가 없다. 고래기름은 상하면 냄새나지만 인어기름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p 083

 

 

조선의 인어 이야기가 이 한 편 뿐인 것은 아니다. 역시 《어우야담》에 짧게 실린 것으로 성격이 좀 다른 이야기도 있다. 간성, 그러니까 지금의 강원도 고성에서도 인어 한 마리가 잡혔는데, 피부가 눈처럼 희고 여성처러 ㅁ생겼으며, 장난을 치니 깊은 정이라도 있는 듯 웃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 놓아주니 다시 돌아오기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고 한다. 여성 인어가 남성 뱃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유럽권에서 유행한 인어 이야기와 좀 더 비슷해보인다. 강원도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인어를 목격했다는 사례가 있다. 예를들어 18세기에 활동한 학자 위백규의 《격물설》에는 “근년에 어부가 인어를 잡았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확한 장소는 언급하지 않지만, 그가 주로 호남에 머물렀던 것을 생각하면, 전라도의 남해안이나 서해안이 배경이지 않을까 싶다. p 084

 

 

인어이야기가 널리 퍼진 데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중국 고전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 고전에는 예로부터 ‘교인’이라고 하는 바다에 사는 사람 같은 것이 있어, 그것이 ‘교초’라는 매우 신비로운 옷감을 짠다거나 눈물을 흘리면 진주가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문학의 소재로 좀 과할 정도로 자주 사용되었고, 그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작가들도 시를 지으며 교인이나 교초 같은 말을 즐겨 썼다. p 086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후기의 역사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울릉도의 ‘가지어’를 바다에 사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사람은 아닌 동물로 소개한다. 가지어는 울릉도, 독도에 사는 바다사자의 한 종류인 강치를 일컫는 말인듯 하다. 《동사강목》이 강치를 어린아이와 비교하고 기름짜는 것을 강조한 것을 보면, 《어우야담》의 인어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있어보인다. 수염이 있다는 것도 강치의 모습과 닮았다. 그렇다면 조선의 인어 이야기는 뱃사람들이 강치의 어린아이 같은 울음소리나 귀여운 모습을 신기하게 여겨 말을 전하는 와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p 089

 

 

조선이나, 옆나라 중국이나 양쪽 모두 ‘고래기름보다 인어기름이 낫다’라는 말이 꾸준히 나온 것을 보면 인어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있긴 있었나보다. 다만 당시에는 과학 연구가 발달하지 못했기에 ‘사람과 비슷한 물고기’로 보았을 뿐이랄까?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발견된 인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저자와 비슷한 생각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말한 인어는 독도의 강치같은 바다사자는 아니었을까하고.

 

 

하지만 인어가 사라졌듯, 강치도 사라졌다. 일본놈들의 만행으로 인해. 일제강점기, 일본놈들은 마구잡이로 강치를 사냥해서 강치가죽으로 옷을 만들고, 강치 지방은 기름으로 이용하고, 살과 뼈는 비료로 이용하고, 살아있는 생물은 서커스용으로 학대했다. 그렇게 우리 동해안에 살았던 강치는 인어전설만 남긴채 사라졌다는 슬픈 이야기.

 

 

 

왕건으로 이어지는 용의 계보: 용손 (경기도)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있는 요괴들은 대체적으로 자연환경이나, 생소한 동물을 비유한 거라고 한다면... 용손, 즉 용의 자손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용의 자손, 어쩌면 지금도 성씨를 바꿔서 근근히 살아남았을수도 있다. 이렇게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건, 한반도에서 용의 자손이 약 5백년간이나 나라를 다스렸기때문이다. 그것도 우리가 매우 잘 알고 있는나라, 왕건이 세운 ‘고려’를!

 

용과 사람 사이에 태어난 자손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소설이나 영화, 또는 유럽이나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용할 법한 소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동안 용의 자손, 즉 ‘용손’이 있다는 괴물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친숙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고려시대에는 임금이 바로 용과 사람 사이에 태어난 자손이라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p 096

 

 

용손은 천명이 다하고, 선리는 부창해 영화하도다. 천년 전에 그 징조가 심히 밝았도다. 하늘이 열어주어 우리 임금이 점치었또다. 아름답다! 천만 년의 태평을 열어놓았도다.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이요, 높고 높은 화악이로다. p 097 (인용 《태종실록》)

 

 

작제건이 서해 용왕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곳에 살면서 아들 넷, 딸 하나를 낳았는데, 용녀가 집 가운데 우물을 파고 늘 우물 가운데를 통해 서해에 왕래하며, 그 남편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장차 우물에 들어갈 터이니, 절대로 보지 마시오” 했다. 그 후 작제건이 창틈으로 엿보니, 용녀가 딸을 거느리고 우물가에 이르러 함께 황룡으로 화해 구름을 일으키고 우물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남편을 꾸짖기를 “어째서 언약을 어기시오.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드디어 딸과 더불어 용으로 변해 우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아니했다. p 104 (인용 《세종실록》)

 

 

정말로 1,000년 전에는 서해에 용이 살았고, 그 딸이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근거는 없지만 용의 딸이라는 저민의의 정체가 사실 해적은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본적이 있따. 왕건의 할아버지뻘이라면 장보고가 해적을 물리치던 시기와 그리 멀지 않다. 특히 장보고가 몰락한 후 해적은 신라의 중요한 사회 문제였다. 거타지 이야기에도 선원들이 옛 백제 땅 출신 해적들을 방비하괒 고민했다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작제건이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 저민의는 용의 딸이 아니라, 용의 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해적이었을 수 있지 않을까. 저민의가 이끄는 해적 무리가 다른 무리와 파벌 싸움을 벌이다가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데, 화살을 잘 쏘는 작제건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상대편을 물리친 사건이 용손 이야기로 신비롭게 탈바꿈한 것은 아닐까. p 105

 

 

그러니까 한마디로 작제건이라는 사람이 서해용왕의 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나았는데, 그 아이가 왕륭이다(1대용손). 왕륭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가 왕건(2대용손)이다. 즉 왕건의 할머니가 용이고, 왕건은 용의 손자라는 이야기. 이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대대손손 왕씨가 왕이되니, 왕씨가 용손이라는 뭐 그런 이야기다. 심지어 야사에 따르면 고려 말 우왕은 본인이 신돈의 아들이 아니라, 왕씨 혈통이 맞다며 겨드랑이에 있는 용의 비늘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뭐 이렇든 저렇든 한 나라를 세우는 왕 치고 출생의 비밀이 없는 왕은 없으니, 고려 왕씨의 용손 전설도 그러한 맥락에서 보는게 맞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저 이야기가 정말 진실이라면,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 땅에는 용손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조선초 살아남아 성씨를 바꾼, 고려왕씨의 후손은 현재도 살아있으니, 그들 모두가 용손이 아닌가! 물론 용의 피가 1천년의 세월만큼 엄청엄청 옅어졌겠지만 ㅋㅋ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한줄평 (31건) 한줄평 총점 9.4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실록 등 여러 옛 기록에 나타난 기이한 괴물 이야기. 서양 괴물에 싫증 난 분께 추천!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플래티넘 진*래 | 2021.01.27
구매 평점5점
즐거운 책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디자인도 글에 잘 어울리고.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s******** | 2021.12.13
구매 평점5점
흥미로워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로얄 s****9 | 2023.02.14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5,3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